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5화 (5/183)

5. 익명337

“처음은 양모를 손으로 둘둘 말아 동그랗게 만들어주셔야 합니다. 초심자는 분량을 맞추기 어려우시겠지만 하다 보면 익숙해집니다.”

어두운 방공호 안을 채우는 건 모니터의 불빛과 흘러나오는 한 사내의 따뜻한 목소리다.

이 동영상은 전쟁 이전의 것이 아니다.

전쟁이 일어나고도 1년이 지난 현재 시점에 촬영된 것이다.

그 출처는 다름아닌 우리의 커뮤니티 ‘비바! 아포칼립스!’.

이 신통한 사이트는 핵이 떨어진 이후에도 구동했다.

위성통신 장비 빼고도 다달이 100달러 빠져나가는 걸 보고 있으면 반쯤 사기당하는 기분이었는데 우리의 창업자 멜론 마스크는 평판과 달리 책임감도 있고 기술력도 있는 사람이었다.

그가 살던 도시는 핵미사일 세례에 박살이 났고 아마 그도 그 안에서 불타 죽었겠지만 그가 남긴 유산은 저 하늘 밖 인공위성 안에 장착된 서버와 함께 별이 되어 영원히 인류와 함께 하게 된 것이다.

비바! 아포칼립스!는 현재 시점에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인터넷 커뮤니티다.

비록 나의 멘토 존내논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커뮤니티는 한국인만으로 떡밥을 꾸릴 정도의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물론 정상인만 있는 건 아니다.

나는 동료 유저 중 4명을 차단 목록에 올렸다.

휴거니 뭐니 헛소리 떠들어대는 사이비 종교쟁이, 알고 싶지 않은 자기 일기장을 1분 단위로 올리는 관심병자, 아무에게나 시비를 걸어대는 조현병자, 인간 사냥을 즐기고 그걸 당당하게 올리는 사이코패스.

반면 괜찮은 사람도 있었다.

지금 내가 재생 중인 “딸을 위한 양모펠트 인형 만들기 (3)” 영상을 만든 익명337도 그중 하나다.

익명337은 자상하고 따뜻한, 내가 가지지 못한 부성을 가진 어른 같은 남자였다.

그는 방공호 안의 무료함을 술이나 약물로 해소하는 대신 아들과 딸을 위한 장난감을 만드는 걸로 해소했는데 그 과정을 감미로운 음악과 재치있는 편집으로 동영상으로 올려 게시판에 업로드했다.

그는 손재주가 대단히 좋았는데 아들을 위해 목공예로 만든 로봇 모형은 시중에 내다 팔아도 될 정도의 퀄리티였다.

선물을 받고 기뻐하는 아들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그는 묵묵히 작업기만을 올렸다.

아마 보안 문제상 가족을 공개하기 껄끄러운 게 아닐까.

실제로 그의 영상에선 그 이외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는데 그 또한 익명337이 얼마나 꼼꼼한 성격인지 드러내는 대목으로 보였다.

나도 익명337의 제작기를 보고 흉내 내서 로봇을 만들어봤지만 내 고양이 손으로는 로봇은 고사하고 정체불명의 남근숭배 마을에서 볼법한 혐오물을 만드는데 그쳤다.

최근 그는 일곱 살 딸을 위해 양모 펠트를 이용한 양인형 만들기를 연재 중이다.

아들을 위해 만든 로봇만큼이나 퀄리티가 높은 지라 그 완성을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이렇게 귀를 만들어줍니다. 어려워 보이겠지만 요령만 있으면 쉬워요.”

그의 인형은 아직 다 완성되진 않았지만 다음에 서울에 들릴 때 양모 펠트와 공구를 구하고 싶을 정도로 귀엽고 앙증맞았다.

*

전쟁이 시작된 지 1년이 지났다.

세상은 전쟁이 시작될 때보다 살기 어려워졌다.

핵미사일이나 공습은 더 이상 없지만 몬스터의 마수가 휴전선 인근은 물론이고 남부 지역에서도 손을 뻗치고 있고 무역이 끊겼다. 정부는 통제를 이미 잃었고 복구는 요원해보였다.

커뮤니티에도 흉흉한 바람이 휘몰아쳤다.

KaosGate : 최근 피난민이 부쩍 늘었어. 내 방공호 주위를 힐끔힐끔 쳐다본다니까.

익명121 : 여긴 남쪽인데 여기는 진즉부터 피난민들이 싸돌아다니기 시작했어. 모두 조심해. 피난민이 불쌍하다고 도와줬다간 그것들이 강도가 되어 돌아올 테니까.

최근 피난민에 대한 글이 부쩍 올라왔다.

실제로 피난민이 많아진 것도 있겠지만 최근 게시판 유저 여러 명이 사라졌다.

