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17화 (17/183)

16. 동기 (1)

그 학교는 잔인한 장소였다.

전학년 석차를 1등부터 꼴등까지 대자보로 떡하니 붙여 놓았다.

약한 자는 도태되고 제 발로 나가게 했다.

협동보다는 경쟁을 강요했고 인간성 보다는 기계적인 냉정함을 요구했다.

창의성은 용납되지 않았고 복종과 규율만이 강요됐다.

그럴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우리의 적은 무자비하고 일체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으니까.

중학교를 갓 졸업한 소년과 소녀들이 그 안에서 기계로 거듭났다.

인류의 적, 몬스터에 대항하기 위한.

동기는 제각각이었는데 나 같은 경우엔 증오였다.

부모와 누나를 몬스터에게 잃고 천애고아가 된 내 증오는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날이 바짝 서 있었다.

이상훈은 나와는 여러모로 정반대의 인물이었다.

그는 유복한 집에서 자랐고 부모가 살아 있었고 명예와 전망을 보고 그 학교에 들어왔다.

온실 속에서 자란 그가 독기밖에 남지 않은 나에게 이기는 건 어찌 보면 처음부터 어려운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입학부터 졸업까지 그는 나라는 벽에 가로막혀 2등만을 했다.

입학할 때만 해도 그는 2라는 숫자가 자신의 트라우마가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경쟁은 전혀 엉뚱한 형태로 끝이 났다.

판이 바뀌었다.

음악에 비견하면 클래식 경연장에서 연주자들이 클래식으로 경쟁하고 있는데 갑자기 경연장 종목이 락과 헤비메탈로 변한 것이다.

음악 장르는 취향이지 우열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전장에서 통하는 음악은 락과 헤비메탈이었다.

모차르트와 살리에르는 그 안에서는 뒤떨어지고 고리타분한 무언가였다.

아무 주목도 받지 못한 채 구석에 있던 녀석이 영웅으로 떠올랐고 스포트라이트의 중심에 섰다.

우리는 무대의 주변부로 밀려났고 그러한 사람에게 늘 찾아오는 음습한 조롱과 멸시에 시달려야 했다.

한 명은 떠났고 한 명은 남았다.

떠난 자는 야인이 되었고 남은 자는 관료가 되었다.

둘의 경쟁은 끝났다.

둘을 이어주던 유일한 끈이 끊어진 것이다.

다시는 그를 볼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 녀석이 날 직접 찾았다.

대체 무슨 일일까.

김노인이 말하길 오랜만에 연락 오는 놈 치고 좋은 의도로 연락하는 놈은 드물다고 했다.

“13번 도로에 캡슐 갖다 놓은 거 너지?”

“어떻게 알았지?”

바로 시인했다.

이 녀석을 성격을 잘 안다.

이상훈은 완벽주의자다.

자질구레한 일마저 완벽하게 하려 들었고 그래서 항상 나한테 뒤처졌다.

“왜 그런 짓을 하는 거지? 중간에 캡슐을 찢고 몬스터가 소환되면 어쩌려고.”

“소환이라니. 무슨 뜻이지?”

“아직도 그게 알로 알고 있는 거냐?”

“알 아니야?”

“캡슐의 정체는 간이 포탈로 판명 났어. 침투형이 쓰는 일종의 간이 균열이지.”

“···그런가.”

현역에서 은퇴한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캡슐이 알 같은 게 아니라는 건 경험으로 알고 있었지만 내가 가진 지식이 이제는 구버전으로 변했다는 사실은 꽤 쓴맛으로 다가왔다.

“왜 갖다 놓았는지는 알 거 같은데.”

“맞춰 봐.”

“네 방공호 주변으로 피난민이 오는 게 싫은 거지?”

“예나 지금이나 맞추는 건 잘하네. 그나저나 무슨 일이냐? 바쁘신 몸일 텐데?”

“제주도에 갈 생각 있냐?”

설마하니 스카웃인가.

원하는 흐름은 아니다.

“거기서 뭘 하라는 거지?”

일전에 거절하기도 했었고.

하지만 높으신 분이 된 이상훈은 그 사실을 잘 모르는 모양이다.

“교관 자리가 비었다. 3일 전에 교관 후보가 전사했거든. 다른 후보 추천을 받았지만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었어. 그러던 찰나에 캡슐을 옮기는 너를 본 거지.”

