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12화 (12/183)

11. 복권

전쟁이 시작된 지 1년 하고도 8개월.

슬슬 공기가 더워지는 나른한 봄날이다.

멀리 총성이 들려 온다.

또 시작인가.

대체 총알을 몇 발이나 가진 걸까. 저 모녀는?

수천 발은 쏜 거 같은데 허구한 날 쏴대는 걸 보면 총알공장이라도 차린 건가.

최근은 딸에게도 총질을 가르친 모양이다.

이따금 총성이 두 개 연달아 들리는 걸 보면.

멸망기의 조기교육이랄까.

미친 저격수가 훌륭한 사수인 건 맞다.

일반인은 발끝이나 차량의 백미러 같은, 간담이 딱 서늘할 정도의 저격으로 물러나게 하지만 좀비나 약탈자 같은 직접적인 위협엔 어김없이 미간에 총알을 박아넣는 걸 보면 말이다.

총알뿐만 아니라 중화기도 충분하다.

전에 내가 봤던 험비 안에 크레이모어는 물론이고 재블린 같은 유도무기도 포함되어 있으니까.

최근 날 거슬리게 하는 건 모녀의 총성이 아니다.

그건 좋은 울림이다.

내 신경을 거스르는 건 지금 바로 하늘을 가로지르는 수송기가 내는 굉음이다.

최근 부쩍 수송기가 늘었다.

어느 정도냐면 전쟁 직전과 비견될 정도다.

중국 쪽 저항은 다 사라진 걸로 아는데 뭐가 문제일까.

최근 서울에선 뜬금없이 복권이 유행이란다.

확실히 유행이긴 하다.

익명848 : 나도 소문으로 들었는데 꽤 좋다던데?

Kyle_Dos : 잠깐 서울에 들릴 일 있었는데 모두 복권 이야기만 하더라.

익명458 : 듣자 하니 1등 상품이 진짜 인생역전이라 카.더.라!

세상과 담을 쌓을 각오를 한 우리 커뮤니티 회원님들이 관심을 가지는 거 보면.

나는 조금은 무거운 남자라 생각했다.

진중하다고 할까, 세파에 잘 휩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SKELTON : (스켈톤 질문) 복권 어디서 사나요?

그런데 궁금한 걸 어쩌나.

모르면 물어야지.

안타깝게도 나 같은 비인기 유저는 답글이 잘 달리지 않는다.

뭐가 문제일까?

설마 (스켈톤 질문) 이게 머릿글이 문제인 건 아니겠지?

순전히 느낌 탓인데 평범하게 활동할 땐 지금 보다답글이 잘 달렸던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다행스럽게도 내 조바심이 바닥나기 전에 누군가 답글을 달아줬다.

Defender : 사는 게 아니야. 국가근로에 참가해야 얻을 수 있는 거라고.

“······.”

답변을 달아준 건 인간사냥꾼이었다.

고맙긴 한데 나 이 친구, 여전히 좀 그렇다.

좀 내 글에 댓글 안 달았으면.

그런데 이번 답변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Defender : 복권 인증

이 친구 진짜로 복권을 샀다.

<희망 복권>

그의 복권 인증은 그가 작성하려는 ‘복권 시리즈’의 서막이었다.

Defender : 지금부터 복권썰 연재한다. 보고 싶은 놈은 보고 무시할 놈은 무시해라.

놀라운 일이다.

살인인증만 올리던 이 사이코패스가 최근 가장 핫한 이슈에 관한 글을 작성한다는 게.

이 친구의 행동력이야 데미안04 사건으로 익히 알려졌지만 갑자기 이런 선량한 짓을 하는 이유는 아마도 일전 크리스마스 트리 사건과 관계가 있을 것이다.

아이엠지저스급은 아니지만 악담으로 가득 찬 장식을 보고 인간사냥꾼이 불평 섞인 글을 올린 것이다.

Defender : 아니, 내가 그렇게 잘못했나?

악담으로 가득 찬 트리를 보고 그는 꽤 충격받은 눈치였다.

그걸 본 나는 이 친구가 진짜 싸이코패스라는 걸 확신했다.

아무튼 원인이 뭐건 간에 인간사냥꾼의 복권 시리즈는 나를 비롯한 서울권과 거리가 있는 유저들의 정보 갈증을 만족시켰다.

희망복권은 놀랄 정도로 로또와 닮아 있었다.

다만 로또의 총 숫자가 46개인데 반해 희망복권은 44개로 당첨 확률은 로또보다 훨씬 높았다.

