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한파
시스템이 붕괴한다는 건 우리가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기는 서비스를 받지 못한다는 걸 뜻한다.
일기예보도 그중 하나다.
늘 예보를 틀린다고 욕을 먹긴 하지만 그들 말고 날씨를 분석하고 판단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지난 3일간은 따뜻했다.
절기상으로나 달력으로나 완벽한 봄이었다.
하루 만에 세상이 변했다.
밤사이에 예고도 없이 휘몰아친 북풍이 모든 걸 얼려버리기 시작한 것이다.
외부 온도계가 영하 32도를 가리켰다.
방공호 안은 거대한 냉장고가 되었다.
1층 방공호 정중앙에 자리 잡은 변기의 물이 꽁꽁 얼었다.
변기 전시로 이름을 떨친 뒤샹이 이 모습을 본다면 얼어붙은 샘이라는 제목을 붙여주지 않을까?
해가 뜨기를 기다려 바깥에 나가보았다.
이렇게 추운데 눈 하나 오지 않았다.
하늘은 터무니없이 쾌청했고 공기 또한 서글플 정도로 맑았다.
“······후.”
어떻게 해야 하나.
축전지 잔량이 얼마 남지 않았다.
절기상 입춘을 넘기기도 했고 최근 기온이 계속 올라가고 있어서 발전기를 돌릴 기회가 여럿 있었는데 돌리지 않았다.
저유고의 기름이 절반 아래로 떨어졌기에 슬슬 이쪽도 절약 모드에 들어가야 하고 봄이 온 것 같아 가동을 하지 않았는데 맹추위가 찾아왔다.
대낮에도 발전기를 돌려야 할 필요가 생겼다.
발전기를 돌려서 얻는 이점은 배관 동파를 막을 수 있고 내가 동상에 걸릴 확률을 낮춰주는 건 물론 한파로 얼어 죽을 위험을 99% 감소할 수 있다.
하지만 대낮에 발전기를 풀로 가동하면 필연적으로 매연이 발생할 것이다.
매연 저감 시설을 완비했기에 그리 멀리까지 보이진 않을 것이다.
밤이라면 달빛이 아주 밝지 않는 한 거의 식별할 수가 없는 수준이다.
그러나 지금 낮이다. 그것도 대기 상태가 아주 좋은.
이곳 황량하기 짝이 없는 버려진 땅에서 희미한 한 줄기 연기가 하늘을 향해 솟아오른다면 그 연기는 내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크게 보일 것이다.
선택지는 단순하다.
숨는 걸 택하고 추위에 맞설 것인가, 내가 모르는 적대적인 존재에게 발견 당할 수도 있는 위험을 품고 발전기를 가동할 것인가.
방공호 안에서 불을 피우는 선택지는 고려하지 않았다. 그건 자살의 또 다른 표현이니까.
“······.”
처음 고른 선택지는 추위에 맞서는 것이었다.
전기 없이 오직 원시인처럼 방한 장비와 나 자신의 열기로 이 추위를 이겨 내보자고 생각했다.
그러나 원시인들도 맨몸으로 겨울을 버텨낸 건 아니다.
그들에겐 불이 있었다.
나에게 핫팩이라는 작은 불이 있긴 한데 모닥불의 온도는 1300도인 반면, 핫팩의 온도는 40도다······.
삐- 삐- 삐-
축전지가 방전됐다.
난방 텐트 안에 깔아 둔 온수 매트의 온도가 야속하리만치 빠르게 식어갔고 매 순간마다 추위라는 채찍이 내 마음을 후려쳤다.
술을 마셔서 버텨볼까 했지만 술이 마시면 피가 빨리 돌 뿐이지 술 좀 마신다고 추위에 맞설 내부의 용광로에 불이 켜지는 건 아니다.
술 처먹고 얼어 죽은 사람은 전쟁 전에도 많았다.
“······시발.”
콧물을 닦아내며 나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었다.
