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24화 (24/183)

21. 믿음

믿음이란 건 신의 전유물만은 아니다.

여러 가지 믿음이 있다.

연인 간의 사랑에 대한 믿음이라던가, 승승장구 하는 사업가가 으레 가지는 자신의 운에 대한 믿음, 어떤 스포츠 감독이 부진한 선수를 고집 있게 기용하는 믿음 등등.

과거 땅을 보러 다닐 때 잠깐 가입한 부동산 카페에서 비슷한 믿음을 목격한 적이 있다.

아마도 집 한 채가 전 재산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쓴 글로 흐릿한 기억에 더듬어 옮겨적자면,

부동산은 무조건 우상향~ 전쟁이 나도, 미사일이 떨어져도, 나라가 망해도 우상향~

이런 느낌이었던 거 같다.

대체로 동의하는 바이나 전쟁 같은 극한 상황에서까지 부동산이 우상향 할 것 같진 않다.

우리 커뮤니티에도 비슷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 있다.

mmmmmmmmm : (속보) 미국 국가 정상화 선언!

mmmmmmmmm : (찌라시) 이천-여주 식량 벨트 최적화

mmmmmmmmm : 부산에 화물선 들어왔단다!

하루가 멀다하고 미친 소리를 늘어놓는 이 친구, m9가 처음부터 내일에 관한 광신을 가진 건 아니었다.

그는 게시판 기준으로 지극히 정상적인 사고와 표준적인 가치관을 지닌 평범한 유저였다.

m9가 변하기 시작한 건 “더 호프”라는 최신식 아파트에 당첨이 된 이후다.

그때까지 평범한 유저 중 하나였던 m9는 갑자기 표변해 그가 선택했던 삶의 방식을 매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우리 비바! 아포칼립스! 한국어 게시판 유저들은 그리 녹록한 사람들이 아니다.

달리 할 게 없어 종일 게시판에 접속해 활동하다 보니 이상한 친구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잘 알고 있다.

우리가 선택한 방법은 무대응이다.

굳이 말을 섞거나 논쟁을 할 필요 없이 집단으로 무시함으로서 사회적 제재를 가하는 것이다.

이 게시판 최대의 목적이 소통이라는 걸 감안하면 집단 무시는 사형선고에 버금가는 중형이다.

그런데 이건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나도 조금 위험하다······.

SKELTON : 아침밥으로 뭐가 낞을까요?

긍지와도 같은 존내논식 머리글마저 빼버리고 댓글이 달릴 만 한 글을 엄선해서 작성했지만 아무도 댓글을 달아주지 않았다.

원인은 인간사냥꾼이다.

전에 그 녀석들이 올린 스켈톤 좋아! 라는 도배글이 내 얼마 안 되는 평판을 나락으로 처박은 것이다.

내게 우호감을 가진 한 유저가 내게 그 사실을 메시지로 알려줬다.

Kyle_Dos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너 진짜 디펜더랑 친한 거냐? 디펜더 여기서 어떤 이미지인줄은 알지?

알고 있다.

모두가 싫어하지만 녀석의 글이 다른 유저와 차별화되고 볼거리가 많다 보니 그냥 놔두는 필요악 그 자체다.

그런 이상한 놈이 내게 치근덕거리니 내 이미지가 나락 가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지.

실제로 게시판에서 나는 이미 “디펜더 친목 패밀리”의 어엿한 구성원 하나로 취급받고 있다.

하지만 역전이 불가능한 건 아니다.

롤 모델은 앞서 이야기한 m9다.

집단무시형이라는 사회적 사형을 당한 m9가 오랜 침묵을 깨고 갑자기 주목의 유저로 급부상했다.

어찌나 기세가 뜨거운지 그를 차단했던 유저들이 차단을 풀고 그의 글을 검색할 정도였다.

단초를 제공한 건 m9가 최근에 올린 게시글에서 비롯된다.

mmmmmmmmm : “더 호프” 임장

게시글엔 아무 설명도 없이 저화질로 녹화한 동영상 3편이 첨부되어 있었다.

첫 영상에서 m9는 셀카봉을 들고 방공호에서 나와 서울로 가는 여정을 생략이 많은 편집을 곁들여 보여줬다.

화면에 비친 m9의 얼굴은 나보다 나이가 들어 보였는데 방공호 안엔 어째서인지 개를 두 마리나 키우고 있었다.

