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선비 (2)
전쟁 전부터 늘 찬반이 팽팽하게 대립하던 주제가 있었다.
다가올 멸망에서 집단으로 살아남을 것인가? 아니면 개인 단위로 살아남을 것인가.
해묵은 논쟁은 슬슬 집단주의 쪽으로 기울어가고 있었다.
시인성(視認性)이라 할까, 눈에 띌 수밖에 없는 집단체제는 불가피하게 강한 도전을 받고 결국 무너진다는 것이 나 같은 개인주의 쪽의 주된 논거다.
실제로 무너진 곳도 있다.
집단생존주의의 끝판 대장이라 할 수 있는 재벌 박철주의 성채가 개박살이 난 거 보면.
하지만 개인주의도 만만찮은 문제를 품고 있었다.
그건 외부의 위협이라기보다는 우리 인간 본성에 관한 것이다.
모두가 은둔자의 속성을 가진 건 아니다.
나도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펼쳐진 현실은 나 또한 사람을 필요로 하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홀로 골방에 박혀 언제 죽을지 모르는 두려움 속에서 몇 년을 지낸다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평온한 나날이 계속될 수도 있다.
하지만 아주 작은 일상의 변화가 걷잡을 수 없는 공포와 염려로 이어지는 건 사실이다.
매일매일의 작은 고통과 불편이 정신병을 낳는다는 건 나의 신조이기도 하다.
나 같은 경우엔 위험 발생의 원인을 제거하는 편이지만 대부분은 그 작은 고통과 불편을 참고 살아야 한다.
고칠 수도 없다.
방공호 생활에서 겪게 되는 대부분의 고통과 불편은 처음 방공호를 설계할 때부터 결정지어지는 것이니까.
그 결과, 많은 사람이 중도에 포기하거나 이상하게 변했다.
전쟁 전에 커뮤니티를 일체 하지 않던 나조차 커뮤니티 중독 증세를 의심할 정도로 의존하고 있다.
죽음의 형태도 다를 것이다.
언젠가 죽더라도 옆에 같이 싸우고 죽을 사람 혹 시체를 매장해주고 애도할 사람이 있는 것과 홀로 고독하게 죽는 것과는 같은 죽음이라도 결이 다를 수밖에.
또 하나의 문제가 있다.
그것은 시대의 흐름이다.
나는 서울이 중국의 북경처럼 될 거라고 생각했다.
도시가 무너지고 체제가 붕괴할 때 수천 만의 피난민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파멸의 연쇄를 일으킬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달랐다.
위정자의 거짓말이 더 뛰어난 건지 아니면 그 위정자를 믿는 마음이 중국인보다 강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서울 시민은 눈앞에 직면한 대파국 앞에서 집단 이주를 선택하기 보다는 그 자리에 앉아 죽는 걸 택했다.
그들은 너무나 희망적이었다.
아니 어쩌면 희망말고 다른 걸 먹는다는 걸 상상하기 어려운 환경이라서 그런 선택을 했을지도 모른다.
물자와 땅이 넘쳐나는 중국과 달리 한반도는 좁고 그 좁은 땅에 갖가지 재앙이 모여 있으니.
계속 이런 움직임이 지속된다면, 집단 생존 주의가 우위를 차지할지도 모르겠다.
이건 내가 잘못된 게 아니다.
모두가 미래를 볼 수가 없다.
중국에서 일어난 일이 한국에서 일어나지 않았다고 그것이 틀렸다고 표현하는 건 지나치게 결과론적인 해석이다.
“안녕하세요? 스켈톤입니다.”
이것도 기회겠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려 시도했다.
“스켈톤님? 아, 생각보다 젊으시네.”
“그쪽이 스켈톤님이세요? 뭔가, 상상과는 이미지가 너무 다르신데.”
“아니, 멀쩡하게 생기신 분이 왜 게시판에서 그런 짓을 하세요?”
그런데 어째 반응이 이상하다.
