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26화 (26/183)

22. 잔재 (2)

Kyle_Dos : 평소와 마찬가지로 주변을 순찰하고 있던 중이었어.

후덥지근한 날이었다.

방공호 안은 미칠 듯이 더운 열기와 습기로 가득 차 있었다.

발전기는 있지만 소형에 발전량도 제한적이라 에어컨 같은 사치를 부릴 형편은 아니었다.

북쪽에서 포성이 울려 퍼졌다.

균열에서 또 몬스터가 튀어나온 모양이다.

일전에 초대형종이 나타났을 때는 운이 좋았다.

불과 4km 지점까지 접근했지만 경로를 갑자기 틀었다.

하지만 주변의 식물이 이상한 형태로 변하고 새벽과 저녁경의 햇살이 붉은 빛이 아닌 회백색으로 보이는 건 균열에 무지한 카일도스에게도 섬뜩한 현상으로 느껴졌다.

당시 카일도스의 취미는 채취였다.

수분을 극도로 제거해 벽돌처럼 만든 보존식과 통조림은 얼마든지 있었지만 그런 음식을 오래 먹는 건 정신건강에 좋지 않다.

우울증 대책으로 잼과 설탕 등 달콤한 음식을 준비했지만 달콤한 음식만으로 치료된다면 이 세상에 우울증으로 병원에 가거나 자살하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기분 전환으로 카일도스는 근처 개울가로 갔다.

개울가엔 미처 철거하지 못한 계곡 상인들의 평상이 그 자리에 놓여 세월의 때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적절한 평상에 앉아 카일도스는 군용 단검으로 물속에서 꾸물거리는 커다란 가재를 잡았다.

가재라고 하나 랍스터만 한 크기였는데 회백색 비슷한 불길한 색깔을 띠는 것만 빼면 살도 꽉 차 있고 맛도 썩 괜찮았다.

큰 냄비 하나를 가득 채울 정도로 가재를 잡은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못 보던 꽃들이 피어 있었다.

하나둘이 아닌 수백, 수천 개의 꽃으로 이루어진 회백색의 화원이 운명처럼 그 앞에 펼쳐진 것이다.

오싹할 정도로 질서정연하게 핀 꽃들의 중심에서 카일도스는 회백색과는 전혀 다른 하얗고 빛이 나는 무언가가 누워서 꿈틀거리는 걸 발견했다.

여자다.

전신의 옷이 발가벗겨진 채 누군가에게 심하게 폭행당하고 의식을 잃은 상태였지만 저 형태와 곡선은 틀림없는 여성의 것이다.

카일도스는 그녀를 방공호로 데려와 극진하게 간호했다.

방공호의 열기도 찌는 듯한 습기도 그를 방해하지 못했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걸 소매로 연신 닦아내며 카일도스는 여성의 부러진 팔에 부목을 대고 긁힌 상처에 소독제를 발랐고 주먹으로 맞아 멍든, 그러나 여전히 아름다움이 남은 얼굴에 연고를 조심스러운 손길로 발라주었다.

여성이 정신을 차리는데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곧 정신을 차린 여성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자신의 몸을 덮은 얇은 담요로 몸을 가린 채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안심하세요. 저는 당신의 적이 아닙니다. 여기는 안전합니다. 필요한 게 있으면 뭐든 말씀해주세요.”

그것이 카일도스와 주워온 아내의 첫 만남이었다.

이상의 내용을 담은 드래곤씨의 프롤로그는 뜨거운 호평을 받았다.

익명458 : 캬~ 나한테는 왜 저런 여자 안 떨어지냐?

roka3218 : 아름다운 이야기네요.

익명848 : 부럽다! 카일도스! 내 주변엔 시체만 보이던데.

kimcic : 만화는 잘 보지 않지만 우리들 이야기라 그런지, 저도 모르게 눈물을 훔치고 말았네요.

unicorn18 : 처녀임?

...

...

하지만 모든 사람의 생각이 같을 수는 없다.

부정적인 의견도 소수 있었고 나도 그중 하나라는 건 부정하지 않겠다.

Defender : 걍 판타지네. 판타지. 걍 상태창 띄워

SKELTON : 흠... 그 정돈가?

하필 나와 디펜더가 1초라는 극단적인 짧은 간격으로 연달아 글을 올렸기에 내가 디펜더 패거리라는 혐의가 더욱 짙어졌고 악플 팸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칭호까지 습득했다.

하지만 소수의 사람은 내 진가를 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 카일도스도 스켈톤의 진가를 알아보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그가 내게 메시지를 보내왔다.

Kyle_Dos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스켈톤. 진짜 미안한데 부탁이 있어.