“교관이라.”

“구질구질하게 지하에서 썩는 것보단 나은 인생이다.”

“스트레스 많이 받겠지?”

“거기 있는 게 더 스트레스 받는 삶 아니야? 혼자 사는 것으로 아는데, 아무 말도 안 하고 친구도 없이 2년 가깝게 혼자 사는 거, 그게 그 자체로 형벌 아니냐?”

“전혀 아닌데?”

처음으로 진지하게 반문했다.

진짜 아니다.

지난 2년간, 때때로 개 같은 순간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편안하고 유유자적하게 살았다.

친구야 인터넷 친구가 한가득 있고 말이야 일기장 쓰면 그만이고.

게시판에서 인기 없으면 뭐 어때?

나한텐 크리스마스 안부 주고받을 이웃도 있는데.

“진심이냐?”

이상훈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믿을 수 없는 눈치다.

다시 한번 확실하게 답해줬다.

“난 여기가 좋다.”

제주도에 가면 여기보다 따뜻하긴 하겠지.

하지만 그게 전부다.

거기엔 내가 보고 싶지 않은 사람과 현실이 있다.

그게 싫어서 빠져 나왔고 현재의 비인기유저 스켈톤이 탄생했다.

“아직도 자격지심과 열등감에 못 빠져나온 것이겠지.”

이상훈이 싸늘하게 빈정거렸다.

순간 내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

거울을 보고 있진 않아 모르겠지만 내 눈빛은 제법 날이 서 있을 것이다.

학교를 다니던 때만큼은 아니겠지만.

“어쩔 수가 없잖아? 재능이 없는데. 재능이. 너나 나나.”

이상훈의 빈정거림은 탄식으로 변해갔다.

“내가 얼마나 힘든지 아냐?”

대꾸하지 않았다.

머리로는 이해가 안 가는 게 아니다.

높은 자리에 있다는 건 그만한 책임을 진다는 소리니까.

서울이 멸망해가는데 그라고 해서 마음이 편안할까.

그러나 이상훈의 괴로움에 공감하기엔 우리는 너무나 많은 다툼이 있었고 오해가 있었다.

우리는 경쟁자였지 친구였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모처럼 술이나 한잔하자고. 괜찮은 와인이 있어.”

“가고는 싶지만 캡슐 때문에.”

나의 대답은 점점 무성의해지고 무감각으로 변해갔다.

그걸 모를 정도로 둔감한 이상훈이 아니다.

“그래.”

그의 목소리가 멀어졌다.

“잘 지내라. 박규.”

통신이 끊어지는가 싶더니 스피커 너머에서 작은 중얼거림이 느닷없이 들려왔다.

“네 뒤통수.”

“뭐?”

그것이 끝이었다.

이상훈이 무슨 말을 하려했는지는 꽤 오랫동안 내 상상력을 자극했다.

혹이라도 났나 싶어 허겁지겁 만져봤지만 멀쩡했다.

*

나무를 숨기려면 숲에 숨기라는 말이 있다.

커뮤니티에도 서울 안에 근거지를 마련한 유저도 있었다.

방공호를 판 건 아니지만 아파트라는 흔하디흔한 구조물 구석에 본거지를 마련하고 그곳을 아지트로 개조한 것이다.

수시로 서울의 신선한 소식을 알려주는 기자양반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그는 자신의 아파트 철문을 용접기로 막아버리고 아랫집에 구멍을 뚫어 그곳을 출입구로 썼는데 그게 가능한 이유는 아랫집에 살던 가족이 전부 자살했기 때문이라고.

그 기자양반이 최근 이름값을 하고 있다.

gijayangban : 현재 서울 상황.jpg

사진 속엔 정부 청사 앞을 가득 채운 수십만의 성난 시민이 운집한 장면이 찍혀 있었다.

거기만이 아니다.

정부 기관이 있는 거의 모든 곳에 시민들이 나타나 시위를 벌였다.

서울 전체가 발칵 뒤집혔다.

예고된 일이었다.

희망이라는 사탕발림으로 현실을 가리는 건 한계가 있으니.

시위는 점점 거칠어지고 폭력적으로 변했다.

그에 비례해 구호도 단순해졌다.