내가 인기가 없고 유니콘18같은 놈과 엮일 정도로 바닥까지 떨어진 건 알겠는데 만나는 사람마다 같은 소리를 반복한다.
“······.”
나, 설마 인터넷 잘 못 하는 건가.
“흠······.”
그중 유난히 내게 친근감을 표시하는 유저가 있었다.
익명848이다.
한밤중인데도 선글라스에 마스크라는 수상한 복장을 해 얼굴은 잘 모르겠지만 선글라스가 가리지 못한 부분을 볼 때 40대 중반은 족히 넘는 연령대로 보였다.
“혹시 저 아세요?”
날 주시하는 걸 보고 넌지시 물어봤다.
혹시라도 날 아는 사람이 있나 싶어서.
아마도 모를 것이다.
대한민국 헌터 정보는 나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헌터가 비밀 사항이다.
그 원인은 우리 윗 기수가 제공했다.
한창 중국이 강성하고 혼자 인도에서 넘어온 재앙과 본국 내의 균열을 상대하던 시기, 중국은 여전히 큰소리를 쳤지만 안으로는 우리나라에도 손을 뻗쳤다.
정확히 말하면 나라가 아닌 인재에 손을 댔다.
8기, 9기, 10기.
그간의 경험으로 나라가 막대한 비용을 들여 대몬스터 특화병으로 키운 헌터들이 돈을 쫓아 중국으로 건너갔다.
졸지에 엘리트 병사를 잃자 정부는 언론을 위시한 여론의 포화를 받아야 했고 결국 헌터양성기관 가드 출신의 신상 정보는 예외 없이 비밀로 분류됐다.
당연히 얼굴 같은 게 알려질 일은 없다.
다만 내가 나온 학교 출신이 아니거나 학교에서도 부적합자로 판명된 전력외 멤버는 조금 느슨하게 관리됐다.
그 결과 나 헌터요~ 으스거리며 썰을 풀고 돈을 벌어 먹고사는 인간도 존재했다.
존내논이라던가.
“아니오. 그냥 신기해서. 카일도스가 스켈톤님 이야기를 가끔 하더라고요.”
“뭐라고요?”
“스켈톤님 게시판 이미지와 달리 괜찮을 사람일 수도 있다고.”
“만났다는 이야기는 안 하던가요?”
“그런 이야기는 않던데. 혹시 만나셨어요?”
“예전에요.”
그와 함께 잠시 대화를 나눴다.
카일도스에서 시작된 주제가 다른 쪽으로 넘어간 건 나의 의도였다.
“군대요? 나도 서쪽에서 오긴 했는데 거긴 군단파라기보다는 중립 군대가 장악한 지역이라.”
“그렇군요.”
“군단파 쪽에 문제가 생겼다는 건 들었어요. 듣자하니 군단파 수장은 권성태 중장이라는 사람인데 그 사람이 탄 헬기가 그를 따르는 다른 지휘관을 태우고 추락했다고 하더라고요. 지휘관이 날아간 군대. 뭐, 뻔한 거 아닌가.”
“······.”
그건 내가 알지 못하는 정보다.
김다람의 연락이 끊어진 시점에서 서울 쪽 상황을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커뮤니티가 전부니까.
기자 양반처럼 정보를 교환하는 것으로 보람을 느끼는 사람이 있지만 뜬 소문이 더 큰 문제로 비화하는 걸 알기에 커뮤니티 유저들은 자기가 아는 정보를 확실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풀어놓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정보가 늦었던 모양이다.
“디펜더······.”
“음? 디펜더는 왜요?”
“아니오. 그냥 갑자기 생각나서요.”
무사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 녀석이 본 군인은 단순한 군인 약탈자 수준은 아닌 거 같은데.
설마 당한 건가.
그 녀석도?
아니, 당할 확률이 높다.
그 남매 중에 어웨이큰이 있었다면 모를까, 훈련된 군인들의 공격을 막는 건 나조차도 버거운 일이니까.
