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빛이 된 남자 (2)
“기억나세요······? 스켈톤님. 저, 존내논입니다.”
인증을 요구했다.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지만 인증 영상을 본 순간 나는 약간의 충격과 더불어 알 수 없는 죄책감을 느꼈다.
“스켈톤님께서 요청하신 마크 세븐 하푸나이저. 봉인도 안 뜯은······ 신품입니다···.”
전쟁 전, 존내논의 정모에 갔을 때를 기억한다.
그는 한 치수 작은 트레이닝복을 입어 근육질의 몸을 두드러지게 하는 기묘한 패션을 고수했다.
그러고 보니 키도 183cm 정도 됐던 것 같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는 식당에서는 10cm 정도 줄어 들긴 했지만 신발만 신으면 183cm로 도로 키가 늘어났다.
몸무게도 근육이 있으니 88kg 정도 되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 물건은 18cm는 아니었던 것 같다.
언젠가 호프집에서 나란히 서서 소변을 봤을 때 술김에 힐끗 본 적이 있었는데 그의 것은 그다지 크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이제 그 사람들 사이에서 호쾌하고 웃고 떠들던 주인공의 모습은 이제 영원히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영상에 드러난 팔은 뼈만 남은 것처럼 야위었다.
그 과할 정도의 빈약함은 영양 문제라기보다는 다른 원인에 의해 비롯된 것 같았다.
소주 한 병 더! 를 외치던 호쾌했던 목소리가 간신히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작고 불안하게 떨리는 걸 보면 말이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SKELTON : 혹시 존내논님. 어디 아프십니까?
그들은 대답을 회피했다.
그들이 요구한 건 오직 나와의 만남이었다.
잠시 키보드에서 손가락을 떼고 생각을 했다.
지금 바깥에 나가는 건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당장 북쪽에선 간헐적으로 총성이 들리고 있다.
교전과 대치가 이어지고 있다는 소리다.
그 너머엔 뭐가 있을 지 알 수 없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개인식별번호로 연락을 취하면 정보를 제공해주던 친절한 군인들은 사라졌다.
아는 길이지만 이제는 모르는 길이 되어버린 위험 지역을 홀로 돌파해야 한다.
하지만 이대로 가만히 침식이 번지는 걸 좌시하면 나는 물론이고 내 주변의 모든 사람이 죽거나 미쳐버릴 것이다.
우민희에게 도움을 청하면 당장의 안전은 보장된다.
하지만 그녀는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겠지.
필경 나를 방공호에서 나갈 수밖에 없는 구실을 만들어 사지로 던져버릴 것이다.
“······.”
어려운 선택이다.
1년 뒤에 찾아올 확정된 죽음을 피하려고 당장 1시간 뒤에 죽을 수도 있는 위험을 부담한다는 것이.
그런데 나는 가만히 앉아서 죽기보다는 뭐라도 발버둥 치는 편이다.
게다가 바깥에서 만날 수 있는 위험도 어느 정도 컨트롤 할 수 있다고 자부한다.
답은 정해졌다.
철컥
나의 롤 모델을 찾아갈 시간이다.
하지만 아직 해가 떨어지지 않았다.
드론이 수시로 날아다니는 현재, 대낮에 이동하는 건 무모한 짓이다.
해가 질 때까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커뮤니티에 접속했다.
SKELTON : 존 내논 기억나는 사람 있냐?
문득 궁금해졌다.
게시판 사람들이 존내논이라는 추억의 유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잠시 여행채비를 하고 오니 댓글 몇 개가 달려 있었다.
Doyourbest321 : 좆내논? 그 새끼. 사기꾼이잖아.
RKKArA : 헌터라고 하는데 그때 당시에도 어웨이큰 있었다며? 2류급 핫바리인 거 스스로 알고도 헌터 행세했다는 게 참, 어지간한 신경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지. 막말로 우리 중에 어웨이큰 하나라도 있었으면 어쩌려고.
익명848 : 야~ 존내논.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네. 난 그 인간 살아 있을 거 같아. 돈 많이 벌었잖아?
