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모교 (2)
우민희를 믿을 수 없기에 내 영역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진 황무지에서 교신을 시도했다.
“거기서 기다리고 있어. 사람 보낼 테니까.”
국위원이 제주도로 떠난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운명은 암울해 보였다.
실제로 그 잘나가던 김다람이 실종됐다.
페일넷에서 그녀의 이름을 검색했지만 그 방대한 정보의 바다에서도 김다람의 정보는 찾을 수 없었다.
우민희는 달랐다.
여전히 힘이 있었다.
헬기가 고작 나 하나를 데리기 위해서 약속 장소에 나타났다.
“박규님이십니까?”
“네. 그렇습니다만.”
“타시지요. 우민희 소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역시 감투를 쓴 것인가.
대체 어느 기관의 소장을 맡았는지 궁금했지만 군인들의 굳게 다물 입술과 회피하는 눈들을 보니 직접 물어보는 쪽이 나을 듯싶었다.
헬기는 나를 인천에 데리고 갔다.
현재 인천은 명실상부한 대한민국의 수도.
파괴되고 버려진 서울 대신 거의 모든 기반이 이쪽으로 옮겨갔다.
무엇보다 사람들을 인천으로 끌어당긴 건 바다 때문일 것이다.
항구엔 수많은 배가 있었는데 갑판마다 사람들이 용접을 하고 짐을 실어 나르며 출항을 준비했다.
목적지는 다름 아닌 제주.
제주도를 장악한 국위원 쪽에서는 이와 관련해 어떠한 입장도 드러내지 않았지만 정부에선 한 척이 아닌 수십 척으로 이루어진 초대형 선단을 보낼 예정이란다.
셀 수 없는 사람들이 부둣가에 서서 작업을 구경하거나 특별한 목적 없이 배회하고 있었다.
부두가 끝나는 지점엔 간판이 없는 연구시설이 있었다.
“여기입니다.”
이 무채색의 콘크리트 건물이 우민희가 소장을 맡는 기관인 모양.
안으로 들어가자 하얗게 환한 조명과 잡티 하나 없는 하얀 타일이 깔린 정돈된 실내가 나를 반겼다.
“박규씨 되시죠?”
처음 보는 안경을 낀 여성이 내게 인사했다.
“네. 그렇습니다만.”
“우민희 소장님의 지시를 받고 대신해서 박선생님을 안내하게 된 김수진이라고 합니다.”
“우민희 소장님은 어디에 계신가요?”
“지금 출타 중이십니다. 아마 오늘 안으로는 복귀하지 않으실 거 같아 제가 대신 응대하게 되었습니다.”
김수진을 따라 연구시설 안으로 들어갔다.
연구소 안엔 하얀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저마다 서류와 노트북을 들고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뭐가 그리 바쁜지는 부외자인 나로서는 알 수 없었지만 수시로 전화 통화를 하고 과할 정도로 키보드를 강하게 두드리며 화면을 채우는 걸 보니 일이 많은 것 같긴 하다.
그런데 조금만 고개를 돌리면 구석진 곳마다 사람들이 커피잔을 든 채 삼삼오오 모여 농담 따먹기를 하고 있거나 의자에 앉아 눈을 붙이고 있다.
일이 많은 건지, 아니면 일이 많은 척 해야 하는 곳인지.
좀 더 안으로 들어가자 중학생 정도 되는 아이들을 모아 놓은 방이 있었다. 우리가 지나가자 호기심 어린 시선들이 우리를 향했다.
아이들의 시선이 떠나길 기다려 김수진에게 물었다.
“애들이 왜 저렇게 많죠?”
“가드 신입생으로 뽑힌 애들이에요.”
“가드요?”
“네.”
“내일 허문다고 들었는데.”
“그건 서울 구교사고요. 제주도에 새로 개원을 해서 어웨이큰 적성이 있는 아이들을 새로운 헌터로 육성하고 있답니다. 우리 시설은 그걸 위해 재능 있는 아이들을 찾고 모집하고 보호하는 기관이고요.”
“그럼 저 아이들은 다 제주도로 가는 겁니까?”
“일부는 갈 수 있겠죠. 여러 테스트를 받아야 하니까.”
“정신 감응 테스트 같은 거 말이죠?”
