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이사 (1)
페일넷에서 온 불청객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ㅇㅇ : ㄹㅇ 좆노잼새끼들만 있네
익명의 유저 평가가 모든 걸 말해줬다
ㅇㅇ : 특히 그 스켈톤이란 놈. 대체 몇 년생이야? 아직도 낳낫 드립을 치네....
왜 자꾸 내가 얻어걸리는지 모르겠는데 이쯤 되면 내가 인터넷을 진짜 못한다는 디펜더의 말이 정설일지도 모르겠다.
그 디펜더가 깜짝 제안을 한 건 북쪽의 총성이 멎은 지 일주일 정도가 지난 시점이었다.
Defender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도저히 안 되겠다. 나 이사 가야겠다.
SKELTON : 거기 터가 좀 별로긴 하지.
Defender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너희 동네 부근으로 가려고 하는데.
SKELTON : 뭐?!
Defender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문제 있냐?
문제 있지.
까놓고 말해서 오빠나 동생이나 둘 다 정상인은 아니잖아?
그런 놈들이 내 방공호로 온다?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는 일이다.
Defender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너네 방공호에 가자는 소리 아니야. 우리는 누구랑 달리 눈치가 있거든.
SKELTON : 무슨 뜻이지?
Defender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전쟁 전에 너 주변 친구들로부터 눈치 없다는 소리 안 들었냐?
SKELTON : ?
Defender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아, 친구도 별로 없나.
SKELTON : (스켈톤 부정)
Defender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아무튼 미리 봐둔 곳이 있어. 너희 집에서도 3km나 떨어져 있고.
SKELTON : 3km 씩이나?!
Defender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네 사생활 최대한 존중해 줄 테니 좀 도와주라. 우리 친구 등록한 사이잖아?
Defender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미녀의 절규) 너 안 도와주면 우리 죽어!
농담 따 먹기 하자고 하는 소리는 아닌 것 같다.
디펜더의 영역은 처음부터 다사다난했고 이제는 군인 출신 약탈자가 주변에 출몰하고 있으니.
그런데 다른 때도 아니고 이 멸망기에 이사라니.
이사는 전쟁 전에도 집안의 중대사였고 모든 것이 무너진 현재 시점엔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다.
Defender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나름의 계획을 세웠지.
디펜더가 자신의 이주 계획과 경로가 그려진 지도를 보내왔다.
그의 계획은 뭐랄까.
딱 디펜더다웠다.
이성과 광기의 적절한 타협점이라고 할까.
주변이 잘 무장된 군단파 출신 약탈자가 장악하고 있기에 디펜더는 최대한 그들이 없을 곳을 경로로 선택했다.
그렇게 디펜더가 설계한 이사 경로는 좀비 구역, 광신도 장악 구역, 그리고 몬스터 장악 구역을 지난다.
SKELTON : 광신도 장악 구역은 뭐냐?
Defender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있어. 이름이 잘 기억 안 나긴 하는데.
SKELTON : (스켈톤 고민)
Defender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디펜터 눈 초롱초롱) 와 줄 거지?
“······.”
가야지. 별수 있나.
일단 한 번 가본 길이기도 하고 이 친구들은 내가 죽기를 허락하지 않은 친구들이다.
운 좋게 디펜더 남매가 나 없이 이사에 성공한다고 해도 문제다.
필경 날 손절하는 건 물론이고 스켈톤의 극렬한 안티가 될지도 모른다는 소리다.
그건 어찌 보면 디펜더가 죽는 것보다 더 큰 마음의 상처가 되겠지.
무엇보다 우리, 인터넷 친구 아닌가?
SKELTON : (197cm100Kg30cm 스켈톤)
호쾌하게 답했다.
나의 우상 존내논의 최신 스타일을 반영해서.
Defender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
Defender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뭔 개소리야?
“······.”
이건 디펜더에게 난이도가 너무 높았나.
*디펜더가 사람 좀 잘 죽이고 말을 험하게 해서 그렇지 눈치도 있고 센스도 있는 친구다.
중간에서 만나기로 했다.
언제나처럼 늦은 저녁에 출발해 어둠을 가로질렀다.
탕!
