35. 모교 (3)
한때 대한민국의 방패라 불리며 부러움과 시기심을 한 몸에 받던 헌터 양성 기관, 더 가드의 종말은 초라했다.
고작 한 줌의 사람이 모여 있었다.
한 사내가 단상에 올라 연설을 하고 있었다.
“우리를 지켜야 할 사람들이 우리를 버리고 자기만 살고자 달아났습니다. 반격을 꾀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글자 그대로 그들은 우리를 버렸습니다. 그들은 시대의 오점입니다. 저는 그 시대의 오점을 치우고 그 자리에 새로운 미래를 세우려 합니다.”
어디서 본 적이 있는 얼굴이다.
박상민이었나.
국회의원이랍시고 거들먹거리던.
제풍호와 함께 하던 이후로 본 적이 없었는데 늘 그렇듯 이런 놈은 오래 사는 모양이다.
주변에서 불만 서린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저 인간이구만. 아무것도 남지 않은 학교 건물을 기어코 없애자고 주장한 게.”
“뭐라도 해볼 생각인 게지. 곧 선거가 있다잖아?”
“국민대표? 500명이나 뽑는다는 그거?”
“대한민국 인구가 반 넘게 줄었는데 왜 밥버러지 숫자는 늘어만 가는 거지? 누굴 위해서?”
절반은 박상민을 비난했지만 다른 절반은 아마도 박상민이 데려온 사람으로 보였다.
“뭘 안다고.”
“조용히 해요. 버려진 퇴물 주제에.”
“국민의 대표가 늘어날수록 국민의 권리가 더 늘어나는 기본도 몰라?”
“그려. 원망하려면 당신들 버린 국위원에게나 하던가. 목줄 채운 놈들에겐 한마디도 못 하면서.”
박상민은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다 연설을 마무리했다.
“더러운 시대가 끝날 겁니다. 새로운 시대가 올 겁니다. 이 박상민. 여러분과 함께 새 시대를 열기 위해 오늘도 전력 질주 하겠습니다.”
박상민이 차를 타고 떠나자 그나마 몇 없던 사람의 절반이 빠져나갔다.
모래 섞인 바람이 부는 을씨년스러운 현장에 남은 건 스무 명 가량이었다.
다들 나보다 나이가 많아 보였다.
40대가 대부분, 더러는 50대도 가끔 보였다.
나보다 어린 친구는 눈 씻고도 찾을 수 없고 내 또래조차 찾을 수 없었다.
미련을 가지고 한 여성을 찾았다.
김다람이 여기는 있지 않을까.
그녀는 내가 우민희의 초대를 수락한 이유 중 하나다.
어쩌면 그녀가 이곳에 나타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녀에게나 나에게나 이곳은 소중한 장소니까.
남들이 나의 은사를 비난하고 사기꾼이라고 부르지만 나는 그분의 은혜를 입었다.
김다람도 마찬가지다.
장기영은 돈 있고 힘 있는 집의 자식과 우리 같은 고아를 공평하게 대 했다.
부모가 없다고 함부로 무시하지도 않았고 불이익을 준 적도 없었다.
나는 그 사실을 항상 감사해왔다.
다른 교관들은 그렇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김다람은 이 자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녀의 이름을 팔며 나를 끌어내려던 백승현도 자리에 없다.
“······.”
두 가지 작은 목적이 무위로 돌아갔다.
둘 중 하나라도 나타났다면 내 오랜 의문을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었을 터인데.
학교 옆엔 작은 빈소가 있었다.
장기영의 빈소다.
왜 살아 있는 장기영의 빈소를 학교 옆에 놓아둔 지 알지 못했는데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우민희의 짓이다.
그녀의 병적인 감수성이 드라마를 부여한 것이다.
방명록 첫 장엔 과연 이번 일을 기획한 사람의 이름이 쓸데없이 유려한 필체로 적혀 있었다.
[ 우민희 ]
그 뒤에 흐릿한 기억에만 남은 교관 몇의 이름이 있었고 선배로 보이는 사람 이름도 몇 개 있었지만 그 숫자는 다 합쳐서 10명을 넘어가지 못했다.
10명째 방명록에 내 이름을 적었다.
“······.”
순간 고민했다.
박규라고 적어야 하는 지.
사실 여기서는 박규라고 적는 게 맞다.
공적으로나 사적으로 나를 대표하는 성과 이름을 적는 것이 고인에 대한 예의다.
