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48화 (48/183)

33. 이사 (4)

어웨이큰이 처음 출현했을 때 그들의 정체성에 관해 수많은 의견 대립이 있었다.

최초의 의견은 명백한 부정이었다.

그들은 어웨이큰(당시엔 후두엽 과성장 돌기 수용체 증후군 환자라 불린)이 지금까지 보고되지 않은 인간 뮤테이션의 일종이며 대단히 위험한 존재니 세상에서 격리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늘 그렇듯 세상은 돈과 효율에 의해 굴러가고 이론이란 건 대개 그 “좋은 흐름”의 시녀에 불과하다.

우리 구시대의 헌터는 그전부터 많은 지탄을 받았다.

훈련된 병사와 비교했을 때 별반 다르지도 않은 인간들이 헌터라는 딱지를 달고 더 많은 수당을 받고 더 중요한 위치를 도맡아 차지하고 있으니.

한국처럼 이웃에 좋은 걸 다 빨아가는 부자 나라가 있는 경우 헌터의 정보는 극비로 다루고 정체를 꽁꽁 숨겼지만 미국만 해도 자기 이름을 걸고 뮤테이션이나 몬스터 사냥을 공개적으로 하며 인지도를 올리는 프로 헌터들이 존재해 많은 군인들의 심리적 박탈감에 일조했다.

사실 헌터라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많은 헌터가 전장에서 유명을 달리했다.

비용이 높다는 건, 정부 쪽 시각에서 볼 때 수당의 높고 낮음의 문제가 아니라 손실률이 지나치게 큰 걸 말할 것이다.

우리 13기만 해도 총원 천이백 명 중에 살아남은 자는 3백 명에 불과할 정도니.

내 은사인 1세대 헌터이자, 내게 프로페서라는 과분한 콜사인을 강력하게 주장했던 장기영 교관이 내게 한 말이 문득 떠오른다.

“박규. 너 같은 놈이 이 세상에 백 명만 됐어도 우리가 뒷방으로 밀려날 일은 없었을 텐데.”

신인류라는 개념이 갑자기 등장했다.

그 신인류는 다름 아닌 어웨이큰이었다.

언론을 필두로 어웨이큰을 옹호하는 움직임이 여기저기서 생겨나더니 어느새 갑자기 그들이 구시대의 헌터의 상위호환격인 존재로 올라섰다.

가장 큰 역할을 한 건 내 동기다.

강한민과 나혜원.

절망적인 전쟁에서 동시에 두 명이 어웨이큰으로 각성했다.

그들의 각성은 마치 신이 직접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하강한 것 같은 장엄함 속에서 이루어졌다.

그 신들의 대관식에서 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다.

그들이 곧 몬스터 전선의 주류로 떠올랐고 우리들 구 시대의 헌터는 나의 은사가 말한 것처럼 서서히 뒷방으로 밀려나 결국엔 이도 저도 아닌 주변인으로 전락했다.

돈을 모으지 못한 올드스쿨 헌터의 운명은 백승현만 봐도 알 수 있다.

디펜더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그는 시대 그 자체에 배신당했다.

아마 17기? 18기? 나와 나이 차이를 고려해보면 그 정도 기수임이 분명하다.

헌터 체제가 어웨이큰 체제로 변하기 전 과도기에 뭣도 모른 채 구시대의 헌터에 지원했고 중국과 북한에서 지옥만을 경험하고 다시 한국에 돌아온 저주받은 기수.

“후우······.”

내리막길이라고 해도 시체를 지고 산길을 전력으로 질주하는 건 꽤 힘든 일이다.

그것도 어디에 있을지 모르는 부비트랩과 군인의 동향에 신경을 분산하면서 간다는 건.

“어떻게 해. 오빠?”

지금 이 순간에도 교신기에서는 디펜더 남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조용히 해. 일단 그걸 해보자.”

“그거?”

“응.”

뭘 하려는 거지.

설마 미인계인가.

내가 썩 좋아하지 않는.

“어웨이큰이라고 해도 반사역장 안 거리만 침투하면 평범한 인간이야.”

“그렇지 않아.”

내가 말했다.