그 부탁이란 이전 부탁의 연장선이다.

또 캡슐이 나타났단다.

그것도 하나가 아닌 둘이나.

좋지 않다.

예상 이상으로 침식이 빠르다.

드래곤씨의 프롤로그에 묘사된 것도 그렇고 식물 자체가 변한다는 건 이미 그 지역이 침식 초기에 들어섰다는 확실한 증거다.

학계에선 침식지대 그 자체는 인간에게 어떠한 악영향이 없다며 그 증거로 침식지대에 근거지를 마련한 만류귀종교의 2억 신도를 든다.

내 생각은 다르다.

침식지대에서 인간은 살아갈 수 없다.

마치 지구에서 소멸하는 몬스터처럼 인간도 중요한 무언가를 잃는다.

뭐랄까, 모든 것이 덧없고 의미가 없어진다고 할까.

그들이 말하는 2억 신도는 어디로 갔을까?

침식지대는 진정으로 위험하다.

카일도스에게 답장을 보냈다.

SKELTON : 네가 사는 그곳. 대단히 위험하다. 캡슐이 문제가 아니야. 빠져나올 수 있으면 빠져 나와라.

Kyle_Dos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어디로 가라고?

잠시 고민했다.

모범답안은 알고 있지만 그 답을 선뜻 내어놓을 수 없었다.

나는 마냥 이타적인 사람이 아니니까.

SKELTON : 거기가 아닌 어디라도. 거기 있으면 확정적인 죽음이다. 직접 가봐서 알아. 네 지역은 이미 침식됐어. 몬스터의 영역이 됐다고.

Kyle_Dos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충고 고맙지만 여기를 떠날 생각은 없어. 아내도 여기에 만족하고 살고 있고. 아니면 네 방공호라도 갈까?

“······.”

Kyle_Dos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말도 안 되지. 이유야 여러 가지지만 내가 뭘 걱정하는지 누구보다 네가 더 잘 알지?

SKELTON : 알 거 같다.

Kyle_Dos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게다가 다시 생각해보니 너보고 오라는 것도 사람이 할 소리 아니네. 당장 아래에서 전쟁통이 벌어지고 있는데. 뭐, 알아서 해볼게.

그것이 우리의 마지막 대화였다.

*

DragonC : 카일도스랑 갑자기 연락이 안 되는데? 카일도스랑 연락 닿는 사람 있어?

카일도스가 사라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내가 느낀 감정은 충격보다는 올 것이 왔다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너무 이른 게 아닌가.

좀 더 시간이 있었을 것이다.

아내가 있지 않았나.

그녀가 뭐라도 한마디 했다면 카일도스는 어떤 수를 쓰서라도 그곳을 빠져 나와 자신과 아내의 새로운 안식처를 만들어냈을 것이다.

어쩌면 안면몰수하고 내게 민폐를 끼치러 왔을 수도 있고.

카일도스의 실종을 두고 게시판에선 갖가지 의견이 올라왔다.

익명848 : 군인들한테 당한 거 아냐? 솔직히 개척자보다 걔들이 더 무섭잖아?

가장 많은 지지를 얻은 건 군인들에게 당했다는 설이다.

확실히 가장 그럴듯한 내용이다.

하지만 그 지역엔 이제 군인이 없을 것이다.

다들 내전을 한답시고 서울로 군대를 돌렸는데.

탈영병이 돌아다닌다면야 가능성이 있겠지만 캡슐이 나타나는 침식지대에 과연 어떤 간 큰 놈이 돌아다닐까?

다른 의견도 있었다.

Defender : 카일도스 마누라 말이야. 솔직히 까놓고 말하면 주운 게 아니라 납치한 거 아니야? 아니, 뭐가 좋다고 예쁜 여자가 별 거지 같은 홀아비 냄새나는 방공호 안에 제 발로 들어간다고. 여자가 다쳤다고 하는데 카일도스가 두들겨 팼을 가능성도 있잖아?

꼬일대로 꼬였지만 나름 진실을 말하는 디펜더의 의견은 많은 비판을 받았지만 나한테는 이것도 제법 가능성 있는 이야기로 보였다.

왜, 게시판에 떠드는 소리가 전부 진짜는 아니니까.

익명이라는 가면을 쓴 인터넷 커뮤니티의 특성상 진실보다 거짓이 더 많을 수밖에 없는 게 사실 아닌가.

나 같은 경우엔 진실을 말해도 허언 취급을 받지만 말이다.

이후에도 카일도스의 운명을 두고 저마다의 의견이 나왔는데 마음에 닿는 건 단 하나도 없었다.

“······후.”

커피를 마시며 나도 나름대로 생각을 보았다.

