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3화 (3/183)

3. 멘토

저마다 계획은 있다.

우리 같은 멸망주의자도 큰 틀에서 같은 사상을 공유하지만 세부적인 실천방안에서는 생각을 달리 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멸망 이후 세상과 접촉할 것인지, 극단적인 폐쇄주의로 갈 것인지, 집단을 이룰 것인지, 극소수의 가족과 친지만으로 살아남을 것인지.

월 정액 100달러를 주고 가입한 멸망주의자 커뮤니티 <비바! 아포칼립스!>엔 종종 멸망주의자 간의 논쟁이 벌어지곤 했다.

논쟁에 참가하기보다는 관망자였던 내가 지켜본 결과 건설적인 논쟁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대부분의 논쟁은 평행선을 달리는 키보드 배틀로 지루하게 이어지다 종국에는 재산 인증 배틀로 귀결됐다.

내가 돈이 더 많고 더 많은 돈을 들여서 훌륭한 시설을 장만했고 더 좋은 무기를 가지고 있으니 내 말이 옳다는 식이다.

꼴사나운 장면이지만 돈 자랑 하는 사람의 말이 반드시 틀린 건 아니다.

보다 많은 돈은 보다 많은 대비를 하게 해주는 건 틀림없으니.

가령 내가 정말로 갖고 싶었던 원자력 전지를 이용한 자가발전 시설은 내가 가진 돈으로는 결코 장만할 수 없는 것이지만 미국 사는 도날드 오리스씨에겐 컬렉션에 있는 요트 한 척만 팔아도 떡을 치는 금액이다.

물론 돈만이 설득력을 갖는 건 아니다.

개인의 강함, 경력, 능력은 경우에 따라 재산보다 더 큰 설득력을 갖곤 한다.

여기 한 사내가 있다.

커뮤니티 아이디 : John_nenon

통칭 존내논. 한국인이다.

그가 특별한 이유는 별거 없다.

존내논은 프로 헌터다.

헌터는 균열이라 불리는 몬스터 소굴 앞에서 몬스터를 사냥하며 인류를 지키는 수호자를 말하는데 헌터가 되기 위해선 대단히 까다로운 자격 요건과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즉, 아무나 될 수 없다는 소리.

게다가 헌터는 평범한 인간보다 훨씬 강한 전투력을 가지고 있으며 직업 상 일반인보다 더 많은 기밀 정보에 접근 가능하다.

다만 헌터라는 직군에서도 등급이란 것이 존재하는데 존내논이 자신이 어떤 등급인지는 인증한 바가 없다.

그가 인증한 건 프로 헌터 라이센스가 전부였다.

뭐, 그것만으로 어중이떠중이들이 모인 멸망주의자 커뮤니티 안에서는 절대적인 인증이다.

존내논과 논쟁을 벌이던 돈 많은 친구가 헌터 인증을 보자마자 꼬리를 내린 걸 보면 말이다.

이 존내논이라는 친구를 언급한 이유는 그의 헌터 자격증만은 아니다.

존내논은 나와 거의 비슷한 생존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대도시에 접근 가능하면서도 사람의 접근을 원천 차단하는 인적이 드문 장소에 터 잡아 대규모의 생존 시설을 만들어 영구적인 생존을 도모한다는 점에서.

배울 게 많은 사람이었다.

기껏 돈 들여 만든 지하 방공호가 지하수 침출과 결로로 곰팡이 서식장이 됐을 때 그가 올린 게시글에서 곰팡이를 제거하는 방법, 석회 퍼티보다 시멘트 퍼티가 바닥 구성에 적합한 이유, 대수층 유형에 따른 지하수의 관리 등 초짜 목수였던 내겐 피와 되고 살이 되는 지식을 많이 얻을 수 있었다.

장기 생존을 위해 하나의 방공호에 의지하는 대신 여러 개의 더미를 만드는 발상도 내 생각과 일치했다.

