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재벌 (2)
전쟁이 일으킨 가장 큰 피해는 핵공격이 아니라 차가운 물밑에서 이뤄지는 음습한 암습이었다.
거의 모든 물자를 해외에 의존하는 대한민국은 바닷길이 끊기면 죽는 구조다.
중국의 잠수함이 무역로를 공격하자 한국의 뱃길은 마비됐고 한국의 경제는 사형선고를 받았다.
파풍도 죽을 운명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다만 다른 그룹보다는 좀 더 오래 연명할 가능성은 있긴 했다.
계열사 중에 건설과 유통은 물론 중공업도 있었고 방산 기업도 있었으니.
그래서일까.
작전 구역에 동원된 장비는 상상 이상으로 화려했다.
화염 방사기 및 20mm 기관포로 무장한 내가 모르는 신형 장갑차 5대, 유사시 항공 지원이 가능한 40kg급 쿼터 드론 3기, 미군 출신으로 보이는 외국인 용병 1개 소대, 기타 개인화기로 무장한 응원병력 이백여 명.
젊은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나마 젊은 축이 30대 중후반이고 대부분은 40대, 50대도 제법 많았다.
작전 지휘를 맡은 건 최이사라는 사람으로 육군 대령까지 한 사람이라는데 대 몬스터 작전 경험은 전무했다.
고문으로 헌터 하나가 있는데 내가 모르는 얼굴인 건 물론이거니와 제대로 된 헌터도 아니었다.
내가 말하는 ‘제대로 된 헌터’란 국제 기준을 만족하는 ‘학교’에서 체계적인 교육과 훈련을 받고 검증된 사수 아래서 1년 이상 실전 경험을 쌓은 뒤 균열 앞에 설치된 게이트 지대에서 1년 이상 전투를 경험하고 C급 이상 등급을 획득한 사람을 말한다.
나의 멘토 존내논처럼 학교를 나왔으나 중도에 그만둔 사람은 D급으로 대 몬스터 전에서는 전력 외 취급이다.
그런데, 그 전력 외 취급이 한때 대한민국을 쥐락펴락하던 재벌 그룹의 명줄을 틀어쥐고 있었다.
“현역 국회의원이자 헌터인 박상민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배우처럼 수려한 외모를 지닌 이 사내는 국회의원이다.
듣자하니 헌터 출신인 걸 내세워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이른바 특화형 비례대표란다.
제대로 된 헌터도 아닌 사람이 무슨 자격으로 헌터 집단 전체를 대표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유사군복 깃에 부착되어 반짝거리는 무궁화 배지는 제법 멋들어져 보였다.
명목상 지휘관은 최이사였지만 실제로 작전을 주도한 건 박상민이었다.
“이 공단 구역에 대량의 좀비가 발생했지만 연구 결과에 따르면 좀비 수명은 일 개월입니다. 일 개월이 지나면 좀비도 굶어 죽죠. 이 작전을 연기한 건 불필요한 좀비와의 전투를 피하기 위해섭니다.”
잘생긴 얼굴에 목소리가 조곤조곤하고 신뢰감이 있어 개소리를 지껄여도 잘 모르는 입장에선 그럴듯해 보였다.
“국위원 파견 헌터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어째서인지 그는 사사건건 내 생각을 물었는데 의도가 너무 뻔했다.
나를 깔아뭉개려고 하는 것이다.
내가 국위원에서 보낸 헌터니까.
현 시점으로 국회는 아무 실권도 없는 그들만의 리그인 반면 실권을 틀어쥔 건 국위원이다.
그 악감정이 나에 대한 조롱으로 변질된 것이다.
그 정도야 웃고 넘어갈 수 있다.
길어봐야 3년. 이 친구의 수명이다.
문제는 박상민이 실패가 예정된 이번 작전 실패 책임을 나한테 돌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다.
그건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다.
나는 조용히, 홀로, 때가 되면 모두와 연락을 끊고 안온하게 살아가야 할 사람이다.
“제가 볼 땐 좀 아닌 거 같은데요.”
“아니오, 의원님이 잘못 알고 계신 겁니다.”
“전혀 동의하지 않습니다.”
해서 사사건건 태클을 걸었다.
태클을 안 거는 게 힘들기도 했다.
그야 이 친구, 헛소리만 하니까.