“네. 잘 아시네요.”
한 번도 날 쳐다보지 않던 김수진이 날 힐끗 쳐다보았다.
그 시선엔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다는 노골적인 불쾌감이 담겨 있었다.
딱히 잡음을 빚고 싶지 않아 내버려 두었다.
그 이후 우리는 꽤 먼 거리를 한마디 말도 없이 걸어가야 했다.
시설의 깊숙한 곳으로 향할수록 소독약 냄새가 짙어졌는데 그 사이로 은은한 시체의 냄새가 풍겨왔다.
“여기예요.”
그녀가 날 어두운 방으로 안내했다.
퀭한 눈으로 모니터를 들여다보는 연구원 몇 명이 있었다.
그들은 우리가 들어와도 고개 한 번 돌리지 않았다.
방 한구석엔 의료용 침대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는데 침대마다 얼굴에 천을 덮어놓은 시체들이 누워있었다.
“좀비들이에요.”
김수진이 날 쳐다보지 않고 말했다.
그럴지도 모른다.
그런데 저 차갑게 굳은 손들은 왜 저리 작아 보일까.
내게 노트북을 제공한 소년의 얼굴이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시체로 가득 찬 방 너머엔 오싹하리만치 조용한 복도가 있었는데 거기엔 수많은 문들이 있었고 문마다 작은 벤치가 놓여 있었다.
고교생에서 대학생 사이로 보이는 키가 큰 소녀가 그 복도에 앉아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소녀가 김수진을 보자 목례했다.
“차도는 있으신가요?”
김수진의 물음에 소녀는 어색한 미소를 머금은 채 고개를 가로저었다.
김수진이 그 옆의 문을 열어젖혔다.
“여기예요.”
한 사람이 책상에 정자세로 앉아 있었다.
그를 알아보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들지 않았다.
“교관님.”
장기영 교관이다.
터럭 하나 상하지 않고 멀쩡한.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문이 열려도, 내가 불러도 그는 응답이 없다.
“교관님?”
다시 불렀다.
그에게 호랑이 교관이라는 별명을 안겨다 준 부리부리한 눈매는 여전했지만 그 너머의 눈동자는 탁하고 흐릿했다.
“······.”
마치 영혼 없는 얼굴로 나의 은사는 수첩을 꺼내놓고 뭔가를 적고 있었다.
그의 생각이 종이 위에 옮겨지는 일은 없었다.
사각사각
그 수첩의 페이지는 이미 꽉 차 있었고 그가 손에 쥔 펜은 이미 잉크가 다 떨어져 있었으니.
“하아.”
옆에 있던 김수진이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반응이 없네요. 돌아가시죠.”
“······설명을 좀 듣고 싶은데.”
그녀를 노려보는 내 시선은 약간은 살벌했었던 모양이다.
시종일관 딱딱하게 굴던 김수진의 얼굴에 공포의 그림자가 드리우는 걸 보면 말이다.
*
폐쇄회로 화면에 찍힌 장기영은 지극히 정상처럼 보였다.
책상에 앉은 채 책을 뒤적거리고 가끔 자리에서 일어나 뒷짐을 진 채 좁은 방안을 거닐기도 하고 침대에 슬그머니 누워 눈을 멀뚱멀뚱거리며 천정을 한동안 올려다보기도 했다.
“그렇게 된 거군요.”
장기영은 그가 언젠가 내게 말했던 미친 짓을 실제 행동으로 옮겼다.
죽음 - 변이 - 부활이라는.
안타깝게도 그의 실험적인 시도는 아무 성과도 거두지 못했다.
“이게 그 결과죠.”
김수진이 내게 시트지를 내밀었다.
검정.
나와 스우와 같은 색채다.
폐쇄회로 안의 은사를 가만히 보았다.
“처음엔 상태가 좋았어요. 말도 하고 식사도 하셨죠. 하지만 갑자기 상태가 나빠지더니 저렇게 변해버렸죠.”
“······치매 현상인가요?”
“더 심각합니다. 저분은 지금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니에요.”
김수진의 설명을 들었을 때 나는 비로소 발견했다.
해상도 낮은 화면 속의 장기영의 손가락이 몇 개 없다는 걸.
지난 한파 때 동상에 걸려서 몇 개 잘라낸 모양이다.
