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31화 (31/183)

26. 골드 (1)

어김없이 크리스마스 시즌이 찾아왔다.

최근 익명118에서 Foxgames으로 닉네임을 변경한 전직 게임 개발자가 작년에 이어 트리 꾸며주기 사이트를 개설했다.

남아도는 게 시간인 게시판 유저들이 벌떼처럼 달라붙어 서로의 트리를 꾸며주기 시작했다.

작년과 달리 올해엔 나도 제법 크리스마스 트리에 장식이 달렸다.

<흠, 흠... 이 정도인가?, 낳, 노잼, 흠..., 내년엔 눈치 좀 챙기고 다녀라, 흠흠흠, Defender1, Defender2 >

하하, 우리 게시판 친구들 짓궂기도 하지.

디펜더의 트리에 장식을 달아주었다.

네임드 유저답게 디펜더는 벌써 트리 3그루를 가득 채우고 네 그루째를 받고 있었는데 운 좋게 마지막 자리에 내 닉네임을 막대사탕 장식에 넣어 달 수 있었다.

< KILL, 꽥!, 씨몽키파파 : why?, 씨몽키파파, 메멘토 모리, 스켈톤 친구, DragonC, 본 투 킬, 씨몽키파파다, SKELTON >

바깥엔 3일 전부터 폭설이 내리고 있다.

내 영역과 그 주변부는 하얀 설원으로 변했다.

소복하게 눈이 쌓이니 옆 동네 골프장도 과거의 미모를 되찾은 느낌이다.

날씨가 날씨다 보니 주변엔 사람의 그림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전쟁 이후 부쩍 많아진, 먹이를 찾는 고라니와 멧돼지만이 사람이 떠난 광야를 간간이 누빌 뿐이었다.

모처럼 평화롭고 고즈넉한 하루가 될 예정이었다.

남서쪽에서 격렬한 야생의 울부짖음이 들리기 전까진 말이다.

*

몬스터의 침공은 곰팡이와 비교된다.

균열이라는 확실한 오염원이 주변에 곰팡이를 피게 만들고 그 곰팡이가 갖가지 사악한 병균들을 만들어내고 그 병균이 다시 곰팡이를 까는 식이다.

뮤테이션은 그 곰팡이가 만든 병균 중 하나로 민간인이 만날 수 있는 최악의 적 중 하나다.

종류도 다채롭다.

아프리카에선 사자 뮤테이션이, 인도에선 코끼리 뮤테이션이, 중국에선 판다 뮤테이션이 각각 저마다의 맹위를 떨쳤다고 하는데 진짜 문제가 되는 뮤테이션은 인간이 주로 기르는 가축 출신이다.

닭, 소, 말, 돼지, 양, 염소 등등. 햄스터는 들어보지 못했다.

이중 가장 위협적인 건 조상이 인간을 사냥하던, 뮤테이션 개다.

원판이 늑대 아니랄 까봐 기본적인 전투력이 높고 무리를 짓고 지능도 대단히 높다.

내 영역 남서 쪽에도 뮤테이션 개 무리가 산다.

그 무리의 리더는 온몸의 털이 금빛을 품어 골드라고 불리는 놈으로 대단히 잔인하고 교활한 개다.

아직 대한민국 정부가 그나마 온전할 때 토벌령이 내려졌는데 토벌대가 번번이 빈손으로 돌아올 정도니.

한번은 내 영역에 얼씬거리기도 했는데 최근은 사냥감이 풍부한 남서쪽에 아예 눌러앉아 개 팔자 상 팔자라는 걸 스스로 입증하고 있는 중이다.

그 골드 무리의 영역에서 강렬한 야성의 울림이 경쟁적으로 들려왔다.

뮤테이션 개끼리 싸움이라도 하는 것일까.

원시의 폭력을 품은 으르렁거림은 늦은 오후까지 계속됐다.

“스켈톤도 들려? 이상한 소리 나는 거.”

저격수 모녀에게도 그 소리가 들린 모양이다.

직접 교신을 한 건 스우였다.