멀리서 들려오는 총소리는 이제 드문 일이 아니다.
멀리 북동쪽에 못 보던 불빛이 보인다.
뭐, 개척자겠지.
탕! 탕!
개척자들이 위험하기 짝이 없는 황야로 가는 이유 중 하나가 총기라고 한다.
도시에서 무기도 없이 굶어 죽느니 차라리 도시 밖에서 총이라도 들고 있으면 뭐라도 할 수 있는 희망이 생겨서라고.
탕! 타타타탕!
총성이 숨 가쁘게 이어진다.
전투 상황으로 보인다.
무전기를 켜보았다.
-치지직! 여기는 제423 개척대! 뮤테이션이다! 뮤테이션이 우리 개척대 주위를 맴돌고 있다! 개척단이나 주변 지원할 수 있는 사람은 즉시 지원 바람!
잠시 후 다시 무전기가 울렸다.
-여기는 제423개척대! 뮤테이션이라 생각한 건 고라니였다. 혼선을 준 점, 사과드린다.
때는 만월이었다.
보통 만월에 이런 일은 잘 일어나지 않지만 구름이 너무 짙게 끼어 사실상 그믐달이 떴을 때랑 다를 바가 없다.
그러니 저런 오인 사격을 하는 거겠지.
보름달은 흘러가는 구름이 허락해 줄 때만 대지를 비췄다.
총성과 희미한 불빛이 있는 길을 표지 삼아 약속한 장소에 도착했다.
GPS를 확인하고 K-워키토키로 신호를 보냈다.
삐- 삐 삐 삐 삐---
짧게 두 번을 반복.
주위를 둘러보았다.
북동쪽 숲속에서 불빛이 세 번 반짝였다 꺼졌다.
답신은 하지 않기로 사전에 합의했다.
한쪽은 통신으로 다른 한쪽은 불빛으로.
불편하지만 사람이 많기에, 사람이 가장 큰 위협이기에 어쩔 수 없이 취한 수단이지만 디펜더는 내가 불빛을 잘 캐치할 수 있는 지점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스켈톤.”
오랜만에 만난 디펜더는 약간 살이 빠진 것 외엔 여전히 뻔뻔하고 수려한 모습이다.
눈빛이 전보다 날카로워진 기분이다.
사람을 하도 많이 죽여서 레벨 업이라도 한 걸까.
“가자.”
그가 나에게 헤드셋을 내밀었다.
헤드셋을 끼자 치직 거리는 소리와 함께 디펜더 동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스켈톤! 진짜야?”
“뭐가?”
“그러니까. 그거··· 30cm라는 거······?!”
“······일종의 은유지.”
“모순어법 같은 건 아니겠지?”
모순어법이 뭔지 물어보려다 관뒀다.
농담 따먹기는 디펜더의 집에 도착해서도 늦지 않으니까.
그보다 공기가 좋지 않다.
뭐랄까, 악취라기 보다는 마음 그 자체가 불길하게 요동치는 느낌이라고 할까.
디펜더가 남쪽을 가리켰다.
몬스터의 영역, 전에 봤던 것이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좀 더 커졌다.
강가의 둔덕에서 먼발치에서 보였던 몬스터의 영역은 이제 강기슭에 닿을 정도로 팽창했다.
내가 우리 영역의 몬스터를 제때 죽이지 않았다면 내 영역 주변도 저렇게 음울한 회백색에 덮인 채 살아 있는 모든 것을 뒤틀리고 메마르게 했겠지.
“여기서부터는 좀 험한 길을 갈 거야.”
디펜더가 길이 없는 비탈을 민첩하게 올랐다.
나뭇가지를 잡고 뒤를 따랐다.
그는 능선 바로 아래의, 급격한 비탈을 따라갔다.
아마 반대편에서 관측되는 것을 꺼리는 모양.
곧 그가 바위 뒤에서 나에게 손짓했다.
“저길 봐.”
능선 너머에 수많은 불빛들이 번쩍이고 있었다.
군대다.
장갑차와 지프, 전차까지 버려진 공장 부지에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
그런데 숫자가 많아도 너무 많다.
전차만 수십 대에 공격 헬기까지 날개를 접은 채 트레일러 위에 앉아 있다.