특히 더미 방공호 안에 원격으로 기폭 가능한 대량의 폭약이나 부비트랩을 설치해 적에게 더미 방공호가 장악당했을 때 메인 방공호에서 버튼 하나를 누르는 것만으로 침입자를 가볍게 청소하는 발상은 이마를 '탁' 칠 정도로 탁월했다.

거기다 남다른 지식에 질문 글에 친절하게 답변하는 친절함, 현역 프로 헌터라는 위광까지.

존내논이 커뮤티니, 특히 커뮤니티의 한국 유저 사이에서 인기인이 된 건 당연한 결과였다.

다만 그도 완벽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항상 게시글을 올릴 때마다 [존 내논]이라는 머리말을 달았다.

가령 예를 들면 아래와 같다.

[존 내논] 장기생존을 위한 저유고의 필요성 (3)

[존 내논] 방금 먹은 오마카세 ㅎㅎ

[존 내논] (대외비) 2023년 현재 중국 전선 상황

[존 내논] 오늘 저녁입니다 ㅎㅎ

왜 이런 짓을 하는 지 나로선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그의 게시글은 수준이 높고 전문성이 있었다.

그런데 그도 차차 변해갔다.

먼저 변한 건 커뮤니티 그 자체였다.

멸망의 징조가 점점 가시화되며 커뮤니티에 사람, 특히 한국인이 많이 늘어나자 이상한 조짐이 일기 시작했는데 커뮤니티 안에서 독보적인 인기와 영향력을 지닌 존내논을 시기하는 사람들이 나타난 것이다.

처음에는 소수의 사람이 소극적인, 이른바 돌려까는 식으로 존내논의 흉을 봤다.

그의 정보글에 대놓고 태클을 거는 대신, 다른 관점을 제시하며 그의 정보를 공격하는 식이었다.

[존 내논]이라는 머리글만 빼면 같은 생각을 공유했다고 생각했던 그 남자는 나의 생각과 다르게 행동했다.

아무 의미도 없는 커뮤니티에 소속감을 느꼈는지 여론을 의식하는 언동을 보이더니 급기야 자신의 얼굴을 공개하기에 이른 것이다.

지금까지는 운동 꽤나 한 굵은 팔뚝과 탄탄한 가슴근육을 얇은 티셔츠 등으로 간접적으로 어필하던 그가 얼굴을 공개한 이유는 자명했다.

깝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인상은 울끈불끈한 몸과 달리 순박해 보였다······.

그래서일까.

커뮤니티 안에서 반응은 더욱 냉담해졌고 공개적으로 그를 저격하는 사람이 심심찮게 등장했다.

주된 레퍼토리는 존내논의 헌터 등급이다.

존내논이 프로 헌터인 건 맞지만 프로 헌터 중 제일 밑바닥인 D랭크 헌터라는 것이다.

일각에선 그의 실명이 나돌기도 했다.

그에 따르면 존내논의 실명은 구쌍효라고.

이미 커뮤니티 스타였던 존내논은 자신의 지위를 내려놓는 대신 정면돌파를 시도했다.

월 정액 100달러에 빛나는 멸망주의자 커뮤티니 비바! 아포칼립스! 한국인 유저를 대상으로 정모를 개최한 것이다.

마침 중요한 공사가 하나 끝났고 새로운 계획을 구상 중이라 자문도 얻을 겸 정모에 참석했다.

멸망주의자 정모에 참석한 사람은 열 명이었다.

연령대는 다양했는데 경제적 여유가 있고 기력도 남아 있는 50대가 제법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한 건 그 중간인 3040세대였는데 특히 “사”짜 들어가는 전문직이 많았다.

나 같은 20대도 소수 있었지만 나와 달리 본격적으로 멸망을 준비한다기보다는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해 커뮤니티에 가입한 것처럼 보였다.

때는 늦은 가을이고 날도 제법 쌀쌀했는데 존내논은 얇은 운동복 한 벌만을 걸치고 있었다.