이대로는 얼어 죽는다.
몬스터고 나발이고 약탈자고 그전에 내가 동사한다.
오전 11시 경.
결국 발전기를 돌리기로 했다.
그게 내가 생각한 유일한 생존의 결론이다.
하지만 평범하겐 하지 않겠다.
방공호 문을 열어젖히고 칼날 같은 추위에 맞서며 영역 건너편의 전답으로 향했다.
지난해 무분별하게 자란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 지금은 시래기처럼 시들어버린 벌판이 보인다.
지영희에게 받은 합성유를 묻힌 걸레 조각을 던져놓고 성냥으로 불을 붙였다.
바람이 강해 불이 몇 번이고 꺼졌다.
사람은 언제 욕을 하는가?
저마다 이유는 다 있겠지만 나 같은 경우엔 몸이 힘들 때다.
“씨발! 좆! 이딴 것도 기름이라고 만들었어?”
저절로 튀어나오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같은 작업을 반복했다.
손과 발의 감각이 거의 희미해질 즈음 들판에 불이 붙었다.
바람을 타고 맹렬하게 타들어 가는 불이 나조차도 태워버릴 위험이 있었지만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서 격렬하게 요동치는 불을 쬈다.
방공호로 돌아올 즈음 불길은 점점 커져 들판을 불태우고 있었다.
검은 연기가 하늘 위로 끊임없이 솟구치는 걸 보며 나는 발전기를 가동했다.
위이이이잉---
내 가장 큰 재산이 마치 심장과도 같은 박동을 내며 돌아가는 걸 보며 사다리를 타고 1층으로 올라갔다.
여전히 방공호는 얼음골 그 자체였지만 벌써부터 따뜻해진 기분이다.
내가 주로 사용하는 난방 시설은 난방 텐트와 온수매트로 최저한의 비용으로 최대급의 효율을 뽑아낼 수 있는 세트다.
하지만 하나가 더 있다.
치이이이익-
곳곳에 설치한 라디에이터가 발전기의 전력을 듬뿍 머금은 보일러가 데우고 회전시키는 온수를 공급받고 방 곳곳에 미세한 증기를 내뿜으며 온기를 내 방에 전달했다.
이것이 나 박규가 숨겨둔 진정한 난방 시설이다.
바닥만을 데우는 게 아닌, 공기 전체를 덥히는 호화로운 난방.
크리스마스나 설날 같은 특별한 날에만 가동하는 비장의 무기라고 할까.
이 라디에이터가 제대로 돌아간다는 건 비단 공기가 따뜻해지는 것만이 아닌 배관 시설이 이 맹렬한 한파를 버텨줬다는 걸 뜻한다.
몸을 꽁꽁 싸맨 파카를 벗으며 온도계가 올라가는 걸 지켜보았다.
온도가 오른다.
식사 준비를 시작했다.
카레가 문득 먹고 싶다.
내 주방은 변기 옆에 있다.
사람들이 왜 변기가 가운데 있냐고 늘 놀라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급수관과 하수관의 최적의 설계를 위해 가운데 설치했다.
기분 좀 내면 나도 아파트마냥 방 3개 화장실 2개 중간중간 벽도 치고 야무지게 꾸밀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어차피 나 혼자 쓸 건데 위치가 무슨 상관인가.
결정적으로 변기 위엔 환기 덕트가 자리 잡고 있다.
별다른 환풍구 설치 없이도 가장 빠르게 냄새를 지울 수 있다는 소리다.
탁- 탁- 탁-
반쯤 얼어붙은 당근과 양파, 감자를 정량으로 썰었다.
맞은편 인덕션 위 중화 냄비 안엔 물이 끓고 있었고 그 옆엔 포장을 뜯은 일제 고형 카레가 카미카제마냥 투입될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방공호 안의 온도는 빠르게 올라갔다.