그중엔 내가 차단했던 매일 일기장을 올리던 정신병자도 포함되어 있었다.

커뮤니티에서는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유저들의 실종이 피난민의 짓이라고 단정했다.

Qwer1234 : 피난민 짓이야. 그 새끼들이 죽이고 방공호를 뺏은 거라고. 아마 가족도 같이 죽였겠지.

RealKorean : 피난민 새끼들 내 눈에 띄기만 해봐. 샷건으로 대갈통을 날려버리겠어.

이미 일부 유저는 피난민을 적으로 선포한 상태다.

글쎄.

나는 회의적이다.

피난민은 피난민일 뿐이다.

개중에 전문적인 수색 훈련을 받은 전문가도 있겠지만 대한민국에 그런 사람이 몇이나 될까?

지지리도 운이 없는 경우가 아닐까.

나와 비슷한 관점을 가진 사람도 없잖아 있었다.

공교롭게도 차단한 인간이다.

키보드 배틀을 보고 그 차단목록에 오른 인간이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의 닉네임은 Defender.

커뮤니티에서 인간 사냥꾼이라 불리는 인간말종이다.

전쟁이 시작된 이후 인간 사냥꾼은 주기적으로 살인 인증을 올렸다.

그는 두 장의 사진으로 그가 저지른 짓을 부정기적으로 보고했는데 하나는 멀리서 찍은 희생자의 시신을 담은 사진. 다른 하나는 희생자의 얼굴에 검은 비닐봉지를 씌우고 잉크로 찍은 희생자의 지문을 검은 봉지 옆에 보란 듯이 놓아둔 사진이었다.

그는 매번 다른 사람을 죽였다.

수단도 다양했다.

총을 쓸 때도 있었고 둔기로 때려죽인 경우도 있었다.

여자와 아이를 죽일 땐 검은 비닐봉지만을 사용했다.

재미로 죽이는 건 아니었다.

이유는 단 하나.

자신의 영역에 침입했기 때문이란다.

내가 볼 땐 재미로 죽이는 정신병자나 이 친구나 오십보백보지만 말이다.

차단을 풀고 그의 글을 검색했다.

Defender : 피난민 짓은 아니야.

Defender : 다들 방공호 공사할 때 공사 업체 불렀지?

Defender : 방공호 건설업체 새끼들 조심하라고. 그 새끼들 너희들 장소 아니까.

마지막에 인간 사냥꾼은 늘 올리던 살인인증을 올렸다.

그런데 이번 인증은 시신에 검은 봉지를 씌우지 않았다.

부릅뜬 채 창백하게 굳은 얼굴엔 늘 함께 올리던 지장 이외에 공사계약서, 신분증이 함께 나열되어 있었다.

틀림없다.

그와 계약한 공사업체 직원들이다.

커뮤니티 유저들은 그의 말을 무시했다.

인간 사냥꾼의 말을 듣기 싫어서였을까.

아니면 그 인간 사냥꾼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을 들춰내서일까.

그건 상상에 맡길 일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발생했으니까.

내가 가장 좋아하던 커뮤니티 유저인 익명337이 사라졌다.

누구보다 가족적이고 자상한 아버지이자 손재주가 뛰어난 그의 실종은 내게 커다란 충격을 안겨다 줬다.

*

시간은 다시 흘러 가을에서 겨울로 접어들고 있었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졌고 유독한 낙진을 머금은 바람이 서에서 동으로 불어왔다.

커뮤니티의 상황도 점점 차가워졌다.

익명231 : 익명423 살아 있냐? 이 친구 글 안 올린지 오래된 거 같은데. 살아 있으면 좋아요 한 번이라도 눌러줘. 다음에 나도 눌러 줄 테니.

Lone_wolf : Kaos_Gate 이 친구도 당한 거 아니야?

이제 동료의 실종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수많은 유저가 모습을 감췄다.

멸망을 예비하고 대비했건만 가혹한 세파를 이기지 못하고 커뮤니티에서 사라져버린 것이다.

누구도 애도의 글을 올리지 않았다.

언제 다음 차례가 이쪽이 될지 누구도 알 수 없으니까.

그런데 다음 차례가 내가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들이 나타난 것은 방사능을 미세하게 품은 비듬 같은 눈들이 골프장 일대와 내 영역을 소복하게 덮을 무렵이었다.

트럭을 탄 일단의 무리가 골프장에 나타났고 내 영역을 통해 똑바로 향해 다가왔다.

망원경을 통해 나는 그들을 관찰했고 그중에서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이 새끼 봐라?”

아마 홍부장이었을 것이다.

내 첫 방공호를 건설할 때 참여했던 공사업체 직원이다.

그는 김왕수의 상사로 그다지 말 수도 없고 언제나 혼자 다니던 인간으로 평판은 썩 좋지 않았다.