이 시기에 이 정도 전력을 왜 이런 곳에 모아놓았을까?
적어도 몬스터를 상대하는 것처럼은 보이지 않는다.
디펜더가 진중을 내려다보며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왜 이사를 가야 하는지 알겠지?”
“가야겠네. 그런데 왜 저렇게 모여 있지?”
“두 달 전부터 자리를 잡았는데 점점 숫자가 불어나고 있어. 그것도 오직 암호화된 통신만 주고받으며.”
“······그 이야기는?”
순간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저 군대의 목적이 뭔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든 것이다.
“페일넷도 그렇고 우리 게시판도 그렇고 몇 달 전부터 군단파가 분열됐다고 하는데, 글쎄. 어쩌면 짜고 치는 연극이 아닐까?”
그럴지도.
디펜더가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군단파가 정권을 잡건, 국회파가 정권을 잡건, 우리하고는 관계없는 이야기지.”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누가 정권을 잡건 우리와는 하등 관계없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다.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누가 정권을 잡건 간에 부디 오래 버텨달라는 것이다.
반역자건 정통성을 가진 정부건 그들이 북쪽에서 버티는 만큼 내게 허락된 시간도 늘어날 테니까.
은밀한 군대의 집결지 너머엔 또 다른 회백색의 영역이 펼쳐져 있었다.
정말로 지랄 맞은 곳이구나! 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넌지시 입을 열었다.
“여기도 침식됐었나?”
전에 갔을 때만 해도 멀쩡한 곳이었다.
침식의 징후는 없었고 몬스터가 나타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없었다.
디펜더가 얕은 한숨을 내쉬며 내가 모르는 진실을 이야기했다.
“듣자 하니 어떤 미친놈들이 캡슐을 여러 개 가지고 왔다고 하더라고.”
“캡슐을?”
“직접 보지 않았지만 군용 주파수에서 그렇다고 하더라고.”
캡슐이라.
나도 캡슐을 손으로 옮기긴 했는데, 그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당시 나는 지금보다 여유가 없기도 했고 무엇보다 김다람과 대한민국 정부가 건재했으니.
몬스터 한 마리 정도야, 김다람이 조금만 도와줘도 어렵지 않게 처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와 달리 진짜로 몬스터를 이 세상에 분양하려는 인간들이 있다.
“설마 그 광신도라는 게······.”
평화와 공존이라는 결과를, 원인으로 착각하는 어리석은 자들.
그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중국을 멸망으로 몰아넣은 장본인이다.
“만류귀종교?”
실로 오랜만에 그 불경한 이름을 입 밖에 냈다.
디펜더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그런 이름으로 불리던 놈들이었지.”
디펜더가 이를 갈았다.
“······그때 길에서 우연히 마주쳤을 때 전부 죽였어야 했는데.”
회백색의 숲 너머로 허여멀건 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나무를 태우는 연기.
사람이 살고 있다.
설마 진짜 만류귀종교인가?
그 미친 종교를 제외하면 어느 종교도 몬스터 옆에 살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그것들이 한국에도 들어왔었나.”
“사이비 종교 믿는 영혼 없는 새끼들한테 국경이나 이유 같은 게 있을 리 없잖아?”
디펜더 말이 맞을지도.
이 세상엔 의외로 사이비 종교 같은, 스스로를 파괴하길 선택한 사람이 꽤 있으니.
내가 보고 있는 것도 그런 부류 중 하나겠지.
멸망이 없었어도 스스로 불타 없어질 그런 부류의 인간들.
“미리 말하지 그랬냐?”
“말하면 안 올 거 같아서.”
디펜더가 솔직하게 말했다.
확실히 이 친구, 중국에 있었다.
광신도가 군대만큼이나 위협적인 존재라는 걸 정확히 알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물론 광신도를 만만하게 보는 사람도 있다.
군대에 비하면 장비도 열악하고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단지 믿음의 크기나 숫자, 죽음에 대한 경시를 말하는 게 아니다.
광신도 사이에선 때때로, 그들의 언어로 신의 선택을 받은 자들이 나타난다.
조용히 숨을 죽이고 디펜더에게 물었다.
“저중에 어웨이큰이 있냐?”
