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6화 (6/183)

6. 손님들

내 방공호는 한적하고 조용한 곳이지만 그래도 무인도는 아니기에 가끔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것들이 없잖아 있다.

첫 번째 유형은 스케빈저다.

약탈자와 달리 주인 없는 물건만을 노리는 사람들로 폐허를 누비고 챙길 수 있는 모든 걸 싸그리 긁어가는 인간들이다.

내 영역에 나타난 건 초록버스를 타고 온 스무 명 규모의 스케빈저 집단이었다.

그들은 공군 기지 쪽을 중점적으로 수색했는데 일부가 내 은신처 쪽으로 어슬렁거리며 다가왔다.

스케빈저들은 내 영역에 쌓인 산업폐기물을 잠시 살피고는 서로에게 화를 내며 공군 기지 쪽으로 돌아갔다.

두 번째 유형은 유랑민이다.

서울을 떠나 새로운 터전을 찾는 사람들로 스케빈저와 달리 물건보다는 부동산에 관심이 많다.

내 방공호 주변에 유랑민 무리가 오는 일은 거의 없었다.

황량한 고분군 같은 흉측한 땅에 살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니까.

때로는 인간이 아닌 것들도 찾아오곤 한다.

뮤테이션이다.

뮤테이션 인자에 감염된 동물들은 감염 전 습성과 행태를 유지하는데 내 영역에 찾아온 건 뮤테이션 개였다.

본판이 개 아니랄까 봐 놈들은 무리를 지어 왔다.

뮤테이션 개 하나하나의 크기는 사자만 하다.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콘크리트 벽도 으스러뜨리는 치악력, 달리는 자동차까지 쫓아올 수 있는 주력, 소총탄 여러 발 맞춰도 죽일 수 없는 터프함까지.

개떼엔 늘 우두머리가 있는 법인데 우리 집에 찾아온 놈들도 우두머리가 있었다.

골드라고 불리는, 털이 금빛으로 번들거리는 뮤테이션 견이었다.

대단히 교활하고 잔혹한 놈으로 서울시에서 현상금을 걸 정도로 골칫덩어리지만 아무도 놈을 사냥하지 못했다.

물론 나도 녀석을 사냥할 생각이 조금도 없다.

위험하긴 하지만 사실상 우리 집 명예 지킴이인데 굳이?

놈들이 내 방공호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동안 나는 방공호 안에 숨어 놈들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뮤테이션은 장점만 가져다주진 않는다.

뮤테이션화 된 개들은 변이전보다 후각이 현저히 떨어진다.

그것들은 은은히 풍기는 사람 냄새와 생활 냄새를 쫓아왔지만 날 찾아내진 못했다.

당장의 위기는 무사히 넘겼지만 그것들은 내 방공호에 대량의 똥오줌을 갈겼고 그것들이 내 머리 위에 있는 동안 나는 3일 내내 정수기 물과 비스켓만을 씹어야 하는 끔찍한 경험을 해야 했다.

가끔 좀비 무리도 찾아왔다.

좀비는 인간 시체가 뮤테이션화 된 것으로 모두가 상상하는 이미지대로 행동하는 친구들이다.

지능 없고 떼로 몰려다니며 닥치는 대로 동료 늘리는 그런 부류 말이다.

뮤테이션 견들이 변이 전보다 후각이 떨어지는데 반해 인간은 좀비가 되면 후각이 더 예민해진다.

놈들은 내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요리 냄새를 맡고 몰려온 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어쩌겠나.

내 방공호 입구는 숨겨져 있고 강화 합금으로 보호되어 있는데.

놈들은 냄새가 풍기는 환기구 주변만 어슬렁거리다가 다른 먹이를 찾아 인근 도시로 이동했다.

그날 밤 내내 총성이 울려 퍼진 것으로 보아 아랫동네에 사는 미친 저격수가 장악한 마을에 들어간 게 틀림없다.

이상의 경우는 희귀한 경우고 대부분은 한적하고 유유자적한 하루를 보냈다.

라디오와 무전기를 항상 켜둔 채 일광욕을 하거나 바베큐를 굽거나 가끔 대담하게 인근 시냇가에서 바짓단을 걷고 황소 개구리와 피라미를 잡기도 했다.

북쪽에서는 멸망한 북한에서 몰려드는 몬스터와 뮤테이션 때문에 연일 전쟁을 치르고 남쪽에서는 정부 지원이 끊긴 지차제들이 빈약한 재정과 자원만으로 사투를 벌인다는 소식이 들려오지만 내겐 딴 세상 이야기처럼 들렸다.

이렇게 평화롭고 아름다운데.

땡볕 아래 빨랫감을 널고 일광소독을 한 후 잠시 바닥에 누워 하늘을 응시했다.

흙바닥에 팔베개를 하고 누워 흘러가는 구름을 보고 있노라면 신선이 된 기분이다.