일도 대충대충했고 술자리에도 끼지 않았으니까.

공사업체 사장은 홍부장이 없을 때 수시로 홍부장의 흉을 봤다.

“홍부장. 그 새끼 알고 지내는지 십 년이 넘는데 사람이 안 바뀌네. 노가다를 그리 오래 하면 십장이라도 해야지 성격이 애새끼 같으니 만년 시다나 하고 있지.”

술을 권해도 가족 핑계로 자리를 떠나던 그 사내가 내 영역에 돌아왔다는 건 안 좋은 의미로 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그것도 하나가 아닌 무장한 네 명의 장정을 거느린 거 보면.

나는 인간 사냥꾼의 글을 떠올렸다.

Defender : 방공호 건설업체 새끼들 조심하라고. 그 새끼들 너희들 위치 아니까.

범인은 대체로 가까운 곳에 있는 법이다.

공사업체 중 방공호 건설을 돕던 사람들이 방공호를 기억해내고 옛 고객을 다시 방문한 것이다.

죽음의 애프터 서비스라고 할까.

그들의 목소리가 도처에 깔린 도청장치를 통해 이어폰으로 전송됐다.

“여기가 맞아?”

“그래. 여기가 맞아. 저기가 골프장이고 저기가 공군 기지였지. 저 사이에. 저 야트막한 언덕 아래에 방공호를 지어준 적이 있어.”

“방공호 확실해?”

“그 친구 말로는 지하 공연장을 만든다고 하는데 도로도 안 통한 이런 시골에 누가 찾아온다고. 나중에 몇 군데 더 입찰받아 공사해봤는데 틀림없어. 방공호야. 방공호.”

“몇 명이나 있는데?”

“내가 아는 건 한 명. 많아 봐야 가족 단위겠지.”

짧은 대화가 모든 상황을 간결하게 정리됐다.

홍부장.

그가 날 죽이러 왔다.

날 죽이고 내 모든 것을 뺏으러 왔다.

“······.”

조명을 끄고 방공호 입구를 열어젖힌 후 어둠 속에서 그들을 기다렸다.

총기는 들지 않았다.

대신 두 자루 도끼만을 들었다.

저벅-

활짝 열린 방공호 입구에 두 사내가 나타났다.

선두에 선 자는 진압용 강화 플라스틱 방패와 경봉으로 무장했고 그 뒤를 M16으로 무장한 사내가 따랐다.

“입구야! 열려 있어!”

총기를 든 사내가 랜턴을 켜고 방공호 안을 살폈다.

두 사내의 입에서 동시에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대박! 담배야! 담배! 몇 보루나 있어!”

담배는 내가 갖다 놓은 것이다.

그들을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

그러나 이 약탈자들은 확실히 보통내기가 아니다.

노획물을 발견하고도 미동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철저하게 팀웍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특히 홍부장, 이 친구 녹록치 않다.

“안에서 시체 냄새가 나나?”

선두의 사내들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안 나.”

“그런 악취는 없는데.”

홍부장의 목소리가 이어서 들려왔다.

“안에 사람이 있나 살펴. 구석구석.”

틀림없다.

한두 번 털어먹은 솜씨가 아니다.

“섣불리 들어가지 말고 방패 세우고 차근차근. 안에 숨어 있을 수도 있으니.”

그러나.

휘리릭-

상대가 나빴다.

양손에 들린 도끼를 춤추듯이 회전하며 나를 비춰오는 불빛을 기다렸다.

불빛이 날 비춘 순간 비호처럼 뛰쳐나와 선두의 방패를 체중을 실은 발길질로 힘껏 밀어냈다.

“어엌!”

방패 사내 사내가 뒤로 고꾸라지며 총기를 든 사내를 덩달아 밀었다.

탕!

쩌렁쩌렁한 격발음이 번쩍이는 불빛과 더불어 방공호 안을 울리는 가운데 나는 두 명의 적을 눈에 담았다.

무너지는 사내의 손이 들린 방패가 천천히 아래로 내려가는 게 슬로우모션처럼 보이는 가운데 나는 속으로 숫자를 셌다.

셋, 둘, 하나.

그리고 투척.

휘리릭-

도끼가 포물선을 그리며 총기를 든 사내를 향해 날아갔다.

헛발을 쏜 사내가 자세를 가다듬으며 총기를 내게 겨누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도끼가 그의 미간을 뚫고 들어가 뇌간마저 꿰뚫어 버렸다.

“아아아악!”

비명은 방패 사내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동료가 죽는 걸 눈앞에서 보며 몸을 뒤뚱거려 일어서려 해보지만 내 발이 그를 방패째로 짓밟는 게 더 빨랐다.