Defender : 나 그 인간 강연 나간 적 있었는데 이상한 소리만 잔뜩 하더라고. 뭐? 개인 원자력 발전? 말이 돼?
우호적인 의견은 하나도 없었다.
모든 의견이 그를 비꼬거나 욕하는 게 전부였고 아무도 그의 장점을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이것이 게시판의 큰 뜻이라지만 나는 약간의 서운함을 느꼈다.
“······존내논. 괜찮은 사람인데.”
존내논이 무단 불펌질을 한 건 맞다.
그가 게시판을 이용해서 막대한 부를 번 것도 맞다.
그래도 그의 정보는 유익하지 않았나?
다들 그가 번역한 글을 읽으며 작은 정보 하나둘 정도는 얻어갔을 것이다.
게다가 그는 공사 같은 게 있으면 직접 전문 업체에 전화를 해줘 우리가 필요한 것들을 척척 처리해줬다.
누가 그런 서비스를 해줄 수 있었을까?
존내논이다.
존내논 이외엔 어떤 사람도 타인을 위해 이토록 발 벗고 나선 적이 없었다.
그러나 현실은 가혹했다.
아무도 그를 용서하지 않았고 과에 가려진 공을 기억하지도 않았다.
그래서일까.
우리의 일그러진 영웅이 계속해서 침묵을 지켰던 것은.
그 긴 세월 동안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화려한 복귀를 준비했을까?
아니면 조용한 복수를 준비했을까?
어느 쪽도 가능성이 있어 보이진 않는다.
영원한 방관이 어쩌면 그가 선택한 결론이었을지도 모른다.
*
땅거미가 질 때쯤 방공호를 나섰다.
현재 기온은 영상 1도.
하늘은 먹구름이 가득 꼈다.
한바탕 비나 눈이 쏟아질 모양이다.
심장에 붙여놓은 핫팩의 온기를 느끼며 조용히 자전거를 움직였다.
바깥은 칠흑처럼 어두웠지만 나는 이 길을 잘 안다.
별빛을 받아 지형이 미세하게 윤곽을 드러낸 것만으로 내가 있는 곳을 가늠하고 가파른 경사를 최소한의 브레이크만 잡으며 내려갔다.
개울이 나타났다.
꽤 수심이 깊은 하천이다.
자전거를 타고 들어가면 엉덩이 위까지 젖을 정도의 깊이.
조금만 가면 농민들이 조금씩 자갈을 쌓아 만든 길이 있다.
유속이 빠른 물에 가려 잘 보이지 않지만 입구에 돌을 쌓은 무더기가 있다.
그걸 표지 삼아 개천에 진입했다.
바퀴는 약간만 잠겼다.
탕!
도로를 따라가고 있자니 총성이 들려왔다.
자전거에서 내려 도로를 우회했다.
야트막한 언덕 위에 올라 총성을 내는 사람들의 정체를 확인했다.
개척자다.
일전에 골프장에 나타났다 사라진 사람들이 부서진 차와 판자로 바리케이트를 쌓고 맞은 편 도로를 향해 총격을 가하고 있었다.
반대쪽에도 또 한 무리의 사람이 있었다.
조성용 패거리인가.
아마 그게 가장 가능성 높은 선택지겠지.
언덕을 지나 들판에 들어서면서 그들의 정체를 확인했다.
맞은 편에서 사격을 가하는 건 조성용 패거리가 아니었다.
“쏴! 쏴! 새끼들! 전부 죽여버려!”
“저기요! 용수 아빠가 숨을 안 쉬어요!”
“뜨거운 물 좀 가져와! 소독을 해야 해!”
“개척단은 언제 오는 거야?!”
그들 또한 평범한 우리의 이웃이었다.
한 번 정도는 같은 지하철을 타고 마트에서 장을 보고 대로변에서 스쳐 지나갔을 사람들이 이제 두 패로 갈려 그들조차 알지 못하는 이유로 서로를 죽이려 들고 있었다.
