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이사 (3)
“어리석은 사람이었지. 어머니한텐 미안한 말이지만 더 강하고 드센 여자를 만났어야 했어.”
디펜더는 자신의 부친을 짧게 논평했다.
“꽃밭에서 살다 꽃밭에서 죽은 사람이지.”
동생의 표현은 보다 신랄했다.
디펜더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버지는 소위 좋은 사람이었지. 거절을 못하는 성격이었어. 받지도 못할 돈 빌려주는 건 어찌나 좋아하던지. 어머니가 뭐라고 하면 돈 보다 중요한 게 사람 마음이라고 항변했지.”
말이 끝나자마자 동생이 진저리난다는 표정을 지으며 덧붙였다.
“나 아빠, 엄청 싫어했어. 나중엔 눈도 마주치지 않을 정도로.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호구일 수 있어?”
어떤 성격인지 알 것 같다.
뭐랄까,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진 않지만 가족을 힘들게 하는 타입이라고 할까.
수틀리면 사람을 죽이고 다니는 디펜더와 그 부친은 전혀 다른 성향의 소유자였던 것 같다.
디펜더는 천천히 과거를 보는 눈으로 그의 부친에 관해 이야기했다.
딱 예상하는 그대로다.
사람 좋은 사람.
털털하고 주변을 챙기는 사람.
하지만 정작 자기 이익을 하나도 못 챙기고 결국은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 점점 나락으로 가라앉은 사람.
그 도와줬던 사람들이 나중에 손가락질하는 걸 애써 외면하던 사람.
“평생 돈 한 푼 못 모은 사람이야. 할아버지에게 받은 유산이 전부였지. 그 돈으로 뭘 하겠어? 형제만 셋인데. 당연히 내 집 마련 꿈도 못 꾼 채 전셋집을 전전했고 나중에 전셋값도 모자라 싼 월세를 찾아 내가 모르는 동네를 찾아 헤맸지. 안 그래도 없던 살림이 더 팍팍해진 거야. 내 동생이 대학 진학마저 고민할 정도로.”
“전쟁 준비는 못했겠군.”
디펜더가 내 쪽을 돌아보았다.
“그 양반 하는 말이 뭔 줄 알아?”
“글쎄.”
“전쟁은 그리 쉽게 나는 게 아니다. 내가 중국인을 잘 안다. 중국인은 평화의 민족이다.”
디펜더가 코웃음을 쳤다.
“미사일 떨어지고 어쩔 줄을 몰라 하더라고. 수도, 전기 죄다 끊기고 나라에서는 대피소 가라고 하는데 대피소엔 아무것도 없고. 동생. 거기 어땠어?”
“어, 화장실에 끌려가서 강간당할 뻔했어.”
“그런 개 같은 곳에서 살았다 이거야. 그러던 찰나에 아까 말한 주인댁 쪽에서 연락이 온 거지.”
“너희들이 살던 집 주인 말이지?”
“어.”
“무슨 관계였지?”
“아버지 대학 동기. 하지만 아버지와 전혀 다른 인생을 산 사람이지.”
디펜더의 저택을 떠올렸다.
낡고 수리하지 않아 여기저기 파손되고 지저분함이 남았지만 그럼에도 상당한 부유함의 흔적이 여기저기서 느껴지던 저택이었다.
하긴, 자기 걸 내 퍼주던 부친과 정반대의 삶을 살았다면 많은 돈을 모으지 않았을까.
“한때 자기보다 잘났던 아버지에게 가끔 전화를 걸어 속을 긁던 인간이었어. 뭐, 이번에 자식에게 포르쉐 한 대 뽑아줬다. 아파트 사줬다. 해외여행 다녀왔다. 나중엔 이혼하고 첩 뒀다. 이딴 소리까지 지껄이는 속물이었지.”
디펜더의 얼굴엔 노골적인 경멸이 드러났다.
“그 인간이 전쟁이 시작된 후에 아버지에게 어머니와 동생 잘 있냐고 물으면서 독채 하나를 내주더라고.”
“······.”
“좆망한 서울 대신 풍족한 집에 얹혀사는 대가로 머슴 노릇을 했지. 밥도 지어주고 청소도 해주고 공사도 해주고. 그런데 말이야. 뭔가 구리지 않냐? ”
디펜더가 날카롭게 간 날을 이리저리 조명에 반사하며 살폈다.
“막상 가보니 남자밖에 없더라고. 그것도 시커먼 놈들만.”
사실 독채를 내주면서 아내와 딸의 안부를 묻는 대목에서 전주인의 의도를 읽었다.
너무나도 흔하고 뻔한 이야기다.
안락한 생활을 미끼로 모자란 인간들을 잡아먹는 이야기는 전쟁 직후에 참 많이 일어난 흔한 비극이었으니.
주로 희생자는 여성과 아이였다.
쉬쉬하지만 한국인이 자랑하는 도덕성이라는 게 다른 나라와 별반 다를 바 없었다는 소리다.