하지만 알 수 없는 변덕이 다른 선택지를 강하게 떠올렸다.
빈소를 지키는 이가 아무도 없다는 것 또한 내 새로운 생각에 힘을 실어주었다.
천천히 그리고 정중하게 아직 살아있는 망인의 방명록에 나라는 존재를 남겼다.
[ 프로페서 ]
아마 이쪽이 이미 죽은, 그리고 다시 죽을 은사에게 더 큰 울림을 줄 이름이 아닐까.
모두가 과분하다고 반대할 때 강력하게 주장해서 기어코 밀어붙이던 내 은사의 가장 빛나던 순간을 생각하면 말이다.
빈소 옆에 있던 중년 사내들의 대화가 들려왔다.
“장교장이 학교 철거를 막을 비장의 한 수가 있다고 했거든. 대체 그가 말한 한 수는 무엇이었을까? 그것만 성공하면 철거를 막을 수 있다고 했는데.”
“글쎄. 누가 뭐래도 장대위가 애국자라는 건 변치 않을 거야. 그는 끝까지 국가에 충성했어. 교장에서 물러나고 소송에 휘말렸을 때 중국에서 스카웃 제의가 왔는데 단칼에 거절했지. 그런 사람은 또 없어.”
누가 뭐라고 해도 장기영은 이상훈보다는 인망이 높았고 존경받을 만한 사람이었다.
편애받던 제자라서 하는 말이 아니다.
“물러서 주세요. 곧 폭파를 시작합니다.”
멀리서 총성이 울리는 가운데 사람들이 모였다.
몇몇 사람이 날 보고 목례를 했지만 나는 그들을 알아보지 못했다.
어렴풋이 기억에 있는 얼굴이지만 아는 체를 하고 대화를 하기엔 너무나 멀어진 느낌이다.
이야기를 나눠봐야 공허한 메아리의 반복이리라.
초읽기가 시작됐고 곧 학교 곳곳에 설치된 폭발물이 굉음을 일으켰다.
흙먼지 속에서 내가 3년을 보냈던 교정과 교실이 녹아내리듯 잠겨 들었다.
아마 이 순간, 학교의 설립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나의 은사도 영원한 죽음을 맞이하겠지.
학교와 은사 둘에게 묵념을 바치며 이제는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세월의 한 페이지를 추모하며 자리를 떠났다.
돌아오는 길은 장갑차를 타고 갔다.
헬기에 탄 병사들과 달리 장갑차에 탄 병사들은 벽을 세우지 않았다.
그들은 나처럼 호기심이 많았다.
“헌터였다면서요? 몬스터 앞에 섰을 때 기분이 어땠나요?”
“사람 사는 게 비슷하죠. 도망치고 싶고 때려치우고 싶죠.”
“강한민, 나혜원을 아시나요?”
“잘은 모릅니다. 동기가 천이백 명 정도 되면 얼굴 한 번 못 보고 지나치는 녀석도 있기 마련이니까요.”
잠자코 있던 장교 하나가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가 날 보며 불쑥 물었다.
“이런데 살면 우울증 안 옵니까?”
“뭐, 극복해야 할 일이겠죠.”
“프리랜서 헌터라는 게 있더라고요. 급여는 그리 많지 않아도 입에 풀칠할 정도는 되더라고요. 그 정도면 이런 곳이 아니라 부두 옆에 괜찮은 숙소 얻어 살 수 있을 거 같은데요.”
무슨 소리를 하나 싶었더니 나를 걱정해주는 모양이다.
장교가 내게 뭔가 내밀었다.
“이건 우소장님께서 전해달라는 물건입니다.”
손바닥 크기의 수첩이었다.
“스승님의 유품이라고 하시더군요. 박규씨가 가지는 게 좋을 거 같다면서 전달을 부탁받았습니다.”
표지 가죽이 다 떨어질 정도로 낡은 수첩엔 힘 있고 절도 있는 필체가 빽빽하게 수첩 전체를 채우고 있었다.
첫 장에 그려진, 구식 느낌이 진하게 나는 용의 그림과 함께 힘있게 써 내려간 한문이 포함된 문구가 내 눈길을 사로 잡았다.
[ 이 한 몸 부서져도, 祖國의 守護를 위하여. ]
틀림없다. 내 은사, 장기영의 글씨다.
분명 그 방에서 잉크를 다 쓴 펜으로 뭔가를 끄적거렸었지.
적당히 감사를 표하고 장갑차에서 내렸다.