“호신용 잡기 하나, 둘 정도는 가지고 있을 게다.”

“스켈톤?”

남매가 동시에 물었다.

“최대한 기다려봐. 싸우지 말고. 최대한 시간을 끌어라. 지금 달려가고 있으니까.”

“스켈톤. 아버지의 시체는?”

“같이 갖고 갈 테니 걱정하지 마라.”

“아니. 스켈톤.”

디펜더의 목소리가 커졌다.

마이크를 입에 가까이 가져다 댄 모양.

디펜더의 꽤나 큰 속삭임이 교신기를 통해 내 귓가에 똑똑히 전달됐다.

“그냥 가. 아버지 시체고 뭐고.”

“그냥 가라고?”

“우리 때문에 왔잖아. 와준 것만으로 고마워. 이 빌어먹을 시대의 정을 네 덕분에 느끼고 있어. 아깐 내가 심했다. 미안.”

이 녀석.

이렇게 귀엽게도 말할 줄 아는 놈이었나.

동생보다 더 귀여운 거 같은데.

“여긴 우리가 알아서 해볼게. 상대는 어웨이큰이야. 너를 끌어들이고 싶지 않다.”

그때 마이크 너머로 누군가가 멀리서 큰 소리로 말한 듯한 목소리가 밀려들었다.

“거기, 형제님!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는 해치지 않아요. 우리는 평화와 화합의 비둘기입니다.”

아마 이 목소리가 디펜더 남매를 덮친 광신도로 보인다.

만류귀종교.

중국에서 마지막 시간은 거의 이 인간쓰레기들을 처리하며 지냈다.

중국인의 상상력이 뛰어나다는 건 서유기나 삼국지를 보면 알 수 있겠지만, 그 뛰어난 상상력을 가진 민족도 인간과 몬스터가 함께 수도에 밀려들어 오는 장면을 상상하지 못했던 것 같다.

1억이 넘는 광신도가 창시자 마원갑과 함께 느닷없이 사라졌지만 또 새로운 광신도가 독버섯처럼 퍼져 나와 몬스터와 함께 죽음의 포교 활동을 벌인 것이다.

몬스터는 그들을 동료로 받아들였다기보다는 무시한 것처럼 보였지만 인간과 몬스터 - 이중의 적이 방어선에 덮쳐올 때 우리가 쓸 수 있는 수단은 그리 많지 않았다.

“가만히 있어.”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말했다.

“내게 생각이 있다.”

“생각?”

“응. 최대한 시간만 끌어.”

“내가 끌어 볼게.”

디펜더 동생이 말했다.

다정이라고 했나.

마이크 너머로 천연덕스러운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기, 엔진이 고장 나서요~.”

나한텐 문자로 소통하더니 광신도한텐 잘도 말하는구만.

동생이 시간을 끄는 동안 디펜더에게 몇 가지 사항을 물었다.

적의 무기와 숫자, 어웨이큰에 관한 정보다.

특히 궁금한 건 하나다.

“파동의 느낌이 어떻지?”

“스켈톤. 너 역시 헌터였나.”

“마찬가지 아니야. 자, 대답은?”

“상향 파동같아. 위로 울리는 듯한 느낌.”

“크기는?”

“그리 큰 것 같지 않아.”

“최소 레벨 5는 넘는다는 소리구만.”

“어쩌면 힘을 숨길 것일지도.”

어웨이큰이라 뭉뚱그려 말하지만 어웨이큰이라는 사이킥 능력자의 힘의 차이는 같은 어웨이큰 사이에서도 천차만별이다.

내 동기 강한민, 나혜원처럼 전장에 있는 것만으로 구원자라고 불리는 신적인 인간이 있는가 하면, 내가 가져온 캡슐 앞에서 센 척이나 하던 신출내기 같은 하찮은 놈들도 부지기수다.

그 어웨이큰의 레벨은 우리 구시대 헌터의 등급과 달리 철저한 기준에 의해 매겨지는데 이를테면,

이계의 힘을 인지하는 단계.

힘을 인지하고 만질 수 있는 단계.

힘을 제한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단계.

힘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단계.

