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모교 (1)
처음 학교에 갔을 때를 기억한다.
몇몇 입학생들이 부모와 형제를 거느리고 사진을 찍고 웃고 떠들며 미래를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며 당연한 것처럼 사람이 드물고 그늘이 진 곳에 홀로 자리에 앉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자리엔 먼저 온 사람이 있었다.
나와 같은 고독을 가진 소년이었다.
같은 입학생일까?
“이름이 뭐냐?”
먼저 말을 걸었다.
나도 외향적인 성격은 아니었지만 내 옆에 앉은 녀석이 너무나도 소심하고 우울해 보여서다.
그 녀석이 두려움이 많은 눈으로 날 간신히 눈만 마주칠 정도로 쳐다보더니 이내 시선을 피하면서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강한민.”
그의 소심함에 흥미를 느꼈는지 아니면 소년기 특유의 알량한 우월감을 느꼈는지 나는 나를 둘러싼 비참한 현실을 잠시 잊고 그에게 미소지었다.
“강해 보이는 이름이네. 나는 박규다. 성이 박이고 이름이 규지.”
그가 처음으로 만든 학교의 인연이었다.
이름과 달리 강한민은 심지도 약했고 체력도 기술도 평균 미달이었다.
처음에는 그를 도우려 했지만 학교에 만연한 스파르타적인 풍조 때문일까, 도무지 나아질 줄 모르는 그를 결국 외면했다.
어쩌면 내 은사의 가르침이 막 자리 잡으려는 내 어린 자아에 강한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른다.
“사람은 실수할 수 있다. 완벽한 인간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헌터는 실수를 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적은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이 아닌 존재를 상대하려면 우리 또한 하찮은 인간성의 일부분을 덜어내야 할 것이다.”
장기영은 1세대 헌터가 그러하듯 군인 출신으로 영웅이라는 칭호를 가진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였다.
그 명성에 이끌려 수많은 학생이 그의 제자가 되길 원했지만 장기영은 까탈스럽고 신경질적인 교관이었다.
그는 완벽함이라는, 인간이 가지기 어려운 덕목을 가질 걸 요구했다.
도가 넘는 훈련, 과할 정도의 질책은 기본이었고 자신이 생각하기에 기준 미달이라고 판단한 학생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학교 밖으로 내몰려고 했다.
“강한민. 또 너냐?”
“강한민. 동료에게 미안하지 않나? 너 때문에 너의 동료와 팀원들이 감점이라는 불이익을 받았다.”
“강한민!”
강한민은 장기영의 지속적인 공격 대상이었다.
그가 보기에 강한민은 절대 헌터라는 꼬리표를 달아줘서는 안 되는 불량품이었다.
결국에 장기영은 모두가 보는 앞에서 강한민에게 최후통첩을 내렸다.
“강한민. 너는 내 반에 필요 없다. 양심이 있다면, 사람의 마음이 있다면 스스로 걸어서 나가라.”
강한민은 나가지 않았다.
그는 보기보다 심지가 굳었다.
어쩌면 나만큼이나 몬스터를 증오한 지도 모르겠다.
장기영의 괴롭힘과 질책은 더욱 높아졌지만 강한민은 꿋꿋하게 기어코 학년이 달라질 때까지 버텨냈다.
강한민이 마지막 시험을 아슬아슬하게 통과했을 때 장기영의 표정과 그가 했던 말은 잊을 수가 없다.
그러니까, 강한민이 홀로그램으로 구현된 네크로맨서 타입에 위장사격을 가하고 역장 거리 안으로 돌입, 고화력 산탄총으로 네크로맨서 타입을 반으로 갈라버릴 때 장기영은 불안하게 끼고 있던 팔짱을 풀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중얼거렸다.
“저 놈은 결국 우리에게 해를 끼칠 거야! 내 장담하지!”
장기영에게 예지 능력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당장 자신의 운명 하나 점치지 못할 걸 보면 말이다.
“장기영 교장 말이야.”
시간은 흘러 중국 시절.
한창 중국 정부의 눈치를 보며 데이터를 쌓고 있던 나날을 보내던 중, 당시엔 멀쩡했던 우민희가 고화력 산탄총의 분리 탄환을 내게 내밀며 불쑥 말했다.
“그 사람 경력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거 들었어?”
“뭐라고?”
