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1화 (1/183)

1. 김노인

세상이 어떻게 망하고 개판이 됐는지는 길고 지루하고 복잡한 이야기지만 그 안에서도 재밌는 에피소드는 얼마든지 있다.

이를테면 나 박규의 현명한 미래대비라고 할까.

인류에게 위기가 찾아오고 있다는 건 지식인 나부랭이부터 시작해서 유튜버 렉카까지 주구장창 떠든 이야기지만 민간인 중에서 실제로 위기에 대비한 건 두 부류다.

돈이 썩어 넘쳐나서 사유지에 방공호 지을 정도의 여유가 있는 졸부거나, 아니면 현실을 부정하고 모호한 가능성에 모든 걸 투자할 수 있는 과감한 행동가이거나.

나는 후자다.

위기를 감지하자마자 재산을 과감하게 처분하고 다가올 멸망에 대비했다.

물려 받은 재산은 얼마 없었지만 모은 재산은 있었다.

돈을 모을 수밖에 없는 직종에서 일을 했고 막바지엔 하루에 네 시간 남짓 자면서 미친 듯이 업무량을 늘렸으니.

그래도 졸부처럼 돈이 많지 않기에 격무에 시달리는 와중 틈틈이 기술을 익혔다.

간단한 전기 공사, 건축, 중장비 운전, 약물과 화학 합성, 기초 의술 등등.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책이나 동영상 교재를 사서 저장했다.

가장 중요한 건 어디에 터를 정하느냐였다.

쉽게 결정하기엔 어려운 일이었다.

서바이벌 전문가, 전쟁 구역에서 살아 남은 민간인, 오지 탐험가, 나중에 소개할 멸망주의자 커뮤니티 ‘비바! 아포칼립스!’에 자문을 구했다.

오랜 검토와 궁리 끝에 네 가지 요건을 핵심으로 해서 부지를 선정했다.

첫째, 주변에 사람이 살지 않고 유사시에도 사람이 찾지 않을 곳.

둘째, 그럼에도 대도시와 적절한 거리를 유지할 것.

셋째, 은신처의 지형.

넷째, 가격.

첫 번째 요건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멸망에 대비해 자신만의 성채를 구축하려는 자에게 가장 위험한 건 몬스터도 좀비 떼도 아닌 인간 그 자체니 말이다.

실제로 인간은 줄곧 나의 아포칼립스 생활을 위협하는 주요한 위협원이었다.

그러나 인간은 홀로 살아가기엔 어려운 족속인 법.

두 번째 조건은 첫 번째 조건과 어긋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대단히 중요한 요건이다.

도시와 교류를 틀 수만 있다면 유사시 필요한 물자는 물론이고 귀중한 정보를 손에 넣을 수 있으니까.

안전한 은신처를 벗어나 위험한 바깥세상으로 나가는 건 대단히 위험한 일이지만 방공호 안에 틀어박혀 다가오는 거대한 폭풍을 보지 못하는 건 확정된 죽음과 연결된다.

세 번째 조건은 내가 죽기 전까지 영원히 이어질 투쟁을 위한 밑거름이다.

은신처는 사방을 감시할 수 있어야 하고 외부로부터 쉽게 발견되지 않아야 한다.

방어력은 그다음 고려될 문제다.

아무리 방어하기 쉬운 지형이라고 해도 일단 은신처가 적발된 이상 나 혼자서는 지켜내기 쉽지 않을 테니까.

인간은 벌레를 제외한 동물종 중에 가장 머릿수가 많은 동물이다.

아, 토질과 지하수도 중요하다.

땅이 부드러워야 깊숙이 안으로 파고 들어갈 수 있고 지하수는 수도가 끊긴 이후 내 생명수가 될 물이니까.

물론 이 모든 조건은 내 지갑의 한도 내에서 고려해야 한다.

화폐야 세상이 붕괴하면 휴짓조각이 된다지만 세상이 붕괴하기 전에 준비를 하려면 결국 돈이 있어야 하니까.

그렇게 선정한 부지는 공군 부대와 골프장 사이에 자리 잡은 산을 낀 임야였다.

인적이 드물고 관측이 쉬울뿐더러 대도시와도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지만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그 땅은 도로가 없는, 이른바 맹지(盲地)였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맹지는 그렇지 않은 땅보다 가격이 적게는 수 배에서 많게는 수십 배 가량 싸니까.