아무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동안 우리는 선비의 방공호가 있다는 지역에 도착했다.
다른 외곽 지대처럼 사람 하나 얼씬하지 않지만 도시가 어느 정도 가까이 있다 보니 산등성이 아래 음울하게 밝힌 등불들이 보였다.
그 건너 편에 음울한 회백색 불빛들이 보인다.
“······저런.”
버려진 도시도 아니고 보존된 도시 옆에 침식지대가 생긴 건가.
형태로 보아 정주형이 일으킨 소규모 침식 같은데 광주 일대는 전략 지역으로 정한 곳이라 다른 곳보다 관리를 철저히 할 텐데 그런 곳까지 침식지대가 발생했다?
이건 관리를 안 한다는 증거다.
죽일 수 있는 몬스터를 죽이지 않고 방치하고 있다는 증거다.
“정지.”
선두에서 우리를 인도하던 디에스이라에가 정지 신호를 보냈다.
“저기네요. 저쪽일 겁니다. 튼튼 정형외과님이 주신 제보대로 커다란 환기구가 있네요.”
과연 환기구가 보인다.
방공호 용보다 지하철이나 하수 배관쪽 처리를 위한 것으로 보인다.
시궁창 악취가 꽤 진하게 풍겨오고 있었다.
“자, 갑시다. 일단 우리가 먼저 정찰을 하겠습니다. 나머지 분들은 혹시 측면에서 적이 나타나면 위협 사격을 해주세요.”
디에스이라에는 확실히 노련한 병사였다.
“잠깐만요. 부비트렙인가? 제가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전쟁 경험이 풍부한 건 물론이고 주도적으로 승리를 쟁취한 적도 여러 번 있을 것이다.
어디서 활동을 했을까.
북한 쪽일까.
북한이 멸망했을 때 한국군이 잠시 평양을 탈환하기도 했으니.
연령으로 보나 경험으로 보아 그 시절의 군인일 가능성이 농후해 보인다.
“방공호 발견. 발자국으로 보아 안에 있는 건 다섯. 신발 사이즈로 미루어보아 여자 둘, 남자 셋?”
모두의 얼굴이 굳었다.
곧 전투가 벌어질 것이다.
힘들게 준비한 방공호와 그 너머의 삶을 잃어버리고 차가운 시체가 되어 바닥에 뒹굴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그 긴장이 모두의 숨결을 얼어붙게 만들었지만 그러나 그 긴장은 오래가지 않아 사라졌다.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방공호 안에서 들린 소리다.
“하하하하!!”
“끼햐햐햐!”
“와. 시발! 쩔어!”
폭소라고 할까.
우리가 잃어버린 형태의 웃음이다.
다수의 남녀가 동시에 하나를 보고 웃고 떠드는 소리다.
“전부 다 죽이는 겁니까?”
한 사내가 눈동자에 탐욕을 드러내며 물었다.
아마 초초라는 유저일 것이다.
게시판에선 거의 활동을 하지 않아 처음 보는 친구지만 그의 생각을 읽는 건 어렵지 않았다.
“여자도 죽이는 건 아니겠죠? 여자애는 그냥 남자애들이 협박하니 어쩔 수 없이 그런 글 쓴 거 같은데.”
여자를 변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여자 자체를 원하고 있다.
아마 처음 인증사진을 올린 귀여운 여자아이겠지.
다음에 얼굴을 드러낸 여자아이는 빈말로도 귀엽다고 할 수 없는 얼굴이었으니.
디에스이라에의 생각은 어떠할까.
“전부 다 죽여야죠.”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가 답했다.
“아깝지 않나요?”
초초가 정색하며 묻는다.
이에 디에스이라에는 은근한 짜증을 드러냈다.
“정 그러면 강간이라도 한 번 하세요.”
역시 그도 한 번에 의도를 파악한 모양이다.
뭐 뻔한 거겠지.
발정 난 수컷은 대체로 파멸의 길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속성을 품고 있으니까.