“그 인간과 같이 싸웠던 옛 동료들이 터뜨렸잖아. 장기영이라는 인간. 몬스터 앞에서 도끼를 들고 싸우기는커녕 주저앉아 엉엉 울면서 타조처럼 고개를 처박았다고.”
장기영이 강한민에게 그렇게 모질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영웅이기 때문이다.
자격이 있기 때문에 타인을 그토록 윽박지르고 하찮게 보고 떳떳하게 내칠 수 있었다.
내가 접근전에서 사용하는 주무기인 도끼만 해도 장기영의 영웅담에 힘 입은 바가 컸다.
이제는 반쯤 전설이 된 이야기에 따르면 전라북도 고창군 쪽에 균열이 발생했을 때 장기영을 포함한 군인들이 몬스터로부터 국민을 지키기 위해 맞섰다.
탄환을 반사하는 몬스터의 능력 앞에 병사들은 속수무책으로 죽어 나갔고 설상가상으로 죽은 군인들이 되살아나 다른 군인을 덮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수비군은 괴멸당했고 두 대의 전차가 반사 역장에 의해 파괴되자 살아 남은 자들은 부리나케 도주했다.
그 지옥도 속에서 장기영 대위는 결단을 내렸다.
총기를 버리고 죽은 체를 하고 몬스터가 가까이 오기를 기다린 것이다.
손 닿는 곳에 덩그러니 놓인 소방용 도끼를 부릅 뜬 눈으로 노려보면서.
마침내 몬스터가 접근하자 장기영은 도끼를 들고 일어나 초인적인 무용으로 그것을 “벌목”했다.
이것이 장기영의 영웅 전설의 시작이다.
그 전설은 언론을 통해 세상에 널리 퍼졌는데 딱히 이를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장기영은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받은 군인으로, 그 힘들다는 북미 특수훈련부대 교육 과정을 높은 점수로 수료했고 술집에서 자신보다 키가 40cm나 큰 거구의 흑인 병사를 때려눕히는 화려한 일화도 갖고 있었다.
무엇보다 지원군이 도착했을 때 균열에 나타난 몬스터는 말끔하게 사라진 상태였다.
남은 건 장기영 하나와 그가 도끼로 찍어 쓰러뜨린 좀비 여러 마리.
심지어 지원군이 도착하는 상황에서도 장기영은 거구의 미군을 때려눕히던 실력으로 좀비 두 마리를 연달아 도끼로 찍어버렸다.
그 상황에서 그의 무용담을 의심하는 건 쉽지 않았을 것이다.
“몬스터가 그를 공격하지 않은 건 아마 그가 전의를 잃고 아무것도 안 했기 때문이지. 선배도 알다시피 몬스터는 인간의 적의를 읽고 그에 반응하잖아? 선배는 그런 거 못 느꼈다고? 나와 조금 다르긴 하네.”
당시 나는 우민희가 늘 하던 악담의 대상을 동료와 중국인에서 멀리 있는 은사에까지 확장하는 정도로 받아들였다.
강한민만큼은 아니지만 우민희도 장기영이 싫어하던 학생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장기영의 애제자는 나와 김다람이다.
그는 사람 앞에서는 김다람을 나보다 더 높이 평가했지만 그건 그녀가 평범한 사람으로서 오를 수 있는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기 때문이리라.
그가 진정으로 자신의 페르소나로 여긴 건 나 박규 하나 뿐이다.
“그래. 그렇게 하는 거다. 도끼는 그렇게 휘두르는 거라고.”
과거에 몬스터를 반사역장 안에서 상대할 때 사용하는 무기는 고화력 수류탄이었다.
사실 이쪽이 도끼보다 파괴력도 높고 사용하기도 편하고 덜 위험했다.
하지만 몬스터들도 나름의 대응책을 생각했는지 접근전 상황에서 헌터의 화약 병기를 터뜨리는 새로운 능력을 들고 나왔다.
이른바 “기폭”이라는 불리는 새로운 권능이다.
수많은 헌터가 이 새로운 능력에 걸려들어 손가락이 찢기거나 가슴에 구멍이 나고 혹은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운 형태로 일그러져 비참하게 살해당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인류는 이른바 분리 장약이라는 격발 직전까지 폭발성을 가지지 않는 화약을 이용한 새로운 병기로 맞섰지만 그조차도 기폭으로부터 안전하지 못했다.
