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동기 (2)
이상훈의 부친이 죽었을 때 빈소에 방문한 적이 있다.
호상이었다.
늦은 나이에 이상훈을 봐서 나이도 충분히 있었고 암에 걸려 3년간 병상에 누워 고문과도 같은 치료를 받으며 연명했으니까.
발 디딜 틈 없이 조문객이 모였었다.
그의 부친이 차지했던 영안실 특실 옆엔 자그만한 일반실이 있었다.
옆에서 흥청망청 떠드는 소리가 고스란히 들려오는 그 방은 어두웠고 사람이 거의 없었다.
화환도 처음 보는 업체의 것이었다.
반쯤 불이 꺼진 영안실 중심엔 당시에도 젊어 보이는 사내의 영정이 있었고 그 아래 아내와 자식으로 보이는 사람들만이 고개를 숙인 채 옆방에서 들려오는 소음을 듣고 있었다.
그 대비가 너무나도 강렬했기에 꽤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던 것 같다.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게 된 건 김다람이 남긴 한마디였다.
“내일 새벽까지 빈소를 운영한다고 하더라. 박정하긴 하지만 지금 시국에 대학병원에서 빈소를 연다는 것 자체가 어찌 보면 특권이지.”
“너는 갈 거냐?”
“가야지.”
한숨을 내쉬며 김다람이 답혔다.
“가고 싶진 않지만 무조건 가야지. 나의 선배였고 팀장이었고 국장이었으니. 왜? 내 결혼식에 와서 축의금 3만 원씩이나 넣어주셨는데 당연히 가야 하지 않겠어?”
“그때는 미니멈 3만 원이었냐.”
“아니 그때도 5만 원이었어.”
“하, 역시 이상훈이네.”
“역시 이상훈씨지.”
잠시 우리는 과거를 회상하며 저마다 쓴웃음을 머금었다.
막간의 정적을 깬 건 김다람이었다.
“선배도 올 거야?”
“나?”
거절하는 게 맞다.
그게 이치에 맞고 이유도 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나는 즉답하지 못했다.
“그, 그게.”
“알아. 가는 길에 캡슐있지? 지금은 밤이기도 하고. 괜히 오다 쌍초상 날라. 그냥 멀리서 명복이나 빌어 줘.”
더 이야기 하고 싶었지만 자연스레 대화가 끊겼다.
무전을 끊고 한동안 정적이 흐르는 방공호 안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수많은 생각이 떠올랐지만 모래로 만든 밧줄을 잡는 느낌이랄까.
명료하게 잡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가장 가까운 과거에 생각을 집중했다.
이상훈은 나와 술 한잔을 하자고 했다.
어쩌면 그건 나에게 내미는 화해의 표시였을까.
아니면 나를 향한 도움의 요청이었을까.
무엇보다 그 녀석이 마지막에 말한 뒤통수라는 말은 뭘 말하려는 것이었을까.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고로 이상훈은 내 질문에 답해주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를 찾아가기로 마음 먹었다.
그 자리에 가야만 내 풀릴 길 없는 의문이 해소될 것 같은 억지를 느꼈다.
*
칠흑 같은 어둠을 자전거 하나에 의지해 나아갔다.
차량을 이용할 수도 있지만 도로엔 내가 만든 장벽이 서 있다.
소리 없이 우회하기 위해서는 자전거 말고 다른 방법은 없었다.
그러나 내 의도는 멀리서부터 굉음과 불빛을 내며 다가오는 모터사이클에 의해 좌절됐다.
“뭐 하세요? 거기서?”
경계심을 드러내며 퉁명스레 묻는 그 사내가 야간투시경을 벗으며 얼굴을 드러냈다.
우리는 거의 동시에 서로의 얼굴을 알아보았다.
“뭐야? 박규씨 아니야?”
백승현이다.
1년 선배지만 프리랜서 헌터라는 명목으로 후방에서 갖가지 더럽고 위험한 일을 도맡아 하는, 국위원의 잡부.
