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태풍
전쟁이 시작되기 전, 멸망주의자는 사회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족속이었다.
속성만 놓고 봐도 세상이 권할 만한 미덕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이른바 정신분석을 한다는 사람은 멸망주의자의 사고 밑바닥에 깔린 것이 과대망상과 이기주의, 체념이라고들 이야기했다.
뭐, 과대망상 빼고는 얼추 맞는 말이다.
부정할 생각은 없다.
그런 생각으로 빚을 지고 방공호를 파고 김노인의 비위를 맞췄으니까.
하지만 멸망주의자도 아무나 하는 건 아니다.
일단 독해야 한다.
나와 관계없는 사람의 죽음을 무던하게 넘길 수 있는 둔감함이 있어야 한다.
인간사냥꾼처럼 닥치고 죽이는 비인간성 정도는 아니지만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않아야 한다.
세상이 망하면 딱하고 어려운 사람이 천만 단위로 쏟아져 나올 건데 그거 하나하나 도와주다간 같은 신세로 전락하니까.
내가 생각하는 멸망주의자의 이상적인 모습은 냉담한 방관자다.
주위에서 무슨 일이 생기건, 몇백 명이 죽건, 가슴 아픈 사연이 있건 무시하고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는 삶이다.
이런 사람은 전설이 될 자격이 있다.
왜, 최후의 인류는 전설적이라고들 하지 않나.
안타깝게도 나는 전설이 되기엔 다소 모자람이 있는 사람이었다.
*
그것이 온다는 정보를 입수한 건 국제 레지던스를 확인한 다음날이었다.
다른 숙소를 구해 하룻밤을 묵고 국위원에 관성처럼 들렸는데 생각지도 않게 귀중한 정보를 입수했다.
여기서 얻은 정보는 내가 도시와 연결을 유지하는 가장 큰 이유다.
[ 킬존을 뚫고 초대형 몬스터 남하 중 ]
[ 크라켄 타입으로 추정 ]
[ 시속 약 22km. 진행 방향은 남남서 ]
[ 서울 진입은 저지했으나 외곽으로 선회할 것으로 추정 ]
[ 소멸까지 약 56시간으로 예상 ]
국위원 로비 한 자리에 마련된 컴퓨터에선 내부망으로 올린 정보가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고 있었다.
“크라켄 타입이라······.”
중국에서 상대한 적이 있다.
살아 있는 빌딩이라고 할까.
알려진 모든 화기를 크기에서 나오는 떡장갑으로 받아내며 킬존을 뚫고 방어선을 무너뜨리는 괴물이다.
다만 녀석도 무적은 아니고 내 기준에서도 그다지 위험한 놈은 아니었다.
지능이 낮고 패턴도 단순해 대비만 하면 죽을 일은 거의 없었고 가만 놔두면 알아서 소멸했으니까.
사람들은 헌터, 특히 구원자가 몬스터의 천적이라고들 이야기하지만 정작 몬스터의 가장 강력한 적은 지구 그 자체다.
이계의 주민인 몬스터는 균열을 넘자마자 알 수 없는 원인으로 생명력을 잃고 붕괴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생명력을 모두 잃은 몬스터는 입자 단위로 바스러지며 소멸하는데 그 붕괴는 크면 클수록, 강하면 강할수록 빠르게 진행된다.
물론 일부 예외도 있지만 지금 나타난 녀석은 소멸하는 타입이다.
굳이 비유하자면 태풍 같은 녀석이랄까.
살아 있는 동안 인간의 영역을 헤집어놓으며 살아 있는 모든 걸 파괴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기세를 잃고 자체 소멸한다는 점에서, 정보기관에서 몬스터의 움직임과 방향을 보고 경로까지 예측하며 피해에 대비하는 점에서 태풍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그 태풍이 내 영역 일대를 지나간다.
소름 끼치는 일이다.
정보를 모른 채 방공호 안에 있었다면 괴수 영화의 엑스트라 마냥 재난이 오는 것도 모르고 흥청망청 놀다 어? 한마디 하고 삭제되는 운명을 맞이했을 테니까.
뭐하다 죽었으려나.
아무리 생각해도 커뮤니티에 글 쓰다가 죽을 거 같은데.
SKELTON : (스켈톤 깜짝) ?!