웰시코기? 프렌치불독? 아마 그런 종이리라.

“자, 여기가 내 아지트와 서울을 이어지는 도로. 보다시피 아주 안전해! 군인 아저씨들이 늘 지켜주거든? 약탈자? 그런 건 없었어. 하지만 치안 좋으면 뭐해. 방공호 안에 있으면 몸이 썩는걸?”

이제야 개척자로 북적거리기 시작한 내 영역과 달리 m9의 방공호 주변엔 꼬리에 꼬리를 문 병사와 장갑차가 도로를 따라 질서정연하게 행군하고 있었다.

어째서인지 군대는 전선이 아닌 서울 쪽으로 향하고 있었는데 m9에겐 그런 건 아무래도 좋은 모양이었다.

“지금부터 나의 새로운 아파트를 공개한다! 안티들! 눈 뜨고 보라고! 니들은 이제 죽었다 깨어나도 못 가질 집이니까!”

그동안 당한 게 많았는지 m9는 카메라를 향해 길고 긴 울분을 시원하게 토해냈다.

그런데 이 인간.

“특히 스켈톤 이 새끼! 너 이 새끼야. 뭐? 절대 건설이 안 될 거라고? 뭐? 지인 발 오피셜? 하! 진짜 사람이 어찌 그렇냐? 그냥 욕을 하세요. 음습하게 사람 희망 건드리지 말고!”

왜 유독 나한테만 지랄병이지?

아무튼, 동영상을 통해 더 호프의 현재 상황을 알 수 있었다.

시대가 시대다 보니 나라에서는 단지 전체가 아니라 시범 동 하나를 빠르게 건설했는데 시범 동을 대상으로 입주민을 받아 주거 환경 등을 테스트하며 거기서 얻은 데이터로 나머지 단지를 조성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m9는 그 시범 동에 입주하는 테스트 세대 중 하나란다.

그런데 뭔가 껄끄럽다.

아무리 아파트 1채라고 해도 짓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리지 않나.

땅 고르기만 해도 1년은 족히 넘어 걸릴 건데.

대체 어떻게 공사 기간을 단축한 걸까?

그 답은 m9의 영상에 있었다.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와······.”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저 아파트, 기울었다.

이탈리아에 피사의 사탑이 있다면 한국엔 더 호프가 있다는 걸 과시라도 하려는 양 보는 사람이 공포를 느낄 정도로 심각한 각도로 기울어져 있다.

그런데 m9의 눈엔 그딴 건 보이지도 않는 모양이다.

“자, 그럼 나의 스위트 홈을 공개한다. 곰팡이 피는 방공호는 이제 그만!”

그나마 안은 그럭저럭 꾸며놓긴 했다.

빌트인 장식장과 붙박이장, 욕조를 갖춘 화장실, 보일러, 물이 잘 내려가는 좌변기, 싱크대와 냉장고, 세탁기 살림의 친구들.

하지만 구색만 갖췄을 뿐이지 실제로 화면에 비친 아파트의 내부는 하자투성이였다.

벽지는 딱풀로 붙였는지 붙다 떨어져서 너덜거리질 않나, 화장실 벽면엔 금이 쩍쩍 가 있고, 빌트인 냉장고는 전원이 켜지지도 않았고 수도에선 물도 나오지 않았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m9가 펜을 떨어뜨렸을 때 그 펜이 거실 바닥을 타고 아래로 완만하게 굴러가는 장면이었다.

커뮤니티의 반응은 물음표 그 자체였다.

익명848 : ?

Kyle_Dos : ?

익명: 458 : ?

DragonC : ?

unicorn18 : ?

Defender : ?

Surivival_KING : ?

SKELTON : 오잉?!

익명118 : ?

...

...

그야말로 부실공사다.

복권에 당첨된 사람들이 현실을 깨닫고 불만을 터뜨리니 언 발에 오줌 누기로 엉터리로 올리고 본 것이다

실제 서울에 근거지를 둔 기자 양반이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왔다.

gijayangban : (페일넷 펌) 더 호프 시범 세대는 추첨이 아니라 신청. 2천 명 정도가 갔는데 아파트 기울어진 거 보고 발길 돌려 나옴. 실제 안전진단 결과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폐급인데 윗선에서 컷해서 주거 가능 등급으로 판정. 현재 서울 시민들 더 호프 언제 무너질 지로 내기하는 중.