“어디로 가시나?”
“서울.”
“잠깐 따라올 데가 있는데.”
그는 멀리 보이는 불빛 쪽을 응시했다.
“그냥 보내주시면 안되나?”
“그게. 나도 그러고 싶긴 한데.”
백승현이 쓴웃음을 머금으며 담배를 입에 물었다.
“······책임자가 아니라서.”
백승현의 무전기가 노이즈와 함께 경박하고 어리지만 충분히 폭력적인 울림을 발했다.
“아저씨. 뭐예요?”
나는 백승현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헌터?”
백승현은 렌즈가 3개 달린 야투경을 다시 뒤집어 쓰고는 불빛 쪽을 향해 고개를 까닥거렸다.
“우리 후배님 중 하나가 당신을 감지했어.”
“감지라······.”
백승현이 코웃음을 쳤다.
“진짜 헌터들이지. 우리 같은 구닥다리와 다른.”
결국 나는 내가 회피하려던 장벽 앞에 섰다.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오늘 나는 조문을 하러 가는 것이지 다른 시체를 쌓으러 가는 게 아니니까.
멀리서부터 훤히 보이는 불빛 아래 한 무리의 사람이 서 있었다.
선두에 서 있는 건 군경이었다.
그들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굳이 말한다면 배경이다.
문제가 되는 건 그들 뒤에 오만하게 서 있는 세 개의 그림자다.
그들은 같은 재킷을 입고 있었는데 재킷의 상단 주머니 쪽엔 이빨을 드러내며 포효하는 호랑이를 표현한 마크 패치가 붙어 있다.
로어링 타이거(roaring tiger).
6년 전쯤에 등장한 최신 교리에 발맞추어 육성되고 훈련된 새로운 헌터의 표식이다.
우리 구시대의 헌터는 저들에게 아래와 같은 호칭으로 불린다.
“아저씨.”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금발로 염색한 남자가 백승현을 불렀다.
“그래서, 이 사람 뭐예요?”
그 뒤엔 큰 방패를 등에 짊어진 채 하품을 하는 남성과 끊임없이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여성이 서 있었다.
“전직 헌터.”
고개를 숙이진 않았지만 백승현의 표정과 태도는 이미 수차례를 고개를 굽신거린 것처럼 보였다.
“전직 헌터요? 아저씨 같은?”
“하하, 그렇지.”
뒤편에 서 있던 남녀가 싸늘한 시선을 내게 던졌다.
그들의 눈동자에 서린 감정이 무엇인지 잘 안다.
경멸과 무시다.
선두에 선 금발이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전직 헌터라는 분이 왜 멀쩡한 도로 놔두고 으슥한 곳으로 돌아가나요? 범죄자도 아니고.”
백승현이 날 보았다.
모멸감을 필사적으로 참는 그 얼굴엔 내게 짜증을 전가하려 하고 있었다.
“서울로 가려고.”
내가 대답했다.
백승현이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마치 큰일이 난다는 표정.
그를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조용히.”
금발 사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금발 사내는 내 행동이 어이가 없다는 듯 동료를 돌아보며 멋쩍은 미소를 머금었다.
“이 아저씨 정말 깨네.”
“몇 기냐?”
딱딱하게 물었다.
금발의 입가에서 미소가 싹 사라졌다.
방패를 맨 사내의 미간에 주름이 패고 휴대폰만 쳐다보던 여자가 고개를 들었다.
살벌한 기류가 느닷없이 찾아온 눈보라처럼 우리 사이에 휘몰아쳤다.
금발 사내가 빛나는 눈으로 날 노려보며 차갑게 끊어서 발음했다.
“이.십.기.”
“13기다.”
그렇다.
나는 이 친구들의 선배다.
그것도 하늘 같은 선배다.
그러나 이 어린 친구들의 생각은 다르다.
“18기 이전 기수는 선배 아니야.”
뒤에 있던 사내가 끼어들었다.
“극히 일부분을 제외하면 말이지.”