“아니.”
초초는 억울한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망봐드릴 테니. 대신 빨리 끝내세요.”
“그냥 살려드리라고만 말한 건데.”
“강간을 끝낸 후 죽여야 합니다. 뒷감당이라는 게 선생님이 생각하는 것만큼 간단하지 않아요.”
“아니, 누가 강간한답니까? 그냥 살려만 주자고 한 게 그리 욕 먹을 일인가요?”
“그러면 선생님이 여자 직접 잡으시고 끌고 가시고 강간을 하듯 도륙을 내건 마음대로 하세요.”
나는 디에스이라에가 키우던 개를 전부 죽인 걸 알고 있다.
그중엔 아직 변이 증상이 미약한, 작은 희망이나마 품을 수 있는 어린 개체도 있었다.
확실히 그는 평범한 사람은 아니다.
“시작합시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같은 집단에서 온 동료와 입구를 장악하고 은밀성을 유지한 채 수신호만으로 병력을 움직여 환기구를 찾았다.
그가 손가락 3개를 폈다.
3초가 지난 뒤 시작한다는 소리다.
“하하하하하! 이 새끼 봐! 이 미친 새끼. 만화 재미없다고 하니 지랄발광이네.”
“나, 씨발 저 새끼 누군지 알 거 같아. 요일 웹툰에도 못 들어가고 이상한 쩌리 게시판에서 좆도 재미없던 뽕빨물 그리던 새끼 아니야?”
“야! 드래곤씨! 씨발년아! 니 만화 재미 없다고!”
소년과 소녀의 것이 뒤섞인 고함이 방공호의 육중한 문을 뚫고 환기구를 통해 쩌렁쩌렁 흘려 나왔다.
디에스이라에가 손가락을 전부 굽혔다.
택티컬 마스크를 쓴 그의 동료가 최루탄을 환기구 안에 집어넣었다.
곧 방공호 안에서 웃음이 그치고 격렬한 기침 소리가 새어 나왔다.
“콜록! 콜록!”
“시발 뭐야?! 뭐냐고!”
“진짜, 진짜 온 거 아냐?”
“그 틀딱 새끼들이?!”
“문 열지 마!”
“안 돼! 나 죽겠어! 죽는다고!!!”
처참한 절규 속에서 문이 열렸다.
디에스이라에가 수신호를 했다.
탕! 탕! 탕!
디에스이라에의 총과 그의 동료의 총이 불을 뿜었다.
3점사 조차 아닌 단발 조준 사격.
매캐한 냄새를 머금은 연막 속에서 사람의 형체가 픽픽 쓰러졌다.
“살려줘요!”
여자아이 하나가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된 얼굴로 기어나와 디에스이라에의 발을 잡고 매달렸다.
디에스이라에가 뒤를 잠시 돌아보았다.
그의 시선이 향하는 방향은 다름 아닌 초초였다.
잠시 초초의 얼굴을 살피던가 싶더니 그는 소녀의 뒤통수에 총구를 겨눴다.
“아, 안 돼! 여자아이는 죽이지 말라고!”
초초가 만류해보지만 디에스이라에의 손가락은 방아쇠를 주저 없이 당겼다.
탕!
총이 불을 뿜었고 소녀의 고개가 꺾였다.
“왜 죽이냐고!!!! 씨발!!!!!”
초초의 입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누군가는 살인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볼 땐 자비가 아니었을까.
아쉬움을 드러내면서도 죽은 소녀의 시체에서 눈을 떼지 않는 초초의 번들거리는 시선을 보면 말이다.
“······.”
이런 놈도 커뮤니티에 있다.
알고는 있지만 알고 싶지 않았던 진실이다.
최루탄의 매캐한 연기가 남은 방공호 안으로 디에스이라에와 그의 동료가 진입했다.
탕! 탕!
두 번의 사격 소리가 더 들려왔다.
“클리어.”
전투는 끝났다.
우리를 조롱하던 이물질은 제거됐다.
