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44화 (44/183)

32. 검정

페일넷에서 온 침략자들은 3일 내내 게시판을 어지럽혔다.

뻘글의 홍수 속에서 우리 게시판 유저들은 숨을 죽인 채 존내논이 몰고 온 폭풍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이놈들 좀처럼 방을 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점점 늘어나는 추세.

페일넷의 특성을 생각해보면 분탕을 치러 올 놈들이 늘면 늘었지 줄 것 같진 않다.

당장 휴대폰만 있어도 접속할 수 있는 게 페일넷이다.

전파가 잡히고 데이터만 쓸 수 있는 환경만 주어지면 누구든 접속이 가능해 깽판을 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 혼란 속에서 한 유저가 움직였다.

gijayangban : 페일넷 사용설명서.txt

예전부터 페일넷을 사용한 기자 양반이 장문의 글을 작성했다.

우리 게시판을 쓸 수 없다면 저쪽에서 놀자는 발상의 전환이라고 할까.

안 그래도 페일넷 쪽에 관심이 있었던지라 기자 양반의 사용설명서를 꼼꼼하게 숙지했다.

페일넷은 우리 게시판과는 확실히 다르다.

우리처럼 하나의 게시판으로 이루어진 커뮤니티가 아니라 주제에 따라 세분화된 다수의 게시판을 가진 다층 구조라고 할까.

본인이 원한다면 관리자의 승인을 얻어 자신이 원하는 주제의 게시판을 개설할 수도 있는 모양이다.

각 게시판은 이용자 숫자에 따라 위에서 아래로 정렬되는데 가장 이용자가 많은 게시판은 “생존 정보 게시판”이었다.

생존 정보 게시판을 한 번 클릭해보았다.

ㅇㅇ : 좀비 고기 먹을 수 있냐?

聖血盃 : 응가하다 똥꼬 찢어졌어...

ㅇㅇ : 아랫글 낚시임 클릭 ㄴㄴ

ㅇㅇ : 국가 배급 많이 받는 꿀팁.tip

프로앵벌맨 : (factos) 김애바 저 새끼는 걍 허언만 늘어놓음

김애바 : 뺑이 쳐라 ㅋ 하층민들아 ㅋㅋㅋ 형은 정신감응 공부 하러 간다~

...

...

우리 게시판과 크게 다르지 않은 분위기.

글의 숫자나 이용자 수는 우리보다 수십 배는 많아 보인다.

딱히 글의 내용이 궁금한 건 아니지만 프로앵벌맨이라는 유저의 글을 클릭해보았다.

프로앵벌맨 : (factos) 김애바 저 새끼는 걍 허언만 늘어놓음

-난 재능 있으니 공부하면 가드 분원은 가겠지(정신테스트는커녕 필기도 못 뚫음)

난 앵벌이하면서 재수하는거니까 평범한 재수충들이랑은 다르지(공부할 생각 없음)

난 친구 많고 정상인인데 잠깐 즐기려고 페일넷 하는거야(인터넷 안 끊기면 하루종일 처함)

연령대가 확실히 우리보다 어려 보이긴 한다.

유치한 건 피장파장이지만 말이다.

여기 페일넷에도 인기글이라는 게 있다.

그런데 우리와 달리 페일넷엔 워낙 많은 게시판들이 있다.

인기글이 있어도 정작 찾지 못하고 묻힐 가능성이 높다는 소리다.

이에 존내논은 각 게시판의 인기글을 하나로 모은 인기글만의 전당을 만들었다.

그것이 바로 “불판”이다.

기자 양반의 사용설명서에 의하면 이 불판이야말로 페일넷의 알파요, 오메가라고 한다.

과연 페일넷의 심장은 어떤 모습일까?

사실 이 불판이 페일넷에 접속한 진정한 목적이다.

두근거림을 안고 불판을 클릭해보았다.

ㅇㅇ : 군단파 지금 용산구에서 철수 중.jpg

ㅇㅇ : 대구 팔공산에 나타난다는 호랑이 뮤테이션.jpg

필크럼88 : 더 트루 헌터 - 22화

무명씨 : 안개 포집기로 깨끗한 물 얻기 (2)

ㅇㅇ : 낙동강 피플을 위한 뉴트리아 조리법 “도축에서 한상차림까지”

야옹머웅다웅캬웅 : 전 탑 아이돌 프리카 제주도행 피난선에서 발견!

ㅇㅇ : 더 호프 근황.jpg (또 기움)

...

...

“오.”

이쪽은 생존 게시판과 달리 상당히 느낌이 좋다.

게시글의 퀄리티와 정보 수준이 우리와 비교할 바가 아니다.

당장 필크럼88 이 사람만 해도 탑급 웹툰 작가다.

웹툰보다는 어째 방송으로 더 벌어먹는 거 같지만 웹툰을 잘 보지 않았던 내가 이름을 알 정도의 유명인이다.

