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호재
멸망에도 단계가 있다.
사람마다 의견이 갈리지만 단계를 구분하는 주요한 지표는 국가의 상태다.
심각한 단계는 모두 국가의 붕괴를 조건으로 한다.
중국 군벌이 자살 전쟁을 일으킨 이래 대한민국 주요 도시에 핵미사일이 떨어지며 대한민국의 붕괴는 시작됐다.
많은 사람이 죽고 수많은 도시가 폐허가 됐지만 그 시점에도 대한민국의 체제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었다.
굳이 밖으로 나갈 필요도 없었다.
단파 라디오나 TV 전파만 수신해도 국가 비상사태 방송이 현 상황을 알려주고 있었으니까.
EMP 때문에 메인으로 쓰던 TV가 망가지긴 했지만 비상용으로 구비한 녀석을 대신 설치하고 상황을 관망했다.
수백만이 죽었고 도시의 기능이 절반 정도 정지됐지만 서울시와 인근 지방은 군부대와 공무원,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빠르게 안정을 되찾고 상황을 수습하고 있었다.
내가 방공호를 나선 건 내가 터 잡은 구역에도 통신이 복구되고 체계가 잡힌 이후의 시점이었다.
이 날을 대비해 구비한 낡은 짐자전거를 끌고 서울 쪽으로 향했다.
개나소나 총기로 무장한 미국이라면 대단히 위험한 행동이겠지만 여긴 한국이다.
저격이나 총격 등의 위험은 미국에 비할 바가 아니다.
설령 여기가 미국이라고 해도 나는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처음부터 바짝 쫄아 봐야 얻을 것도 못 얻는 법이니까.
물론 여기가 한국이라고 해도 기본적인 에티켓은 갖춰야 한다.
싸구려 브랜드, 다 낡고 떨어진 추레한 패션, 빈약한 소지품. 멸망기의 드레스코드다.
그 이외 3일분의 식량과 물, 약간의 달러와 물물교환용 담배를 지참했고 호신무기로는 미제 권총 한 정과 잘 갈린 날카로운 손도끼 한 자루를 챙겼다.
서울로 향하는 동안 큰 위협은 없었지만 눈 앞에 펼쳐진 멸망의 풍경과 공기는 나에게 안도감과 보상감, 그리고 발밑이 젖어 드는 우울감이라는 복잡하고 상반된 감정을 선사했다.
잘 꾸며놓은 은신처를 떠나 굳이 서울로 향한 건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이상훈 헌터님을 찾습니다만.”
바쁘게 움직이는 군인들 중 그나마 사람이 좋아 보이는 사람을 골라 물었다.
“이상훈 헌터님요?”
“네. 현재 재난 구조 책임자이신.”
“지금 바쁜 거 안 보이세요?”
액면과 달리 까칠한 남자였지만 담배 몇 갑을 내밀자 거짓말처럼 선량해졌다.
“아~ 이상훈 국장님을 찾으셨군요. 워낙 흔하신 이름이라.”
“오. 승진하셨군요. 역시 떡잎부터 다르더니.”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연락은 취해보겠습니다. 누구시라고 전할까요?”
“함께 학교 다녔던 박규라고 전해주세요. 잘 기억 안 나면 동기 중에 수석 졸업한 친구라고 하면 바로 알아들을 겁니다.”
잠시 후 군인이 돌아왔다.
“이상훈 국장님은 지금 회의 중이라 연락이 어렵다고 하십니다.”
“그런가요?”
“무슨 일입니까? 제가 도와줄 수 있는 게 있다면 돕겠습니다.”
딱히 이상훈을 만나러 온 건 아니다.
녀석이 날 만나주지 않으리라는 건 방공호를 나설 때부터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다.
사실 나도 만나기 싫고.
내가 굳이 이상훈의 이름을 판 이유는 따로 있다.
“군용 워키토키와 개인 식별 번호를 부여받고 싶습니다.”