양심 없는 폐기물 업자놈들이 건축쓰레기 무단 투기장으로 사용해 산업 폐기물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널린 것도 낮은 가격에 일조했다.

그래도 덕분에 꽤 넓은 부지를 마련했다.

옆에 있는 골프장과 비교해도 크게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넓은 땅이었다.

도로가 없다는 문제는 인접한 토지 소유자에게 사용료 및 농작물 수확시 무상으로 노동력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해결했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서울에서 왔다고? 그려, 잘해 봅시다.”

그 노인의 이름은 지금은 기억나지 않지만 성은 확실히 김씨였다.

충청도 말씨에 깡마르고 작달막한 체구의 소유자로 나이는 칠십쯤 됐는데 첫인상은 썩 좋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김노인의 성질머리는 나름 해탈한 나조차 이따금 살의를 느낄 정도로 지랄 맞았다.

틈만 나면 짜증을 부리며 원상복구 요구, 유일한 도로를 장애물로 막아버리는 건 일상다반사고 수시로 찾아와 잡일을 도우라고 요구했다.

새벽 3시에 컨테이너 집에 찾아와 문을 두드리며 일손을 도우라고 할 땐 정말이지 논두렁에 처박아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낄 정도였다.

뭐, 어쩌겠나. 싼 게 비지떡이니.

싸고 저렴한 땅으로 아낀 돈으로는 중장비와 건설자재, 그리고 생존에 필요한 물건을 사는데 모조리 투입했다.

중장비는 굴착기, 로더, 천공기, 지게차 등을 마련했다.

방공호 하나 만들려면 사람을 부르는 게 더 싸고 전문적이겠지만 내 계획은 내 은신처를 끊임없이 확장하고 개변하는 것이다.

내 토지 22만 평은 멸망해가는 세상에서 내가 살아갈 터전이자 기반이며 나와 동일시 될 생의 요새니까.

당연하게도 처음엔 사람을 불렀다.

인터넷과 강의로 배운 지식만으로는 현업에 종사하는 사람의 스킬과 노하우를 따라갈 수 없는 법이니.

“아니, 사장님. 이거 전부 사장님 물건이세요? 대체 무슨 일을 하시려고?”

내 중장비 컬렉션을 본 시공업자들은 하나 같이 놀란 반응이었다.

“뭐, 어쩌다 보니 이쪽에 취미를 들여서요.”

적당히 얼버무리며 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노력했다.

처음엔 의뢰인이 작업에 뛰어드는 걸 내키지 않는 눈치지만 술 몇 번 사고 새참 몇 번 돌리니 나중엔 그들과 한팀이 된 것처럼 한 몸으로 움직였다.

그들에게서 나는 땅을 파고 들어가는 법, 파고 들어간 땅을 지지하는 법, 시멘트의 이상적인 배합비와 타설법 등 강의나 교재로는 결코 알 수 없는 피가 되고 뼈가 되는 지식을 익힐 수 있었다.

그런데 호사다마라.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되자 김노인이 성깔을 부려댔다.

“아니, 대체 거기 뭘 하길래 사람을 그리 불러모아 뚝딱거리는가? 개발허가는 받았고?”

한 달 정도 성깔을 받아주니 김노인이 왜 이러는지 알 것 같았다.

그는 단지 스트레스를 풀 대상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점점 늙어가는 육체, 잘 풀리지 않는 일, 지긋지긋한 고독, 당면한 죽음.

아직 나로서는 어렴풋이 이해하는 절망이 그를 짜증 나는 노인네로 만든 것이다.

뭐, 마을 평판을 보니 원래 성깔도 썩 좋지 않았던 것 같긴 하다만.

별명이 세상에 호로쌍놈이란다. 호로쌍놈.

그 쌍놈의 야료 덕분에 나의 첫 방공호 건설은 수시로 방해 받았고 급기야는 인부들의 불만을 샀다.

나도 양반은 아닌지라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던 중 나는 김노인의 외떨어진 집에 못 보던 차량이 서 있는 걸 발견했다.

제법 번쩍거리는 신형 벤츠였다.