“그래서 내가 아버지한테 말했지. 나가자고. 예감이 안 좋다고. 나만 말한 게 아니야. 동생도 함께 말했지.”
“화장실에 들어가서 볼일을 보고 있는데 기다렸다는 듯 다가와 문을 두드리더라고.”
“그런데 그 멍청한 양반이 오히려 화를 내더라고. 사람 호의를 거절하는 게 아니다. 그렇게 화를 내는 건 처음 봤지. 그날 아버지에게 처음으로 뺨을 맞았어. 그리고 결국 우려했던 일이 터졌지······.”
평상 시트에 비스듬히 누워있던 디펜더 동생이 자세를 고쳐 앉더니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살짝 밀쳤다.
이마 옆엔 흉진 흉터가 똑똑히 새겨져 있었다.
“내가 갔을 땐 아버지는 두들겨 맞아 묶여 있고. 어머니는 삽에 맞아 죽어있었지. 이 녀석도 삽에 머리를 찍힌 채 실신해 있었는데 남자 몇 놈이 옷을 벗기고 있더라고.”
“그 아들이라는 새끼, 여자 브래지어 끈도 못 벗겨본 거 같더라고.”
디펜더 동생이 조소했다.
“그래서 어떻게 됐지?”
“어쩌긴 어째.”
디펜더가 씨익 웃으며 날카롭게 갈린 나이프를 손끝에서 핑그르르 돌렸다.
“전부 죽였지. 집주인, 동생, 친구, 정실 아들, 첩이 낳은 어린 애새끼, 키우던 개새끼까지.”
“······.”
“아버지가 바닥에 주저앉아 울었지만 나는 아무런 동정심도 느끼지 못했어. 그 인간의 어리석음이 우리 가족 인생을 계속해서 망쳤고 결국 파멸에 이르게 했으니까. 나는 동생을 치료하고 어머니를 묻고 시체를 치웠지만 아버지는 본 체도 하지 않았지.”
디펜더가 한숨을 내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다음날 죽어 있더군.”
디펜더가 후련한 표정을 지으며 날 돌아보았다.
“대충 이런 이야기야. 이제 만족하냐?”
디펜더가 차에서 내렸다.
담배 하나가 어느새 그의 입에 물려 있었다.
“여기 있어. 잠시 한 바퀴 돌고 올 테니.”
“······.”
사연이 있었나.
아무튼 친해진 건 확실하다.
그날 테마파크에서 디펜더 녀석이 말하지 않았나.
가족 이야기는 친해진 다음에 해주겠다고.
유쾌한 이야기는 아니다.
누군가의 얼룩을 보는 건.
적어도 비바! 아포칼립스!에서 인기글에 오를만한 내용은 아닐 것이다.
비극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또 하나의 비극을 추가한다는 건 물에 물을 타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일이니.
씁쓸한 마음에 잠겨 있자니 동생이 내 어깨를 쿡하고 찔렀다.
“아야.”
고통을 호소하며 뒤를 돌아보자 그녀가 대뜸 태블릿 화면을 내게 들이댔다.
[ 오빠는 여전히 아빠를 사랑해. ]
“뭐? 무슨 소리야?”
그녀의 손가락이 빠르게 움직였다.
[ 그러니 시체도 못 거두고 저러고 있는 거지. ]
“아니, 뭔 굴비도 아니고 부친 시체를 2년 넘게 널어놓은 놈이?”
[ 말했잖아. 아빠 시체를 두려워한다고. 마주할 용기가 없는 거지. 너무 좋아했으니까. 아니, 정확히는 자기가 죽인 거 같으니까. 그런 거 있잖아? 내가 거기서 한마디만 해줬으면 달라졌을 거 같은. ]
“······.”
[ 스켈톤은 아빠 없어? ]
“고아다.”
“아.”
[ 그럴 거 같더라. ]
“무엇을 암시하는 거지?”
[ 아무튼 오빠 좀 도와줘. 보기보다 섬세하거든. 분명 나중에 엄청 후회할 걸? ]
“뭘 어떻게 도우라는 건지.”
“영혼을 울리는 한 마디라던가?”
동생이 날 빤히 쳐다보았다.
그녀가 그리 오랫동안 날 마주 보는 건 처음 있는 일. 그것도 간절한, 호소하는 듯한 감정을 품은 상태로 날 보는 건 더더욱.
“나, 알아. 스켈톤 노잼에 이상한 비트박스나 하고 존내논 같은 놈과 노는 인간이지만 사실은 속 깊은 사람이라는 거.”
그녀가 살짝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돌렸다.
“나, 이래 봬도 사람 보는 눈 있거든.”
그녀가 홍조를 지우며 다시 날 보았다.
“아무리 그래도 197cm 100kg 30cm는 아닌 거 같지만.”
“그거 그만 좀 우려먹어라.”
쓴웃음을 머금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디펜더 녀석에게 한마디 해달라고?