“저는 다르게 봅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고 박상민도 몇 번 당하자 반격을 가해왔다.
“3D로 보세요?”
이게 그의 반격이다.
머리에 든 게 없으니 비아냥과 개소리로 내 말 자체를 무마하려 한다.
무시하고 할 말 계속했다.
“좀비가 굶어 죽을 거 같으면 셧다운을 합니다. 가사상태에 빠져 신체 대사를 극단적으로 낮추죠. 한 달 동안 활동하다가 영양분을 찾지 못하면 굶어 죽는 건 사실이지만 태양을 피할 수 있는 도심에서 근거지를 마련한 좀비는 다르게 봐야 할 겁니다.”
“아~ 참. 개미위키 끄시고요~.”
박상민은 대단히 무례했지만 우리의 대화를 지켜보는 보는 그룹 중진의 표정은 썩 밝지 않았다.
특히 회장의 변화가 두드러졌다.
문외한이라고 하나 말의 맥락만 봐도 누가 더 옳은 소리를 하는지는 명확하니까.
언쟁의 클라이맥스는 목적지인 공단 진입 방식에 대한 논쟁이었다.
박상민은 장갑차부터 앞세워야 한다고 설파했고 나는 그 반대를 주장했다.
“아니, 의원님. 총 쏘는 좀비 본 적 있습니까? 들어본 적 있어요? 좀비는 소리와 냄새에 민감합니다. 기름냄새와 엔진소음 울리는 장갑차 끌고 가면 우리 여기 있다고 광고하는 거밖에 안 돼요.”
“그만!”
박상민이 팔을 휘저었다.
험상궂은 보좌관이 내 앞을 막아서 내 입을 막으려 들었다.
그들을 뿌리치며 할 말을 계속했다.
“먼저 노련한 정찰조를 앞세워 진형을 살피고 그에 따라 진입 방식을 결정해도 늦지 않아요. 네? 싸움은요, 설계가 90%입니다. 10%가 개인 기량이고요. 설계가 개판이면 이길 수 있겠습니까?”
“이 새끼가 진짜 보자보자하니까. 씨발.”
박상민의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냈다.
“버러지 같은 새끼가 국회의원이 좆으로 보여? 어? 어디다 대고 감히 꼬박꼬박 말대꾸 하고 있어?”
그룹 사람들이 나와 박상민을 떼어놓았다.
운 좋게도 나를 다른 곳으로 데리고 간 사람은 내가 여기에 온 목적이기도 했다.
“지창수 사장님 되시죠?”
“네. 맞습니다만.”
“따님한테 부탁을 들었습니다.”
“영희에게요?”
영희.
모범적인 이름이었다. 그 여성은.
나는 지창수에게 이번 작전의 위험성을 내가 아는 지식과 경험을 곁들여 간략하게 설명했다.
하청업체라고 하나 직원수 3천 명이 넘는 회사를 경영한 사람답게 지창수는 내 말을 신중하게 받아들이는 눈치였다.
결정타로 그의 의심을 날려 보냈다.
“사실 저 D급 아닙니다. 자랑은 아니지만 저 기생오라비하고는 급이 다릅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끈이 그의 마음을 붙들어 매고 있었다.
“하지만 회장님이······.”
“회장님이 무슨 문제입니까? 솔직히 그룹이고 뭐고 다 끝난 거 아닙니까? 거래를 계속 하세요? 아니, 거래할 건수라도 있습니까?”
지창수를 고개를 가로저었다.
고개를 가로저었지만 그는 나이 든 사람이 으레 후배들에게 설교를 할 때 지을 법한 깊고 심각한 눈빛을 한 채 허공을 응시했다.
“박헌터님은 아직 젊으시니 잘 모르시겠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가 그리 쉽게 맺고 끊는 게 아니에요. 하물며 우리처럼 같은 시간과 경험을 공유한 사람들은···.”
“······.”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나 또한 그와 비슷한 고민을 한 적 있으니.
“게다가 우리가 이 무너져가는 집단에서 뛰쳐나간들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요? 막말로 파풍맨에서 일개 피난민밖에 안 되는 거 아닙니까?”
“사장님이 살아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가족이 있지요.”
“······”
“저는 기다려 줄 가족이 없습니다.”
먼저 자리를 떠났다.
“제가 신호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나세요.”
“하지만 회장님이!”