외부 온도 영하 28도의 강추위 속에서도 온도계는 점점 올라 영상 15도에 근접했다.
이 정도면 가히 봄날이다.
그대로 발전기를 끌 수도 있지만 축전지가 아직 다 충전되지 않았다.
위험을 감수하고 켰으니 뽕은 뽑아야지.
모처럼 빵빵하게 확보한 온수는 변기 옆 샤워기 아래 바퀴 달린 욕조에 받았다.
적절하게 몸을 씻고 면도를 한 후 욕조 안에 들어갔다.
“······와아.”
살아나는 기분이다.
이미 살아 있지만 새로운 생명이 몸에 깃드는 기분이랄까.
욕조의 뜨거운 몸은 얼어붙은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함께 녹이는 힘이 있었다.
자욱한 수증기가 변기 위 환기 덕트로 빠져나가는 걸 보며 나른하게 몸을 이완했다.
이 멸망기에 누가 이런 호사를 누릴 수 있을까?
온기를 머금은 미소가 절로 입가를 잠식하는 걸 느끼며 모처럼 만족스러운 시간이 흘러가게 내버려 두었다.
주방에선 카레가 자작하게 졸여지며 풍미를 더해가고 있었다.
그래, 이런 날도 있어야지.
해가 저물기 전에 주위를 확인했다.
서쪽의 벌판은 검게 타버린 채 하얀 연기만을 뿜어내고 있었다.
주변에 사람은 없고 여전히 공기는 차다.
바깥 온도는 영하 28도.
좀비조차 얼어 죽을 날씨다.
*
어제에 이어 오늘도 저격수에게 안부를 물었다.
“으, 추워. 너무 추워. 뻐킹 코리아!”
저격수 모녀는 아마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싶다.
이렇게 추운 날에도 꼬박꼬박 게시판에 글을 올린다는 걸 살만하다는 증거니까.
실제로 어제오늘, 커뮤니티엔 글이 많이 올라오지 않았다.
얼어 죽겠다는 글 몇 개가 있는데 그게 전부.
우리 멸망주의자 중 얼어 죽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다만 방공호 안을 냉장고로 만드는 맹추위 속에서 키보드를 친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커뮤니티 하다 동상에 걸려 손가락을 자르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니 말이다.
어제 만들어 놓은 카레로 배를 채운 후 아침 정찰에 나섰다.
여전히 공기는 차지만 영하 18도.
어제보다는 확실히 나아졌다.
여전히 공기는 청명하고 눈은 오지 않았다.
하얀 입김을 불며 골프장 쪽을 보았다.
아주 미세한 변화가 감지됐다.
이쪽을 향해 느슨하게 경사진 골프장의 둔덕 아래에 못 보던 검은 점이 있다.
사람처럼 보였지만 미동도 없다.
무기를 챙기고 방공호를 나서 신중하게 접근했다.
예상대로 얼어 죽은 사람이었다.
무릎 꿇은 채 주저앉아 고개를 숙인 채 죽은 그가 바라보는 방향은 얄궂게도 내 방공호가 있는 쪽이었다.
그가 매고 있던 총기를 회수했다.
K-2. 국산 소총이며 탄창엔 총알이 가득 차 있었다.
주머니 안엔 콘돔과 감기약, 어째서인지 모기 물파스가 있었는데 모두 챙겼다.
옷 사이즈가 나와 비슷하고 걸친 파카도 수입산 고가 파카라 옷을 챙기고 싶은 유혹을 느꼈지만 그냥 놔뒀다.
물건을 챙긴 후 이 시체를 어떻게 할지 고민을 했다.
불로 태울 것인가, 매장을 할 것인가.
어느 쪽도 내키지 않는다.
불은 눈에 띄고 매장은 얼어붙은 땅을 삽질해야 한다는 수고가 든다.
보이지 않는 곳에 던져놓는 것이 그나마 낫겠지.