하지만 의미가 없다는 걸 알기에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카일도스의 운명을 알기 위해서는 직접 가서 확인하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체증과 같은 의문이 서서히 잦아들 무렵이었다.

내전이 중지됐다.

느닷없이 시작된 것처럼 느닷없이 그만둔 것이다.

단파 라디오가 잠시 휴전에 들어간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잡다한 휴전 사유 중엔 피난민을 위한 인도적 통로 개설 건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그 소식을 듣는 순간 나는 운명의 부름을 감지했다.

이건 가야만 한다.

*

새벽 3시에 방공호를 나와 단파 방송에서 안내하는 가장 가까운 피난민 캠프로 향했다.

피난민에겐 아무런 볼 일이 없다.

내가 찾는 건 군인, 그것도 권한이 있는 장교다.

“대단히 죄송합니다만, 파주 쪽에 부모님이 계셔서요. 내전이 일어나고 소식이 끊겨서 걱정이 되서 찾아가려고 합니다.”

그들의 마음을 움직인 건 나의 구구절절한 사연이 아닌 담배다.

“통행증입니다. 이 루트로 가세요. 다른 루트로 갔을 때 안전은 보장 못 합니다. 특히 서울 쪽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진입하지 마세요. 휴전이라고 하는데 여전히 살벌하게 대치 중이니까요.”

그들의 충고대로 안양을 거쳐 인천에 진입했다.

군대가 장악한 영역이다 보니 치안은 의외로 좋았고 도로의 상태도 말끔했다.

전쟁이 시작된 후 인천을 간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예전의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고 대신 엄청난 규모의 피난민 캠프가 곳곳을 차지하고 있었다.

거리에선 정체불명의 꿀꿀이죽을 팔고 있었다.

냄새만 맡아도 구역질을 느껴 먹지 않았지만 대신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며 몇 가지 소소한 정보를 얻었다.

곧 제주도로 향할 피난 선단이 출발한단다.

무려 수십만 명 규모의 초대규모 선단이 말이다.

“일종의 복수인 게지.”

내게 소식을 전해준 노인이 바닥에 침을 뱉었다.

꿀꿀이죽 안에 이물질이 들어있었던 모양이다.

“지들끼리 잘 먹고 잘살겠다고 제주도로 먼저 튀어버린 개새끼들한테 사람 폭탄을 먹이는 거야. 설마 같은 국민을 가라앉히기야 하겠어?”

곧장 파주 쪽으로 향했다.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카일도스의 위치는 한 번 간 적이 있는지라 어렵지 않게 찾아갔다.

방공호로 이어지는 비포장도로의 초입에서 자전거를 멈춘 채 회백색으로 변해버린 대지를 한동안 응시했다.

풀과 나무를 보았다.

나무의 표면은 쪼그라든 것처럼 말라붙었고 가지는 끝없이 말려 들어가는 모양새로 구부러졌고 뿌리 쪽엔 갯지렁이를 연상케 하는 불그무레한, 혐오스러운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나 있었다.

침식은 내가 예상한 것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마스크를 꺼내 코와 입을 틀어막았다.

학자들은 침식지대의 공기가 무해하다고 주장하지만 어디까지나 내 경험이다.

이곳의 공기는 확실하게 해롭다.

회백색의 은은한 안개를 뚫고 카일도스의 방공호를 발견했다.

그 방공호는 공장에서 찍어낸 일체형 매립식 방공호로 보였는데 이런 싸구려가 그렇듯 사다리를 통해 드나드는 구조다.

해치는 열려 있었다.

총과 도끼를 준비하며 동정을 살폈다.

방공호 안에선 어떤 생명의 징후도 느껴지지 않았다.

대신 썩어가는 시체의 냄새가 마스크마저 뚫을 정도로 강한 농도로 풍기고 있었다.

랜턴을 켜고 안으로 들어갔다.

전등 전원으로 보이는 게 있어 눌러보았더니 놀랍게도 불이 켜졌다.

불이 켜진 순간 내 시야를 채운 건 수영복을 입은 수십 명의 여인이었다.

방공호 벽 거의 전체를 여성의 사진으로 도배하고 있었다.

그중엔 가슴을 드러낸 외설적인 사진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많은 아름다운 여성으로도 방공호의 비좁음을 가려줄 순 없었다.

침대 위엔 시체 한 구가 목을 맨 채 썩어가고 있었다.

부패가 심해 제대로 알아볼 수 없었지만 걸친 옷이나 구더기와 진물과 함께 굳어버린 긴 머리카락, 뼈의 형태는 그 주인이 방공호 벽면을 빼곡 채운 여자들과 같은 성별이라는 걸 말해주고 있었다.