그런데 두 치수가 작은 모양인지 운동복이 터질 듯이 작아 보였는데 팽팽하게 당겨진 옷감 위로 존내논이 평소 자랑하는 우람한 근육이 고스란히 드러나 보였다.

모두의 시선을 한 눈에 받으며 존내논이 자신을 소개했다.

“현직 헌터 구쌍효입니다.”

참석자 10명 중 4명이 박수를 쳤는데 나도 그중 하나였다.

모임 장소는 솔직하게 말해서 썩 대단치 않았다.

야매 생고기라고 맛보다는 싼 맛에 가는 고깃집이었다.

주최자 존내논은 호탕하게 무한리필 삼겹살 9인분을 주문했다.

자신은 다이어트 중이라 먹지 않는다고.

하지만 주인이 인당 무조건 1인분씩 시켜야 한다고 말하자 마지못해 그도 1인분을 마저 시켰다.

다이어트를 입에 담던 것 치고 그는 누구보다 술과 고기를 많이 먹었다.

아무튼, 고기의 원산지는 벨기에, 독일, 칠레 등 다채로웠는데 무한리필집에서 상상하는 그대로의 맛이었다.

돈 좀 있어 보이는 4, 50대 회원님들은 도중에 자리를 떠났다.

존내논은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그는 잘됐다는 표정을 지으며 소주 한 잔을 호쾌하게 들이키며 미리 준비한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다.

“곧 전쟁이 일어날 겁니다. 전쟁을 일으키는 건 중국이겠지요. 당에서 막고 있지만 지금 중국 내부는 개판입니다. 균열이 너무 많이 생겨 성 단위로 철수 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니까요. 거기다 당 내부가 분열되어 중앙에서 통제가 불가능하다고 하더군요······.”

존내논의 정보는 프로 헌터라면 누구나 아는 수준이었고 그마저도 반년 정도 느렸다.

핵심 정보에 접근할 정도의 인맥이나 권한이 없는 것으로 추정됐다.

뭐, 아무래도 좋은 일이다.

내가 존내논에게 기대하는 건 따로 있으니까.

“저기, 존내논님. 여쭤보고 싶은 게 있는데. ”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존내논의 오랜 지지자로 존내논이 올리는 글에 항상 좋아요를 눌러주었다.

“누구시더라?”

“닉네임 SKELTON입니다.”

“SKELTON님? 아~.”

존내논의 순박한 얼굴에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저유고를 건설하시겠다고요? 잘 아는 사장님이 있어요. 소개해드려요? 어느 정도 수준을 원하세요? 주유소급?”

그간의 손가락 노동은 배신 받지 않았다.

존내논은 나의 질문에 성실하게 답한 건 물론이고 불법 공사를 지원해 줄 인맥까지 소개해줬다.

가벼워 보이는 일면에도 불구하고 그는 꽤나 괜찮은 사람이었다.

존내논의 인맥과 정보 덕분에 내 아지트는 한 단계 높은 도약을 이룩할 수 있었다.

그와 별개로 첫 번째 정모는 존내논에게 있어서는 커다란 성공이었다.

직접 그를 상대한 유저들이 우호적인 글을 작성했고 존내논의 평판이 더욱 높아진 것이다.

나도 미력하게나마 칭찬 행렬에 동참했다.

SKELTON : 존내논님 실제로 보니 더 박력이 있으세요. 정말 남자지만 반해버릴 정도의 야성미가 넘쳤습니다!

존내논은 내 글에 좋아요를 눌러주었다.

그 이후에도 몇 차례 정모가 있었다.

정모라기보다는 팬미팅이라고 할까.

존내논의 평가는 점점 높아졌고 참여인원수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내가 마지막으로 참가한 팬미팅엔 무려 80명이 넘게 모였다.

그날 마지막 미팅에서 나는 존내논이 보이지도 않는 구석진 자리에서 안면도 모르는 사람들과 앉아 실없는 소리를 해대고 있었다.