이 희망복권은 돈으로 살 수 없고 국가가 요구하는 근로사업에 참가해서 요구 작업량을 마친 사람들에게 임금과 함께 지급되는데 추첨은 3일에 한 번씩, 각 구청에서 지정한 장소에서 진행된다고 한다.

Defender : 5등 상품은 휴지였어.

운도 좋은지 인간사냥꾼은 복권 당첨으로 받은 휴지를 함께 인증했다.

내가 비축한 엠보싱 뽀송뽀송 휴지와 달리 갱지로 만든, 민감한 피부에 트러블을 일으킬 것 같은 거친 질감과 저급한 색깔을 가진 똥휴지였다.

이런 저급한 휴지도 생필품이 바닥 난 서울 시민에겐 몇 끼 식사분과 교환할 수 있는 가치를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등수가 높아질수록 상품은 좋아지는데 설탕, 쌀, 비축유는 물론이고 담배나 술, 의약품 같은 사치재도 포함된 모양이다.

대망의 1등 상품은 지극히 한국적인 트로피였다.

바로, 아파트다.

당장 폐허가 된 아파트가 사방에 널려 있는데 웬 아파트냐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평범한 아파트가 아니다.

Defender : 이런 아파트라는데?

인간사냥꾼이 사진 하나를 추가로 올렸다.

그의 글은 유익한 정보에도 불구하고 댓글이 거의 달리지 않았지만 마지막에 올린 사진은 예외였다.

<탈 전쟁시대 미래형 주거지 : 더 호프 >

사진 속엔 일전에 모두가 보고 경악했던 어느 재벌집 성채와 비슷한 디자인의 아파트 단지의 조감도가 그려져 있었다.

전체를 빙 둘러싼 콘크리트 벽을 중심으로 오밀조밀하게 선 아파트, 중앙에 자리 잡은 농경지와 제작소, 축구장과 농구장이 갖춰진 운동시설, 정중앙엔 각종 행사를 위한 강당과 부대시설이 마련되어 있었다.

재벌하우스와 비교하면 재벌의 저택이 다수의 아파트로 대체됐고 소형 골프장이 축구장 등으로 변화한 정도다.

물론 규모는 가문 구성원을 위한 재벌집보다 수천 배는 크다.

익명848 : 이거야. 이거.

Kyle_Dos : 장난 아니네? 실화냐?

익명458 : 이거 완전 보급형 재벌하우스 아니냐?

커뮤니티 유저들의 평가는 우호적이었다.

어느 정도냐면 우리의 오랜 믿음을 스스로 부정하는 유저도 나올 정도였다.

DocKim : 저런 데서 살아보고 싶다.

qwer1234 : 전쟁 전에 저런 게 있었으면 쌩돈주고 땅 파는 수고 안 하고 저기 들어갔겠지.

mmmmmmmmm : 방공호 생활 지긋지긋하긴 해. 한국 사람은 아파트에 살아야지.

확실히 방공호 생활이 지랄맞긴 하다.

겨울엔 춥고 여름엔 덥고.

습하고 냄새나고 벌레는 끝도 없이 밀려오고 비좁고 창문도 없다.

내가 틈만 나면 바깥에 나가 공기를 마시려 드는 것도 아무리 잘 꾸며봐야 방공호 안은 역시 답답하기 때문이다.

각고의 노력으로 확장을 거듭해 방공호라기보다는 지하제국에 가까운 내 아름다운 방공호가 이 정도인데 평범한 표준 사이즈 방공호에 사는 사람은 얼마나 답답할까?

내가 좋아하던 익명337이 자살한 이유는 복합적이겠지만 그 비좁고 불편한 방공호 생활의 스트레스가 상당한 지분을 차지했으리라는 것이 내 견해다.

한편, 화제의 아파트 “더 호프”에 관한 내 생각은,

SKELTON : (스켈톤 고찰) 더 호프, 좋고 나쁘고 따지기 전에 이거 실현 가능성이 있나요?

물음표다.

내 의견에 반응해주는 이는 늘 그렇듯 아무도 없었지만 누군가가 좋아요 하나를 달아주었다.

좌우지간, 인간사냥꾼이 던진 작은 공은 우리 멸망주의자 가슴에 저마다의 작은 반향을 울렸다.

그런데 이 친구, 제대로 일할 수 있는 놈이었나.

더 소름 끼치는데.