기자 양반이 주로 이용하는 페일넷은 우리 비바! 아포칼립스!와 달리 유무선 인터넷망을 이용하는 커뮤니티로 접속이 대단히 불안정하고 서버조차 수시로 터지지만 오픈 인터넷답게 압도적인 이용자 수를 가지고 있는지라 정보의 신뢰도와 방대함은 우리와 비교할 바가 아니다.

일전에 제풍호 회장의 마지막 사진도 페일넷에서 가지고 온 것이었다.

그만큼 낭설도 많지만 기자 양반은 가짜와 진짜를 추려내는 안목이 있었고 그 능력으로 이른 시일 안에 네임드가 된 우량 유저다.

그 기자 양반의 말에 커뮤니티 유저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거렸지만 단 한 명만이 핏대를 세우며 부정했다.

mmmmmmmmm : 소설 잘 읽었구여~ 보아하니 서울이라고도 하기 민망한 외곽에 사는 거 같은데 아는 체하지 마시고 갈 길 가세여~

처절한 비아냥에도 불구하고 m9는 인기 유저가 되었다.

사람들은 궁금해 했다.

언제 m9의 아파트가 무너질 것인가?

언제부터 m9가 게시판에서 사라질 것인가?

그날 이후 m9의 글엔 글마다 평균 1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내용은 대동소이했다.

익명118 : 형님, 괜찮으시죠?

unicorn18 : 오늘은 집 안 흔들리셨어요?

익명458 : 우르르 쾅쾅!

익명848 : 넘어간다~

...

...

본인이 유도한 결과는 아니겠지만 차단 필수 유저였던 m9가 많은 댓글을 받는 걸 보고 나는 강한 자극을 받았다.

차단을 많이 당해도 재미만 있다면 다른 친구들이 차단을 풀어 줄 거라는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내겐 괜찮은 소재가 있다.

바로 전부터 계획한 위장 하우스 건설이다.

계획 자체는 간단했다.

예전에 쓰던 컨테이너 하우스를 무너진 방공호 자리에 올려 적당히 손을 보기만 하면 된다.

오랜만에 지게차를 꺼내 컨테이너를 옮겨 그럭저럭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으로 만든 후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SKELTON : “더 페이크” 임장

제목이 직관적이지 않아 조회 수가 저조한 것 같아 제목을 달리 하여 다시 올렸다.

SKELTON : “스켈톤 세컨드 콘도미니움” 임장

제목이 문제는 아니었다.

많은 유저가 내 글을 보기만 하고 그냥 사라졌다.

나중에 디펜더, 아마 동생으로 추정되는 녀석이 정확한 이유를 말해줬다.

Defender : 거지 같은 집이네. 방공호 놔두고 이런 데서 살려고? 그렇게 사정이 안 좋아?

집 자체의 퀄리티가 문제였던 모양이다.

위장 하우스라 대충 손만 봤는데 나한텐 위장 하우스지만 다른 유저가 그 사실을 알 리 없으니.

거지 같은 집구석 뚝딱거리는 거 누가 좋아 하겠나.

고객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한 나의 패착이다.

그건 그렇고 이 녀석, 왜 이렇게 달라붙지?

Defender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디펜더 부끄) 우리 합칠까???

아무튼, m9는 그 이후로도 승승장구했다.

특히 그가 방공호를 떠나 군대의 호위(?)를 받으며 더 호프에 입주하는 날엔 무려 122개 달하는 댓글을 받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어느 정도냐면 외국 게시판에서 활동하는 양키들이 와서 무슨 일이냐고 물어볼 정도.

세상만사가 그러하듯 m9라는 가십은 빠르게 소모되고 빠르게 잊혔다.

더 큰 문제가 m9라는 작은 사건을 가볍게 묻어버린 것이다.

단서는 m9가 찍은 영상에 이미 나와 있었다.

서울로 줄지어 행군하는 군대.

그들은 전선을 지키던 군대였다.

동부 전선을 지키는 군대가 집단으로 항명을 일으키고 부대를 돌려 서울로 “진군”한 것이다.

그들의 명분은 사실과 맞닿아 있었다.