“뮤테이션 같은데. 아무튼 몸조심하고 메리 크리스마스.”

“메리 크리스마스. 엄마도 메리 크리스마스래. 그리고 새해쯤에 컴퓨터 쓸 수 있냐고 물어보는데?”

“왜?”

“게시판 사람들이랑 미국 동부 표준 시간으로 카운트다운 하고 싶대.”

“······컴퓨터가 지금 잠깐 이상해져서. 내가 날 잡아서 위성 장비랑 노트북 구해줄 테니 조금만 참으라고 해. 엄마 상처는 괜찮지?”

“응.”

“그래.”

교신을 끝내고 무기를 정비했다.

레베카에게 인터넷 사용료로 몇 가지 무기를 받았다.

대인지뢰 크레이모어와 무반동총 한 정, 7.62mm 기관총 한 정과 탄환 200여발이다.

소화기는 충분하지만 중화력은 부족했던 내겐 가뭄의 단비라고 할까.

숙제도 함께 받아왔는데 그 숙제란 재블린 배터리다.

배터리만 원상복구 해서 쓸 수 있게 만든다면 레베카가 한 기를 내게 내주기로 약속했다.

그 위력은 말할 것도 없다.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전차를 일격에 파괴할 수 있다.

그런 상황이 오지 않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사람의 운명이란 알 수 없는 거 아닌가.

당장 서울엔 휴전이 유지되고 있다고 하는데 언제 또 치고받고 싸울 지 모를 일이기도 하고.

먼지 쌓인 배터리 테스터기와 충전기를 꺼내 어떻게 충전할 것인지 궁리를 하고 있자니 어느덧 해가 지고 있었다.

적당히 세수를 하고 난방 텐트에 들어가 온수 매트를 켜고 잠을 청하려고 할 때였다.

내측 방공호 쪽에 설치한 동작 감응 센서 등이 점멸했다.

“······.”

무언가가 내 영역에 들어왔다.

메인 방공호 안쪽이다.

도청 장치를 켜고 스피커에 귀를 기울였다.

숨을 헐떡이는 소리, 발을 질질 끄는 소리가 선명하게 스피커를 통해 들려왔다.

곧 폐쇄회로 화면이 침입자의 정체를 나에게 흑백 영상으로 보여줬다.

침입자의 정체는 인간이 아니었다.

상처 입고 죽어가는 뮤테이션 개 한 마리가 내 영역으로 발을 끌며 찾아왔다.

다른 무리는 보이지 않는다.

습격을 받기라도 한 것일까.

아무튼 내 영역에 저런 게 있는 건 곤란한 일이다.

빠르게 나서서 치우는 게 상책이겠지.

총기와 도끼, 랜턴 하나를 챙기고 방공호를 나서 침입자를 향해 조심스레 접근했다.

어슴푸레 속에 비틀거리며 경련하는 커다란 것이 보인다.

곧 그것은 내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는데 고개를 돌리는 것조차 힘든 모양인지 옆으로 풀썩 쓰러졌다.

총기를 겨냥한 채 랜턴을 비쳤다.

“?”

개의 모습을 본 순간 적잖이 놀랐다.

내 영역에 찾아온 뮤테이션 개의 정체는 골드. 남서쪽 무리의 지배자다.

그 수많은 토벌도 이겨내고 지역 패자로 군림한 이 녀석이 왜 이런 꼴이 되어 내 영역에 홀로 찾아왔을까.

골드는 바닥에 모로 누운 채 숨을 헐떡이며 눈동자만을 굴려 마치 인간처럼 날 지그시 응시했다.

랜턴으로 몸뚱이를 비추자 훤히 드러난 갈비뼈, 찢겨나간 가죽과 살점, 녀석에게 골드라는 이름을 붙여 준 황금빛의 풍성한 털이 차례로 눈앞에 나타났다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이건 인간의 짓이 아니다.

어웨이큰이 인간을 초월한 강력한 권능으로 무장하고 있다고 하나 이런 식으로 뮤테이션을 물어뜯고 찢어발기는 능력을 가지진 않았다.