동료 하나도 챙기지 못했던 이 무능한 팀장에게?
사람을 잘못 봐도 한참 잘못 봤다.
그런데 뭘까.
이 뭔가 하고 싶다는 마음은.
물론 잘 될 거라는 보장은 없다.
사람을 상대하는 게 서툰 나라는 인간의 특성상 오히려 우리의 관계를 해칠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부탁받았다.
게다가 적절한 생각 하나가 에디슨의 전구처럼 머릿속에서 팟하고 떠오르기도 했고.
“그럼 잠깐 다녀오지.”
안전벨트를 풀었다.
“뭐?! 어딜?!”
“내가 말솜씨가 썩 빼어난 편이 아니라서.”
“그, 그래서?”
“그러니까 일단 네 아버지 시신 모셔오면 돌아가고 자시고 할 거 없이 이사 가서 결정하면 되는 거 아니냐?”
“말은 맞는 말인데······.”
“지게 같은 거 있던데.”
“어, 응.”
“꺼내줘.”
차로 멀리 돌아가긴 했지만 도로를 따라가서 그렇다.
실제 도보로는 13분.
뛰어가면 5분 정도면 충분한 거리다.
당장 저 멀리 보이는 테마파크만 봐도 거리의 짧음을 알 수 있다.
도중에 군인을 만날 수도 있고 또 시체를 지고 간다는 게 썩 내키진 않지만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할까.
가족을 몬스터에게 모두 잃은 나는 가족에 대한 기억이 희박하다.
그 추억의 빈자리를 증오가 채웠다.
그 증오야말로 내 힘의 원천이었다.
하지만 가족이 있었고 그 기억이 아직도 가슴에 남아 숨 쉬는 사람들의 기분은 어떨까.
퍽이나 소중한 것이 아닐까.
무엇보다 나는 기억한다.
그 냉철하고 비정한 디펜더가 고작 부친의 시신의 얼굴 하나를 보기 싫다는 이유로 멀리 돌아가는 걸.
그 감정은 동생이 말한 바와 같이 단순한 경멸만은 아니리라.
아마, 증오한 만큼 사랑했기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상태에 방치한 게 아닐까.
정말로 싫어했다면 김노인을 버리고 죽기만을 기다리던 자식들처럼 깔끔하게 처리했겠지.
“어이. 스켈톤 뭐하는 거야?”
디펜더의 통신음이 들려온다.
무시했다.
곧 다시 디펜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동생한테 이야기 들었어. 쓸데없는 짓 하는 거 알고 있지? 이건 우리 가족의 일이야. 내가 스켈톤 너 좋아하는 거 맞는데, 가족의 일에 끼어드는 건 참아주기 어렵네. 일 복잡해지기 전에 어서 돌아와라.”
“하나만 묻자.”
“뭘?”
“패드립일 수도 있겠지만. 네 아버지가 못난 아빠라는 건 맞는 거 같다.”
“맞아. 못난 아버지지.”
“하지만 과연 나쁜 아버지일까?”
“그건······.”
나는 아니라고 본다.
죽어서도 이렇게까지 저 비정한 남매를 속박하는 걸 보면.
말재주가 없는 내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더는 할 말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다.
“스켈톤.”
디펜더가 다시 말했다.
마음을 정한 모양.
“마음은 고맙지만 우리 가족의 문제야. 지금 바로······.”
“아빠가 거기 왜 좋아한 줄 알아?”
동생이 끼어들었다.
그녀의 개입은 디펜더조차 예상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였다.
“다정아.”
한 번도 내 앞에서 말하지 않던 동생의 이름을 부르는 걸 보면.
“난 아빠를 싫어했지만 왜 거기에 갔고 남으려 했는지 알아. 추억이 있었거든.”
“추억?”
“우리 손잡고 집 아래 놀이공원에 놀러 갔던 거 기억해?”
“······그건.”
“아빠가 말했어. 그때가 우리에게 제일 잘해줄 수 있었던, 우리 가족이 제일 넉넉하던 때라고.”
“그게 중요해?”
“글쎄. 난 모르겠어. 난 미신 같은 거 안 믿으니까. 하지만 아버지도 그때를 그리워한 게 아닐까? 여기에 있으면 또 그런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한 게 아닐까? 내 생각이지만.”
디펜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걸 보면 마이크를 꺼버린 모양.
나는 이제 구름이 허락한 만월의 빛을 한 몸에 받고있는 시체를 본다.
“아버님. 그렇답니다······.”
내가 팔 하나를 절단 내버린 시체는 파초처럼 잔잔하게 흔들리며 발밑에 펼쳐진 테마파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시체를 내리고 포대에 싸서 지게에 실었다.
“후우.”
최대한 빠르게 복귀하자.
그렇게 생각하며 이제는 어둠에 익숙해진 눈으로 발을 디딜 내리막을 눈으로 훑던 중이었다.
잠시 끊겼던 디펜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광신도야.”
그가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빌어먹을. 어웨이큰도 섞여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