그들이 내게 다가왔다.
약속한 것처럼 두 눈을 은은히 전등처럼 밝히면서.
“저기 멀뚱히 서 있는 군인 아저씨와 다를 바 하나도 없는 사람을 선배로 부를 수 없잖아?”
금발 사내의 입가에 비릿한 냉소가 맺혔다.
“아저씨. 개안했어요? 권능 있냐고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럼 선배 아니지.”
종의 존망을 걸고 몬스터와 싸우던 인류는 시종일관 수세에 몰렸다.
인류의 30%가 사라질 즈음 이상 현상이 관측됐다.
인류의 일부가 마치 마법과 같은 초능력을 구사하며 몬스터와 맞서기 시작한 것이다.
학자들은 그것이 고도의 정신적 작용에 의한 사이킥 에너지라고 분석하며 권능이라는 특색없는 이름으로 명명했다.
그 새로운 힘은 아이러니하게도 인류의 적인 몬스터와 닮아 있었지만 그 힘을 가진 새로운 피가 기존의 구식 헌터를 빠르게 밀어 내리라는 건 이미 정해진 미래였다.
이 어린 친구들이 그 예고된 미래다.
“같은 학교 다니셨으니 저 캡슐의 위험함은 잘 알고 계시겠죠? 돌아가세요.”
이대로 돌아갈 수도 있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그게 가장 타당한 해결책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대로 돌아가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왜, 이 친구들.
내가 살아온 인생을 부정하고 있잖아?
이건 상처가 된다.
필경 큰 상처가 될 것이다.
안 그래도 생각이 많아지는 고독한 방공호 안에서 그 상처는 오래된 상처와 맞물려 더 크게 썩어들어갈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게다가 이상훈의 보이지 않는 얼굴이 눈앞에 떠올랐다.
녀석이 내게 말하는 듯했다.
할 수 있으면 해보라고
“저 캡슐이 문제라는 거지?”
그렇다면 해야겠지?
“어떻게 하시려고?”
“저 캡슐만 처리하면 통과시켜 주겠다 이 말 아니냐?”
“웃기신 분이네. 올드 스쿨 주제에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어디 한 번 해보세요.”
금발이 옆으로 비켜섰다.
“성공하면 지혜가 이분 서울까지 직접 모셔다 드려.”
“내가 왜?”
금발이 씨익 웃었고 여성도 코웃음을 쳤다.
철저한 무시.
덕분에 판이 깔렸다.
날 선배로 인정하지 않는 후배들이 군경들을 뒤로 물렸다.
“다들, 미리 차에 타 계세요. 그럴 일은 없겠지만 몬스터가 나타날 수도 있으니까요.”
수많은 사람 중 오직 백승현만이 내 뒤에 서 있었다.
언제든 움직일 수 있게 시동을 켠 모터사이클을 준비한 채.
“마음은 고맙지만 필요 없습니다.”
“······박규씨.”
그를 돌아보며 씨익 웃었다.
“내가 누군지 알잖습니까? 선배.”
지금은 폐기된, 과거의 전투 교리에 의하면 헌터가 소규모 교전에서 몬스터를 상대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방어역장이 펼쳐지지 않는 영역을 핀포인트로 노려 저격하는 것.
다른 하나는 몬스터에게 근접전을 거는 것.
제풍호 회장에게도 말한 적이 있다.
몬스터에 접근하는 건 대단히 어려운 일이지만 접근만 할 수 있다면 도모할 여지가 있다고.
사실이다.
역장을 펼칠 수 있는 최소 거리 내라는 결투장에 입장할 수만 있다면, 그 안에서 마주칠 괴물에 맞설 기백과 기량이 있다면,
놈들을 죽일 수 있다.
“······.”
두 자루의 도끼를 꺼냈다.
날과 자루 모두 검은색으로 도색된 이 한 쌍의 도끼는 내가 은퇴하면서 가지고 나온 몇 안 되는 물건이다.
“화이팅~! 센빠이~!”