더 이상 배울 것도 없고 할 일도 산더미인지라 이번을 끝으로 팬미팅에 나가지 않기로 생각할 때였다.

얼큰하게 취한 존내논이 내게 다가와 손짓했다.

그는 나를 바깥으로 불러났다.

“스켈톤님.”

존내논이 흔들리는 눈으로 날 보며 말했다.

평소에 볼 수 없는 모습이라 의아해하며 그의 말을 기다렸다.

“혹시, 헌터세요?”

“제가요?”

“어디서 본 것 같아서요.”

“그래요?”

잠시 고민했다.

사실대로 이야기할지 아니면 거짓말을 할지.

“음. 사실대로 말씀드리자면······.”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한 무리의 사람이 가게 밖으로 후다닥 뛰쳐 나와 나를 제치고 존내논 주변에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구형. 뭐해? 방송국에서 연락 왔어!”

“기자가 인터뷰 하자는데?”

이들은 존내논의 새로운 열성 팬이다.

존내논만큼이나 얼큰하게 취한 그들은 나와 존내논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구형. 이 분이랑 할 이야기 있어?”

한 사내가 존내논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물었다.

팬들에게 둘러싸인 존내논은 날 물끄러미 쳐다보다 보았다.

“······.”

그의 입술이 살짝 열리는 듯 싶나 했더니 이내 굳게 닫혔다.

존내논은 그의 팬과 함께 가게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 이후로 그와 만날 일은 없었고 커뮤니티에도 거의 접속하지 않았다.

내가 다시 커뮤니티에 접속한 건 전쟁 발발 1년 전의 일이었다.

“음?”

커피를 마시며 모니터를 보던 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존내논의 게시글이 보이지 않는다.

싹 지워졌다.

수십 개에 이르는 정보글은 물론, 수천 개나 되는 일기장 뻘글이 씻은 듯이 사라진 것이다.

곧 나는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내가 정모에 나가지 않게 된 이후부터 또 다른 무리가 존내논을 공격했다.

이전의 음습하고 무딘 공격과 달리 새로운 공격자는 치명적인 무기를 휘둘렀다.

익명338 : 좆내논 이 새끼, 유럽 게시판 정보글 그대로 컨트롤 C + V 했네.

방대한 지식을 자랑하던 존내논의 정보글은 본인의 작품이 아니었다.

프랑스어 게시판에 활동하는 프랑스인 유저의 글을 그대로 훔쳐서 자기가 쓴 것인양 올린 것이다.

사람이 적을 땐 들키지 않았지만 사람이 많아지고 눈썰미 좋은 사람이 모이자 존내논의 행각이 드러났다.

높이 나는 만큼 떨어진다고 커뮤니티의 왕이었던 존내논의 추락은 무시무시했다.

무수한 비난이 쏟아졌고 그의 팬들도 등을 돌렸다.

당시 시점 게시글을 찾아보았다.

RokaGG : 존내논님 실망입니다...

RKKArA : 프로 헌터 턱걸이 하신 분의 허언증 잘 봤고요~

익명82 : 카아~~~~~악 퉤!!!!

Doyourbest321 : 책임 어떻게 지실 겁니까?

Hasanius : 자살해라 좆내논~

그야말로 비난의 폭풍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들리는 이야기에 의하면 존내논은 수많은 의혹과 비난에 항변하거나 결백을 주장하는 대신, 짧고 굵은 포효를 내질렀다고 한다.

John_nenon : 느금마

이후 존내논의 운명에 대해 아는 바는 없다.

그가 있던 지역이 초토화됐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그가 죽었다는 소문은 듣지 못했다.

일설에 의하면 존내논으로 추정되는 통신이 최근에 잡혔다는 말도 있다.

존내논, 그는 죽은 것일까.

아니면 다른 먼 곳에서 생존을 위한 투쟁을 하고 있는 것일까.

가끔 저유고에서 기름을 퍼 올릴 때마다 그 사내를 생각하곤 한다.

적어도 내게 있어 존내논은······

훌륭한 멘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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