전쟁이 터진 후 대충 1년하고 반 정도는 이런 평화를 만끽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세상에 영원한 건 없는 법이다.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늦은 봄날을 전후하여 드론이 하늘 위에 하나둘 출몰하기 시작했다.

날개가 네 개 달렸다고 해서 쿼터 드론이라 불리는 친구들인데 이 드론은 내가 흔하고 편한 태양광 발전을 쓰지 않는 이유에 대한 답이다.

아무리 은신처를 잘 만들어봐야 눈에 잘 띄는 태양광 패널 깔아놓고 있으면 나 여기 있으니 나 죽이고 다 털어 가시오라고 광고하는 것밖에 되지 않으니까.

실제로 내가 아는 한 커뮤니티 유저는 광적인 태양광 신봉자였다.

Sunpower : 태양광 편하고 효율 죽이고 가격도 싼데 왜 안 씀?(진짜 몰라서 물음)

아마 그 친구는 방공호에 약탈자들이 들이닥칠 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알았을 것이다.

전방도 아닌 후방 황무지에 드론을 띄우는 인간들은 크게 두 부류다.

하나는 뮤테이션, 몬스터, 범법자를 찾는 정부 기관.

다른 하나는 먹이를 찾는 약탈자들이다.

비바! 아포칼립스!의 유쾌한 친구들이 하나둘 사라지는 걸 보며 우리는 자기객관화를 확실히 할 수 있었다.

우리가 남들보다 잘 대비된 건 맞지만 다른 사람 눈에 비친 우리 모습은 보물 고블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걸.

자연스레 커뮤니티에서는 대규모 그룹 생존주의자들이 득세했다.

익명424 : 개인이나 가족 단위로 살아남을 수는 있겠지. 그런데 잠깐이야. 장기간 생존하려면 결국 그룹을 이뤄야 한다고.

Dies_irae69 : 우리는 전투원을 열다섯 명까지 늘렸어. 내 비축분으로도 조금 버겁긴 하지만 안 그러면 버틸 수가 없어.

나는 그들의 생각에 동조하지 않는다.

잠깐 한두 번이야 막을 수 있겠지.

하지만 상대도 인간이다.

그것도 굶주리고 시기하는.

십중팔구 더 크고 강한 무리를 끌고 돌아올 것이다.

먹을 것과 입을 것, 생활에 편리한 모든 게 있는데 가만 놔두겠는가.

가장 중요한 건 무엇보다 눈에 띄지 않는 것이다.

얼마 전 차단을 푼 인간사냥꾼만 해도 나름의 합리성을 갖고 살인을 행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이니까.

아무튼, 내 영역에 위협이 도사리는 건 확실하다.

좋아하는 일광욕도 일광소독도 야외취사도 자체 봉인하고 방공호 안에서 상황을 관망했다.

확실하게 드론이 내 영역 주위를 날아다니고 있다.

정찰은 일주일 내내, 주로 정오에서 1시 사이에 집중됐는데 간혹 시간차를 두고 해가 질 무렵에 드론을 띄우기도 했다.

드론은 북북서에서 왔다 정북향으로 사라졌는데 드론 조종자가 차량을 타고 넓은 범위를 이동하고 있을 가능성을 내포했다.

다만 야간 비행은 전무했다.

드론의 성능, 특히 카메라 쪽이 어둠을 촬영하기에 적합하지 않을뿐더러 분실 위험성이 있으니 리스크를 최소화하려는 모양.

달밤에 체조하는 것도 좋아하는지라 주간엔 외출을 엄금하고 야간에만 나와 바깥 공기를 쐬며 평온한 하루하루를 이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커뮤니티에 인기글 하나가 올라왔다.

Dongtanmom : 그동안 즐거웠다.

클릭해보았다.

하늘 위에 뭔가 떠 있어서 뭔가 했더니 드론이네.

딱 한 번 눈에 띄었는데 재수없게 약탈자 꺼였어.

긴 글 쓸 시간은 없고 놈들이 내 문을 용접기로 따고 있어.

모두들 좋은 글 올려줘서 고맙고 그동안 너희들 덕분에 즐거웠다.

추신. 동탄 쪽에서 폭음이 울리면 내껀 줄 알아라. TNT 10톤급 화력이다.

그 글을 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먼 곳에서 둔탁한 폭음과 더불어 미약한 진동이 감지됐다.

그것이 그 친구의 마지막 글이었다.

많은 유저가 그를 걱정하며 안부를 물었지만 그가 대답하는 일은 없었다.

오직 단 한 명, 자타공인 사이코패스 인간사냥꾼만이 냉소적인 댓글을 달았을 뿐이다.

Defender : 인증 하나 없는 글, 믿으라고? 용접기로 문 따고 있는데 키보드 칠 시간은 있고 사진 찍을 시간은 없다고? 닉네임 꼬라지는 또 어떻고. 동탄맘? 딱 봐도 어그로 종자 아니야?

*

만신창이가 된 트럭을 발견한 건 그로부터 이틀이 지나서였다.