충분한 힘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단계.

이런 식으로 정의를 내리고 그 기준에 부합하는 테스트를 통과 여부로 레벨을 부여한다.

“자매님! 자매님!”

저기 보인다.

디펜더가 말한 어웨이큰이라는 자가.

신성모독적이게도 그 어웨이큰은 신부의 복장을 하고 있다.

그 뒤에 야구방망이와 밧줄을 든 다섯 명의 남녀가 병풍처럼 서 있었다.

총은 없다.

아니, 아마 필요가 없겠지.

저 살상보다는 포획을 고려한 무장을 보면 말이다.

아무튼 적시에 도착했다.

“아, 자매님. 차 안에 또 다른 사람이 있는 거 같은데요. 왜 그 분은 안에서 나오시지 않는 거죠?”

어웨이큰이 손짓하자 뒤에 있던 남녀들이 방망이를 들고 트럭에 접근했다.

그러자 디펜더가 차문을 열고 나와 총을 겨누었다.

광신도들은 겁에 질려 뒤로 물러났지만 어웨이큰은 번쩍이는 총구 앞에서 태연했다.

“저런.”

오히려 그는 여유로운 미소를 머금으며 신이 허락한 그의 권능을 펼쳤다.

쿵! 쿵! 쿵!

이 친구, 최소한 5레벨은 넘을 것이다.

파동이라 불리는 몬스터와 똑같은 충격파를 일으키는 걸 보면.

“아직 편견에 사로잡히신 또 한 명의 미아군요.”

충격파를 접한 디펜더와 그 동생은 압도당한 모양이다.

“사, 사람 맞아?”

동생의 표현은 어찌 보면 평범한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자연스러운 반응이겠지.

어웨이큰이 권능을 발현하면 솔직하게 인간으로 보이지 않으니까.

그나저나 동생은 그렇다 치고 디펜더 저 녀석은 왜 저렇게 쫄아 있지?

중국에서 활동했다면 어웨이큰을 상대하지 못했던 건 아닐 텐데.

아니, 어쩌면 소문이 진짜인가.

저주받은 기수는 어차피 버리는 기수이기에 학교에서도 제대로 된 교육을 해주지 않았다는 말이.

“스, 스켈톤.”

디펜더가 그답지 않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도망쳐. 너까지 죽을 필요는 없다.”

마음은 고맙다.

감사한다.

나 같은 가치 없는 인간을 생각해주는 건.

하지만 말이다.

디펜더.

저 광신도가 일으키는 파장은.

“······.”

내 친애하는 전우들이 내던 파장에 비하면 너무나도 보잘것없구나.

“총을 내려놓으세요. 저에게 총은 통하지 않습니다.”

다시 광신도의 무장 상태를 점검했다.

사내의 손에 다른 무기는 들리지 않았다.

뒤에 선 쓸데없이 선한 눈빛을 가진 사람도 마찬가지.

“저는 신에게 선택받았습니다. 여러분도 어쩌면 신에게 선택받아 저와 같은 보다 높은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디펜더.”

지게를 내려놓고 교신기로 말했다.

디펜더가 차문을 닫고 교신에 답했다.

“어.”

“어웨이큰 죽여 본 적 있냐?”

“난반사 탄환으로 처리한 적은 있어.”

“없군. 몬스터는?”

“그것도 헌터 장비와 화력 지원으로······.”

“좋아. 가서 여동생을 차 안으로 들여보내.”

“호, 혼자 상대하게?”

핑그르르

언제나 개점휴업에 상태에 있던 권총이 손끝에서 회전했다.

“잘 보고 있어라.”

“뭐?”

“도움이 될지도 모르니.”

우리 헌터들은 수료가 끝나면 콜사인(Call sign)이라 불리는 일종의 닉네임을 수여받는다.

그 콜사인은 자기가 정하는 게 아니고 교관 하나가 정하는 것도 아니다.

교관 회의에서 상의하고 상의해 그 졸업생에게 걸맞는 진정한 이름을 고민해서 결정하는 것이다.

나의 프로페서라는 콜 사인은 만장일치로 결정됐다.