이런 식으로 말이다.
최근 커뮤니티 안에서 인기는커녕 기피 유저가 된 것 같아 신경이 쓰인다...
어째 인간 사냥꾼보다 훨씬 입지가 후달리는 느낌인데.
그래도 차단은 많이 안 당했겠지?
아쉽게도 김다람에겐 아무 연락이 없었다.
이해는 간다.
그녀는 내가 정확히 어디 사는지도 모르고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니까.
국위원 로비에 머무는 동안 나는 그녀가 굳은 얼굴의 군인들과 헌터 출신 관료, 정치인들과 함께 빠른 걸음으로 승강기 안에 오르는 걸 보았다.
하지만 간단한 경고 정도는 해줬으면 하는 게 내 속마음이기도 하다.
*
탕!
멀리 총소리가 들려온다.
생전 처음으로 습격을 받았다.
직접 받은 건 아니다.
습격이 일어난 건 까마득한 앞이다.
하지만 행렬이 멈춰섰고 이 멸망기에 도로 체증이라는 진풍경을 일으켰다.
경찰과 군인은 통행을 막았고 상황이 종료되길 기다리라고만 한다.
3시간의 지체 끝에 상황은 종료됐지만 귀중한 시간을 날려버렸다.
지나가는 길에 길바닥에 너부러진 시체들을 보았다.
존중도 없이 모포도 덮지 못한 채 부릅 뜬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는 시체들이 약탈자인지 희생자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
즉시 방공호로 돌아가 대비를 했다.
집안에서 기르는 김노인의 모종 일부를 미리 옮겨놓고 텐트 등 야영장비와 식량, 식수 등을 챙겼다.
관측 장비로 준비한 건 야투경 기능이 있는 쌍안경과 싸구려 드론이다.
가장 중요한 준비물은 지하 차고에 잠들어 있던 사륜구동 버기카다.
그 괴물을 상대로는 기동력이 필요하다.
거리를 벌리는 게 최선이고 최악의 경우 두 개의 살인 광선이 겹치며 죽음의 영역을 만들어내기 전에 탈출해야 한다.
귀중한 장기 보관 처리를 한 완전 밀봉 가솔린 한 통을 아낌없이 쏟아붓고 싸구려 드론을 띄웠다.
주변에 특별한 위협은 없었다.
남쪽에 골드 무리가 위협적이긴 하지만 그쪽으로 갈 생각은 없다.
내 방공호 위 낮은 언덕에 차를 세워둔 채 대기했다.
몬스터가 오기 전까진 시간이 조금 남아 있다.
처음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약간의 공백기가 지나간 이후엔 몬스터의 예상 출현 지점과 그에 따른 회피 경로를 생각했다.
딱히 오래 걸리진 않았다.
건설작업을 하면서 이 일대에 발생하는 모든 상황은 뇌 속에서 시뮬레이션 했으니까.
물론 초대형종의 출현도 상정 범위내다.
다시 멍하니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시간이 흐르는 걸 기다렸다.
아직 두어 시간이 남았다.
곧 모습을 드러내겠지.
그런데 K-워키토키 상황이 좀 이상하다.
태풍에 비견되는 재앙이 내려오는데 흔한 경고 방송 하나 없다.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현재 시각 오후 8시 30분.
국위원에서 입수한 진행 상황으로 보면 초대형종은 서울 외곽을 통과한 이후일 것이다.
그런데 아직까지 군용주파수가 침묵을 지키다니.
설마, 방송국이 당한 건가.
“······.”
딱히 나완 상관 없는 일이다.
나는 멸망주의자다.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건 내 생명과 안위 하나만을 보존하면 되는 사람이다.
세상의 구원을 염원하는 자는 전장에 있다.
나는 내 식으로 이 세상이 흘러가는 걸 관망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그것이 내가 정한 길이고 내가 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했다.
내 신념은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흔들렸다.
가장 먼저 내 뇌리를 뒤덮은 건 우리 커뮤니티의 유쾌한 친구들이었다.
방공호로 뛰어 내려가 커뮤니티에 접속했다.
커뮤니티의 내 동료들은 태풍이 오는 지 아는지 모르는지 평소 그대로의 일상을 구가하고 있었다.
