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9화 (9/183)

9. 이웃

탕!

늦은 오후, 멍하니 간이의자에 앉아 하늘을 보고 있노라면 간간이 남쪽에서 총성이 들려오곤 한다.

둔탁하면서도 넓게 퍼지는 총성의 패턴.

남동쪽에 사는 저격수의 것이다.

원래 작은 시가지가 있었다.

거리는 직선으로 약 5.5km.

교회와 마트가 있었고 마을 은행과 주민센터, 초등학교가 있는 나름 번화가였다.

전쟁이 시작되면서 일대는 쑥대밭이 되었지만 철골 콘크리트 건물 몇 동이 뼈다귀만 남은 시체 같은 오싹한 모습으로 남았다.

여기엔 나의 몇 안 되는 이웃인 미친 저격수가 살고 있다.

‘미친’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이유는 그 저격수가 지나가는 모든 걸 일단 쏘고 보기 때문이다.

영역 안에 접근하는 모든 사람을 죽이려는 행동은 우리 커뮤니티의 인간 사냥꾼을 연상하게 하는데 사실 죽이려는 의도만 같지 깊게 파보면 둘 사이엔 하늘과 땅 차이만큼의 격차가 있다.

인간 사냥꾼이 사람을 죽이는 건 자신의 영역을 감추고 드러내지 않기 위해서다.

반면 미친 저격수는 일단 쏘고 본다.

다른 선택지는 없다.

사방을 감제할 수 있는 고층 건물에 매복한 채 스코프를 통해 세상을 들여다보며 유효사거리 안에 들어온 모든 것들을 사살하려 든다.

물론 이 저격수도 사람이다.

그녀도 정온동물의 따뜻한 심장을 가졌고 사람을 사랑할 줄 안다.

내가 저격수를 아는 것처럼 그 저격수도 나를 알고 있다.

이야기는 전쟁 발발 후 3개월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

때는 연말연시였다.

흥청망청 붐비는 사람들, 반짝이는 트리, 백화점 안에서 떼쓰는 아이들, 거리를 소복이 덮은 눈, 곰곰이 생각해보면 섬뜩한 사내인 산타클로스 등등의 시기지만 전쟁 직후에 그런 건 더 이상 되찾을 수 없는 빛바랜 추억일 뿐이다.

당시 나는 미군기지에서 빼 온 무기의 상태를 파악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총기와 탄약은 단단하게 지은 방공호 안에 있어 손상이나 방사능 낙진의 직접적인 접촉은 없었지만 핵폭발을 직격으로 받은 지대에 있던 것이라 방사능 오염이 우려됐다.

다행히 검사 결과 총기도 탄약도 쓸만하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내 무기고에 그대로 비치했다.

안타깝게도 소총 이상의 무기는 없었다.

기대했던 헌터 장비는커녕 수류탄 이상의 무기도 없었다.

군 관계자가 아니라 함부로 속단해서는 안 되겠지만 기지는 핵공습이 있기 전에 비어 있었다.

어지러이 널린 채 파쇄된 서류, 급하게 버리고 간 듯한 물자와, 책상 위에 고스란히 방치 된 커피가 담긴 머그잔을 보면 말이다.

미국 쪽의 상황도 마냥 좋지 않았다.

한국에 가한 핵공습은 빙산의 일각이다.

거긴 수백 발이 떨어졌다.

우주군이라 불리는 미군답게 대부분을 요격하는 기염을 토하긴 했지만.

그러나 미군에게도 담당 일진이라는 건 존재한다.

몬스터다.

몬스터는 다른 차원에서 온 인간과 전혀 다른 원리와 논리로 만들어진 존재로 생물과 비생물의 특징을 동시에 가지는데 인간이 가지지 못한 권능과 기적을 가지고 인간을 멸하려는, 인류의 천적이다.

그것은 균열이라 불리는 차원의 틈새에 나타나는데 이 균열은 두 가지 특징을 가진다.

하나는 균등한 배치다.

각 균열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열린다.

한국엔 4개가 있는데 치명적인 건 파주에 있는 파주 균열 하나다.

왜 유독 하나만 치명적이냐면 균열은 강도(强度)라는 또 다른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균열의 강도는 인근에 거주하는 인간의 숫자에 비례한다.

수도권을 아우르는 파주 균열의 강도는 최고 등급인 반면, 제주 균열은 가장 낮은 등급이다.