“걱정 마십시오. 회장님도 줄행랑 치실 테니.”
작전의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장갑차가 선두에 서고 좀비들이 몰려 들었다.
기세는 좋았다.
화염방사기와 기관포로 시체의 벽을 쌓으며 중심부로 전진할 때까지는.
그러나 곧 한계에 부딪쳤다.
좀비들이 사방에서 포위해 퇴로를 막았고 설상가상으로 내가 가장 우려했던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광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회백질 표면으로 이루어진 3m 크기의 피조물이 허공 위에 떠올라 인간들을 굽어보고 있었다.
마치 호흡처럼 방출할 때마다 주변을 일렁거리게 만드는 충격파를 내뿜으며.
그것은 살아 있는 생명체라기보다는 석상에 가까웠다.
아니, 우상이라고 할까.
현장에 있던 모든 인간들은 저마다의 공포와 경이에 사로잡혀 그 존재를 올려다보았다.
침묵 속에서 지창수의 팔목을 붙잡고 말했다.
“튑시다.”
그것은 인류의 적, 몬스터다.
인류는 몬스터를 이길 수 없다.
*
전투 결과.
대부분의 장비가 파괴되고 용병을 전부 잃었다.
최이사도 전사했다.
응원 병력으로 온 직원 200명 중 살아서 돌아온 건 절반에 불과했다.
박상민은 살아 남았는데 패인을 최이사의 무능과 파풍 그룹의 준비 부족으로 돌렸다.
아무래도 좋은 일이다.
지창수는 살았으니.
“이걸로 그 회장의 고집도 한풀 꺾였겠지. 고마워. 협조해 줘서.”
김다람은 웃으면서 반겼지만 그 미소는 썩 즐거워보이진 않았다.
그녀도 어쩔 수 없이 이번 일을 주선한 것이다.
이해한다.
모든 것이 무너진 세상에선 힘 있는 개인의 주장을 무시하길 어려웠을 테니.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어. 그런데 왜 그런 짓을 한 거지? 대충 내막이 예상가긴 하지만.”
“두 놀이터가 있고 한 놀이터가 망했어. 망한 놀이터에서 제일 잘나가는 아이가 다른 놀이터에 왔는데 안 끼워준 거지.”
“애 엄마다운 비유구만.”
“아무튼 기뻐해. 더 이상 귀찮게 안 할 테니.”
김다람이 내게 축전과 함께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보내왔다.
그 선물이란 개인식별번호다.
이제 나는 군용주파수의 세계에서 특별한 지위를 누린다.
“그런데 그 회장이 당신을 다시 보자는데?”
“보기 싫은데?”
“만나고 말고는 선배 자유야. 이제 그 사람도 힘 다 떨어졌으니. 이제 영향력을 끼칠 자원도 안 남아 있거든?”
무엇이 나를 제풍호와 다시 만나게 했을까.
돌이켜보면 호기심이었던 것 같다.
몰락한 재벌의 끝이 어떤 것인지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보고 싶은 광경 아니던가.
제풍호는 그의 본사 건물 3층에서 날 접견했다.
전에 날 55층으로 올려다 주던 공사용 엘레베이터는 가동을 멈춘 상태였다.
고급스러운 화장실에는 지린내가 진동을 했다.
제풍호는 식사를 차려놓고 날 기다리고 있었다.
주메뉴는 스테이크로 송로버섯을 곁들였고 술도 샤토 뭐시기이라는 최고급 와인을 준비해두었다.
버섯과 술은 훌륭했지만 그의 고기는 내 방공호 안에 저장한 것보다 격이 확실히 떨어졌다.
“박 헌터.”
그가 날 환하게 웃으며 맞이했다.
그 얼굴은 급식소에 봤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자네 경력을 살펴봤어. 뒷조사를 했지. 상당한 거물이더군.”
“지금은 퇴물입니다.”
“나랑 똑같구만.”
제풍호가 눈을 반짝였다.
“저 꺼드럭거리는 이상훈 따위는 상대도 안 됐다며? 이제는 반쯤 전설이 된 구원자 강한민, 나혜인과 같은 팀이었다고 하던데.”
“······.”
술맛이 팍 꺾였다.
듣고 싶지 않은 이름을 들어버렸다.
내 기억에서 거의 지워버리는데 성공한.
“절 부른 이유가 뭡니까?”