김노인과 닮았지만 훨씬 크고 젊은 사람이 입이 삐쭉 나온 중년 여성과 함께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쌍놈의 새낀가···.”

절로 내 입에서 흘러나온 말이었다.

김노인은 한 번도 가족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

일손을 도울 때 수시로 폰을 만지작거리고 가끔 통화를 시도하는 걸 봐서 가족이 있는 건 확실해 보였지만 실제로 보는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런데 그날, 나는 김노인의 마음에 드리운 진정한 얼룩을 발견했다.

“아니, 이 땅 팔라고. 우리가 모실 테니까. 우리가 모셔준다는데 왜 지랄이야! 어!”

김노인을 닮은 사내가 김노인의 멱살을 잡고 장난감처럼 흔들었다.

입이 삐쭉 나온 여인은 지켜보기만 할 뿐 말릴 생각조차 없어 보였다.

오히려 쌤통이라는 듯 비릿한 냉소를 머금고 남편으로 보이는 사내를 무언으로 응원하는 눈치다.

“씨발. 어릴 때 그 좆같은 주사 다 받아줬더니만 누나한테는 금싸라기 땅 주고 장남한테는 쓰레기 땅 주고. 박서방이 요즘 나 얼마나 무시하는 줄 알기나 해?”

사내의 언성은 점점 높아졌다.

아마 쌓인 게 많았던 모양이다.

김노인의 성질머리는 나름 해탈한 나조차 살의를 느낄 정도로 지랄맞은 구석이 있었으니까.

그런데 점점 도를 넘어서는 게 보인다.

“그 좆소 다니는 새끼가 지금은 나보다 훨씬 좋은 아파트 살며 떵떵거리는데 당신 성 이어받은 아들 새끼는 손자 영어 유치원비도 없어서 빌빌거리고 있잖아!”

끊임없이 내면에서 분노를 확대 재생산하며 감정의 진폭을 높이는 게 보인다.

“땅 팔 거야? 안 팔 거야?”

사내가 주먹을 들었을 때 나는 기침 소리를 크게 냈다.

사내가 성난 얼굴로 나를 응시했다.

뭐 어쩌자는 건지.

빤히 쳐다보고 있으니 슬그머니 주먹을 내리고는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로 구시렁거린다.

한편 멱살을 잡힌 김노인은 그답지 않게 축 늘어진 얼굴로 힘없이 고개를 젓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쓰러져가는 그의 집에 고정되어 있었다.

“씨발!!!”

사내가 욕지꺼리를 내뱉으며 김노인을 내려놓고는 아내와 함께 벤츠로 향했다.

벤츠의 문을 열며 그는 매몰찬 말을 던졌다.

“이번 추석부터 영진이 안 데리고 올 테니까!”

차가 떠난 후 잠시 고민했다.

망연자실하게 앉아 있는 김노인을 못 본 척 지나갈 것인지 위로의 한마디라도 할 것인지.

김노인을 싫어하는 마음은 그의 아들에 지지 않지만 그래도 당장은 김노인의 협력이 필요하다.

욱하는 마음을 다스리며 김노인에게 다가갔다.

“다 본 모양이구만.”

김노인은 나를 보지도 않고 말했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쓰러져가는 집에 고정되어 있었다.

막대사탕을 꺼내 입에 물며 노인 옆에 쪼그리고 앉아 함께 그가 바라보는 낡은 집을 보았다.

“아들입니까?”

“······자네는 부모님이 계신가?”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고로 돌아가셨습니다.”

“저런.”

“오래 전 일이니까요. 그나저나 큰일이시겠습니다?”

“싸구려 땅을 준 게 아니야.”

김노인이 떠나가는 벤츠를 보며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증여할 땐 그 땅이 훨씬 더 비쌌다고······.”

“아들한테 증여한 땅 말씀이군요.”

김노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담배를 하나 꺼내 입에 물었다.

불을 붙이는 걸 도와주자 그는 헛웃음을 머금은 채 이야기를 시작했다.

“딸한테 준 땅은 당신 것처럼 맹지였어. 심지어 돈도 안 되는 흙산을 낀 똥땅이었지. 그런데 그 앞에 10차선 도로가 뚫릴 줄 누가 알았어? 그 구석 땅에 터널이 뚫리고 신도시가 생길 줄 누가 알았냐고?”