그 이유는 아마도 나의 군더더기 없는, 흠 잡을 구석이 없는 기술 때문이겠지.

실제로 많은 헌터들이 나에게 가르침을 얻었고 나에게 하나라도 더 배워가기 위해 모방하기도 했다.

어웨이큰의 등장으로 나의 강의는 끝났지만 오랜 간극을 지나 지금 또 한 명의 젊은 헌터에게 가르침을 줄 것 같다.

“총을 내려 놓으세요.”

사내에게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권총을 겨눴다.

어웨이큰 뒤에 있던 종자들이 술렁이지만 어웨이큰은 마찬가지로 태연하기만 하다.

쿵!

어웨이큰의 심장 부근에서 충격파가 일었다.

“경고합니다.”

어웨이큰을 향해 권총을 들었다.

총을 드는 순간 사내 앞에 시커먼 균열이 나타났다.

몬스터의 능력.

반사 역장이다.

디펜더의 외침이 들려왔다.

“스켈톤!”

“잘 봐라.”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반사 역장은 자신의 영역에 들어온 모든 종류의 물리 공격을 같은 방향으로 반사한다. 마치 거울처럼 말이다.

반사역장에 호되게 당한 나의 선배들은 곧 나름의 파훼법을 개발했다.

탕!

총알을 격발했다.

거의 동시에 내 앞에 또 다른 균열이 나타났다.

반사역장의 출구다.

그 출구는 나타남과 동시에 나에게 내가 쏜 총알을 고스란히 토해냈다.

“스켈톤!”

동생의 비명이 들려왔다.

실제로 탄환이 내게 날아온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 탄환은 내 옆을 스치고 지나갈 뿐이다.

디펜더가 그걸 보고 중얼거렸다.

“이, 인티미데이팅(intimidating)?”

중국권 헌터가 허초(虛招)라고 부르는 위장 공격.

반사역장이 상대방의 공격을 똑같이 되갚아주는 게 성질이라면, 처음부터 적중하지 않으면 맞을 일도 없다는 단순한 발상에서 만들어진 기술이다.

실제로 몬스터는 농담과 진담을 구분하는 능력이 없고 반사역장은 물리적인 한계 뿐만 아니라 사용적인 측면에서도 한계가 있기에 무한하게 쓸 수 없고 연속해서도 사용할 수 없기에 이 특성을 이용해 많은 몬스터를 사냥했다.

사격의 귀재인 김다람과 나는 둘이 합쳐 수백 마리의 몬스터를 도살했다.

북경 외곽에서는 하루에 스무 마리를 죽인 적도 있다.

몬스터는 무한정 있기에 숫자는 의미가 없지만 그것들에게도 학습효과가 있다는 걸 밝혀낸 의미 있는 전공이었다.

또한 그 실력은 중국인들이 우리의 태업에도 아무 말도 못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혀, 형제님?!”

사내와 나의 거리가 좁혔다.

조금만 더 전진하면 역장의 최소 사거리 안.

사내가 손을 들었다.

기이한 기류가 내 주변에 흐르고 미세한 실선이 사방에 거미줄처럼 퍼지는 게 느껴졌다.

실선을 피해 측면으로 이동하는 순간 번쩍이는 섬광과 함께 실선이 새겨졌던 영역이 하얗게 불타오른다.

발화(發火)이라고 했던가.

어웨이큰이 개발한 공격 사이킥 능력 말이다.

하지만 그 정도 공격으로는 나에게 큰 인상을 심어줄 수 없다.

다시 총을 들었다.

사내가 반사역장을 펼쳤다.

이번엔 눈을 부릅뜨고 내 총구를 보려 한다.

아마 권능을 헛이용하긴 싫겠지.

그대로 총을 발사했다.

탕!

탄환이 사내를 향해 똑바로 날아갔다.

사내가 히죽 웃으며 얼굴로 역장을 펼쳤다.

검은 영역이 내 앞에 아가리를 벌리고 또 다른 탄환을 보냈다.

그 탄환은,

쉬익-

아슬아슬하게 내 머리카락을 스치고 지나갔다.

스켈핑(Scalping).

인티미데이팅의 극단이라고 할까.