나중에 날이 좀 풀리면 그때 가서 매장을 하건 화장을 하건 알아서 정해야겠다.
시체의 발을 잡아끌고 둔덕을 올랐다.
골프를 친 적도 없고 흥미도 없어서 잘 모르지만 이 골프장은 컨트리클럽이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퍼블릭이라는 누구나 칠 수 있는 골프장과 달리 고가의 회원권을 가진 회원만이 입장이 가능했던 모양.
이곳의 회원권이 18억 원 정도로 거래됐다는 말을 김노인에게 들은 적이 있다.
하긴 비싼 차들이 많이 들락거리긴 했다.
방공호 공사를 하느라 진이 빠진 몸으로 골프장을 보고 있노라면 귀엽게 생긴 카트가 발발거리며 저 둔덕을 넘어가는 장면을 종종 볼 수 있었고.
그때마다 생각했다.
저 둔덕 너머엔 뭐가 있을까.
회원권 18억 원에 달하는 컨트리클럽엔 어떤 별세계가 펼쳐져 있을까.
전쟁이 시작된 후 아무도 없는 골프장을 지나 둔덕을 넘어 보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짧게 깎인 채 불타버린 잔디와 어디서 온 지 모를 쓰레기, 무너진 방갈로들만이 그곳이 한때 대한민국 상류층들의 모임 장소였다는 걸 희미하게 알려줄 따름이었다.
그 둔덕을 다시 넘고 있다.
내가 모르는 누군가의 시체의 발을 잡은 채.
내 의도는 이 시체는 이 둔덕 너머에 던져놓는 것이다.
당장 거기로만 치우면 내 방공호에선 보이지 않으니까.
그 말은 단순히 미관상의 이유뿐만 아니라 이 시체에 달려들 야생동물이 내 시야를 어지럽히지 않는 것을 뜻한다.
“후우.”
산정에 오른 기분으로 둔덕의 능선에 올라섰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시체가 더 있다.
그것도 하나가 십수 개의.
전부 다 얼어 죽었다.
총을 든 사람도 있지만 민간인으로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내가 끌고 온 사내도 군복은 입지 않았다.
피난민인가.
아니면 개척자인가.
약탈자라고 믿고 싶지만 약탈자라기에는 노인과 아이, 여성의 비중이 높았다.
점점이 얼어 죽은 그들의 시체는 하나의 직선을 형성하고 있었는데 오싹하게도 그 직선이 가리키는 곳은 다름 아닌 내 방공호 영역이었다.
“······.”
잠시 멈춰선 채 생각에 잠겼다.
내가 끌고 온 사내도 내 방공호를 보고 있었다.
설마, 내가 피운 연기를 보고 이곳에 온 건가.
영하 30도를 넘나드는 추위 속에?
들판의 연기도 있었을 텐데 왜 이쪽으로 온 것일까.
내 연기가 그렇게 멀리까지 보이는 걸까?
들판의 거칠고 악마를 연상케하는 검고 붉은 연기보다 내 발전기가 내뿜는 연기가 아름다워 보이기라도 한 것일까.
알 수 없는 짜증을 느끼며 시체들을 돌아보았다.
“대체 왜 온 거냐고······.”
죽은 자와 대화를 하는 능력이 있었으면 했다.
그 혼령을 붙잡고 왜 꾸역꾸역 이 추운 날에 내 쪽으로 온 거냐고 묻고 싶었다.
왜 모처럼 좋았던 기분을 이렇게 더럽게 만들었는지 묻고 싶었다.
내 분노는 불과 연결되지 않았다.
미완의 불청객들을 내버려 둔 채 골프장을 떠났다.
내 영역 안에 못 보던 발자국이 있다.
나는 골프장에 있던 무장한 시체들을 기억했다.
다들 비참하게 얼어 죽었지만 무장 상태는 좋았다.
자동소총만 7정.
전부 다 챙길 수 없어 탄약만 챙기고 공이만 빼놓을 정도였다.