“그러니까 인간이면서 동시에 좀비인 거죠.”
둘의 차이가 무엇일까.
수많은 좀비를 도륙했지만 인간과 좀비의 구분을 그리 엄격하게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딱 봐도 죽은 놈이 일어서서 활동하고 사람을 공격하면 그게 좀비니까.
내가 아는 좀비의 속성은 시체 같은 무언가가 움직이고 사람을 해치려 드는 것이다.
김수진의 구분은 나보다는 명확했다.
“심장 활동과 뇌 활동이 정지한 상태에서 뮤테이션 인자가 뇌와 장기 쪽에 변이를 일으켜 비정상적인 생명 활동을 이어가는 인간의 시체. 그게 지금까지 알려진 좀비의 정의지요.”
그녀가 몇 개의 화상 자료를 보여줬다.
“보다시피 장기영씨의 뇌와 장기엔 뮤테이션 인자로 인한 변이 현상이 관측됩니다. 이쪽에 난 돌기 보이시죠?”
“네.”
“하지만 그는 살아 있어요. 심장도 뛰고 있고 뇌파도 정상이지요. 소위 뇌사설을 취하든 심폐정지설을 취하든 장기영씨는 살아 있는 인간이에요. 하지만 그는 보다시피 저 모양 저 꼴입니다.”
폐쇄회로 안의 장기영을 보았다.
그는 자신의 트레이드마크 같던 꼿꼿하게 허리를 세운 정자세로 앉은 채 허공을 움푹 팬 눈으로 지그시 노려보며 입술을 잘근잘근 씹고 있었다.
분노라도 하는 걸까.
분노를 한다면 무엇에 대한 분노일까.
내가 그라면 혼란에 빠질 것이다.
그가 진정으로 분노해야 할 대상은 원했던 권능의 한 조각도 얻지 못한 채, 스스로 파멸의 길로 걸어 들어간 것은 다름 아닌 장기영 본인이니까.
김수진이 날 돌아보았다.
“박규씨를 부른 건 장기영씨의 지인이기 때문입니다. 우민희 소장님이 지목하시더라고요.”
그녀가 다시 서류철로 시선을 돌리며 얕은 한숨을 내쉬며 힘없이 덧붙였다.
“하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네요. 박규씨도 장기영씨의 잃어버린 정신을 돌려놓기엔 역부족이었나보죠.”
“그런가요?”
“낙담하실 건 없어요. 앞에 앉아 있는 여자애 봤죠? 키가 큰.”
“네.”
“장기영씨 딸이에요. 양육권 가지고 전처를 폭행할 정도로 끔찍이 아낀 딸이라던데 그 딸조차 못 알아보고 있죠.”
잠깐 시간을 요청했다.
딸에게 묻고 싶은 게 있었다.
그녀는 여전히 벤치에 앉아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뭘 하나 싶었더니 페일넷 로고가 보인다.
존내논.
그의 빛이 여기까지 미치는 모양이다.
그녀는 [유명 연예인 근황 게시판]을 보고 있었다.
“안녕.”
소녀에게 인사했다.
그녀는 멀뚱멀뚱 날 보다가 이내 고개를 갸우뚱거렸고 곧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앗?!”
“뭐냐.”
“혹시 아빠 제자세요?”
“잘 아네.”
그녀가 휴대폰을 열심히 두드리더니 사진 한 장을 보여주었다.
“아빠 옆에 서 있던 분이시죠?”
그 사진엔 아직 30대의 젊음이 남아 있었던 장기영 교관의 모습과 그 옆에 선 제자들이 담겨 있었다.
“자랑스러운 제자들이라고 하더라고요.”
그 사진을 보고 나는 어째서인지 피식 웃고 말았다.
장기영 옆에 선 내 자세가 지나치게 딱딱한 것도 있겠지만 궁상 맞아 보이는 김다람의 모습이라든지, 그 와중에도 제일 예쁜 여자 동기 옆에 딱 달라붙던 이상훈이라든지, 혼자 동떨어져서 모델 포즈를 취한 우민희, 두 손을 엑스자로 교차하고 독특한 파이팅 포즈를 취한 공경민 등등 추억의 동료들이 저마다의 개성을 드러낸 채 한 자리를 차지한 게 퍽이나 재밌어 보였기 때문이다.