*

인간사냥꾼의 희망복권 시리즈 연재가 끝난 후 일주일이 지날 무렵 커뮤니티에 글 하나가 올라왔고 순식간에 인기글로 등극했다.

“아니?!”

실시간으로 그 글이 인기글로 올라오는 걸 본 나는 상당한 자괴감에 빠져 들었다.

일전에 내가 작성한 제풍호 회장과의 재벌썰은 마지막 화인 3화 부분에 가서야 간신히 인기글에 올랐는데 허심탄회하게 말하자면 여기엔 약간의 기술적 조작이 있었다.

모처럼 정성 들인 장문의 글이 묻히는 걸 차마 지켜볼 수 없어 나 박규 스스로 무한클릭 해 조회수를 뻥튀기한 것이다!

약 100회 정도 조회수를 올렸던 것 같다.

비바! 아포칼립스!의 창시자 멜론 마스크는 이런 사태까지는 예견하지 못한 듯 스스로 조회수를 올리는 기능까진 봉인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잡기술이다.

그런데 이 새로운 인기글은 그런 거 없었다.

보는 놈마다 댓글을 썼고 높은 빈도로 좋아요!가 달렸다.

그야말로 인기글 프리패스.

약간의 질투심과 허망함을 안고 글을 클릭해보았다.

mmmmmmmmm : 나 희망복권 당첨 됐다 ㅋㅋㅋㅋㅋ

“아.”

과연 그럴만한 내용이다.

패배감을 곱씹으며 내용을 음미했다.

-디펜더 글 보고 나도 방공호 나와서 국가 근로 지원했거든. 중랑구 쪽으로 들어갔는데 입구에 군경새끼들이 산적마냥 출입료 내라고 할 땐 빡치긴 했지만 복권이 너무 궁금해서 구청 앞에 비멸망주의자 거지새끼들 바글바글한 광장에 섞여 국가 근로 한 자리 받고 노가다 좀 뛰어서 복권을 받았지.

운 좋게 그날 추첨이라 구청 광장에서 확인했는데 그 결과는 아래와 같음!

<축하합니다! 희망복권 1등 당첨!>

mmmmmmmmm.

이 성의 없고 혼란한 닉네임의 소유자는 대한민국 서울시에서 발행한 희망복권 1등에 당첨됐다.

즉, 정부에서 광고한 미래형 주거지에 살 권리를 부여받은 것이다.

그 말은 지긋지긋한 방공호 안에서 혼자 궁상맞은 삶을 사는 대신 탁 트인 전망이 보장된 쾌적한 신축 아파트, 그것도 모두의 선망을 받는 준재벌급 하우스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다는 말과 같다.

당첨자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굳이 마음을 들여보거나 의중을 살필 필요도 없었다.

mmmmmmmmm : 야, 지금 결혼할 여자 어디서 구하냐? “더 호프” 당첨자면 예쁜 여자들 줄을 서겠지?

아주 신이 났다.

평생 개뿔도 없이 살다 하나 얻어걸린 놈의 표본이랄까.

그런데 이 친구.

복권에 당첨된 후 사람이 너무 갑작스럽게, 그것도 이상하게 변했다.

mmmmmmmmm : 내년 입주라는데 여기서 1년 더 버텨야 하나. 솔직히 정신병 걸릴 거 같은데.

mmmmmmmmm : 지금 생각해보면 굳이 방공호 파고 지랄할 것도 없이 원래 살던 집구석 안에 물자 숨겨놓기만 했어도 충분했을 거 같아. 서울에 있으면 배급도 나오는 모양이고.

mmmmmmmmm : 사람은 사람끼리 뭉쳐 살아야 한다고. 혼자 사니 약탈자 먹잇감밖에 안 되잖아?

mmmmmmmmm : 복권 당첨되서 그렇지 이 지옥에 계속 있을 생각하면 진짜 정신이 아찔해지네~

이제 자기는 더 좋은 곳에 간다고 우리 동료와 우리의 방식을 앞장서서 비난했다.

이 친구, 꽤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글을 많이 적는 타입은 아니었고 이런 모난 글을 적는 타입도 아니었다.

기쁜 마음은 알겠는데 조금 보기 껄끄럽다고 할까.

그래서 한마디 했다.

SKELTON : (스켈톤 충고) m9님. 복권 당첨된 게 벼슬입니까? 적당히 합시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었던 모양인지 스켈톤 충고를 필두로 여러 유저들이 그에게 언질을 줬다.