쓰러지는 총기 사내의 도끼를 뽑음과 동시에 회전하던 나머지 도끼와 더불어 방패 사내의 머리통을 동시에 후려쳤다.

쩍!

“철호! 형식이!”

약탈자들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 온다.

나는 조용히 어둠 속으로 숨어들어 다음 희생자를 기다렸다.

홍부장은 역시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영식아. 진정해! 들어가면 죽어.”

흥분 상태에 빠진 동료를 진정시킨다.

“철호가 죽었다고!”

“최루탄 있지? 그거 까 넣어. 너구리 새끼 굴에 직접 들어가지 말고 나오게 하라고.”

적절한 대안을 즉시 제시하면서 말이다.

내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역시 홍부장, 보통내기가 아니다.

나는 방공호의 육중한 문을 닫는 것으로 대답했고,

“문이 닫혔어!”

“무시해. 환기구가 있을 거야.”

홍부장 또한 바로 대처했다.

“입구는 저기 하나야. 내가 공사해서 알아. 도면만 보면 알 수 있지. 다른 곳은 전부 콘크리트로 막혀 있어. 환기구를 찾아. 가스 흘려놓으면 어떻게 나오는지 보자고.”

그야말로 장군과 멍군.

일개 약탈자 나부랭이와 이런 싸움을 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가 모르는 게 하나 있다.

홍부장 일행이 방공호를 완공하고 떠난 다음 나는 그들에게 배운 지식으로 내 방공호를 증축했다.

내가 벽을 허물고 새롭게 뚫은 비상통로도 그중 하나.

홍부장은 이 사실을 꿈에도 모르리라.

왜냐하면 그는 무능한 목수니까.

그는 내가 더 뛰어난 목수가 됐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할 것이다.

총 한 자루를 들고 유유히 제2 방공호로 빠져나와 메인 방공호 쪽을 보았다.

약탈자들이 환기구를 찾아 어슬렁거리는 게 보였다.

탕!

총성이 울리며 한 사내가 쓰러졌다.

탕!

틈을 주지 않고 두 번째도 쓰러뜨렸다.

마지막 남은 건 홍부장 하나다.

총기가 없는 그는 손을 들어 투항 의사를 표시했다.

총구를 겨눈 채 그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몇 명이나 턴 거지?”

이에 홍부장은 씁쓸한 미소를 머금으며 어깨를 가볍게 흔들었다.

“이번이 처음이야.”

총구를 거칠게 이마에 가져다 댔다.

홍부장이 일그러진 얼굴로 대답했다.

“······넷.”

“많이도 털었네.”

그에게 시체를 타고 온 트럭에 싣게끔 명했다.

차곡차곡 시체들이 짐칸에 실리는 와중 나는 익숙한 물건을 발견했다.

“······.”

그것은 양모 펠트로 만든 양인형이었다.

그걸 본 순간 나는 내면의 무언가가 끊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거, 어디서 구했지?”

“다른 방공호에서.”

가쁜 숨을 몰아 내쉬며 홍부장이 답했다.

“안에 있던 사람들은?”

“남자 한 명.”

“가족이 있었을 텐데?”

“······.”

“전부 죽였나?”

퍽!

개머리판이 홍부장의 관자놀이를 강타했다.

홍부장이 비명을 지르며 고통스러워했지만 나는 그 고통을 또 다른 고통으로 진정시켰다.

복부에 발길질을 두어번 가하자 그는 황급히 무릎을 꿇고 입을 열었다.

“진짜야! 혼자였어! 혼자! 씨발! 혼자 있었다고! 내가 죽이지도 않았어. 가니까 이미 죽어 있었다고!”

“어디지?”

거리는 의외로 가까웠다.

트럭을 타고 30분 거리.

홍부장을 앞세우고 약탈당한 벙커로 들어왔다.

정확하다.

여기다.

동영상에 나오던 그곳이다.

이미 탈탈 털린 방공호 중앙엔 작업대가 있었다.

눈에 익은 따뜻한 질감의 책상에 한 사내가 엎드린 채 반쯤 썩어가고 있었다.

작업장에 튀긴 피는 그가 자살했다는 걸 암시하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대단히 좁은 방공호였다.

홀로 생활하기도 버거운.

“이, 이제 풀어주는 거지? 약속 지켰잖아?”

한 구의 시체를 추가하고 집으로 돌아와 동영상을 확인했다.

그러고 보니 그의 영상에 아이들의 목소리가 나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실로 그러했다.

전에 보이지 않던 댓글이 눈에 들어왔다.

Defender : 이 양반 영상 말이야. 다 좋은데 애새끼 목소리 들린 적이 한 번도 없네. 애새끼 자꾸 파는데 이미 다 죽은 거 아니야?

왜 이걸 이제야 발견했을까.

아, 차단 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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