뒤에서 조롱하는 목소리가 들려 온다.
가만히 캡슐을 노려보며 도끼 하나를 휘둘렀다.
도끼가 타점에 닿는 순간 두 개의 검은 반점이 시야에 데드픽셀처럼 시간 차를 두고 떠올랐다.
이는 두 개의 정보를 제공한다.
하나는 녀석이 반사역장을 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반사역장으로 반격을 가할 위치다.
도끼를 내리치며 내 목을 노리고 날아온 나의 도끼날을 또 다른 도끼로 막았다.
챙캉!
도끼를 회수하고 두 번째 공격을 가한다.
같은 두 개의 얼룩이 시간 차를 두고 내 눈을 더렵혔고 내 몸은 하나의 기계처럼 움직이며 공격과 방어를 동시에 수행했다.
몇 차례 같은 공방을 반복하자 뒤에서 들려오던 휘파람이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그건 이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빨려들 것 같은 소용돌이가 앞에서 마치 은하 그 자체럼 나선형의 팔을 회전하며 내 앞에 뒤틀린 공간을 만들어냈다.
때가 왔다.
몬스터의 등장이다.
“미, 미친! 진짜 깨웠어!”
“몬스터다!”
“달아나!”
모두의 경악 속에서 나는 빛 속에서 형태를 갖춰나가는 몬스터의 실루엣을 가만히 살폈다.
인간을 닮은 길쭉한 대가리를 가진 고대의 조각 상 같은 모습.
댄서 타입인가?
아니, 네크로맨서 타입이다.
최악은 면했지만 쉬운 상대는 아니다.
중거리였다면 훈련된 동료 없이는 접근 자체가 불가능하니까.
하지만 나는 놈과 제로 거리에 있고 근접전을 걸 수 있다.
그것은 이미 하나의 확정된 결과를 예고한다.
쿵! 쿵! 쿵!
심장과 내장을 짓이겨버릴 듯한 충격파를 받아내며 놈이 현실에 자리 잡기를 기다렸다.
놈이 고개를 돌려 나를 노려봤고 회백질의 팔을 휘둘렀다.
두 자루의 도끼가 놈의 팔을 찍어냈다.
쩍!
얼마만의 감각인가.
놈들을 부수는 감각이란.
그 손맛이 잠들어 있던 기억을 끄집어냈다.
춤사위가 시작됐다.
내가 배웠던, 내가 가장 잘했던, 그리고 이제는 잊혀 가는 전승이 되어버린 죽음의 춤사위가.
그 안에서 몬스터는 아무것도 아니다.
역장도 펼칠 수 없는 제로 거리 안에서 그놈은 느릿하고 둔중한 몸을 휘적거리기만 하는 벌채되기를 기다리는 고목에 지나지 않는다.
놈이 최후의 발악으로 온 몸에서 뻗어 나가는 가시를 폭사하며 날 노려보지만 나의 춤사위는 이미 가시의 궤적을 지나 녀석의 대가리를 노리고 있었다.
쩍!
두 개의 도끼가 몬스터의 두부에 꽂혔다.
푹 박힌 도끼의 자루에서 놈의 경련이 느껴진다.
한때 나의 끝 모를 증오심을 달래주던 유일한 자장가.
“이것이 프로페서······?!”
정적 속에서 백승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쿵.
짓이겨지고 토막나고 너덜너덜해진 몬스터가 바닥에 쓰러졌다.
하얀빛이 그 몸에 불이 붙은 것처럼 피어오르더니 몬스터는 하얀 입자로 변해 소멸하기 시작했다.
심호흡을 하며 두 자루 도끼를 회수하며 돌아섰다.
날 선배로 인정하지 않는 후배들이 경악한 눈으로 날 보고 있었다.
보고도 믿기지 않은 얼굴.
그럴 수밖에.
그들은 우리와 세대가 다르니까.
우리와 다른 교리를 교육받고 훈련받았으니까.
하지만 그들도 조금은 알 것이다.