그의 인생은 예상한 그대로였다.

좋은 아빠도 아니었고 훌륭한 아빠도 아니었다.

수시로 가족에게 주사를 부리고 폭력을 휘두르는 보잘것없는 아빠였다.

평생을 호로쌍놈으로 살다 인생 말년에 가진 땅이 수용되어 큰돈을 만져서 돈 있는 아빠로 레벨 업한 재미없는 인생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의 자식들은 진즉 김노인을 손절했을지도 모를 일이겠지만.

빠르게 대화를 끝내기 위해 불쑥 물었다.

“왜 그 집을 안 파십니까? 팔고 다른 데 가시면 해결될 문제 아닙니까?”

“그럴 순 없지. 그럴 순 없어.”

노인이 하얀 연기를 내뿜으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죽은 마누라 귀신이 저기 있는 걸. 평생 나같은 호로쌍놈 성깔 받아준....”

내가 김노인에게 뭘 잘했는지는 지금에 와서도 알 수가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그 짧은 대화가 김노인의 마음에 10차선 도로를 냈다는 것이다.

그날 이후 그는 더 이상 드나드는 공사 차량을 막지도 않았고 불평을 터뜨리지도 않았다.

부딪칠 일이 없으니 자연스레 사이도 좋아졌고 내쪽에서 김노인에 접근해 일손을 자청하기도 했다.

이웃사촌이라고 이왕 옆 동네 사는 거 친하게 지내서 나쁠 거 하나도 없으니.

콩고물도 있었다.

도시 출신으로는 배우기 어려운 농업에 대한 지식을 김노인에게 배웠다.

“농사는 말이여. 음력이여. 양력은 쓸데없어. 음력을 봐야 혀. 절기. 절기가 중요하지.”

그는 어렴풋이 내가 하려던 일을 눈치채기도 했다.

“당신, 최근 유행한다는 생존주의자? 멸망주의자인가 뭔가 하는 그거지?”

“뭐, 그런 셈이죠.”

“그런 거 하려면 모종 같은 거 필요하지 않을까? 세상이 망해도 채소는 먹어야 하지 않겠어?”

“지하에서 키울 게 있을까요?”

“햇빛과 물, 비료만 있으면 뭐든 키우지. 요즘은 모종이 워낙 좋게들 나와서. 중요한 건 정성이여.”

그 이후 여러 번의 절기가 지났지만 그의 자식이 그를 찾는 일은 없었다.

설날과 추석에 나는 그는 덩그러니 혼자 쓰러져가는 집의 마당에 멍하니 서서 도로 쪽을 바라보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았다.

훗날, 중국이 전쟁을 일으켰을 때 중국에서 발사한 미사일이 수도권을 강타했다.

김노인이 내 방공호에 헐레벌떡 찾아왔다.

그가 그렇게 당황하는 모습은 그를 안 이래 처음있던 일이었다.

“내 아들, 내 아들이 어떻게 됐나 알아봐 주게.”

통신이 복구되고 사망자 명단을 확인했다.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야 했다.

김노인은 말없이 고개를 떨굴 뿐이었다.

울지도 흐느끼지도 않았다.

무슨 바람이 불어서였을까.

“이제 세상은 곧 멸망할 겁니다. 괜찮다면 제 방공호에 오지 않으시겠습니까?”

내 주의에 맞지 않는 권유를 해버렸다.

김노인이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그가 나를 향해 미소지었다.

“잠깐만 기다려주게. 준비할 게 있어서.”

“준비할 게 있나요?”

“자네 줄 게 있어서.”

그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따뜻한 미소를 지을 줄 아는 남자였다.

다시 김노인을 찾았을 때 그는 그가 지키려고 했던 쓰러져가는 집의 대들보에 목을 맨 채 파초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식어가는 발아래엔 모종 씨앗이 나름 정성을 들인 손길로 곱게 포장되어 있었다.

그의 시신은 수습할 수 없었다.

핵공습 경보가 사방에서 울려 퍼지며 세상의 종말을 알리고 있었다.

빠르게 모종만을 챙겨 방공호로 대피했다.

결과적으로는 현명한 선택이었다.

뒤이어 터진 핵분열의 성난 불길이 쓰러져가는 집과 시신을 흔적도 없이 불태워버렸으니까.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