인구가 많고 영역이 넓다는 것은 강국과 소국을 가르는 전통적인 요건이지만 이제는 빨리 망하는 나라의 요건이 되었다.

인구와 영토를 두루 갖춘 인도와 중국이 빠르게 멸망한 건 우연이 아닌 필연이다.

둘보다 인구가 적은 미국은 그나마 사정이 낫지만, 거기도 마냥 안전지대는 아니다.

영토가 너무나 넓고 인구도 그리 적다고 볼 수 없으니.

실제로 전쟁 전에 미국 측에서는 주요국에 전개한 병력을 본국으로 송환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전쟁 발발 전, 한국엔 미군이 한 명도 남아 있지 않다는 말까지 심심찮게 들릴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그 멸종했다던 미군이 내 영역에 침범했다.

12.7mm 기관총을 떡하니 상판에 올린 육중한 험비를 끌고 말이다.

험비가 파죽지세로 골프장을 지나 내 영역에 올 때 나는 이 세상, 운이 전부요 나머지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옛 선현의 말을 떠올렸다.

아니, 시발 왜 하필?

내가 무슨 죄를 지어서?

버린 무기 좀 주워갔기로서니 그게 죄가 돼?

갖가지 생각이 교차하는 가운데 험비는 내 영역 제11 방공호 앞에 멈춰섰다.

차에서 내린 건 금발의 젊은 여성이었다.

여자라고 하나 체격이 나만큼이나 컸고, 헬멧을 쓰고 방탄조끼를 입고 각종 부착물이 붙은 총기를 든 그녀의 무장 상태는 나보다 훨씬 뛰어났다.

당시엔 폐쇄회로 카메라와 감청 장비가 복구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기존에 있던 것들은 핵공습 당시 김노인의 집과 함께 까맣게 타버렸다.

설상가상으로 이때를 대비해 설치한 잠망경이 움직이지 않았다.

핵공습 당시 불어닥친 무지막지한 후폭풍이 몰고 온 파편이 틈새에 낀 모양인데 힘으로 움직여봐야 이쪽에 사람이 있다는 것밖에 알려주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해서 미세한 관측창만을 통해 들어오는 빈약한 정보에 의지해야 했다.

곧 그녀가 사각지대로 이동했다.

나는 자리에 머물렀다.

아직 내 영역에 침범한 미군의 숫자가 어느 정도인지 파악하지 못했으니까.

적게는 하나가 있을 수도 있고 많게는 3명, 그 이상이 저 강철 야수 안에 도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잘 훈련되고 무장된 미군과 싸우는 건 나로서 원하는 바가 아니지만, 그들이 내 영역을 노린다면 나로서는 다른 선택지는 없다.

전부, 죽이는 수밖에.

한참을 지켜봐도 험비 안에선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부스럭

메인 방공호 측면에서 인기척이 났다.

아까 그 여자다.

어떻게 할까.

여성을 빠르게 제압할 수도 있다.

그쪽이 난이도가 낮다.

하지만 나는 다른 방안을 생각했다.

저 여자가 정찰조라면 차량 안의 미군들은 방비 되어 있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한 번의 기습으로 주력을 괴멸시킬 수 있다면 이 쉽지 않은 싸움은 완벽한 승리로 끝나리라.

즉시 행동에 들어갔다.

병사의 발소리를 듣고 경로를 예측한 후, 소리 없이 더미 방공호의 출구로 나와 몸을 숨긴 채 험비 쪽으로 이동했다.

문이 하나 열려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문은 줄곧 열려 있었고 내가 다시 험비를 시야에 두었을 때도 열려 있었다.

험비 안에서는 반응이 없다.

총기 조정간을 자동으로 바꾸고 다가갔다.

진입 직전, 뒤편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순간 나는 당황했다.

“?!”

소리가 난 영역은 예측하지 못한 곳에서 들렸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침착하게 험비 안으로 진입해 총구를 겨누었다.

차량 안은 비어 있었다.

사람이 타고 있어야 할 후방 좌석엔 산더미 같은 총기와 탄약, 전투식량이 마구잡이로 뒤섞여 있었다.

꿀꺽

침이 절로 넘어갔다.

어마어마한 장비다.

나름 인간의 도를 지키려 하는 나 박규조차 약탈자로 변해버릴 수 있을 정도의 장비가 담겨 있었다.