군인들이 손을 흔들어주었다.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내 방공호에 도착하려면 꽤 먼 거리를 걸어야 한다.
우민희에게 내 위치를 알려주기 싫어서 12km나 떨어진 곳까지 걸어와 연락을 취했으니까.
3km 거리로 할 걸 그랬나.
그래도 최근엔 믿을 구석이 하나 있다.
“디펜더 동생 있냐?”
“전에 준 갈비 맛있더라. 둘이 먹다 셋을 죽여도 모를 맛이었어.”
“내 위치 알려줄 테니 주변 정찰 좀 가능하겠어?”
“아이~.”
디펜더 동생의 지원을 받아 황량한 길을 걸어 내 영역에 도착했다.
언제나처럼 을씨년스러우면서도 정감 있는 풍경.
방공호의 문을 열고 들어가 매트리스 위에 몸을 던지듯 누웠다.
“······후우.”
많은 일이 있었던 것 같지만 마치 모래가 손가락 틈 사이로 빠져나오는 것처럼 막상 집에 오니 기억나는 게 아무것도 없다.
그나마 추려본다면 아침 햇살을 받으며 침대에서 일어나는 감각이 좋았다 정도?
잠깐 인터넷이나 할까 하다 그 상태 그대로 30분 넘게 멍하니 누운 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나를 일으켜 세운 건 K-워키토키의 착신음이었다.
개인식별번호 : REDMASK
우민희다.
정작 인천에서는 코빼기도 안 보였던 그녀가 왜 나에게 연락을 했을까.
연락을 받지 말까? 잠시 생각해봤지만 결국 천근 같은 몸을 일으켜 무전기를 들었다.
“우민희냐.”
“선배!”
우민희의 목소리엔 뭐랄까, 불온한 활기가 넘쳐 흐르고 있었다.
“장기영이 말했어!”
“뭐라고?”
“죽기 전에 갑자기 발작을 일으키면서 똥과 오줌을 싸대는데 그 난리를 피우는 가운데도 선배 콜사인을 외치더라니까! 프로페서! 프로페서! 라고!”
우민희의 조롱과 경멸로 범벅이 된 어조로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는 건 내 은사에겐 억울한 측면이 있을 것이다.
많은 오점이 있지만 내 은사는 우민희가 함부로 평가할 사람이 아니다.
내 나름대로 은사의 최후를 재구성해봤다.
정물처럼 앉아 있던 장기영을 연구소 직원들이 수술용 의자 겸 침대로 쓸 수 있는 가변식 의자에 앉힌 후 그의 정맥에 바늘을 꽂아 넣고 죽음에 이르는 약물을 흘려보냈다.
그때까지 내 은사는 미동도 없이 죽은 사람처럼 멍하니 앞을 응시했다.
튜브를 타고 흘러 들어간 독액이 심장에 이르러 심장의 박동을 멈추려고 할 때였다.
내 은사는 그를 구속하고 있던 가죽과 철로 만든 구속구를 가볍게 뜯어버리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사람들이 전기 진압봉 혹은 총기를 들고 주변에 모여든다.
그들은 혹시 모를 불미스러운 상황에 대비해 내 은사를 노심초사하는 시선으로 살폈지만 내 은사는 연구소가 아닌 다른 풍경을 보고 있었다.
사실상 그가 세웠던 학교, 그 옆에 세워진 초라한 빈소, 그 빈소 안에서 고민하며 펜을 놀리는 나를 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방명록에 적힌 사음절의 단어를 보았다.
알 수 없는 충동을 느끼며 나의 은사는 호랑이처럼 포효했다.
“프로페서!”
손을 뻗어 매트리스 구석에 던져진 수첩을 들었다.
은사가 남긴 수첩엔 몬스터 유형 별 대처 방안, 유형별 작전, 포지션, 보다 효율적인 무기 같은 구상이 적혀 있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실전에서 써먹지 못할 내용이다.
지나치게 현란하고 무의미한 부분이 많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의문이 들었다.
어떻게 매 페이지마다 고리타분하고 비현실적인 상상을 적어놨는지.
이런 사람이 우리를 가르쳤다는 게 실소를 자아냈다.
그래서일까?
장기영이 우리에게 완벽을 강요한 것은.
자신의 모호한 상상을 현실로 불러오려면 최고의 배우나 예술가가 필요하다는 걸 알기에 그토록 모질게 학생들을 대하고 완벽이라는 단어를 주입한 것이다.