어둠을 향해 곧장 나아갔다.
그 이후에 별다른 위협은 없었다.
약탈자가 있을 법한 매복 포인트는 비어 있었고 버려진 차량이 늘어서 거대한 차량의 묘지가 된 고속도로에도 약탈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진짜 위협은 하늘에서 찾아왔다.
쏴아아아아---
장대비가 쏟아졌다.
영상 2도의 날씨에서 차가운 비를 뒤집어쓰는 건 죽음과 연결되는 재앙이다.
버려진 버스 안에 들어가 불을 피우고 판초 우의를 뒤집어쓴 채 습기와 열기, 추위와 불쾌함이라는 네 명의 적과 싸워야 했다.
중간에 잠이 들지 않기 위해 카페인 알약을 물 없이 삼켰다.
“······.”
비가 그친 후 바로 자전거에 올라 젖은 길을 달렸다.
서울에 도착한 건 새벽 해가 막 떠오르려던 시점이었다.
자전거가 있기에 가능한 속도다.
도보라면 3일, 아니 지금 상황에선 그보다 더 걸렸을지도.
품속에서 메모지를 꺼내 내용을 확인했다.
[ 부러진 신호대 옆. FAIL이라는 간판을 단 가판대에서 안경을 쓴 남자에게 존내논이라고 말할 것. ]
중동의 어떤 나라의 수도 이름을 따서 지었다는 거리 위에선 남겨진 자들이 조잡한 시장을 열어 물건을 팔고 있었다.
폐전자제품, 녹슨 주전자, 솜이 터진 이불, 구겨진 종이 뭉치, 잡목 묶음 등 잡다한 물건이 쓰러져가는 가판대에 놓였는데 명품이나 귀금속 같은 건 없었다.
세간의 인식과 달리 사치재는 여전히 수요가 있다.
더 먹고살 만한 놈들이 죄다 쓸어가기 때문이다.
치안 상태는 그럭저럭 안정된 상태로 시장 쪽에도 국회파 병사들이 순찰을 돌고 있었다.
모처럼 사람 냄새나는 거리를 자전거를 손으로 끌며 걸었다.
탕!
멀리 떨어지지 않은 동쪽에서 총성이 들려왔다.
군단파의 장악지역이다.
설마 지금 전투가 벌어지려는 건가?
노심초사하며 주변을 돌아보니 이 거리에서 놀란 사람은 나뿐이다.
모두 태연하게 갈 길을 가고 흥정으로 하고 물건을 구경하고 때로는 도둑질을 시도하기도 했다.
좌판을 깔고 쑥을 파는 노파조차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 있었다.
마치 그 총성이 생활의 당연한 일부분인 것처럼 말이다.
놀라움을 삼키고 쪽지에 적힌 가판대로 찾아갔다.
[FAIL]
골판지에 매직으로 쓴 조촐한 간판이 있었고 과연 그 아래 깨진 안경알을 유리 테이프로 엉성하게 붙인 안경을 낀 삐쩍 마른 남자가 컴퓨터 부품을 올려놓고 장사를 하고 있었다.
그에게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존내논님을 찾습니다만.”
사내가 날 바라보았다.
“닉네임이?”
“스켈톤.”
안경 사내가 누군가를 손짓으로 불렀다.
이불을 두르고 있던, 다리가 하나 없는 사내가 절뚝거리는 목발을 짚고 민첩하게 다가왔다.
“가게 좀 맡아줘. 잠시 다녀올 데가 있어서.”
안경 사내가 후드를 뒤집어썼다.
“가시죠.”
“네. 그런데 동쪽인가요?”
동쪽에서 또 다시 총성이 울렸다.
나는 깜짝 놀랐지만 사내는 태연하게 답했다.
“네.”
그가 날 안내한 곳은 시장 동쪽에 자리 잡은 아파트라는 몰개성한 콘크리트 구조물이 숲을 이루고 있는 주거지역이었다.
아파트 숲 너머로 하늘을 찌를 듯이 솟은 타워가 반쯤 무너진 채 붕괴하고 있었다.