사진의 가장자리, 그러니까 나와 장기영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지점엔 고개를 살짝 숙인, 얼굴에 근심 같은 음영이 드리워진 강한민이 어깨를 구부정하게 구부린 채 다른 동료와 거리를 둔 채 엉거주춤하게 서 있었다.
이 녀석.
그날, 기념사진 찍으러 왔었구나.
안 온 줄 알았는데.
“그럼 내 이름도 알겠구나.”
한동안 사진을 보며 말했다.
“아니오. 모르는데요. 아빠는 제자들 사진을 보여주긴 했지만 이름을 말해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어요. 그 구원자 강한민도 분명 이 중 하나일 텐데!”
그녀가 갑자기 눈을 반짝였다.
“호, 호, 혹시 강한민님이세요?!”
“아니. 그런 대단한 사람은 아니야.”
“하긴, 그런 엄청난 분이 이런데 올 리가 없겠죠.”
처음부터 소녀를 상대하며 드는 의문이 있었다.
그건 바로 그녀에게서 약간의 슬픔도 찾아볼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괜찮아?”
소녀에게 물었다.
“뭐가요?”
“교관님 상태가 걱정되지 않아?”
“별로요. 초등학교 때부터 이미 안 본 사인걸요. 아빠 제자니 알 거 아니에요? 그 성질머리.”
“······지랄 맞긴 했지.”
“봐요. 우리한텐 더 지랄 맞았어요. 진짜. 어휴. 안 당해보면 몰라요.”
소녀가 갖가지 희로애락이 깃든 표정을 지어 보이며 가슴을 가볍게 두드렸다.
“여긴 왜 있는 거냐?”
알면서도 물어보았다.
“여기 통신도 잘 터지기도 하고 밥도 잘 주기도 하지만 역시, 제주도로 가려고요.”
그녀가 내게 시트지 하나를 내밀었다.
정신 감응 시트지다.
저 모양 저 꼴이 되고도 검은 색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부친과 달리 그의 딸의 시트지는 희미한 연분홍빛으로 변해 있었다.
“오. 이런 색으로도 변하는구나.”
“검 - 청 - 적 - 회 - 백 모르세요?”
“백으로 갈수록 좋은 거겠지?”
“그렇죠!”
“너는 어디지?”
“적과 회 사이 아닐까요? 회색부터 확실히 안정권이라는데 저 같은 경우엔 아빠도 있고.”
그녀가 쓴웃음을 머금으며 굳게 닫힌 문 쪽을 돌아보았다.
“아빠가 깨어나면 바로 특례로 입학시켜주겠대요. 우민희 언니라는 분이.”
“언니라기보다는 이모 아니냐?”
“멀쩡하게 생기셨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잘 맥이시네요?”
“······.”
이름 모를 소녀와 작별하고 다시 김수진에게 돌아갔다.
“이제 교관님은 어떻게 되나요?”
내 물음에 김수진은 눈알을 굴리며 변명할 거리를 생각했다.
“솔직하게 말씀해주세요. 어떤 결과라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이에 김수진이 말했다.
“처분할 예정이에요.”
“······처분이라.”
“굳이 처분하지 않더라도 곧 좀비로 변하겠죠.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고 4일째 저러고 있으니.”
김수진이 한숨을 내쉬며 반문했다.
“게다가 저렇게 망령처럼 방황하느니 차라리 영원히 눈을 감는 게 낫지 않겠어요?”
우민희는 끝끝내 만나지 못했다.
그녀가 제공한 훌륭한 숙소에서 하룻밤을 자고 괜찮은 식사를 하면서 자기객관화를 할 수 있었다.
나라는 존재는 그녀에게 그다지 중요한 인물이 아니라는 걸.
그냥 부른 것이다.
가벼운 충동으로 말이다.
그녀에게 나는 겨우 그 정도 존재에 지나지 않았다.
“프로페서······.”
햇살이 모로 새어 들어오는 침대에 누운 채 나는 과거 모두가 경의를 담아 말하던 나의 콜사인을 중얼거렸다.
그 이름을 내게 준 사람은 이제 곧 처분될 것이다.
공교롭게도 장기영의 처분 시간은 내 모교가 다이너마이트로 철거되는 시간과 같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