“······일단 챙길 거 챙깁시다.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요.”
이 축제의 호스트라 할 수 있는 디에스이라에와 그 동료는 아무것도 챙기지 않았다.
그는 단지 넉넉한 주인처럼 손님들이 즐거워하는 걸 지켜보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눈치였다.
아마 그는 자신에게 모여들 사람들이 더 중요하겠지.
의사, 농부, 엔지니어로 추정되는 사람과 따로 자리를 마련해 이야기를 한 걸 보면.
아마 이 모임의 진정한 목적은 그의 집단에 필요한 인재를 확인하려던 게 아닐까?
콘돔 한 박스와 식량을 잔뜩 안고 가는 사내가 나온 뒤 방공호 안에 들어가 보았다.
발밑에 걸리는 게 있다.
초초다.
그는 입구 옆에 쪼그리고 앉아 식어가는 여자아이의 몸을 더듬고 있었다.
안에 너부러진 시체들이 발에 걸렸지만 굳이 얼굴을 보진 않았다.
딱히 죄의식을 느끼는 건 아니다.
단지 질렸을 뿐이다.
멸망의 구체적인 현실은 이 친구들이 충분히 보여줬으니까.
그들도 그런 현실의 하나로 변해버린 것에 지나지 않으리라.
내 관심은 덩그러니 놓인 노트북에 있었다.
“스켈톤님이라고 하셨죠?”
내게 별 관심이 없던 디에스이라에가 처음으로 내게 관심을 표했다.
“뭔가요? 그것들은?”
다들 식량과 의약품, 옷과 휴지, 콘돔 같은 생존에 직결되는 소모품을 챙길 때 나는 노트북과 위성 장비라는 약간은 불필요한 것들을 챙겼다.
“하나 가지고 있잖아요?”
“그렇긴 하죠.”
“혹시, 자기 글에 좋아요. 달아 주려고?”
디에스이라에가 처음으로 웃음기를 보였다.
“······저 그런 사람 아닙니다.”
바로 정색하며 답했다.
*
새로운 선비가 죽은 지 일주일이 지났다.
디펜더는 연락이 없다.
메시지를 보내봤지만 답장을 하지 않았다.
“······.”
유독 방공호의 공기가 싸늘하게 느껴지는 오후.
게시판에서는 또 다른 기적이 일어났다.
tntn_Orthopedics : 가짜 선비 죽은 거 아니었냐?
Guest3321 : 야, 그 선비 맞는 거 같은데?
두 번 죽은 선비가 다시 돌아왔다!
다만 이번에는 부활 장소가 다르다.
세 번째 선비는 한국어 게시판이 아닌 영어 게시판에 출현해 도배라는 죄악을 범하고 있었다.
SUNBI : KOREAN SUCKS
SUNBI : I HATE KOREANS
SUNBI : KOREAN, PEOPLE OF THE ABYSS
SUNBI : HELL ON EARTH : KOREA
SUNBI : 한국 싫어
SUNBI : today's lunch ;)
...
...
“······.”
즉시 무전기를 켰다.
“스켈톤? 무슨 일?”
천진난만하게 묻는 스우에게 말했다.
“엄마 바꿔봐.”
“스켈톤? 무슨 일이야? 나 바빠.”
한숨을 내쉬고 한마디 했다.
“사정사정해서 장비 구해줬더니 게시판에 뭐 하는 짓이냐······?”
“······.”
영문 게시판에 새로운 글이 올라왔다.
SUNBI : SKELTON 빼고 :)
“······만족?”
“당장 그 글 지우고 닉네임 바꿔라.”
교신을 끊고 품속에서 종이 하나를 꺼냈다.
[ 디펜더 소환권 ]
방 너머에 걸린 동생이 그린 나의 그림을 보며 나는 근 1년 만에 두 손을 모아 기도했다.
그들이 저격수 모녀처럼 살아 있기를.
이 건조한 멸망이 그들을 데려가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