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20화 (20/183)

18. 낙원

내 방공호는 단순한 피난처가 아니다.

세상이 멸망해도 과거의 생활을 유지하게끔 세심하게 설계되고 막대한 자원을 들여 만든 요새다.

일부 재벌의 성채엔 못 미치겠지만 필요한 모든 것을 과할 정도로 준비했다.

음식과 연료, 생필품과 의약품, 갖가지 장비와 나조차 용도를 알지 못하는 잡용품까지 없는 게 없을 정도로 준비했다.

부족하던 총기와 탄약마저 갖춘 지금 내 성채는 완전무결하다.

그 성채는 나만을 위한 곳이다.

설계 단계부터 나 이외에 다른 사람을 받아들인다는 요소는 단 하나도 고려하지 않았다.

당장 변기만 해도 개방형에 방공호 주거층 정 중앙에 자리를 잡고 있다.

배관의 최적화 등 설계상 편의를 고려하다 보니 위치가 이렇게 됐는데 공동생활을 한다면 볼일을 볼 때마다 노출쇼를 해야 한다는 소리다.

비축분도 마찬가지.

나 혼자라면 풍족하게 살 수 있는 분량이지만 타인과 나눈다면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

내 방공호는 나만의 낙원이다.

“거기로 가야 할지도 모르겠어.”

그 낙원에 침입하려 하는 이가 있다.

잘 아는 사람이다.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받아들이고도 남을 인연이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혼자가 아니다.

“······3명이나?”

너무 많다.

한 명도 버거운데 두 명을 더 데리고 오라니.

그것도 나하고 아무 접점이 없는 사람들을.

누구인지는 대충 예상이 간다.

김다람의 남편과 그 아들일 것이다.

나하고 관계없는 사람이다.

그녀의 남편은 결혼식 때 악수를 교환한 게 전부고 그녀의 아들은 이름만 동탁이라는 것만 알지 실제로 만나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미안 선배. 너무 갑작스러운 이야기라 놀랐지?”

김다람은 내가 만난 수많은 군상 중 손에 꼽을 정도로 괜찮은 녀석이었다.

무엇보다 긍정적이 마음에 들었다.

그 아무리 절박하고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웃음과 희망을 잃지 않는 녀석이었다.

한 남자의 아내가 되고 한 아이의 어머니가 되고 한 집단의 고위직에 오른 현재에 당시의 모습은 많이 희석됐지만 내가 처음 만난 김다람은 그렇지 않았다.

어색한 정적이 나를 과거로 데리고 갔다.

팀장을 맡아 헌팅 팀을 이끌던 시기였다.

당시의 나는 환영받는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기피의 대상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과거의 박규는 날이 바짝 서 있었고 타협을 몰랐고 자신과 타인 모두에게 가혹했으니까.

그 지독한 성격 탓에 동기들이 먼저 떨어져 나갔고 선배들도 학을 떼며 멀리했다. 후배들은 소문을 듣고 접근조차 하지 않았다.

“너, 내 팀에서 나가라. 내 팀에 머뭇거리며 불구경하는 놈은 필요 없다.”

팀원에게도 공포의 대상이었다.

“재능 없는 인간이 들어와 연예인질하라고 만든 판이 아니다. 따라올 수 없으면 그만둬. 너 때문에 죽고 싶지 않다.”

늘 모진 말을 쏟아냈고 내 기준에 맞지 않는 팀원을 한계까지 몰아세웠다.

그 결과 팀장 부임 첫해에 당해년도 킬 스코어 최상위 팀을 만들었지만 내 팀에 관심 가지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나가는 마당에 악담하긴 싫은데요. 선배 지긋지긋합니다.”

“왜 자신의 기준에 모든 걸 맞춰 이야기해? 모든 사람이 다 같을 순 없는데. 여기가 그런 일률성을 요구하는 곳이라고 해도 개인차라는 건 있잖아?”

“다시는 보지 맙시다.”

이미 있던 사람도 나가는 판국에 누가 그 팀에 오려 했을까.

아, 관심을 가지는 친구가 하나 있긴 했다.

“하하하! 또 2등이네! 또 2등이야!”

이제는 해탈한 이상훈이 너털웃음을 터뜨리더니 내게 다가왔다.

“하지만 내년엔 다르겠지. 프로페서.”

예나 지금이나 여자 좋아하는 이상훈은 그날 연말 파티에도 못 보던 여자를 데리고 왔었다.

“해가 바뀌면 네 실력이 늘어나기라도 하는 거냐?”

나는 고의를 담아 이상훈의 왼쪽 팔을 감은 깁스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그건 아니지만 말이야. 너. 팀원 구할 수나 있냐?”

“······.”