우리에게도 드래곤씨라는 웹툰 작가가 있긴 한데 솔직히 급이 안 맞다.

프로의 문턱에 선 작가와 프로의 정점에 선 작가의 차이라고 할까.

아무튼 이 불판, 엄청난 곳이다.

정말이지 흥미로운 글밖에 없다.

인터넷 사이트는 사람 수가 깡패라고 하더니 실로 그러했다.

다만 이 페일넷도 약점이 있다.

애당초 공개 게시판이라 계정이라는 개념이 없어 유저에게 메시지로 따로 대화하는 기능이 없고 유저가 특정되지 않다 보니 수시로 닉네임을 바꿔가며 패악질을 부리는 이른바 “분탕 유저”의 비율이 우리 게시판보다 훨씬 높을뿐더러 무엇보다 사이트 자체가 느리고 불안하다.

당장 필크럼88의 웹툰만 해도 다운로드 속도가 한 세월이라 커피 한 잔 끓이고 집 안 청소도 하면서 다운로드가 끝나길 기다려야 했다.

그래도 페일넷이 볼거리가 훨씬 많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좋은 징조다.

지금에야 페일넷 유저들이 우리 게시판에서 패악질을 부리고 있지만 조금만 지나면 다 빠져나가지 않을까?

그건 그렇고 치고 게시판 참 많다.

미용, 게임, 영화, 문학, 공사, 총기 관련, 재봉질과 수선, 벼룩시장까지 없는 게 없다.

게시판이 수백 개나 있다 보니 없는 걸 찾는 게 더 빠를 지경.

그런데 이 게시판 중에서 유독 내 시선을 잡아끄는 게 하나 있다.

[ 개척자 게시판 ]

개척자들도 게시판을 만들어서 이용하는 건가.

순위가 700위쯤 되니 이용자가 별로 없다는 건 알겠는데 그래도 폐쇄된 건 아니니 이용하는 사람은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이 게시판, 비공개 게시판이다.

기자 양반의 페일넷 사용 설명서에 의하면 일부 게시판은 관리자의 허락을 얻어 비공개로 전환할 수 있는데 이런 게시판은 으레 비밀번호가 걸려 있다고 한다.

한 번 클릭해보았다.

[ 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 ]

역시나 비번이 걸려 있다.

그런데 나는 보통 유저가 아니다.

이 박규, 페일넷의 창시자 존내논의 친구다.

SKELTON : 계신가요? 부탁 좀 하고 싶은 게 있는데?

바로 존내논의 부계정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183cm88kg18cm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오 스켈톤님. 무슨 일인가요?

SKELTON : 존내논님이신가요?

183cm88kg18cm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아니오, 전에 뵌 그 사람입니다.

존내논의 조수인가.

존내논이나 이 친구나 다를 바는 없겠지.

요구사항을 말했다.

바로 개척자 게시판에 들어갈 수 있는 비밀번호다.

183cm88kg18cm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개척자 게시판요? 잠시만요. [email protected]#4$5% 입니다.

SKELTON : 고마워요.

역시 힘이 있고 볼 일이다.

이 박규, 현실에선 별 볼 일 없는 퇴물 헌터지만 인터넷 세계에서는 신과 친구 먹는 사람이다.

신의 힘으로 개척자 게시판에 들어가 보았다.

“음?”

글은 있다.

개척자가 남긴 걸로 추정된 것들이.

18김학민 : 계시판 폐쇄방지

18김학민 : 계시판 폐쇄방지

18김학민 : 계시판 폐쇄방지

18김학민 : 계시판 폐쇄방지

18김학민 : 계시판 폐쇄방지

...

...

“······.”

순간 댓글을 달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꼈다.

계시판이 아니라 게시판이잖아.

좌우지간, 죽은 게시판이다.

활동하는 이는 거의 없고 한 사내가 보름에 한 번 꼴로 게시판이 자동 폐쇄되지 않게끔 게시글을 올리는 게 전부다.

당연하게도 18김학민이라는 사내의 글엔 아무런 내용이 없다.

지금에야 폐허가 됐지만 이 개척자 게시판도 1년 전쯤엔 제법 활동한 흔적이 있다.

여러 개의 글이 올라와 있는데 개척단의 마음가짐, 개척단의 노래, 개척단의 행동요령 같은, 회사 사이트 소개 게시판에서나 볼 법한 살풍경한 글밖에 없었다.

이중에 그나마 내용이 있어 보이는 글을 클릭했다.

12추용민 : 정신 차려라

그 게시글엔 사진이 첨부되어 있었다.

화질이 좋지 않아 알아보기 난해했지만 그 사진에 담긴 건 한 무리의 피난민, 그러니까 개척자로 보였다.