설마 그게 전부가 아니었던 건가.
또 다른 한 패가 있었고 그들이 도달하지 못했던 내 방공호를 찾아낸 건가.
“······.”
피가 차갑게 식는 걸 느끼며 노획한 총을 내려두고 천천히 방공호로 접근했다.
중간부터 발자국은 없어지고 대신 기어가는 듯한 질질 끌리는 흔적이 남았다.
제4 더미 방공호 옆에 버리고 간 총기가 있었다.
기어간 자국은 점점 난잡해지고 그 폭도 얕아졌다.
그 자국은 내 메인 방공호까지 이어져 있었다.
잘 위장되고 가려진 내 메인 방공호의 출입구엔 한 사내가 무릎을 꿇은 채 자빠져 있었다.
생명의 징후는 보이지 않았다.
옷에 종양처럼 달라붙은 도깨비바늘을 보아하니 산을 넘어온 모양이다.
그래서 나와 길이 갈린 건가.
총기를 던진 것도 그렇고 아무렇게나 기어온 자국도 그렇고 내 메인 방공호가 여기 있을 거라는 특별한 인식 없이 막연한 충동과 본능에 의지에 내 영역의 입구까지 도달한 것으로 보였다.
이제 20대 초반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사내의 얼굴을 보며 나도 모르게 차가운 한마디를 내뱉었다.
“홀 인 원.”
이 한파가 얼어붙게 만든 건 하늘과 땅과 이름 모를 사람들만은 아닌 모양이다.
*
Defender : 뭘 그리 의기소침해 하고 있어?
Defender : 한파가 널 지켜준 거라고?
SKELTON : (스켈톤 급방긋) 정말?
Defender : 우리랑 합칠까?
“YES!”라는 글을 치려고 할 때였다.
“······.”
내 기쁨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이 꿈이었다는 것을 도중에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디펜더의 연락이 끊긴 지 10일이 흘렀다.
사람들은 천하의 디펜더도 이 멸망을 이겨내지 못했다고 두런거렸다.
“······.”
눈을 뜨자 나를 반긴 건 익숙한 어둠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야말로 칠흑 같은 어둠.
아무 생각 없이, 마치 맹인처럼 사물의 위치를 기억해 손을 더듬어 컴퓨터를 켰다.
이유는 없다.
단지 사람이 보고 싶다.
뭔가 쏟아내고 싶다.
설령 내 말에 아무도 반응해주지 않더라도 그들이 살아 있고 움직이는 것이라도 보고 싶다.
메시지가 와 있었다.
Defender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스켈톤, 나 보고 싶었어? 설마 얼어 죽은 거 아니지?
단순한 문장 몇 개만으로 사람은 감정의 동요를 일으킬 수 있다.
“······시발.”
두 볼에 뜨거운 것이 타고 흐르는 게 느껴진다.
기쁘면서도 기분이 상하는 일이다.
이 박규가, 저런 녀석을 보고 눈시울을 붉힐 줄이야.
하지만 내 뺨을 타고 흐르는 뜨거운 건 꿈이 아니라 현실이다.
타닥타닥
얼어붙은 손가락을 놀리며 타자를 쳤다.
SKELTON : 오랜만이다.
Defender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그게 전부? 더 할 말 없어? 나 기다렸잖아? 그렇지?
“하.”
이 녀석 왜 이렇게 띠껍게 구냐.
뭔가 없을까.
내 자존심이 상하지 않고도 해후의 기쁨을 나타낼 수 있는 신박한 표현이?
아, 어디서 본 문장이 꿈에서 본 것처럼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타닥 타닥-
“호.”
손가락을 불어 가며 답장을 보냈다.
SKELTON : (스켈톤 부정) 따, 딱히 보고 싶었던 건 아니라고?
Defender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와······.
Defender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전부터 느끼는 건데 너 인터넷 너무 못하는 거 아니야?
SKELTON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