“이미 소문 쫙 퍼졌어. 프로페서 밑에 있으면 몬스터한테 죽기 전에 화병으로 먼저 죽는다는.”

“몬스터에게 안 당해봤으니 하는 소리겠지.”

“자, 너는 지금 배가 아주 고파. 식당은 두 개야. 하나는 음식은 잘하지만 서비스가 개판이고 다른 하나는 음식은 그럭저럭인데 서비스가 좋아. 너라면 어디서 밥을 먹겠냐?”

“후자.”

“너도 알고 있네.”

“식당하고 전장하고 같냐?”

당시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내가 몬스터에 대한 증오에 젖어 있었기에 남들도 다 그러하리라 생각했다.

솔직하게 나는 나 같은 사람이 상관이나 동료로 있다고 해도 상관하지 않았다.

몬스터만 죽일 수 있다면, 내 모든 걸 앗아간 그것들을 내 손으로 죽일 수만 있다면 어떤 차갑고 모진 대접도 감수할 용의가 있었다.

현실만큼 담백한 결과는 없다.

엉터리 무당의 저주처럼 들렸던 이상훈의 말이 그대로 실현됐다.

가장 좋은 실적을 기록해도, 팀장이 가장 위험한 일을 떠안아도 내 팀에 오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른 팀에 팀원으로 전입을 신청했지만 그조차도 쉽지 않았다. 아무도 나를 받아주지 않았다.

팀장인 내가 문제가 아니었다.

인간 박규 그 자체가 모두에게 기피의 대상이 된 것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동료들이 하나둘 중국으로 떠나는 걸 보며 나는 진한 실의에 빠져 들었다. 술을 처음으로 마셔 본 건 아마 그즈음이었을 것이다.

그때 한 녀석이 나타났다.

한 학년 후배로 전장에서 큰 부상을 입고 꽤 오랫동안 병상이 누워 있던 친구였다.

얼굴만 어렴풋이 아는 사이라 멀뚱멀뚱 보고 있자니 그 녀석이 활짝 웃으며 먼저 자신을 소개했다.

“김다람이에요. 다람.”

“······설치류?”

“···하하.”

맥락 없는 개드립도 어쩌면 내가 인기 없던 이유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김다람은 다른 사람보다는 너그러웠다.

“다들 선배님이 재미없고 무섭다고 하는데 전 괜찮아요. 나름 계산을 해봤는데요. 다른 건 몰라도 선배님과 함께 있으면 죽을 확률은 가장 낮더라고요?”

그것이 김다람과의 제대로 된 첫 만남이었다.

시간은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삭막한 적막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무슨 일이야?”

내가 먼저 길었던 적막을 깼다.

“국위원의 높으신 분이 왜 갑자기 누추한 곳에 오려는 거지?”

“상황이 안 좋아.”

김다람이 짙은 한숨을 토해냈다.

“양상길 그 인간이 제주도엔 능력 없는 인간은 필요 없다지 뭐야.”

“양상길······.”

국위원 위원장의 이름이다.

헌터도 아니고 군인도 아닌 순수 관료 출신으로 단 한 번도 전장에 선 적이 없지만 헌터 조직이 정부 기관에 편입된 때부터 행정을 도맡아 온 사람이다.

확실히 능력은 탁월하다.

그와 비슷한 위치에 있던 비 헌터 출신이 다 갈려 나가는데도 자리를 보전한 것도 모자라 위원장으로 영전까지 하는 걸 보면 말이다.

“양상길 그 인간이 회의에서 이런 말을 하더라고. 올드스쿨은 남아야 하지 않겠냐고.”

올드스쿨은 나 같은 구 시대의 헌터를 말한다.

인류가 아직 몬스터적인 이능을 모르던 시대, 오로지 자신의 기술과 감각, 배짱과 각오만으로 싸워야 했던 투박한 시대의 사냥꾼이다.

그와 구분되는 것이 개안, 돈오, 각성 등 다채롭게 표현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정신적인 에너지, 사이킥 능력을 구사할 수 있는 새로운 헌터다.

그들은 처음에 뉴 키즈라 불렸는데 현재는 어웨이큰이라 불린다.

김다람과 이상훈은 나와 같은 올드스쿨이다.

최초의 어웨이큰이 나타나고 그들을 통해 어웨이큰을 양산하는 방법이 발견되면서 점차 우리 올드스쿨은 빠르게 전장에서 도태됐다.

들인 비용에 비해 효율은 평범했고 사망률도 극도로 높았으니 당연한 결과일지도.

전장에서 필요가 없어진 그들은 군복을 벗고 정장을 입어야 했다.

뭐, 그들 정도면 잘 풀린 케이스다.