“보아하니 뭘 말하든 거절부터 할 생각이군그래?”
“잘 아시네요.”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그 공단에 다시 도전할 생각이야.”
“안 될 겁니다. 봤잖습니까?”
“안 되는 걸 알지만 해야만 하는 때도 있는 법이지”
제풍호가 유난히 반짝이는 눈을 반쯤 감은 채 피처럼 붉은 와인 잔을 회한을 담아 지그시 응시했다.
“나, 첩의 자식이었어.”
“······.”
“모친이 장미숙이라고 돼 있는데 내 모친이 아니야. 내 모친은 이름도 못 남겼지. 그런 내가 세상에 난 시점에 내가 그룹을 이어받을 가능성은 0%였지. 그런데 난 해냈어.”
제풍호의 안광이 짙어졌다.
정확히는 가늘게 뜬 눈을 크게 떴고 천정에 뜬 미등의 불빛을 더 크게 받은 것이지만 나는 그의 안광이 더 강해진 것으로 착각했다.
“가로막는 모든 놈들을 다 몰락시키고 짓밟고 아버지가 날 선택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지.”
그에겐 그럴만한 기백이 있었다.
“내 나이 69. 다시 도전할 때가 왔어.”
“저는 안 할 겁니다.”
“방법만 알려주게. 그 괴물을 쓰러뜨릴 방법을!”
그 요청까지 거절할 순 없었다.
뭐, 그에겐 받은 은혜가 있지 않나.
따뜻한 국밥 한 그릇에 소주 한 잔이라는.
“······네크로맨서라 불리는 타입입니다. 보셨다시피 죽은 사람을 뮤테이션화 하여 좀비로 일으켜 세우는 놈이죠. 공격을 받으면 주위에 반사역장을 치는데 생물체 같은 유기물까진 반사하지 않습니다. 접근하기 대단히 어렵긴 하지만. 접근할 수만 있다면 어떻게든 도모할 순 있겠죠. 그리고 단 한 군데 역장이 없는 곳이 있는데 동전 하나 크기만 한 크기로······.”
제풍호는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열심히 메모장에 나의 정보를 받아적었다.
이야기가 끝난 후 그에게 물었다.
“왜 그렇게까지 거기에 집착하십니까? 가진 재산과 인맥만으로 충분히 대비할 수 있잖습니까? 적당한 곳에서 자리 잡으면 가족과 주변 인물 정도는 충분히 지키고도 남으실 텐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그가 울먹이며 반문했다.
“나만을 믿고 따르는 파풍의 수천, 수만 명의 직원이 있는데?”
그의 눈이 묘하게 빛나는 이유를 이제는 알 것 같았다.
그는 뼛속까지 보스였다.
사람을 거느리고, 사람을 따르게 만드는.
아니, 어쩌면 그는 자신과 파풍을 동일시 했는지도 모른다.
*
제풍호의 마지막 도전은 실패로 끝났다.
사망자 명단에 나에게 말을 걸어주었던 여성의 부친이 없는 건 소소한 만족으로 다가왔다.
제풍호가 야심차게 차린 급식소는 마약 중독자의 소굴로 쓰이다 지금은 버려져 아무도 찾지 않는 흉물로 변했다.
이것이 내가 알던 한 재벌의 끝이다.
덕분에 나는 만년 비인기 유저에서 인기글 하나를 작성하는 나름 저력 있는 유저로 거듭날 수 있었다.
그런데 제풍호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은 모양이다.
전쟁 발발 후 1년하고도 10개월 지날 무렵 커뮤니티에 사진 한 장이 올라왔다.
gijayangban : 이거 페일넷에서 주운 사진인데. 어딘가 낯이 익지 않냐?
사진에 찍힌 건 한 무리의 좀비 떼였다.
지방에서 활동하는 모양인지 수천 마리라는 초대규모 집단을 이루고 있었다.
그런데 그 선두에 서 있는 좀비, 눈에 익은 얼굴이다.
틀림없다.
번들거리는 양복을 입은 좀비는 제풍호, 파풍 그룹의 회장이었다.
대부분의 재벌이 그룹을 버리고 십수 명 남짓한 가문만의 성채에 안주한 반면, 이 굴지의 기업가는 오늘도 수천 명에 달하는 추종자를 이끌고 버려진 폐허를 누비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