쿵!
파편 하나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며 굉음과 흙먼지를 일으켰다.
그 흙먼지가 가시기도 전에,
탕! 탕!
아파트 단지 쪽에서 두 발의 총성이 울렸다.
틀림없다.
아까부터 들린 총성이다.
내가 꺼림칙한 얼굴로 단지 쪽을 보자 사내가 안경을 헝겊으로 닦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 건너편은 군단파 파벌이 장악한 지역입니다.”
“누구랑 싸우고 있죠? 국회파?”
“아니오. 자기들끼리 싸움을 벌이고 있어요. 처음엔 별들끼리 싸웠는데 이제는 무궁화끼리 싸움을 벌인답니다. 곧 뭐, 마름모끼리 싸우겠죠.”
“국회파는 뭐한답니까?”
“지켜보는 거죠. 아무것도 안 해도 알아서 자멸하고 있으니.”
그가 아파트 단지 너머의 오래된 느낌이 물씬 나는 상가 거리로 날 데리고 갔다.
기억에 있는 거리다.
내 동기이자 팀원이었던 공경민이 한턱낸다면서 나를 비롯한 팀원들을 끌고 다녔었다.
여기에 기가 막힌 맛집이 있다고 큰소리치던 그는 끝끝내 그 맛집을 찾지 못해 평범해 보이는 중국집에 들어갔는데 그 집이 기가 막히게 맛이 있어 놀랐던 장면이 떠올랐다.
“박규. 언제까지 꽁해져 있을 거야? 걔들은 걍 특별한 애들이야. 신이 선택한 애들이라고. 솔직하게 각성 전엔 우리 발톱의 때만도 못한 애들인 건 맞는데 어쩌겠어? 시대가 변했는데? 마셔. 마셔. 걱정한다고 좆망할 우리 운명이 변하겠냐?”
이제는 공경민도 없고 나의 팀도 분열됐다.
나는 그 중국집을 영원히 찾을 수 없을 것이다.
탕!
흐릿한 회상을 뚫고 총성이, 이번에는 앞쪽에서 울려 퍼졌다.
죽음을 연상케 하는 바람 소리가 내 귓가를 스치고 들려왔고 뒤에서 총탄이 튀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내와 나는 몸을 엎드렸고 가까운 엄페물을 향해 기어갔다.
밤에 내린 비로 질척거리는 흙탕물이 입안에 밀고 들어오는 걸 뱉어내고 사내에게 물었다.
“뭡니까?”
총성에 면역인 것 같던 안경 사내지만 이번엔 그도 소스라치게 놀란 모양이다.
벽에 등을 기댄 채 가쁜 숨을 내쉬며 그는 심호흡을 시도했다.
“시발, 모르겠어요. 어제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하, 진짜. 하루하루 살기 지랄 맞아 가네요.”
“군단파입니까?”
“민간인일수도 있어요.”
“민간인이 왜?”
“그냥 쓰고 보는 거죠. 여긴 그런 동넵니다.”
총을 가진 자들이 이제 지나가는 모든 것에게 적의를 드러낸다.
나는 저격수 레베카를 생각했지만 곧 그 생각을 지웠다.
단지 쪽에서 맹렬한 총격전이 벌어졌고 급기야 전차가 나타나 단지를 향해 전차포를 겨냥했다.
“······.”
폭력으로 얼룩진 거리를 지나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여깁니다.”
그곳은 다 쓰러져가는, 3층짜리 맨션이었다.
최소 50년은 된듯한 건물 외벽엔 재건축을 축하한다는 현수막이 반쯤 찢긴 채 서글프게 휘날리고 있었다.
존내논은 그 건물의 지하에 있었다.
“이쪽으로 오시죠.”
지하에 발을 내디디자 시궁쥐 몇 마리가 뛰쳐 나왔다.
아파트의 지하는 상상 이상으로 깊었다.
사내가 랜턴을 켜며 끝없이 이어지는 계단을 비추며 입을 열었다.