아직 그들은 몬스터의 등장을 잘 알지 못하는듯했다.
아니 어쩌면, 몬스터를 본 녀석은 이미 저 세상 가 있는 게 아닐까.
검색해보았다.
Keystotne : 여기 파주 아래쪽인데 땅이 왜 이렇게 쿵쾅거리지? 지진이라도 났나?
메시지를 보냈다.
SKELTON : 살아 있나요?
답장이 없다.
게시판에 대고 글을 썼다.
SKELTON : (스켈톤 질문) Keystone님 살아 있나요? 살아 있으면 답 좀.
답이 없다.
10분이 흘러도, 20분이 흘러도.
죽은 것인가.
방공호 안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태풍에 휩쓸려 흔적도 없이 소멸한 것인가.
또 한 명의 동료가 죽었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인터넷 상의 인연에 불과하지만 그럼에도 이 동료의 죽음은 실체가 있다.
내 미래의 좋아요 하나와 조회수 하나, 답글 하나를 달아줄 사람이 없어진 것이니.
“······.”
잠시 고민을 했다.
내가 이 세상에 억하심정이 있는 것은 맞다.
신을 원망하는 것도 맞으며 이 세상과 시스템에, 인간 자체에 대해 염증이 있는 것도 맞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죽는 걸 봐야 하나?
방 한 칸을 덩그러니 차지 하는 양모 펠트 인형이 날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
저 인형의 제작자 익명337은 이런 날 보면 어떻게 생각할까.
살인 괴물을 키웠다는 명목으로 폭발해서 죽은 이름 모를 여인은?
이 노트북의 주인은?
살아 있는 사람도 있다.
그날 유난히 추웠던 크리스마스 밤, 소녀의 울림은 아직까지도 생생한 감동으로 내 가슴 안에 남아 있다.
“······.”
나는 영웅도 아니고 구원자도 아니다.
그럴 자격도 없고 능력도 없다.
내가 원했던 나의 모습은 냉담한 방관자다.
그래야만 하고.
하지만 오늘 하루 정도라면 괜찮지 않을까?
특별한 날은 아니지만 태풍이 온 날이니까.
그 변덕이 날 움직였다.
SKELTON : (스켈톤 경고) 몬스터 온다!
- 첨부한 지도 경로를 따라 남하 중!
경로상에 있는 놈이라면 오늘 하루만이라도 방공호를 떠나 관망해라.
방공호 안에 있어도 소용없다.
놈의 파괴 광선은 엄폐물을 무시하고 반경 안의 모든 생명체를 분해해버리니까.
이건 농담이 아니고 진지한 충고다.
*도움이 됐다면 좋아요! 눌러주기를*
나는 이 친구들을 잃고 싶지 않다.
SKELTON : (스켈톤 경고) 몬스터 온다!
SKELTON : (스켈톤 경고) 몬스터 온다!
SKELTON : (스켈톤 경고) 몬스터 온다!
SKELTON : (스켈톤 경고) 몬스터 온다!
SKELTON : (스켈톤 경고) 몬스터 온다!
...
...
[ 경고! 도배 사유로 12시간 동안 이용을 제한합니다. ]
“스벌! 선의의 도배라고!”
그래서 도배했다.
이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지만 내 변덕은 이미 다음을 요구하고 있었다.
“여기는 스켈톤. 여기는 스켈톤. 이 전파를 수신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를 막론하고 즉시 응답하길 바란다. 다시 말한다. 여기는 스켈톤! 스켈톤!”
저격수 가족이다.
그들도 살리고 싶다.
물론 그 여자는 싫지만 그 딸은 다르다.
“1시간 후, 초대형종 몬스터가 온다. 타입은 크라켄. 빌딩만 한 놈으로 반경 2km 안의 모든 생명체를 죽일 수 있는 살인광선을 내뿜는 놈이다.”
다음 크리스마스에도 녀석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키보드가 아닌 나의 목소리로.
설령 무전기 특유의 노이즈가 낀다 하더라도,
내 소박한 바람이다.
뭐, 다른 의도도 있지만.
대답이 없기에 직접 차를 몰고 저격수의 영역으로 직진했다.
시간이 촉박하기에 골드의 영역을 지나갔다.
아니나 다를까 뮤테이션 견들이 입에 침을 흘리고 날 쫓아온다.