죽은 시점은 최근으로 보였는데 약탈자가 드나든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식량도 노트북도, 위성장비도 건재하다.

식량은 1년 치 정도 남았을까?

특히 의약품의 풍성한 구성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노트북을 열어보았다.

노트북은 휴면모드에 들어가 있었으나 내 손길이 닿자 전등처럼 마술처럼 기동하며 전 주인이 하려던 작업을 고스란히 내게 보여줬다.

그것은 게시판이었다.

카일도스는 메시지를 쓰고 있었다.

- 아내랑 꽃밭으로 갈 거야. 아내와 만난 그곳으로. 거기서 생각을 좀 가다듬고 다음 이야기 해줄게. 조금만 기다려봐. 재촉하지 말고.

수신자는 드래곤씨.

아마 웹툰의 다음 플롯을 이야기하려고 한 것일까.

시체를 끌어내 치우면서 주변을 돌아보았다.

두 구의 시체를 발견했다.

부패가 여성보다 훨씬 심해 정확한 사인을 밝혀내기 어려웠지만 둘 다 남성이었고 뒤에서 총을 맞고 죽은 모양새였다.

“······.”

계속해서 주변을 돌아보았다.

예전에 캡슐이 있던 자리엔 새로운 캡슐이 있었고 그 뒤에 종양이 난 것처럼 또 다른 녀석이 태연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운반은 무리다.

내 자전거에 싣기엔 너무나 크고 무겁다.

방공호에서 가치 있는 물건, 특히 진통제를 중점적으로 챙길 수 있는 모든 걸 전부 챙긴 후 해치를 닫고 흙과 낙엽으로 덮고 주변에 나무에 표식을 새겨 두었다.

그대로 자리를 떠나려고 했지만 무심코 카일도스가 드래곤씨에게 보내려고 했던 마지막 글이 떠올랐다.

꽃밭으로 간다고 했던가.

한 번 찾아보았다.

그가 말한 꽃밭은 어디에도 없었다.

웹툰에 나온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 봤지만 허사였다.

계절상 다 시들어 죽을 시기기도 하거니와 숲이 너무 성기어 꽃밭 같은 게 자리 잡을 여지조차 없어 보였다.

포기를 하고 돌아서려는 찰나였다.

하나의 가정이 꿈에서 본 것처럼 눈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카일도스는 자신이 아내를 발견했고 구조했고 천천히 친해지며 부부의 연을 맺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이 거짓이라면?

그가 말한 이야기에 사실과 다른 왜곡이 섞여 있었다면 어떠할까?

그렇다면 몇 가지 가능성을 고려할 수 있으리라.

첫 번째는 처음부터 여성이 죽어있었을 가능성이다.

심하게 폭행 당해 정신을 잃었다는 여성은 발견 시점에 이미 죽어있었다.

카일도스가 그 시체를 아지트로 데리고 왔고 일어나지 않을 시체의 상처를 꿰매고 말을 걸고 사랑을 고백하고 같은 침대에서 지냈다.

그러다 시체가 부패하자 화장을 하고 일으켜 밧줄로 일으켜 세우기까지 했지만 결국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카일도스는 방공호를 떠나 사라진 것이다.

두 번째 가능성은 보다 끔찍하다.

카일도스는 순찰 중에 우연히 묘령의 젊은 여인이 섞인 생존자 그룹을 발견했다.

그냥 보내려고 했지만 카일도스는 여성의 미모를 보고 억누르고 있던 본능에 눈을 떴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여성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죽어 있었고 카일도스는 여성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폭력과 회유로 얼룩진 신혼은 여성의 자살로 끝이 났고 그제야 카일도스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방공호를 떠나 어디론가 사라졌다.

마지막 가능성은 – 이것이 진실이길 바란다 – 여성을 포함한 모든 것이 카일도스가 꾸며낸 허구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즉, 처음부터 여성은 존재하지 않았고 여성을 방공호에 데리고 온 적도 없었다.

오랫동안 이 비좁고 이계의 광기가 스며드는 좁은 골방 안에서 그는 외로움을 견디다 못해 상상이라는 그물로 짠 이상의 여인을 만들었고 그녀와 함께 그가 바라던 이상적인 사랑에 도달했다.

꿈과 현실이 뒤섞인 몽롱함 속에서 카일도스는 아내와 함께 방공호를 나서서 데이트를 했고 그 후 아무 연관이 없는 여인이 찾아와 방공호 안에서 목을 매고 죽었다.

아마 이것이 이야기의 전말이리라.

나는 보고 있다.

마지막에 카일도스가 그의 아내와 함께 가려고 했던 꽃밭을.

그것은 수천 개의 캡슐로 이루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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