“국민 여러분. 대한민국 정부는 지금 여러분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각료는 모든 장비와 고급 인력, 특히 헌터들을 모조리 빼내 제주도로 옮겼습니다. 우리들을 버린 겁니다.”

서울로 진입한 건 하나의 군대가 아니었다.

서쪽에서 또 다른 군대가 서울에 진입했다.

그들의 명분도 일리가 있었다.

“대한민국 군대의 소임은 국토와 국민의 수호지, 정치는 대한민국의 얼룩진 헌정사가 말해주듯, 군인이 손대서도, 넘봐서도 안 될 영역입니다. 저 임명수는 대한민국 국민과 국회, 대한민국의 헌법을 지키기 위해 모든 위협으로부터 서울을 수호할 것입니다.”

두 군대가 서울 안에서 대치했다.

이미 남과 북으로 갈린 나라의 수도가 동과 서로 갈렸다.

같은 군복을 입은 군인들이 길목에서 대치하고 방벽을 쌓고 전투 물자를 준비했다.

국회의 지지를 받는 군대와 군단의 지지를 받는 군대는 요구 사항을 놓고 협상에 들어갔지만 그 협상이 잘 타결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았다.

서울에 살며 갖가지 사건을 직접 경험했던 기자 양반이 처음으로 절망적인 심경을 토로했다.

gijayangban : 서울을 택한 건 실수였을지도.

그 시점에서 김다람에게 연락을 취해보았다.

김다람은 내 연락을 받지 않았다.

이전에 내 영역을 가로지르는 수송기에 타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다른 사정이 생겨 연락을 받지 못한 것일까.

김다람의 회신이 점점 지연되는 동안 게시판을 잠시 말없이 읽어나갔다.

눈에 띄는 작성자가 보였다.

mmmmmmmmm : 군대가 온 건 호재야.

m9다.

간만에 그의 글을 검색해보았다.

mmmmmmmmm : (인 서울 데스크) 내전이 안 일어나는 이유.txt

mmmmmmmmm : “더 호프”는 안 건드려. 왜냐? 장군님들 살 동네니까!

mmmmmmmmm : (협상 타결 임박) 장군 아파트! 더 호프!

mmmmmmmmm : 협상 끝나면 우리 동네 떡상하겠네~

모두가 파국을 예감할 때도 그는 믿음의 찬가를 부르고 있었다.

m9가 날 차단한 건 알고 있지만 안타까운 마음에 메시지를 보내보았다.

SKELTON : 너 진짜 위험한 거 알지?

답장을 기대하진 않았다.

그런데 답장이 왔다.

그것도 바로!

mmmmmmmmm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알아. 그런데 나보고 어쩌라고?

반전.

m9는 날 차단하지 않았다.

게다가 그는 자신의 선택이 잘못됐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m9는 마치 나를 오랫동안 기다려온 듯 스스럼없이 메시지를 보내왔다.

mmmmmmmmm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그래. 스켈톤. 디펜더 친구. 넌 사람은 안 죽이지?

SKELTON : 그런 사람과 같은 취급 하지 마라.

mmmmmmmmm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스켈톤 너 자꾸 나한테 관심 주는데, 야. 너 너네 방공호 가도 되냐? 응? 강아지 두 마리 키우는데 같이 가도 돼? 뭐하면 잡아먹어도 되고.

SKELTON : 차단

*

전쟁이 시작된 지 2년하고도 1개월이 지난 어느 날.

여전히 김다람에겐 연락이 없다.

서울에선 내전이 일어났다.

같은 군복을 입고 같은 언어를 쓰는 두 군대가 서로에게 총을 겨누고 분노의 불길을 뿌렸다.

일주일 동안 지속된 내전은 서울 대부분을 불길에 휩싸이게 하고 수백만 명의 피난민을 만들어냈다.

그 지옥도 속에서 찍은 한 사진이 게시판에 올라왔다.

그 사진은 하늘이 불타는 듯한 노을과 실제로 불타는 폐허를 배경으로 외로이 선 아파트를 담고 있었다.

그것은 내가 아는 아파트다.

더 호프.

희망의 상징.

그리고 한 사내의 믿음.

단 한 세대만이 입주한 최신식 아파트는 지금 이 순간에도 서울 한 구석에 비스듬히 선 채 희망의 랜드마크로 기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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