하지만 그의 상상력은 현실을 담기엔 너무나 빈약했다.
누가 알았을까.
그가 가장 하찮은 도구로 본 강한민이 세상의 틀 전체를 바꿔버릴 줄은.
한편 나 박규가, 장기영의 터무니없는 상상을 가장 잘 표현하는 도구라는 건 객관적인 사실이다.
그 사실을 증염이라도 하는듯 마지막 페이지엔 마치 그와 나를 이어주던 무기 하나가 그려져 있었다.
장기영이 구상한, 최신예 도끼다.
“아니, 교관님.”
나도 모르게 그를 찾았다.
어처구니없게도 도끼 끝단엔 추진형 로켓이 달려 있었다.
[ 로켓 추진형 타격력 강화 부착물 ]
그의 유년기에 유행했던 로봇 애니메이션에서 영감이라도 받은 걸까.
은사의 동심에 절로 미소가 입가에 배어드는 걸 느끼며 도끼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
뭔가 위화감이 느껴진다.
검게 음영이 칠해져 있던 도낏자루 부분에 갑자기 도려낸 듯이 음영이 사라져 있다.
자세히 보니 음영이 사라진 부분에 뭔가 붙어 있었다.
떼어내 보았다.
평범한 종이가 아니다.
정신감응 테스트지다.
나와 스우와 벽에 나란히 붙여놓은 검은색 종이 말이다.
그런데 이 테스트지의 색깔이 낯설다.
검정이 아닌 하얀색.
그것도 순백이다.
교관의 딸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검 - 청 - 적 - 회 - 백이라고 했던가.
백.
하얀 색이라.
그것도 서글플 정도로 창백한 백색.
“······.”
수첩을 덮고 내 은사의 최후를 다시 생각해봤다.
스스로 제안한 가혹한 실험에서 장기영은 신에게 선택받았다.
강한민 혹은 나예원처럼 삼라만상을 꿰뚫는 통찰력과 함께.
그 순간 장기영은 모든 걸 깨달았다.
자신의 위대한 성공과 피할 수 없는 어두운 운명을.
그는 결과가 좋고 나쁘건 자신이 실험체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장기영에겐 상황을 타개할 힘이 있다.
신에게 받은 힘으로 구속구를 부수고 자신을 업신여기는 제자에게 통렬한 가르침을 줄 수도 있을 정도의 힘이.
나는 그가 그런 선택을 하지 않으려는 걸 알고 있다.
그는 군인이자 애국자이며 남들에게 가혹한 만큼 자신에게도 가혹한 사람이다.
그는 아마 자신이 지키려던 대한민국을 상처 입지 않기 위해 묵묵히 약속된 처분을 기다렸을 것이다.
그 결정은 그리 쉽게 관철할 순 없었을 것이다.
그는 복도 밖에 딸이 그가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기만을 기다리는 걸 알고 있었다.
최후의 순간까지 장기영은 군인의 의무와 개인적인 욕망 사이에서 고민했다.
우민희와 그녀 뒤에 있을 국위원에 대한 분노도 그의 판단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결국 내 은사가 선택한 건 소극적인 저항 - 조용한 죽음이다.
그가 최후에 내 콜사인을 부른 이유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딸도 아내도 강한민도 내 이름도 아닌 나의 콜사인을 부른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오랜 고민 끝에 어설프게나마 이유를 만들어보았다.
그건 아마 자신의 애제자에게 마지막 가르침을 주려던 게 아니었을까.
“프로페서!”
우리, 선택받지 못한 자들 앞에 “아직”이라는 부사가 있음을 알려주기 위해서 말이다.
*
그날 밤 꿈을 꾸었다.
흑백의 꿈속에서 나는 풋풋함이 남은 10대였고 내 앞에 선 은사 또한 30대의 젊음이 남아 있었다.
“박규! 도끼는 이렇게 쓰는 거다!”
내 은사와 정신없이 대련했다.
온 몸의 진이 빠질 정도로.
눈이 쫓아가기 어려운 궤적들을 쫓아 공격을 막아내고 비슷한 방식으로 반격을 가했다.
“잠시 휴식!”
과거처럼 지칠 줄 모르는 정력의 소유자인 장기영이 헐떡이며 숨을 고르는 날 놔두고 홱 하고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의 호랑이 같은 눈에 선명한 분노가 서렸다.
“강한민! 뭐 하는 거야!”
다시 장기영이 날 바라보았다.
그가 미소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