“게이밍 노트북 같은 새끼들이?”
총격과 속도로 놈들을 따돌리고 저격수의 영역에 도착했지만 날 반겨주는 건 날선 총성이다.
탕!
내 발밑에 탄환이 뚫고 들어가 흙먼지를 날렸다.
무전기에 대고 말했다.
“안 들려? 다 뒤진다고?”
대답이 없다.
다시 말했다.
“딸도 죽게 할 게냐?”
그 말은 효과가 있었다.
저격수와 그녀의 딸이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스켈톤!”
소녀가 날 보고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줬다.
“차는?”
저격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개솔린. 상했어.”
“타라.”
바로 탈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설득이 필요하다 생각했다.
그런데 저격수는 놀랄 정도로 쉽게 차에 올라탔다.
“봐써.”
그녀가 벨트를 매며 어눌한 한국어로 말했다.
“뭐?”
“몬스터.”
말 잘 들은 이유가 있었네.
“꽉 붙잡아라.”
차를 타고 영역에서 멀리 벗어났다.
아래가 내려다 보이는 야트막한 구릉에서 우리는 우리의 영역에 나타난 거대한 괴이를 목격했다.
다리가 달린 빌딩 같은 거상이 지상을 모독하듯 짓밟으며 그물과 같은 악의의 광선을 쏘아내며 살아 있는 것들을 흔적도 없이 쓸어버렸다.
생명체만을 파괴하는 살인 광선은 내 방공호 지대를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아마 저기 있었으면 곱게 죽진 못했을 것이다.
아마 반으로 갈려 죽지 않았을까?
산전수전 다 겪은 저격수지만 이 세상을 부정하는 괴이 앞에선 그저 겁에 질린 한 마리에 양에 불과했다.
그들을 가만 바라보다 한마디 했다.
“잠깐 거기 서 봐.”
“왓?”
“사진. 찰칵.”
“왜?”
“집에 프린터 있으니 뽑아줄게.”
개 같은 시대지만 추억은 있어야 하지 않겠나.
공교롭게도 사진을 찍을 때 우리 영역을 덮친 태풍이 소멸했다.
지축을 모독하고 산 것을 불태우던 몬스터가 환한 빛에 휩싸인 채 입자로 변해 스러져가기 시작한 것이다.
등불 하나 없는 어두운 대지를 배경으로 바람에 날리는 금박처럼 흩어지는 그 빛의 색채와 형태는 소름 끼칠 정도로 아름다웠다.
“······예뻐.”
소녀가 넋을 잃은 듯 그 모습을 보며 중얼거렸고 소녀의 어머니는 그 손을 잡은 채 함께 이 세상과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들이 섞이는 걸 응시했다.
찰칵
한 장의 사진이 폴더에 저장됐다.
*
SKELTON : (스켈톤 포토) 무제03
내 사진은 커뮤니티에 소소한 반향을 일으켰다.
귀한 댓글을 많이 수집했고 좋아요도 조금 받았다.
특히 여자아이 쪽이 귀엽다는 댓글이 많았다.
무슨 사진이냐고 묻는 녀석이 있었지만 저격수 가족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기에 대답하지 않았다.
내 정보는 안타깝게도 우리 커뮤니티 식구에겐 별로 도움이 되지 못했다.
경로상에 우리 친구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죽은 줄 알았던 keystone도 살아 있었다.
keystone : 배탈 나 죽는 줄 알았네.
이 자식 나 차단한 건가?!
아무래도 좋지만.
정작 내가 차단해주길 원하는 녀석은 날 차단하지 않았다.
Defender : 스켈톤 이 친구, 진지하게 멋진데? 미적 감각 있어. 빛을 다루는 건 투박하지만 구도를 잘 잡는군.
아니, 오히려 내게 적극 관심을 갖는 중이다.
그 정도라면 차라리 양반이다.
인간사냥꾼이 내게 사진이 첨부된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 사진 안엔 사륜 버기카에 저격수 모녀와 함께 탑승한 내 뒤통수가 선명하게 담겨 있었다.
Defender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스켈톤. 이거 너 맞지?
SKELTON : 아니오
Defender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덕분에 목숨 건졌다. 감사. 이 은혜 꼭 갚을게.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