학습효과로 위장 사격이 통하지 않는 개체를 상대로 사용하던 일종의 곡예다.

나와 이제는 연락이 되지 않는 김다람은 수많은 곡예를 펼치고도 살아 남았다.

주루룩-

탄환이 스치고 지나간 옆머리에서 가벼운 피가 흐르는 걸 느끼며 도끼를 빼 들었다.

거리 안이다.

“마, 막아!”

광신도들이 날 막아서지만,

탕! 탕! 탕! 탕! 탕!

순식간에 탄창을 비우고,

쩍!!

도끼로 나머지를 처리했다.

이제 남은 건 자칭 신에게 선택받은 자 하나.

죽음을 직감한 그는 두 눈을 감은 채 두 팔을 올려 기도하는 자세를 취했다.

“······드디어 만류에 귀종합니다.”

광신자의 평온한 순교는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기에 나 답지 않게 잔혹한 방식으로 끝맺었다.

무릎을 찍어 소리가 나게 하고 주저앉히고 도낏자루로 정수리를 강타해 머리를 지면에 처박아 흙을 씹게 한 후에 후두부를 이미 몇인 분의 뇌수가 묻은 도끼로 내리 찍었다.

쩍!

“······.”

도끼를 뽑아 피 묻은 날을 망자의 옷으로 닦아내고 뒤돌아섰다.

남매가 나를 크게 뜬 눈으로 보고 있었다.

“가자.”

오늘의 강의는 여기까지.

*

밤새 구름에 가렸던 만월은 그 서러움을 풀려는 듯 태양이 떠오르는 새벽녘에도 황도의 정중앙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자신의 자태를 한껏 드러내고 있었다.

햇빛과 달빛 아래서 우리는 한 구의 시체를 떠나보내려 한다.

아들과 아버지가 대면했다.

2년하고도 5개월이라는 세월을 넘어서.

수많은 아버지를 살해한 살인자는 말라붙은 시체의 얼굴을 두려워하면서도 떨리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아버지.”

하얗고 긴 손가락을 가진 미려한 손이 시체의 얼굴을 더듬었다.

“······죄송합니다.”

디펜더가 고개를 숙였다.

그는 흐느끼지도 눈물을 흘리지도 않았지만 꽤 오랫동안 고개를 숙인 채 움직이지 않았다.

성냥을 든 동생이 날 힐끗 돌아보았다.

그녀가 내게 목례했다.

마찬가지로 목례를 하고 자리를 떠났다.

디펜더의 말마따나 가족의 일이다.

외부인과 관계없는.

얼마 후 한 줄기 연기가 새벽바람을 타고 멀리 뻗어 나갔다.

멀리 하늘 위로 한 대의 전투헬기가 북으로 향하고 있었다.

*

다사다난하게 디펜더 남매와 이웃이 됐지만 우리는 한동안 교류가 없었다.

나눠준 교신기는 침묵을 지켰고 커뮤니티에 디펜더가 나오는 일도 없었다.

예전 같으면 디펜더가 며칠 안 보이면 말이 나오기 마련이었지만 페일넷의 침략자가 수시로 출몰하고 게다가 우리 유저들도 한산한 우리 게시판보다 페일넷의 양질의 글을 읽으며 시간을 때우는 빈도가 늘어나다 보니 딱히 큰 화제가 되는 일은 없었다.

존내논.

여기까지 노린 것인가.

정말이지 소름 끼치는 남자······.

그 디펜더가 다시 연락을 해온 건 부자 상봉 후 일주일하고도 하루가 더 지나서였다.

“저기. 스켈톤! 스켈톤! 오빠가 할 말 있대.”

먼저 대화를 걸어온 건 동생 쪽이었다.

뭐 고맙다는 인사치렌가.

딱히 고마울 것 까진 없다.

솔직히 이웃에 우호적인 세력이 하나 더 늘어난 것만으로 마음이 든든해진 느낌이니까.

그런데 이 남매를 너무 과소평가 했던 거 같다.

오랜 침묵 후 디펜더가 말했다.

“스, 스서방······!”

“?!”

“집들이 하자. 스서방!”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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