한 명인가.

두 명인가.

머리가 평소보다 빠르게 회전했다.

알 수 없지만 최소 두 명이다.

여성 병사는 내 탐욕을 알지 못한 채 휘파람을 불며 자신의 위치를 알리고 있었다.

그녀를 제압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뒤에서 발을 걸어 넘어뜨린 후 등을 짓밟고 뒷덜미에 차가운 총구를 겨누었다.

방아쇠를 당기고 다음 전투를 준비하려고 할 때였다.

다른 병사가 측면에서 나타났다.

두 번째 병사는 살의로 얼룩진 내 마음에 의문이라는 조약돌을 던지기 충분했다.

여자아이다.

열 살 정도 됐을까?

모든 게 불타버리고 재만 남은 골프장과 그 폐허라는 세기말적 정경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천진난만한 아이가 살인을 하려는 날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문득 나는 아이와 여성의 머리색이 같고 생김새 또한 비슷하다는 걸 발견했다.

아이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엄마를 불렀다.

“······.”

잠시 고민했다.

이들을 죽이고 모든 것을 빼앗을 것인가.

아니면 위험을 감수하고 이들을 놓아줄 것인가.

쉬운 문제는 아니다.

전자가 이득 면에서 아득히 유리한 건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머리에 총 맞지 않은 이상 누구나 전자를 선택할 것이다.

“······후우.”

심호흡을 했다.

수많은 생각이 덩굴처럼 의식을 휘감았지만 결국 내가 선택한 건 그다지 현명하지 않은 길이었다.

그녀의 등에서 발을 떼고 그녀의 총기를 발로 찬 후 뒤로 물러섰다.

병사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벌떡 일어나더니 여자아이에게 다가가 그녀를 감싸고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숨을 헐떡이는 그녀의 푸른 눈동자에 맺힌 내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핏발 선 눈동자 중앙에 고요하게 선 나는 공포와 경멸이라는 음울한 로브를 걸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순간 나는 이 타국의 병사가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녀는 나를 자신과는 명백히 다른 존재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할 필요도 없는.

이를테면 그녀는 정글 안에 던져진 문명 세계의 유일한 주민이고 나는 그녀를 둘러싼 정글의 거주자다.

왜, 생김새가 다르고 언어도 다르고 문화도 다른데.

이런 극한 상황에서 굳이 서로를 이해할 필요가 있을까?

처지를 바꿔놓아도 결과는 비슷했을 것이다.

“여기. 내 땅.”

내 영역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들의 언어를 알지만 굳이 쓰진 않았다.

“내 집.”

여긴 한국이니까.

한국이 로마는 아니라고 하지만 모든 것이 무너지는 현재 한국은 로마만큼 역사적이다.

“?”

“나가. 당장.”

“······.”

“안 나가면 빵! 알겠어?”

여성이 눈치를 보다 권총을 재빨리 뽑아 겨누었다.

한발 빠르게 발로 권총을 차 떨어뜨린 후 총구를 관자놀이에 겨누었다.

아이의 비명이 짤막하게 울려 퍼졌지만 나는 아이에게 윙크를 보낸 후 여성에게 말했다.

“적당히 해라. 이년아.”

“이년?!”

외국에 나가면 욕부터 배운다더니.

알아듣나 이 말은.

“투 이어?”

“꺼져.”

그제야 여성도 나에게 살의가 없다는 걸 깨달은 모양이다.

그렇다고 해서 다름이 희석되는 건 아니다.

여전히 미세한 경계를 드러낸 채 그녀가 어설픈 한국어로 말했다.

“약.”

“약?”

“메디신. 이써?”

“어떤?”

여성이 아이 쪽을 가리켰다.

“기다려라.”

해열제와 감기약은 물론 항생제와 탈지분유 한 통을 내밀었다.

그녀는 내 호의에 놀라는 눈치였는데 특히 탈지분유를 보고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볼 정도였다.

“다시는 오지 마라.”

모녀는 답례도 없이 떠나갔다.

날 약탈자로 만들 뻔한 보물을 가지고.

남동 쪽의 이웃이 생긴 건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다.

여전히 그녀는 정글 속에 있었고 함께 정글로 내던져진 아이를 지키기 위해 편견이라는 망령과 싸우고 있다.

그 이후에 한 번의 왕래가 있긴 했다.