우리의 복권당첨자(이하 “m9”)는 그러나 멈추지 않았다.

mmmmmmmmm : 부러우면 부럽다고 말해. 솔직해지자고. 니들도 방공호 생활 접고 싶지? 물자 다 떨어져 가는 애들도 있을 거 아냐? 지난 겨울에 얼어죽을 뻔한 애도 있었을 거고, 당연히 여자도 없겠지? 도태한 패배자새끼들.

m9는 계속해서 우리에게 저주에 가까운 악담을 퍼부었다.

새로운 게시판 빌런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당연하게도 게시판 친구들은 이를 좌시하지 않았다.

익명848 : 차단

Kyle_Dos : 나도 이 새끼 차단

익명458 : 인간사냥꾼 뭐하냐? 저 새끼 안 잡아가고?

차단과 무시.

게시판의 질서를 어지럽힌 자에 대한 우리 커뮤니티 유저의 제재다.

한때 다수 유저의 차단목록에 올랐지만 의외의 순기능으로 나름 비중 있는 ‘네임드’로 발돋움한 인간사냥꾼도 m9에 대해 짧고 굵은 한마디를 남겼다.

Defender : 넌 이 나라를 믿냐?

m9는 대꾸하지 않았다.

죽기 싫겠지.

집에 들어오는 놈만 죽이는 것도 아니고 원정 살인도 마다하지 않고 멀쩡하게 정상인 코스프레하며 서울에 기어들어 가 국가근로까지 해가며 휴지 타오는 놈인데 안 무서울 리가.

그런데 이 m9라는 친구, 적어도 내겐 좋은 기억이 있다.

나는 그를 안다.

그는 존내논 초창기 팬클럽 일원이었다.

몇 안 되던 20대 친구였다.

그는 날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나는 그를 기억한다.

야매생고기집에서 고기를 굽던 그를 떠올리며 K-워키토키를 들었다.

개인식별번호 : DARAM으로 연락을 취하겠습니까?

개인식별번호를 이용한 일 대 일 통신.

개인식별번호를 부여받은 자만이 누릴 수 있는 멸망기의 특권이다.

“선배 쪽에서 먼저 연락을 하다니. 무슨 일이야? 지금 일거리 없는데. 아, 물론 전선엔 자리 많아. 차고 넘쳐.”

무전기 너머로는 은은한 재즈음악이 들려왔다.

이쪽과는 아마 풍경도 공기도 다르겠지.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어서.”

문제의 아파트에 관해 물어보았다.

내가 굳이 이 귀찮은 후배한테 연락을 취한 건 나 스스로도 그 아파트가 제대로 지어지지 않을 거라는 의심이 있어서다.

당장 재벌은 호족으로 격하됐고 공사를 맡을 만한 회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설령 사람을 구해서 만든다고 하더라도 그 재료와 그들이 약속하는 완전 자급형 시스템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그것도 재벌마냥 십수 명을 위한 것도 아닌 수천 세대가 살아갈 대규모 단지를.

무엇보다 나라에서 이런 복권을 지급한다는 것 자체가 근본부터 단단하게 뒤틀려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희망이란······.”

담배 연기를 내뿜는 김다람의 모습이 그린 듯이 눈앞에 떠올랐다.

“한낱 신기루 같은 거지.”

아마 그녀는 창밖에 펼쳐진 폐허를 보고 있을 것이다.

이미 현재를 잃었고 미래마저 잃을, 죽을 운명의 도시를 말이다.

약간의 침묵이 흐른 후 그녀가 얕은 한숨과 함께 또 하나의 사실을 말해주었다.

“우리, 제주도로 가. 늦어도 내년 봄까지는 전부 철수할 거야.”

그 말이 끝난 직후 공교롭게도 머리 위에서 수송기가 내는 굉음이 유독 크게 내 방공호 안을 울렸다.

“······.”

전부터 안고 있던 의문 하나가 풀렸다.

“이 이야기. 다른 사람한테는 하지 마. 나름 극비니까.”

그녀의 부탁은 당연히 수용했다.

나만이 알고 있었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SKELTON : 그 아파트, 안 지어질 확률이 대단히 높다더라. 세상일이란 어찌 될 지 잘 모르는 법이니 방공호 쪽과 물자관리 충실히 해둬라.

m9에게 직접 메시지를 보냈다.

그날, 야매생고기에서 고기를 솔선수범해서 굽고 잘라주었던 성실함에 대한 내 나름의 답례다.

곧 답신이 왔다.

mmmmmmmmm : 차단

선의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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