일부 지역에선 여전히 휴대폰이 통하지만 안 통하는 지역이 많다.
특히 도시에서 멀리 떨어질수록 휴대폰은 무용지물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유용한 통신수단은 고성능 단파 무전기, K-워키토키다.
휴대폰보다 무겁고 사용법이 까다롭지만 신뢰성이 높고 공용 주파수만 맞춘다면 상대방 번호를 알 것도 없이 인근 지역 내의 모든 인간과 교신할 수 있다.
그것만으로 충분히 편리한 물건이지만 군용 워키토키는 민수용보다 한 단계 급이 높고 암호화된 군용주파수에 접근 가능하다.
그 말은 현시점에서 가장 믿을만한 무력집단이자 정보원인 군대에게서 직접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니까.
“이상훈 국장님과 아시는 사이인 거 같으니 워키토키는 무상으로 내어줄 수 있지만 개인 식별 번호는 부여할 수가 없을 거 같네요. 군경 관계자나 몬스터 처리 담당자에게만 부여하고 있거든요.”
예상한 바다.
개인 식별 번호는 처음부터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군인은 내게 아직 포장도 뜯지 않은 신품을 내게 전달했다.
그 자리에서 신중하게 고장이 없는지 확인했고 테스트를 해보았다.
결과는 완벽, 양품이다.
서울에 온 목적의 구 할이 달성되는 순간이다.
남은 시간 동안 자전거를 타고 서울 시내를 돌아다녔다.
소식통에 의하면 서울을 향해서 총 다섯 발의 핵미사일이 떨어졌는데 그중 네 발이 공중에서 요격되고 한 발이 사대문 안에 떨어졌다고 한다.
사상자 수는 집계 중이지만 백만은 족히 넘는다고.
도로는 오지도 가지도 못하는 차량들로 주차장이 되었고 도시 곳곳은 폐허가 되었다.
특히 핵을 정통으로 맞은 사대문 안쪽엔 출입 금지 명령이 떨어졌다.
도처에 집을 잃은 사람이 떠돌아다녔고 병원엔 병상을 찾지 못한 채 길바닥에 너부러진 피폭자와 부상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치안 상태는 그리 나빠 보이진 않았다.
치안력이 막강한 건지 시민들이 범죄를 저지를 기력이 당장은 남아 있지 않은 것인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EMP의 효과는 생각보다 저조했는지 상당수의 차량과 기지국이 정지되긴 했지만 멀쩡히 돌아가는 기지국과 휴대폰이 적지 않았고 전력도 제한적이나마 우선순위가 급한 곳을 위주로 복구되고 있었다.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건 다음에 있을 공습이다.
정부 발표에 의하면 이쪽도 핵보복을 가해 도발 원점을 초토화시켰다고 하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서울을 돌아다니는 와중에 공습경보가 떨어져 지하철에 대피했다.
지하철 안에서 많은 피난민을 보았다.
마침 주위에 대단지 아파트 단지가 형성된 동네인지라 지하철 안은 포화상태가 될 정도로 많은 사람으로 붐비고 있었다.
“?”
지하철 안에서 나는 내 눈을 잠시 의심했다.
< 삼전 ‘베스트루이스 빌헤링턴’ 입주민 구역 >
< 라벨 ‘치프 헤드 스톤’ 입주민 구역 >
< 브란디아 ‘프라우드 노블 힐’ 입주민 구역 >
< 로투 ‘루페르트 라이히팰리스’ 입주민 구역 >
...
...
지하철 곳곳이 아파트 단지별로 구획화되어 있었다.
완장을 차진 않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완장을 찬 장년 사내와 여성들이 신경질적으로 오가며 자신의 구획을 철저히 마크하고 있었다.
60줄은 넘어 보이는 빨간 모자를 쓴 사내가 내 앞에 대뜸 나타나 퉁명스레 물었다.
“아저씨. 어디 사람이에요?”