어둑한 밤, 여자아이가 홀로 내 방공호에 찾아왔다.

내 분유를 먹고 자랐는지 전보다 키가 훌쩍 큰 아이가 울먹이는 얼굴로 방공호 주위를 서성이며 날 찾았다.

모습을 드러내자 아이가 말했다.

“엄마, 아파.”

아이는 엄마보다 한국이라는 정글에 더 잘 적응한 것처럼 보였다.

마치 정글북의 모글리나, 상업적으로는 타잔처럼.

먼지 덮인 차량을 끌고 총성이 들리는 마을로 진입했다.

여성은 탈진했고 병들어 있었는데 내 눈에 비친 그녀는 도시의 문명인이라기보다 덫에 걸려 신음하는 정글의 야수처럼 보였다.

적당한 처방을 하고 약을 남기고 돌아섰다.

일체의 말은 섞지 않았고 할 필요도 없었다.

일을 마치고 돌아서려는 날 향해 아이가 갑자기 내 팔목을 잡았다.

“이름.”

아이가 내 이름을 묻고 있었다.

“박규.”

“뻐큐?”

아이가 중지를 세워 올리며 의아해하는 걸 보며 나는 쓴웃음을 머금으며 닉네임을 대신 말해줬다.

“······스켈톤.”

아이는 그 이름을 음미한 듯 되뇐 후 활짝 웃으며 복창했다.

“스켈톤!”

시간은 흘러 현재.

마침 크리스마스 이브다.

커뮤니티에서는 게임개발자 익명118이 전쟁 전에 나돌던 걸 컨버전한 가상 크리스마스 트리 꾸며주기 컨텐츠가 유행하고 있었다.

대단한 건 아니고 한 장의 스프라이트로 그린 크리스마스 트리에 10개의 빈칸이 있고 그 각각의 빈칸을 다른 유저가 9가지 장식품 중 하나를 선택해 응원의 메시지로 채워주는 구조다.

SKELTON : (스켈톤 부탁) 제 트리도 꾸며주세요~

아직 비인기 유저에 친목하는 이도 없어 내 크리스마스 트리는 텅 비어 있지만 때로는 비어 있는 게 가득 찬 것보다 나을 때도 있는 법이다.

IamJesus : 어떤 새끼야?!

한때 차단했던 자칭 예수그리스도인 이 정신병자의 트리는 익명의 축하 메시지로 가득 채워졌다.

<백혈병, 간암, 류마티스, 루게릭, 심근경색, 뇌졸중, 폐경색, 천식, 결핵, 마비, 3차 신경통>

인간사냥꾼도 그에 못지 않게 많은 메시지를 받았다.

즐겁게 웃으며 보고 있자니,

띠링~

뭔가 왔다.

[ 익명의 유저님이 SKELTON님에게 메시지를 보냈어요~ ]

확인해보았다.

텅 빈 트리에 장식 한 자리가 찼다.

<존내논>

“어라?”

존내논?

뭐지? 이건?

무슨 의미지?

내 의문은 갑자기 울린 K-워키토키의 잡음에 의해 잠시 구석으로 밀려났다.

-치지직... 치직!

밤 11시.

이 시간, 이 외딴곳에 공용주파수를 울린 적은 없는 것으로 기억한다.

곧 나는 범인의 정체를 알게 됐다.

“메리 크리스마스~.”

앳된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스피커에서 울려 퍼졌다.

“스켈톤!”

틀림없다.

나의 이웃이다.

대답을 해야 하나 잠시 고민했지만 그 결과는 내 입가에 미소가 배어들 때부터 정해져 있었다.

“메리 크리스마스.”

이름을 물어볼 걸 그랬다.

짧은 교류였지만 그날 나는 어떤 크리스마스 트리 메시지보다 깊은 여운에 잠긴 채 평소라면 결코 꺼내지 않을 위스키를 꺼내 감상에 잠겨 들었다.

“후.”

문을 열자 차가운 공기가 기껏 아깝게 난방한 더운 기운을 날려버렸지만 마음은 한결 시원해졌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칠흑처럼 검고 수많은 별을 흩뿌려 놓은 겨울 하늘.

신에게 선택받지 못했다는 걸 깨달은 이후 기도를 올린 적은 없었다.

두 손을 모으고 밤하늘을 향해 빌었다.

이들 모녀의 총성이 오래도록 들려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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