살려달라.

그것이 그들의 유일한 요구했다.

서울이라는 비행기의 추락이 시작됐다.

커뮤니티 유저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익명848 : 꼴 좋네. 그렇게 우릴 조롱하더니.

Kyle_Dos : 공중파에서 조리돌림 한 게 아직도 기억나네. 그때 그 프로에서 우리를 뭐라고 정의했더라?

익명458 : 과대망상에 빠져 스스로 도태되는 걸 선택한 사회 부적응자 집단.

이 친구들의 심정도 이해가 간다.

이 나라엔 인생의 모범 레일을 정해두고 거기에서 벗어난 사람을 가차 없이 조리돌림 하는 문화가 있다.

우리 멸망주의자는 그 레일을 벗어난 사람이다.

상당한 사회적 박해와 조롱을 받았다.

나도 건축 문제로 공무원에게 조현병자냐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피난민의 행렬은 가속화됐다.

탈출할 수 있는 의지가 있는 사람은 서울에서 떠나려 했다.

서울에서는 개척자라고 멋지게 포장한 피난민들은 군부 소속이었다.

개척자 신청을 하고 무리를 결성하면 무기와 장비, 약간의 식량을 나눠주고 개척이 성공하면 추가적인 장비와 식량, 정착할 수 있는 지원을 주는 식이다.

몇 명이나 개척에 성공할는지는 의문이지만 개척자가 살 만한 곳을 다 들쑤시는 통에 우리 커뮤니티 유저들은 죽어나는 중이다.

Defender : 인증

인간사냥꾼도 매우 바쁜 모양.

최근 커뮤니티에 글을 못 올리는 이유는 사람 죽이고 파묻느라 바빠서 그런 모양이다.

그런데 인간사냥꾼의 인증 사진 하나를 두고 약간의 분란이 일었다.

인증 사진 하나에 찍힌 그림자가 가느다란 게 여자 같다는 것이었다.

내가 볼 때 그조차도 시대의 우울함이 묻어나오는 단면이었다.

예전 같으면 시체 사진을 봤다면 허겁지겁 뒤로가기를 누르거나 오싹하게 굳은 시체를 보고 침만 꿀꺽 삼켰을 텐데 이제는 워낙 시체들을 많이 보니 시체 말고 다른데 관심을 가지는 여유가 생긴 것이다.

그중 한 녀석은 아예 디펜더의 그림자 부분을 확대처리한 건 물론 실루엣까지 직접 그림판으로 그려 디펜더 여자설을 공론화했다.

Unicorn18 : 이 라인 보라고. 디펜더 진짜 여자냐?

유니콘18이 일으킨 풍파는 짧게 게시판을 달구었지만 오래가진 않았다.

Defender : 찾아간다?

디펜더 본인이 직접 불을 껐다.

인간사냥꾼이 여자라.

나는 회의적이다.

나는 그의 신발 자국을 보았다.

남자 사이즈였다.

다른 이유도 있다.

총기만 있다면 여자가 남자를 죽이는 건 쉬운 일이겠지만 죽은 남자를 옮기고 처리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나만 해도 시체 몇 구 처리하는데 진이 다 빠졌는데 인간사냥꾼마냥 허구한 날 침입자를 죽이고 처리한다?

건장한 남자도 쉽지 않은 일이다.

하물며 여자라면 더욱 힘에 부치겠지.

SKELTON : (스켈톤 소신) 디펜더님. 남자 같은데요?

나도 한마디를 보태긴 했지만 좋아요 하나조차 찍히지 않았다.

아니, 이럴 거면 친구 신청은 왜 한 거지?

아무튼 게시판을 달구는 피난민 문제에서 나는 여전히 멀리 떨어져 있다.

캡슐 덕분이다.

캡슐 주변엔 군경과 헌터 소수가 남아 경계를 서며 도로를 봉쇄했다.

헌터라고 해봐야 이제 갓 학교를 졸업한 신참내기들이겠지만.

덕분에 최근엔 총성도 안 들려 온다.

“어이. 살아 있어?”

너무 조용한 나머지 내가 저격수 모녀에게 연락을 할 정도다.

“약.”

그때마다 저격수는 약을 달란다.

“몰핀. 이써?”

특히 진통제를.