대부분의 올드스쿨은 옷을 벗거나 구형 헌터라는 2등의 삶을 살아야 했으니.

백승현처럼 다른 길로 갔다가 어쩔 수 없이 돌아와 열 살 가까이 차이나는 후배에게 아저씨 소리 들으며 구차한 삶을 이어야 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상훈씨가 그 사람들만큼 능력이 있었다면 자살당하는 건 양길상이었겠지.”

“······.”

“아무튼, 상황이 이렇게 됐어.”

“말 나온 김에 묻자. 서울, 얼마나 남았냐?”

“아주 조금.”

김다람은 망설이지 않고 답했다.

“이번에 서울 쪽에 식량하고 물자 공급한 거 알지?”

“얼추 들었어.”

“그거 전선에 가야 할 물건이었어. 안 그래도 불만이 한계에 달한 군부대에 가야 할 물건이었다고.”

“그런 사정이 있었군.”

“이미 일선 지휘관 몇 명이 군벌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그런 상황에 서울에 남으라는 건 그냥 죽으라는 소리와 뭐가 다르겠어?”

“그래서 여기에 오겠다는 거냐?”

“부담스러워?”

“3명은 너무 많아.”

“한 명도 포기 못해.”

“······그런가.”

“물론 빈손으로 갈 생각 없어. 나도 양심은 있는 사람이야. 선배가 고개를 끄덕거릴 만 한 전세금 가져올게.”

그것이 대화의 끝이었다.

확답은 하지 않았지만 김다람의 저돌적인 성격을 생각하면 그녀가 이쪽에 오는 건 기정사실이다.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다.

김다람은 훌륭한 전투원이다.

높은 곳에 오래 있어 감각이 조금 둔해지긴 했겠지만 나는 그녀의 전투력을 의심하지 않는다.

대 인간, 대 뮤테이션, 대 몬스터.

그녀는 중국 전장에서 아낌없이 자신의 가치를 드러냈다.

무엇보다 그녀와는 오랫동안 호흡을 맞췄다.

상성이 맞는 유형이라면 단 둘이서 다른 몬스터 한 마리를 처치할 수 있을 정도다.

한편, 그녀의 남편은 의사다.

피부과라고 하는데 의사는 의사다.

나 같은 무면허 돌팔이와는 비교할 대상이 아니다.

전투원은 아니지만 경우에 따라 충분히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들의 아들은 아직 유치원에도 안 들어간 유아로 이용가치를 논할 대상은 아니다.

객관적으로 이들 가족은 멸망기에서 동료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 중 대단히 수준이 높다.

하지만 내 성채는 나만의 낙원.

판단이 서지 않아 내 마음의 안식처에 자문을 구했다.

그런데 나도 이제는 고참 유저.

나름 커뮤니티의 법도와 그들이 싫어하는 걸 알고 있다.

나의 정체성과 같은 존내논식 머리글만큼은 포기할 수 없지만 그들이 가장 싫어하는 금기만은 범하지 않으려 한다.

<닉네임을 SKELTON에서 익명으로 변경하시겠습니까?>

간만에 익명이라는 가면을 쓰고 글을 적어 보았다.

익명1031 : 저기 새 동료를 들이려 하는데요~ 평가 좀요~

대충 애딸린 현역 헌터와 의사 부부를 방공호에 들이는 게 어떻냐는 내용이다.

익명으로 작성한 이유는 이런 질문을 하는 것 자체가 일종의 기만이기 때문이다.

익명458 : 어이쿠 ㅋ 의사에 헌터 ㅋ 훌륭한 지인도 많으시네 ㅋ

Kyle_Dos : 판타지 소설이지만 저라면 받아들일 거 같네요. 식량만 충분하다면요.

익명848 : 의사 + 헌터면 지들끼리 살고도 남을 건데. 형제 친척급이라면 받아들여도 되겠네.

빈정거림도 많지만 대체로 평가는 우호적이다.

그 정도 인력 수준이라면 혼자보다 낫지 않겠냐는 것이 주된 의견이다.

정직하게 커뮤니티에 실망을 느꼈다.

나와 생각이 많이 다르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

뭐, 커뮤니티의 생각이 나와 언제나 같을 수는 없다.

그래도 내 생각에 동조하는 것까진 아니더라도 우려를 표한 친구도 있긴 했다.

Defender : 새끼 딸린 부모만큼 위험한 것도 없지. 남의 애새끼가 난장판 피워놓은 거 보면 죽이고 싶을 걸?

대충 이런 의견들이 있었다.

그 김다람이 빠르게 행동했다.

“가기 전에 먼저 구경 좀 해도 돼?”

집을 보러 온단다.