이 야만스러운 상처는 동족, 뮤테이션 개에 의한 것이다.

아까 들려온 그 경쟁적인 으르렁거림을 떠올렸다.

무리를 짓는 동물들은 필연적으로 우두머리를 정하려 한다.

동물 세계의 권력은 인간과 같지 않다.

인간은 갖은 편법으로 권력 위에 콘크리트를 덧씌울 수 있겠지만 동물은 늙고 쇠약해지거나 더 강한 놈이 나타나면 죽거나 무리를 떠나야 한다.

이 녀석도 그런 경우인가.

강력한 경쟁자의 도전을 받고 패배해서 여기까지 흘러들어온 것인가.

“······.”

아깝긴 하다.

한 번 날 귀찮게 하긴 했지만 녀석은 남서쪽에서 올라오는 인간, 좀비, 기타 귀찮은 것들을 막아줬다.

철컥

하지만 그것도 이제 끝이겠지.

녀석이 수십 명이나 되는 인간을 죽인 것도 사실이다.

녀석이 캣맘의 고양이처럼 재미로 토벌대를 갖고 놀며 죽인 것도 사실이며 식인으로 배를 채운 것 또한 사실이다.

죽어가는 개가 몸을 일으켰다.

그것은 나를 외면하고 무덤 같은 봉분과 산업 폐기물이 어지러이 널린 내 영역을 지나 비탈길 아래로 향했다.

녀석의 움직임은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다만 이 또한 뮤테이션의 함정일 수도 있기에 주변을 경계하며 골드의 뒤를 따랐다.

골드가 피를 흘리며 비척거리는 걸음걸이로 힘겹게 향한 곳은 버려진 마을로 김노인이 속했던 작은 농촌 공동체였다.

소수의 노인이 이곳에 돌아와 뭔가 해보려 했지만 전기도 기름도 평생을 함께 했던 이웃도 없었다.

주기적으로 스케빈저가 찾아와 빈집을 들쑤시자 그들은 쓸쓸히 발걸음을 옮겼고 마을은 완전한 폐허로 변했다.

골드가 이 버려진 마을을 향해 똑바로 걸어갔다.

녀석의 핏자국을 따라 나조차 잊고 있던 마을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부스럭-

초입부터 어지러이 널린 파편이 밟혔다.

불쾌감과 함께 녀석의 뒤를 따랐다.

처음엔 모든 것이 낯설었다.

밤의 어둠이 시야를 가렸고 한 번의 도약으로 날 물어 죽일 수 있는 괴물이 긴장감을 불러일으켰으니까.

하지만 녀석이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어딘가를 바라보았을 때, 녀석의 우수에 잠긴듯한 눈을 보았을 때 흑백의 풍경은 마치 마술처럼 전쟁 전의 조용하면서도 복작이던 살아 있는 마을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렇다.

이 길은 마을의 중심을 가로지르는 대로였다.

저기에 농협이 있고 건너편에 마트가 있었다.

녀석이 보는 곳은 정육점이 있던 자리였다.

괜찮은 고기를 싸게 많이 팔아 국거리가 맛이 아주 좋았고 페미컨으로 변해버린 내 고기의 상당량을 팔아주었던 그 가게다.

녀석이 입맛을 다시며 다시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녀석의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비척거리던 발걸음이 읍내에서 자주 보던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개들처럼 발발거리는 듯한 경쾌한 움직임처럼 변했다.

다음으로 녀석이 멈춰선 곳은 국밥집이 있던 자리였다.

좋아하는 가게는 아니다.

맛도 평범했고 가격이 싼 것도 아닐뿐더러 무엇보다 주인집 아주머니가 대낮부터 국밥에 소주 한 잔을 걸치는 날 보고 젊은 사람이 일도 안 나가고 허구한 날 술이나 먹는다며 가벼운 타박을 했는데 그게 기분이 나빠 발걸음을 잠시 끊은 곳이다.