아마 그녀가 원하는 건 마약이리라.

제대로 씻지도 먹지도 못한 채 건물 높은 곳에 살며 오가는 모든 이의 접근을 막는 생활은 얼마나 고달플까.

가끔 생각해 본다.

그들에게 내 더미 방공호 하나를 내준다는 생각을.

쉽진 않을 것이다.

오란다고 해서 오지도 않겠지만, 나도 그녀를 못 믿으니까.

느닷없는 총격으로 2년 가까운 인연이 끝날 수도 있다는 소리다.

전쟁이 시작된 지 벌써 1년하고도 11개월이 지났다.

더위 한풀 꺾이고 자생한 벼들이 듬성듬성 황금빛으로 물들며 고개를 숙이는 시기.

서울 쪽은 갈수록 야단이라지만 나는 평온하게 들판에 바짓단을 걷고 몇 안 되는 쌀을 직접 수확해 자루에 담고 도정 준비를 했다.

생전 도정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지만 동영상이 있으니 괜찮겠지.

도시 사람이지만 김노인에게 배운 것도 있고, 최소한 밥 한 그릇 분량은 나오지 않을까?

어차피 나에겐 이런 시행착오조차 즐거움이다.

우리 같은, 이미 결정된 인생에게 있어 시간이란 건 밑천이라기보다는 소비해야 할 의무니까.

총기와 벼가 든 자루를 둘러매고 영역으로 돌아가고 있을 때였다.

K-워키토키가 독특한 수신음을 냈다.

개인식별번호에 의한 연락이다.

설마 또 이상훈인가.

이제 연락을 받고 말고는 내 마음에 달렸다.

서울은 의미 있는 배후지라기보다는 재앙의 근원으로 변해가고 있으니까.

무전기를 확인했다.

개인식별번호 : DARAM

이상훈이 아닌 김다람이다.

이 녀석도 이젠 이상훈만큼이나 밉상이긴 한데 그래도 내 밑에서 갖은 고생을 한 녀석이라 옛정으로 연락을 받아줬다.

“오랜만이네요. 김위원님.”

부탁이나 요청은 전부 거절할 셈이다.

명분도 있다.

캡슐 말이다.

참 다재다능한 친구라고 할까.

먼저 무전기에서 흘러나온 건 한숨이었다.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해하며 땀으로 흥건한 이마를 소매로 닦으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이상훈씨 죽었어.”

“뭐?”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이상훈이? 내 동기 이상훈이 죽었다고?”

“응. 선배 동기인 이상훈씨.”

그를 좋아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가 죽어도 별 기분이 들 것 같진 않았다.

그런데 인연이라는 게 의외로 끈질긴 구석이 있는 모양이다.

이상훈의 죽음은 예상 밖의 충격으로 다가왔다.

하긴 열여섯 살부터 10년간 같은 영역에서 같은 시간을 보냈으니.

같이 싸우기도 했고 서로의 목숨을 구해주기도 했다.

가장 진한 기억은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사이가 나빴던 시절이었다.

바로 학교 시절의 기억이다.

이제는 잿빛으로 변해버린 당시의 기억이 과할 정도로 진하게 내 뇌리를 휘감았다.

늘 교실 맨 앞에 앉아 상고머리로 깎은 커다란 머리통을 이리저리 흔들며 손들며 질문하던 녀석.

뻔히 다 아는 내용임에도 교관의 호감을 사기 위해 뻔뻔하게 질문하던 그 깍쟁이 같은 놈의 뒷모습이 아무 맥락 없이 내 눈앞을 채워버린 것이다.

약간의 혼란을 느끼며 무전기를 향해 다그치듯 물었다.

“왜 죽었지? 전사? 아니면 시위에 휩쓸려서?”

“자살.”

그 말을 듣는 순간 눈앞에 어른거리던 학생 시절의 이상훈이 나를 돌아보았다.

그 얼굴은 너무나 흐릿해 알아볼 수 없었다.

대체 어떻게 생겼었더라.

이상훈, 그 녀석은.

풀리지 않는 의문 속에서 말을 이었다.

“······왜?”

어째서인지 내 목소리는 나조차도 놀랄 정도로 거칠게 떨리고 있었다.

김다람이 탄식과 함께 맥빠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책임질 사람 한두 명은 필요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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