트럭엔 열 명 정도가 타고 있었는데 그중 절반은 큰 부상을 입은 채 짐칸에 누워 앓는 소리를 냈고 나머지도 혼백이 나간 얼굴로 간신히 기어가는 트럭 뒤를 따르고 있었다.

그들을 알아보는 건 어렵지 않았다.

약탈자다.

살기 위해 다른 사람을 죽이고 물건을 뺏는.

나는 어제 보았던 동탄맘의 마지막 글을 떠올렸다.

설마 이 친구들이 동탄맘을 습격한 놈들일까?

은은한 살심이 내 안에서 스물스물 피어오르는 게 느껴졌다.

확실히 저건 쉬운 사냥감이다.

죽여야 할 이유도 충분하다.

하지만 손대지 않았다.

왜냐하면 여기는 나의 영역이니까.

모름지기 한 지역을 자신의 영역으로 선포하려면 그 영역에 관한 모든 걸 알고 있어야 한다.

나는 알고 있다.

그들이 걷고 있는 길이 뮤테이션 견 ‘골드’ 무리의 사냥터라는 걸.

느릿하게 걸어가는 부상 입은 인간들은 뮤테이션 견이 사냥하기 최적의 사냥감이다.

곧 피 냄새를 맡고 남쪽을 배회하던 골드 무리가 하나둘 공포스러운 모습을 드러냈다.

이름 그대로 황금빛 털을 가진 늠름하면서도 흉측한 뮤테이션 견, 골드가 늑대와 곰을 섞은 듯한 흉포한 포효를 내지르며 그들의 등장을 알렸다.

“아아아악!”

“모, 몬스터다!”

뮤테이션과 몬스터도 구분하지 못하는 약탈자의 최후는 불 보듯 뻔했다.

타타탕!

약탈자들이 총을 쏴보지만 황소만 한 흉견들이 총알을 피해내거나 근육질 몸으로 총탄을 받아가며 쇄도하자 인간은 그저 흉견의 먹이감으로 전락했다.

처참한 비명과 뼈가 씹히는 소리가 들려왔고 그마저도 곧 잦아들었다.

약탈자 한 그룹이 전멸하는 순간.

동탄맘의 원혼이 이 모습을 보고 있을까.

보고 있다면 어떤 얼굴일까.

아마 환하게 웃는 얼굴이 아닐까?

그런데. 인간 세상.

그리 만만치가 않다.

*

Dongtanmom : 뻐꾹!

동탄맘이 살아 있었다!

불과 얼마 전에 비장한 어조로 다급한 최후를 알리던 놈이 멀쩡하게 살아서 뻐꾹! 이 지랄하고 있는 것이다.

그를 걱정하던 유저들이 득달처럼 댓글을 달았다.

익명848 : 아니, 뭐야? 낚시였어?

Kyle_Dos : 와, 이런데서 처 낚시질을 하고 있네. 사람새낀가.

익명458 : 거 여기가 저잣거리도 아니고 이런 짓 하면 씁니까? 차단하기 전에 모두에게 사과하세요.

SKELTON : 정말로 화가 낳네요.

유저들의 득달같은 성화에 동탄맘은 사과문을 게시했다.

Dongtanmom: 죄송합니다. 우울증 발작이 일어나서 저도 모르게 사실과 다른 글을 작성하고 말았읍니다~

동탄맘은 그 이후에도 상습적인 낚시질을 했는데 양치기 소년 그 자체인 그가 지금까지 이런 짓을 하지 못한 건 위성 안테나 설정법을 몰랐기 때문이라고.

그런데 모든 일엔 끝이 있는 법이다.

Dongtanmom : 이번엔 장난 아니고 진짜로! 위험합니다! 여기 사실 동탄이 아니라 광교 쪽이고요. 다섯 명 정도가 밖에 있어요! 제발 가까이 있으신 분, 아무나 와서 도와주세요! 제발 폭죽소리라도 내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이번엔 용케 사진도 올렸다.

첫 번째 사진은 흐릿한 폐쇄회로 TV에 찍힌 다섯 명의 인영, 두 번째 사진은 난장판이 된 방공호 안, 환기구로 통하는 덕트 배관에서 시커먼 연기가 흘러나오는 장면, 세 번째 사진은 TNT라고 적힌 박스가 산처럼 쌓인 장면이었다.

그것이 동탄맘의 마지막 글이다.

하지만 과연 이 또한 그의 거짓말이 아닐까.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유저는 이번에도 동탄맘이 늘 있는 거짓말 발작을 일으켰다고 생각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라면박스에 유성으로 TNT 적어 놓은 게 너무 뻔한데.

진실은 두고 볼 일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현자 인간사냥꾼께서 한마디를 남기셨으니.

Defender : 광교 쪽에 엄청 큰 폭음이 울렸더라. TNT 10톤은 될 법한 화력이던데. 동탄맘 이 구라쟁이 드디어 뒤졌냐?

그건 그렇고 인간 사냥꾼 이 친구, 광교 주변에 살고 있었구만.

가까이 가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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