사진 아래엔 게시글 작성자의 글이 이어져 있었다.

- 우리가 죄짓는 일 한다고 회의 가지는 애들 요즘 종종 보이는데 좆같으면 걍 때려치워.

당장 거리를 보라고.

쓸모없는 사람이 너무 많아

불평불만에 허구한 날 시위나 해대고. 밥이나 축내고.

우리가 나라에 도움 될 젊은 사람 몰아내는 것도 아니잖아?

병신 같은 기성세대.

그 늙은 새끼들이 나라를 망쳤어.

죗값을 치르는 거지.

오늘도 쓰레기 늙은이 몇 마리 총 몇 자루 쥐여주고 촌으로 내보냈다.

그런데 지들이 어쩔건데?

우리 같은 사람이 있어야 나라가 돌아가는 거야.

그의 글엔 두 개의 댓글이 달려 있었다.

8이대주 : 강경식이 보고 있냐? 씨발놈아. 너 나가라.

20표경수 : 선배님 말씀이 백 번 옳습니다!

1년 전 개척자들이 단 글이다.

정확히는 개척자를 사지로 내보내는 개척단 놈들의 글이 아닐까.

이 게시판에서 더 얻을 정보는 없었다.

여기 말고 흥미로운 게시판이 하나 더 있었다.

비트박스 게시판이라는게 있었지 아마?

그 비트박스 게시판을 클릭하려는 순간, 비바! 아포칼립스! 쪽에서 알람이 울렸다.

COOKIEMONSTER18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내 딸 거기로 가는 중!

레베카에게 메시지가 왔다.

그런데 이 녀석, 지금 뭐라고 하는 거지?

SKELTON : 뭐? 딸 혼자?

COOKIEMONSTER18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올 땐 데려다 줘.

“······음.”

한창 재밌게 인터넷 하는데 이런 귀찮은 이벤트를 만들다니.

뭐, 이것도 그들과 나 사이의 간격이 줄어들었기에 있을 수 있는 이벤트겠지.

이웃으로 인정한 후에도 꽤 오랫동안 소원한 사이였지만 선비의 장비를 가지고 온 이후엔 놀랄 정도로 거리가 좁혀드는 기분이다.

잠망경으로 주변을 확인하고 무기를 챙기고 방공호 밖으로 나왔다.

버려진 들판엔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멀리 지평선 너머에 불빛들이 보인다.

도시에서 쫓겨난 개척자들이 피우는 불길이다.

서쪽을 보자 덤불 너머로 저격수의 딸이 어깨에 총을 맨 채 자전거를 타고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스켈톤!”

그녀가 날 보자 손짓했다.

“뭐냐? 그건? 못 보던 건데.”

“예전에 주운 건데 인터넷에서 수리 방법을 찾아 수리 했어.”

“오, 그래? 한 번 봐도 될까?”

“응.”

자전거를 살펴보았다.

꽤 괜찮은 물건이다.

수리도 잘 된 것 같고.

“인터넷에서 보고 수리했다고?”

“응. 스켈톤이 준 노트북으로 검색해봤어. 엄마가 낮잠 자고 있을 때.”

“잘했어. 그나저나 요즘 총소리가 잘 안 들리던데 경계는 제대로 서고 있냐?”

“나 지금은 총 안 쏘는 게 좋을 거 같다고 생각해.”

스우가 반짝이는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천진난만하면서도 당찬 얼굴.

많은 생각이 든다.

이 녀석, 처음 내 방공호에 찾아왔을 때만 해도 평범하고 겁많은 아이였는데.

가혹하고 거친 시대에서 친구 하나 없이도 이렇게 잘 자라줄 줄이야.

자식을 가져본 적도 없고 가질 수도 없을 것 같지만 뭐랄까, 대견하다고 할까.

“먹고 싶은 거 있어?”

“쥬시- 한 거.”

“과즙 많은 거 말이지. 그런데 짐칸에 실린 거, 재블린이냐?”

스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전에 피곤하다고 해서 안 가져갔잖아. 그래서.”

“그거 때문에 온 거구나.”

“응. 심심하기도 하고. 엄마 또 인터넷 하거든.”

“들어와.”

스우가 내 방공호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처음처럼 중앙에 있는 변기를 보고 살짝 눈썹을 찌푸렸다.

“이상해.”

“그렇게 이상하냐?”

“변태 같아.”

“······.”

입을 꾹 닫고 스우에게 줄 간식을 준비했다.

그녀는 과즙이 많은 걸 좋아했다.

냉동 망고 두 개를 꺼내 전자레인지에 해동해 약간의 살얼음이 남은 상태로 스우에게 서빙했다.

“와아!”

스우는 고맙게도 나의 호의를 맛있게 먹어주었다.

그녀가 망고를 전부 먹은 후 날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할 말 있어?”