한 시대를 풍미한, 한 시대를 지켰던 전사들이 있었다는 걸.
“태워줘야지?”
그 시절을 함께 했던, 내게 길을 열어주던 녀석이 차가운 어둠 속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
“아, 안녕히 가세요!”
나를 태워준 여자가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황급히 인사하고 자리를 떠났다.
영안실로 통하는 복도는 이상훈의 부친 빈소의 것과 같았다.
부자가 같은 곳에 안치된 것이다.
하지만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복도를 가득 채운 화환도 없었고 조문객도 없었다.
반쯤 방치된 어둠 속에 누군지 알 수 없는 젊고 화려한 여성이 고개를 떨군 채 빈소를 지키고 있었다.
강렬한 기시감을 느끼며 이상훈의 영정을 바라보았다.
“상훈아.”
이제야 확실히 기억났다.
이렇게 생긴 놈이었지.
*
“제주도로 옮기는 거, 이상훈씨 계획이야”
김다람이 빈소로 찾아와 밖으로 불러냈다.
“이상훈씨가 무슨 생각으로 그런 일을 벌인지 선배라면 알고 있겠지?”
고개를 끄덕이며 학교에서 배웠던 이론을 그대로 읊었다.
“······균열의 강도는 균열 주변의 인구수에 비례한다.”
“상대적으로 강도가 약한 제주 쪽에 최고의 인력을 밀어 넣고 미래에 대비하는 게 이상훈씨의 계획이었지. 알다시피 몬스터는 일어난 현상이지, 의도를 가진 군대는 아니니까.”
“그 녀석 혼자 추진할 수 있는 계획이 아닌데?”
“대통령과 수뇌부도 찬성했어. 문제는.”
그녀가 메아리치는 거리 쪽을 서글픈 눈으로 돌아보았다.
“선택받지 못한 자들은 모두 버려진다는 거지. 그게 새어 나가서 이 사달이 난 거고.”
“왜 그 녀석 혼자 책임을 진 거지?”
“천만 명에 달하는 목숨을 버리는데 누가 책임을 지려 하겠어? 의사결정에 참여한 사람 중 가장 아랫급이 다 뒤집어쓰는 수밖에.”
“상훈이 와이프랑 아들은? 빈소엔 안 보이던데.”
“이미 제주도에 있어.”
“그렇군.”
김다람이 담배를 물었다.
“게다가 이상훈씨,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그 계획에 자신의 이름을 붙였어.”
“이상훈 계획?”
“이상훈 플랜. 왜 그랬을까? 덤터기 쓰면 그냥은 안 끝난다는 거 본인도 잘 알고 있었을 텐데.”
“······.”
어렴풋이 알 것 같지만 잡히지 않는다.
“아, 그리고 하나 더. 별거 아니긴 한데 이상훈 씨 죽기 전에 선배 이야기를 하더라고.”
“뭐라고?”
“선배 뒤통수가 자꾸 떠오른대.”
“내 뒤통수가?”
“응. 학교 다닐 때 늘 앞에서 알짱거리며 앞길 막던 그 뒤통수를 한번 때려주고 싶었다고.”
그런 거였나.
하긴, 얄밉기도 했겠지.
그렇게 앞길을 가로막았으니.
“그런데 죽기 전에 웃으면서 말하더라고. 이제는 그 뒤통수 제대로 후려칠 수 있을 거 같다고.”
“새로운 발견이라도 있냐?”
김다람이 주위를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글쎄. 강선배를 만나고부터 헤실헤실 웃더니 갑자기 그 이야기를 하더라고.”
“강한민?”
“미안. 듣기 싫은 이름이지?”
“아니, 괜찮아. 스켈톤식 비인기 단련법으로 멘탈 단련했으니까.”
“비인기?”
주위를 돌아보았다.
저 너머엔 군중들이 태울 촛불도 없이 어둠 속을 무리 지어 돌아다니며 생존이라는 절박한 단어를 소리치고 있었다.
하나의 세상이 끝나려 한다.
나는 거기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