“이 연립주택은 군사정권 시절 전쟁에 지어진, 위장된 지휘 벙커로 세운 건물이라고 하더군요. 위는 평범한 썩다리 구축인데 아래쪽이 특별납니다.”
이제는 물어볼 때가 됐다.
“존내논님의 부하라고 들었는데 정확하게 무슨 관계입니까?”
사내가 멈춰섰다.
내 질문에 답하려고 멈춘 건 아니었다.
우리 앞에 목욕탕에서 볼 법한 싸구려 보관함이 놓여 있었다.
그가 보관함을 열자 놀랍게도 예상치 못한 물건이 나타났다.
방사능 방호복이다.
내가 가진 것과 같은 회사 물건으로 내 것보다 상급 모델이다.
그가 방호복 하나를 내게 넘겼다.
“부하 맞습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추종자라고 할까요?”
“추종자요?”
“네. 진짜예요. 존내논님은 대단한 분입니다.”
사내의 목소리엔 힘이 없었지만 허투루 꾸며낸 소리 같진 않았다.
그가 방호복을 걸치며 먼 곳을 보며 중얼거렸다.
“······미국에 멜론 마스크가 있다면 한국엔 존내논님이 있죠.”
“그렇습니까···?”
그 존내논이 비바! 아포칼립스!의 창시자 멜론 마스크에 비빈다고?
너무 나간 거 아닌가.
불과 40대의 나이에 수십 조에 달하는 재산을 일궈내고 전 세계적인 영향력을 떨친 위대한 사기꾼이자 사업가와 게시판에서 쌍욕 처먹고 쫓겨난 인간과 같은 반열에 놓일 정도인가?
그건 아니다.
존내논에 우호적인 나조차 동의할 수 없는 무리한 평가다.
“입으시죠.”
“왜 이런 걸?”
“들어가시면 알 겁니다.”
사내가 방호복을 입고 랜턴으로 건너편을 비쳤다.
거기엔 최근에 보강한 콘크리트벽이 서 있었고 그 중앙에 납으로 만든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이 안에 존내논님이 계십니다.”
그를 따라 문 너머로 향했다.
방안은 어두컴컴했다.
어슴푸레 속에 침대가 있었고 누군가 거기 누워 팔을 늘어뜨리고 있었다.
기이하게도 그의 팔에선 희미한 빛 같은 게 비치고 있었는데 그의 팔에서 나오는 빛이 아니라 침대 아래 점멸하는 치료기구에서 나오는 빛이었다.
방호복을 입은 사내가 침대에 누운 자를 깨웠다.
“형님. 형님! 스켈톤님 오셨어요. 일어나셔야죠! 형님!”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걸쳐져 있던 사내가 부축을 받아 몸을 일으켰다.
뼈밖에 남지 않은 몸, 온 얼굴에 시뻘건 반점이 역병처럼 퍼진 사내가 퀭한 눈으로 날 보았다.
그가 미소지으려고 했을 때 난 알아보았다.
그의 입안에 이가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걸.
“······스켈톤님.”
흐릿한 발음으로 사내가 말했다.
싸구려 고깃집에서 만났던 근육질의 사내의 모습을 기억한다.
그 모습은 이제 다른 것들처럼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저편으로 떠나버린 것 같다.
내가 다시는 찾지 못할 그 중국집처럼 말이다.
이제 하나의 의문이 남았다.
이 죽어가는 남자는 왜 나를 찾은 것일까?
왜 그토록 나라는 구시대의 유물을 애타게 갈구했던 것일까?
“아니.”
곧 실마리가 풀렸다.
존내논은 나를 알고 있었다.
“프로페서···!!”
스켈톤이라는 가면 뒤에 숨겨진 또 다른 나를.
의문은 또 다른 의문으로 연결된다.
언제부터였을까?
내가 참석한 마지막 정모에서 존내논이 나에게 뭔가 말하려고 했던 장면이 꿈에서 본 것처럼 떠올랐다.
“아.”
그때부터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