디펜더는 잠시 침묵한 후 고개를 끄덕였다.
“······글쎄. 잘은 모르겠어. 하지만 비슷한 게 있었던 거 같아.”
사람들은 최초의 어웨이큰이 헌터 사이에서 나왔다고 말하지만 진실은 다르다.
최초의 어웨이큰은 침식지대에서 살아가는 광신도 사이에서 발현됐다.
이는 나, 그리고 나와 함께 싸우던 중국군이 동시에 목격한 사실이다.
우리와 중국군 사이를 이어주던 이자호 소교(少校)가 눈을 부릅뜨고 한 말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히 남아 있다.
“저건······. 인간 돌연변이? 아니, 인간이 몬스터가 된 것인가?”
그 정보는 내게 기밀에 접근 가능한 권한이 있던 시절에 이미 삭제됐고 은폐됐다.
지금 아마 극소수만이 기억하는 전설 정도로 치부되겠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어두운 시대는 영웅의 출현을 원하고 영웅은 오로지 극적인 상황에서만 나타나는 법이니.
디펜더가 헤드셋에 대고 동생에게 연락했다.
“개활지에 왔어. 정찰 좀.”
“아이 캡틴!”
잠시 기다렸다.
곧 어둠 위에 검은 반점이 떠올랐다.
야시 장비를 갖춘 중국제 전투 드론이다.
“깨끗해. 가도 좋아.”
동생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디펜더가 개활지를 향해 전력으로 질주했다.
구름이 적어져서 달빛 아래 대지가 훤하게 드러났지만 그의 질주엔 일말의 망설임도 보이지 않았다.
내키진 않지만 그를 따라 전력 질주했다.
숨이 기분 좋게 차오를 무렵 우리는 다시 나무가 우거진 숲으로 진입했다.
“여기서부터는 내 구역이야.”
도중에 짙은 구름이 하늘과 달을 완전히 가려버렸기에 우리는 칠흑 같은 어둠 속을 감에 의지하여 나아가야 했다.
몇 개의 오르막과 내리막을 지나던 중 디펜더가 멈춰섰다.
“돌아가자.”
그가 레이저포인터로 어둠 한구석을 가리켰다.
대인지뢰 크레이모어다.
악의적이게도 바위와 바위 사이 지름길 아래에 와이어를 설치했고 그걸 건드리는 순간 수백 개의 쇠구슬이 건드린 사람은 물론이고 함께 따르는 동료까지 걸레짝으로 만들게끔 설계했다.
“전엔 없었는데. 최근에 설치한 모양이야.”
“아까 그놈들?”
“글쎄. 중요한 건 이 동네에서 더는 못 살겠다는 거겠지?”
“인정.”
우회로는 길이라기보다는 암벽 등반 코스였다.
어둠이 훤히 가려주고 있기에 가능한 묘기라고 할까.
곧 어슴푸레 너머에 높게 솟은 박공지붕이 희미한 끄트머리를 드러냈다.
디펜더의 집이다.
꽤 시간이 걸렸지만 무사히 도착했다.
그런데 디펜더가 갑자기 뒤돌아섰다.
“미안.”
그가 날 지나쳤다.
“다른 길로 가자.”
“왜?”
“보기 싫은 게 있어. 진짜 미안.”
건성으로 하는 사과가 아닌 진솔한 미안함이 묻은 사과였다.
대체 집을 놔두고 왜 다시 돌아가려는 걸까?
의문을 품고 돌아서려는 찰나였다.
세상이 갑자기 밝아졌다.
달과 별을 가리던 짙은 구름 사이에 아주 작은 유격이 있었고 그 좁은 틈새를 통해 꽁꽁 감쳐둔 월광이 세상을 은혜롭게 덮은 것이다.
찰나의 광휘는 어둠이 가리고 있던 비밀을 끄집어냈다.
시체 한 구가 나무에 매달려 있었다.
바싹 마른, 미라화가 된 시체였다.
스스로 목을 맨 그 시체는 발아래 펼쳐진 테마파크 쪽을 퀭한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말라 비틀어진 시체의 얼굴은 기묘하게도 디펜더 남매와 비슷한 선을 가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