분리된 장약이 합쳐져 폭발성을 가지는 순간을 노려 기폭을 시전하는 녀석들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더 빠른 융합과 폭발력, 반응성과 편의성을 갖춘 헌터 장비라는 것들이 속속 개발됐는데 적어도 냉병기라는 인류 전통의 무기는 그러한 눈치 게임에서 자유로웠다.
장기영은 냉병기의 가장 맹렬한 신봉자였다.
그는 특히 그를 영웅으로 만들어준 도끼를 모든 무기 중 으뜸으로 생각했다.
“도끼가 가장 우월한 무기다. 15년 전, 내가 그러했듯이.”
그에게서 모든 걸 배웠다.
비록 냉정하고 엄격하고 까탈스러운 교관이었지만 그의 방대한 지식과 뛰어난 기술이 현재의 나를 만들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다만 접근전에서 도끼를 고집하게 한 건 다소 의아한 판단이었다.
다른 좋은 무기가 얼마든지 있는데 왜 하필 도끼였을까.
실제로 그가 내게 알려준 수많은 기술과 달리 도끼를 다루는 기술은 어딘가 빈틈이 있었고 누군가가 상상해서 만들어낸 건 아닐까 의문을 품을 정도로 실전에서 사용하기 극히 어려운 곡예에 가까운 기술이 대부분이었다.
실전에서 나는 그의 도끼질이 그다지 몬스터를 상대하는데 적합하지 않다는 걸 간파했다.
장기영은 몬스터가 접근전에서 대단히 빠르고 기민하고 쉴 새 없이 몰아붙이는 존재로 상정했는데 실제 내가 상대한 몬스터는 그가 현역 시절 “벌목”했다는 표현을 사용한 것처럼 동물보다는 움직이는 나무에 가까운 존재였다.
내가 도끼를 사용해 첫 몬스터를 벌목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가장 먼저 연락을 해온 건 장기영이었다.
“그래, 박규. 어떤가? 나의 기술은? 도끼를 이용한 접근전 전술은 유효하던가?”
그때 나는 대단히 피로했고 많은 동기가 전장에서 죽었고 중국 쪽 조사관의 면담이 잡혀 있었기에 적당히 얼버무렸다.
“괜찮은 것 같습니다.”
그때 장기영은 퍽이나 기뻐했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그를 본 건 올드스쿨 헌터의 시대가 가고 과거의 불미스러운 행각이 논란이 되어 스스로 옷을 벗은 이후의 일이었다.
왕년의 영웅은 좁디좁은 임대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교장 자리에서 그냥 물러갔다면 재산을 지켰겠지만 수많은 소송을 벌였고 스스로도 수많은 소송에 휘말렸고 송사에 휘말린 사람이 그러하듯 그다지 풍족하지 못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에겐 처와 자식이 있었지만 그는 학생들에게 한만큼이나 가족에게 가혹했었던 것 같다.
한눈에 들어오고도 남는 좁은 집안에 그를 제외한 다른 사람의 흔적이 없는 걸 보면.
“박규 자넨가. 그래. 들어오게. 누추한 곳이지만 자네에게 차 한 잔 대접할 공간은 있네.”
식탁에 의자가 하나밖에 없었기에 그는 컴퓨터 앞에 있던 의자를 끌고 와야 했다.
그가 커피를 타는 동안 컴퓨터 화면을 보았다.
그는 워드프로세서를 켜 놓은 채 장문의 글을 작성하고 있었다.
거리가 있어 무슨 글을 적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화면 오른쪽 하단에 떠오른 마크 하나만은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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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장기영이 커피를 내왔다.
“나의 기술은 유효하던가?”
잠시 망설였다.
사실을 이야기해야 할지, 아니면 듣기 좋은 말로 은사의 마음을 위로해야 할지.
문득 강한민의 얼굴이 눈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장기영의 지속적인 찍어내기로 막다른 곳에 몰린 강한민은 내게 구원을 바라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숙소로 돌아가려는 내 앞에 종종 나타나곤 했었다.
그때 내가 어떻게 했었더라.
그래, 적당히 영혼 없는 위로를 던졌었지.
“잘 될 거야.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장교관님도 너를 다시 보겠지.”
비슷한 위로를 장기영에게 던진 건 비단 우연의 일치만은 아닐 것이다.
“네. 그랬던 것 같습니다.”
영혼 없는 칭찬에도 장기영은 기뻐했었다.