“아직 20대입니다. 만으로 29살이지만.”
“아니, 어디 사람이냐고? 이 동네 사람이야?”
“반말은 자제해주시죠. 댁이 제 상전은 아니잖습니까?”
“이 동네 사람이세요?”
“아니오.”
“비입주민은 저쪽으로 가세요.”
마지막에 그는 날 쳐다보지도 않고 손을 휘휘 휘둘렀다.
비입주민 구역은 지하철 역사 안에서도 가장 구석진 곳에 있었다.
< 임대 및 기타 >
빛조차 제대로 닿지 않는 구역.
몇몇 사람들이 우울한 얼굴로 서성거리고 있었고 희미한 라디오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왔다.
“······이번 공습은 핵 공습이 아닌 순항 미사일 공습입니다. 국군 요격부대가 충무공의 정신으로 이를 막을 것이나 국민 여러분은 혹시 모를 불상사에 대비하여······.”
곧 은은하게 땅이 흔들리며 먼 곳에서 들려오는 폭음이 아마도 벽을 타고 지하철 역사 내에 음산하게 울려 퍼졌다.
쿵- 쿵-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과 낯선 방공호 안에서 공습을 체험하는 건 썩 좋은 경험은 아니다.
무엇보다 프라이버시라는 게 일체 없다.
부스럭-
배가 출출해 초코바를 꺼내 껍질을 까고 있자니 쥐 떼가 나타난 것 마냥 초롱초롱한 눈들이 내 초코바를 주시했다.
그것만으로 부담스러운데 모르는 사내아이 하나가 내게 다가와 물끄러미 날 올려다본다.
꼬르륵-
제대로 먹지 못한 것일까.
액면만 보면 한 달 굶어도 끄떡없을 살집은 있는데.
아이의 부모로 보이는 사람이 뒤늦게 다가와 아이를 데리고 갔다.
“저기.”
새 초코바를 내밀며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배급요? 쥐꼬리만큼 주긴 했어요. 그런데 그마저도······.”
아이의 부모가 원망스러운 눈으로 입구 쪽을 장악한 인간들을 노려보았다.
말을 아끼는 그들 대신 이쪽에서 질문을 던졌다.
“단지 주민들이 독점했나요?”
아이의 부모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신선한 발견이다.
위기 시에 사람이 뭉쳐 이익 집단을 만드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한국인에겐 한국인만의 구심점이 있었다.
조선 시대에 집성촌이 있다면 현대엔 아파트 단지촌이 있다.
세대수가 많고 입김이 강한 단지일수록 단지촌의 파워는 강해진다.
실제 그 파워 밸런스가 이 좁은 지하 방공호 안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강한 단지는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물자를 독점하고 그렇지 않은 자들은 허접한 구역과 쥐꼬리만한 물자를 차지한다.
지극히 한국적인 풍경이랄까.
곧 공습 해제 경보가 여기저기서 울려 퍼졌다.
- 공습 해제! 공습 해제! 시민들은 바깥에 나가 생업에 종사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짧은 시간 이나마 함께 있던 일가족에게 인사를 한 후 지하철을 나섰다.
지하철 바깥으로 나가려고 하니 아까 보았던 단지별로 구분해 놓은 푯말과 단지촌 주민들이 눈에 밟혔다.
“······.”
뭐, 해코지는 안 하겠지.
도둑질은 참아도 자전거 도둑질은 못 참는 민족이라고 자전거를 끌고 사이를 지나가자 수많은 눈초리가 음습하게 나와 자전거를 훑는 게 느껴졌지만 실제로 위협으로 이어지는 일은 없었다.
그야, 아직은 살 만하고 나라 또한 건재하니까.
의도치 않게 그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이번 폭격, 신도심 쪽에 떨어졌대요. 세상에 중국 놈들이 미사일에 화학무기까지 넣어서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라네요.”
여기까지는 지극히 당연한 대화다.
그런데, 한 아낙네의 퉁명스러운 한마디가 내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호재네요.”