“스켈톤 엄청 강하지?”

그때의 연장인가.

“나?”

“응!”

뭐라고 해야 할까.

강했다고 해야 할까.

아니, 인류 평균으로 보면 강한 쪽이 맞겠지.

내 앞에 너무 많은 놈들이 추월해와서 문제지.

나답지 않게 오래 고민한 끝에 쓴웃음을 머금은 채 대답했다.

“그럭저럭?”

“거짓말. 스켈톤 엄청 강하잖아. 헌터 아니야?”

“음, 헌터였지. 하지만 이제는 아니야.”

“왜?”

스우가 고개를 강하게 쳐들었다.

“음, 힘이 없거든. 능력이라고 해야 하나.”

“능력? 싸이킥 능력?”

“잘 아네. 아!”

우민희가 준 리트머스 종이 같은 정신 감응 테스트지가 있었지.

말 나온 김에 시험해보자.

좋은 결과가 나온다고 해도 우민희에게 알려줄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세상엔 만일이라는 게 있지 않나.

감당하기 어려운 공격을 받아 레베카가 죽고 내가 치명상을 입고 스우 혼자 남았다고 생각해보자.

그런 상황이 온다면 우민희한테 연락 해볼 만 하지 않을까?

물론 맨입으로는 그 여자를 움직이지 못하겠지.

그 여자가 내게 준 정신 감응 테스트지는 허투루 준 것이 아니다. 필요한 거니까 준 것이다.

만약에 좋은 결과가 나온다면 그녀는 기꺼이 스우를 데리러 올 것이다.

이건 100% 확실하다.

우민희는 어떤 의미로 대단히 정직한 사람이니까.

자기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면 티슈 하나 안 주는 게 우민희다.

그 여자는 김다람의 결혼식에 축의금을 한 푼도 내지 않았다······.

“스우. 이걸 한 번 입에 물어볼래?”

“이거 뭐야?”

“헌터의 자질이 있는지 알아보는 종이라고 하더라고.”

“정말?”

“응. 색깔이 하얗게 변할수록 자질이 높은 증거라고 써 있네. 어때?”

“나, 해 볼래!”

스우가 강한 열의를 드러냈다.

“스켈톤처럼 강해지면 모두를 지킬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거 좋네.”

“마음에 안 드는 코리안도 죽이고.”

“······엄마한테 너무 물들지 마라.”

“농담이야.”

스우가 테스트 지를 물었다.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올까.

우민희가 버선발로 마중 나올 정도로 새 하얀 색이 나와줄까.

아니면 체면치레 할 정도의 회색 정도로 변해줄까.

지금 시대에 회색은 불길한 색조지만 내가 원하는 보험을 위해서는 필요한 색이다.

“어.”

스우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검은색이다.

색깔이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애석한 결과지만 어째서인지 나는 웃고 말았다.

“왜. 웃어. 스켈톤?”

“미안. 나도 모르게.”

“스켈톤도 물어 봐!”

스우가 자신이 물었던 종이를 내밀었다.

예정에 없던 테스트.

물론 스우 것이 아닌 새 종이를 꺼내 입에 물어보았다.

그 쓴맛 나는 종이가 혀끝에 닿았을 때 혹시나 하는 기대를 한 건 사실이다.

여전히 미련이 남아 있다.

내게도 신의 선택이 오는 순간이.

지금처럼 궁벽한 곳에 칩거하지 않고 과거처럼 프로페서라는 다소 과분한 이름으로 당당하게 활동하는 날이.

그래서 내가 상처를 주었고 마찬가지로 내게 상처를 주었던 그들, 강한민, 나혜원과 다시 한 팀을 이루어 균열 안을 당당하게 활보하며 내가 증오해 마지 않는 몬스터를 이 세상에서 추방하는 순간을 말이다.

여전히 내 가슴의 증오는 식지 않았다.

그러나 늘 그렇듯, 현실은 냉정하다.

“뭐야. 스켈톤도 검은색이잖아!”

이번엔 스우가 크게 웃었다.

실소를 머금은 채 변하지 않은 검은색 시트지를 가만히 보았다.

“······.”

두 개의 검은색 시트지가 나란히 놓였다.

하나는 스우라는 머나먼 이국에서 온 소녀의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나 박규의 것이다.

그녀가 기념으로 테이프로 두 시트지를 방공호 벽에 붙여놓았다.

“우리 둘 다 블랙이야.”

꽝인 것 치고는 스우는 꽤 즐거워 보였다.

“가자. 엄마한테 데려다줄게.”

“응!”

스우가 나간 후 나란히 붙은 검은색 시트지를 꽤 오랫동안 응시했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검은색이 반드시 나쁜 것일까?

“스켈톤 뭐해? 그 이상한 변기에 있어?”

“······.”

변기의 배치에 대해 진지하게 다시 생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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