그 모진 눈에 물기가 반짝였던 걸 보면.
그리고, 꽤나 힘들었던 모양이다.
“나, 어웨이큰이 되는 방법을 개발한 거 같아.”
“그렇습니까?”
“그래. 좀비. 좀비가 인간 뮤테이션 아닌가? 인간의 생명 활동이 정지했을 때 뮤테이션 인자가 시체에 흡착되어 이계의 기운을 불어넣잖아? 그걸 이용하는 거지. 한 사람을 가사 상태, 그러니까 거의 죽여 놓는 거야. 뮤테이션 인자가 이 사람이 죽었다고 착각하고 작용하도록! 그때! 소생 활동을 펼치는 거지! 이계의 권능을 가진 채, 어쩌면 어웨이큰의 정신감응능력은 물론이고 불사의 몸을 가진 인간이 탄생할 수도 있다는 소리야!”
내가 아는 호랑이 교관이 이런 미친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지껄이는 걸 보면 말이다.
진한 실망을 안고 일어서려 했지만 교관의 이야기는 계속됐다.
“······사람들이 날 보고 사기꾼이라고 하는데, 난 봤어. 몬스터의 실체를. 몬스터에겐 우두머리가 있어. 명령을 내리는 개체가 분명히 존재해!”
“장군 타입 말입니까?”
“장군 타입이 뭐지?”
그는 새로운 개체를 알지 못했던 모양이다.
하긴 내가 그걸 발견한 건 2달 전 시점이었으니. 1년도 전에 옷을 벗은 그가 알리 없겠지.
의도치 않게 내 발견은 장기영을 상처입힌 것 같았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그건 아닐 거야! 잘못 본 걸 꺼야. 추정한다고 했지? 추정은 추정일 뿐이지.”
“그럴 수도 있겠지요.”
“노래! 그래! 노래 같은 걸 부르는 놈이 있었어. 균열 안에 있는지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 그건 노래 비슷한 걸 불렀어! 마치 그것이 놈들의 언어인 것처럼 말이야! 내가 죽은 체를 할 때 확실히 들었지. 그것이 명하니 몬스터들이 균열 안으로 모두 들어가더라고······. 아니! 하나는 남았지! 내가 도끼로 처치한 그놈 말이야!”
없는 약속을 지어내서 자리를 떠났다.
떠나려는 날 향해 장기영이 망설이며 내게 말했다.
“하, 한민이와는 연락하고 지내나?”
그의 뜻을 알았기에 싸늘하게 답할 수 있었다.
“아니오.”
장기영은 소송에서 잇따라 패소했다.
한때 방송 3사, 주요언론사의 인터뷰에 응하던 과거의 영웅은 유튜브 렉카라 불리는 인간들의 방송에 나와 함께 정부 정책을 비판하며 슈퍼챗을 구걸했다.
그가 자신이 내친 제자인, 이제는 시대의 구원자가 된 강한민의 이름을 들먹이며 내가 키웠다고 떠들어대는 걸 보고 나는 영상을 꺼버렸다.
이제 장기영은 죽었고 그가 모든 걸 바쳤던 학교 또한 철거를 앞두고 있다.
잠시 고민했다.
그 현장에 갈 것인지 말 것인지.
가지 않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 이 세상은 충분히 위험하니까.
하나의 교신이 내 마음을 바꿨다.
개인식별번호 : REDMASK
우민희에게 연락이 왔다.
“이번 주말에 학교 철거하는 거 거 알아? 선배가 가주면 좋을 거 같네.”
“내가?”
“먼 곳에 있어?”
“······.”
“말하기 싫구나. 하긴 나 같은 사람한테 말해봐야 좋을 건 하나도 없겠지. 하지만 난 선배가 거기에 가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
“왜 그렇게 생각하지?”
“강한민도 그걸 바라고 있더라고.”
“강한민이?”
“응. 선배가 그 자리에 가장 어울리는 사람이 아닐까 하고.”
“······.”
잠시 생각했다.
그가 우민희에게 남긴 말이 나에 대한 조소인지 존경인지.
침묵 속에서 우민희가 입맛을 다시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본론인가.
“아 그리고 하나 더. 장기영씨 소식 알아?”
“장기영 교관님? 죽었다고 들었는데. 장례도 함께 치른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어.”
“살아 있어.”
우민희가 웃었다.
“살아서 선배가 오기만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