순간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
아니, 이 상황에서 호재라니.
“호재라고요. 서울에 괜찮은 단지촌 몇 개 남지도 않았는데 우리 빼고 전부 망하면 결국 우리 동네가 제일 고급 주거지가 되지 않을까요?”
한두 놈이 이런 소리를 한다면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행동은 언제나 상상을 넘어서는 법이다.
“듣고 보니 엄청난 호재네요.”
“우리 아파트가 서울 최고 명품 단지로 거듭나겠어요.”
“친구 맨날 자기 동네 자랑하더니 쌤통이네요.”
“빨리 전쟁이 끝나고 급지 서열 정리 하는 거 보고 싶네요.”
“역시 위기가 있어야 기회가 오나 봐요.”
전쟁이 시작된 이후 여간해서는 타인의 얼굴을 보려 하지 않았다.
어차피 곧 다 죽어 없어질 사람이니까.
하지만 이번만큼은 참지 못하고 타인의 얼굴을 보았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얼굴이었다.
그렇기에 내 분노는 더욱 깊어졌다.
“거, 말씀들 너무한 거 아닙니까?”
다시는 안 볼 얼굴이겠다 한 번 물어보았다.
대답은 싸늘한 눈총이다.
한 중년 여성이 피식 웃으며 주민들과 시선을 교환하더니 한마디 던졌다.
“갈 길 가세요.”
*
그날 목도한 단지촌 전체의 운명에 대해서는 알 방법도 없고 알 길도 없다.
세상이 망하는 걸 호재라고 떠드는 인간들에게 관심을 쏟을 정도로 한가하진 않으니까.
하지만 그 분파 중 하나인 ‘루페르트 라이히팰리스’ 단지 입주민의 최후는 잘 알고 있다.
내가 첫 서울 방문을 한 이후 1년하고도 반이 지난 시점으로 기억한다.
한 무리의 피난민이 나의 아지트 주위를 지나갔다.
-치지직! 치직! 여기는 ······ 동! 루페르트 라이히팰리스 입주자 모임! 듣는 사람이 있으면 회신 바람! 반복! 여기는······
그들은 공용 주파수로 끊임없이 주변과 대화를 시도하려 했다.
굳이 교신에 응하는 대신 듣기만 했다.
수백 명에 달하는 인간들 먹여 살릴 식량과 식수는 있지만 놈들에게 내어줄 건 하나도 없으니까.
쌀 한 톨, 내 몸에서 나온 각질 하나도 아깝다.
그나저나 내 영역에 왔다는 건 적어도 그들에겐 호재는 아닐 것이다.
-치지직! 으아아아악! 몬스터다! 여기는 루페르트 라이히팰리스 입주자 모임! 우리는 몬스터에게 공격당하고 있다! 반복한다! 여기는 루페르트 시부랄팰리스 입주자 모임!
한 달 전쯤에 사람을 죽이는 괴물 몇 마리가 내 근거지 주변에 나타났다.
그들을 공격한 건 몬스터가 아니다.
몬스터가 가지고 온 역병에 오염되고 변이된 존재.
‘뮤테이션’이다.
인근에 살던 캣맘이 돌보던 길고양이 몇 마리가 뮤테이션 인자에 감염됐고 호랑이만한 크기로 변했고 원앙과 천연기념물을 멸종시키던 실력으로 이제 인간들을 멸종시키려 한다.
전투력은 남쪽에 활동하는 뮤테이션화된 살인견 집단 ‘골드 무리’보다야 약하겠지만 일반인 상대로는 여포가 따로 없다.
타타탕!
흩어지는 총성과 더불어 워키토키가 처참한 비명을 쏟아냈다.
-치지직! 여기는 루페르트 라이히팰리스 입주자······ 반복한다! 우리는 몬스터에게 공격 당하고 있다!!
가만히 듣고 있다 무전기에 대고 한마디 했다.
“호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