무시라는 최후의 수가 있지만 그녀를 만나는 건 그녀가 연락을 할 때부터 정해진 일인지도 모른다.

왜, 그 친구가 없었다면 현재의 나도 없었을 테니까.

늘 긍정적인 김다람이 접착제가 되어 새로운 팀원과 나를 연결했고 그 덕분에 나는 헌터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

간혹 우민희나 공경민 같은 정신병자들과 연결해주긴 했지만 나의 팀은 그녀 덕분에 유지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판이 바뀌지 않았다면 여전히 그녀와 같은 전장에서 몬스터와 전투를 펼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마, 그렇게 됐겠지.

그 녀석도 나만큼이나 강렬한 증오를 가슴에 담고 있었으니까.

그 후배가 내 영역에 찾아왔다.

군용 지프를 타고 나의 낙원에 흙발로 걸어 들어왔다.

착잡한 마음으로 그녀의 얼굴을 살폈는데 어째, 그 표정이 내 예상과는 사뭇 다르다.

“와······.”

상당한 충격을 받은 눈치.

“살풍경하네.”

여기가 살풍경한 건 같다.

“뭐, 이래? 여기? 쓰레기 뭔데? 사람 사는 곳 맞아?”

그런데 이렇게까지 혐오감을 내비치는 게 맞는 건가.

감동을 바란 거까진 아니지만 지나치게 내 낙원을 무시하는 기분이다.

그렇다면 내 방공호는 어떨까.

약간의 오기를 느끼며 그녀에게 나의 낙원을 공개했다.

육중한 방공호 문을 열어젖히고 비밀의 메인 방공호를 타인에게 공개한 것이다.

“스켈톤 프라우드 팰리스에 온 걸 환영한다···!!”

“······!!”

김다람의 눈동자에 나타난 감정은 놀라움이었다.

그럼 그렇지.

개인 단위로 이렇게 크고 멋지고 화려한 방공호 누가 만들 수 있겠나.

“이걸 다 선배가 만들었다고?”

“프라우드.”

나니까 가능한 거다.

그런데 김다람의 놀라움은 빠르게 실망과 경멸로 바뀌었다.

“변기 뭐냐고.”

게다가 내가 놀라움으로 해석했던 표정은 사실 충격이었다.

김다람이 돌아서며 중얼거렸다.

“······이런 데서 애 못 키워.”

그제야 그녀가 입고 있는 옷에 숨겨진 기호와 같은 상표가 또렷이 보였다.

그래, 그녀는 좋은 옷만 입고 다녔었지.

좋은 냄새가 나는 좋은 전망의 사무실에서 위원님 소리를 들으며 근무를 했었지.

아무리 밀려나는 인생이라지만 그녀는 내가 방공호를 짓는 사이 너무 높은 곳으로 올라가 버렸다.

내가 빈약한 상상력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곳까지.

“마음 써 준 거 정말로 고마운데 여기선 살기 어렵겠어. 곰곰이 생각해보니 동탁이 폐소공포증도 있는 눈치고.”

그녀가 아들의 사진을 보여줬다.

“야, 애 이름 한 번 잘 지었네.”

“무슨 뜻이지?”

절반의 분함과 절반의 안도감 속에서 그녀에게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할 거냐?”

“어쩌긴, 알아서 살아날 궁리해야지.”

김다람이 활짝 웃었다.

“나 김다람이야.”

“······다람아.”

“그 프로페서 밑에서도 구른 사람이라고.”

활짝 웃는 그녀의 얼굴에 과거의 김다람의 얼굴이 겹쳐 떠올랐다.

그래, 이 녀석 긍정적이었지.

바보 같을 정도로.

“제주도 가는 건 포기하지 않겠지만, 군부 쪽과도 접촉해봐야지. 군벌 쪽도 고려 중이야.”

김다람이 내게 사치스러운 종이가방을 내밀었다.

“자, 선물.”

봉투 안엔 고급 양과자가 담겨 있었다.

차에 올라타려던 그녀가 날 돌아보았다.

“하나도 안 늙은 거 같더니 햇볕 아래서 보니 좀 늙긴 했네.”

“그, 그러냐?”

“표정이 밝아져서 그런가?”

그녀가 날 물끄러미 쳐다봤다.

“요즘 여자라도 만나?”

“아니.”

“아무튼, 거취가 정해지면 연락할게.”

질풍처럼 나타났다 사라지는 그녀를 한동안 쓴웃음을 머금은 채 바라보았다.

모든 건 상대적이다.

누군가의 자랑스러운 낙원은 누군가에겐 나락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녀가 남긴 과자가 이 달콤씁쓸한 현실을 어김없이 말해주었다.

“와, 시발.”

이 과자, 진짜 고급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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