시골 특성상 달리 갈 곳이 없어 조용히 다시 다니기 시작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저 녀석에겐 좋은 기억으로만 이루어진 가게인 것처럼 보였다.

삐쭉 내민 혀와 어둠 속에서도 날카로운 이빨 아래 잔뜩 고인 침이 흘러내리는 걸 보면.

그러고 보니 오지랖 넓은 주인아주머니가 남는 뼈가 잔뜩 담긴 그릇을 가게 밖에 종종 내놓곤 했었다.

골드가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이번에 녀석은 마치 사람이 인상을 쓰는 것처럼 으르렁거리며 한 집을 노려보았다.

이장댁이다.

자타공인 김노인의 앙숙으로 개고기를 대단히 좋아했는데 인근 전원주택에서 키우던 품종견을 몰래 도축해 뉴스에도 나올 정도였다.

저 녀석이 저토록 으르렁거리는 걸 보면 아는 개라도 잡아 먹힌 걸까? 아니면 자신이 잡아먹힐 뻔했던 걸까?

골드가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녀석의 발걸음이 눈에 띄게 느려졌다.

뒷다리는 힘이 덜어오지 않는 것처럼 축 늘어졌고 오직 앞다리의 힘만으로 하반신을 질질 끌듯이 앞으로 나아갔다.

녀석은 무너진 돌담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사자만 한 덩치가 밀어대자 위태롭게 버티던 벽이 무너져내리며 벽돌을 와르르 쏟아냈다.

자욱이 퍼지는 흙먼지가 녀석의 모습을 잠시 가렸다.

철컥

지능이 높은 뮤테이션 개는 속임수를 쓸 줄 안다.

먼지가 가라앉길 기다리며 사방의 동향을 주시했다.

거친 숨소리는 줄곧 한 곳에서만 머물고 있었다.

먼지가 걷고 다시 녀석의 모습이 내 앞에 나타났다.

그놈은 폐허가 된 가정집 앞에 둥글게 몸을 만 채 자신의 상처를 핥고 있었다.

힘없이 흔들거리는 꼬리 너머엔 옆으로 기울어진 개집 하나가 곡예를 하듯 아슬아슬 서 있었다.

천천히 돌담 사이를 걸어 들어가 집을 보았다.

이 집. 본 것 같다.

그다지 기억엔 없지만 내가 기억하는 살아 있는 마을 풍경의 구석 자리 정도는 차지하고 있었다.

왜, 지나갈 때마다 개 짖는 소리가 시끄럽게 들려오면 어떤 집 개새끼인지 한 번쯤 쳐다보지 않나.

이 집이었다.

골드가 살던 곳은.

뒤집힌 개집엔 녀석이 불리던 이름이 유성 매직으로 적혀 있었다.

<믹스>

“믹스.”

이름을 부르자 그 녀석이 날 쳐다보았다.

“······골드가 낫네.”

인간은 기억으로 이루어진 배라고들 한다.

그 점에서 저 개는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무심코 하나의 명제와 한 명의 여인이 쌍으로 묶인 것처럼 동시에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뮤테이션은 길들일 수 없다는 학자들의 통설.

가족도 이웃도 없이 홀로 고양이에 의지하여 살아가던 여인.

전혀 접점이 없어 보이는 이 두 가지 생각은 불쌍한 여인이 기적이라는 몽둥이로 굳건한 통설을 산산이 조각내는 것으로 결말을 맺었다.

여기, 또 다른 기적이 일어나려 한다.

녀석이 기이한 박자를 넣은 숨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처음엔 이 녀석이 최후의 숨결을 내쉬는 게 아닌가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인간과 달리 조율된 성대도 없고 음정에 무지한 그 짐승은 투박한 숨결로 인간의 노래를 따라 하고 있었다.

생일 축하 합니다 라는.

“어이.”

녀석을 불렀다.

‘사랑하는~’ 부분에서 녀석이 날 향해 고개를 돌렸다.

“살고 싶냐?”

내 오랜 고질병인 질병과 같은 호기심이 발동했다.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