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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영감님과 함께-189화 (164/195)

어느 날 갑자기, 영감님과 함께 189화

신아진이 하얀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으며 말했다.

“아. 그러니까 난 기본이 되어 있는 사람이다. 그런 말이에요?”

“그래. 녀석아.”

“그런데 할아버지. 태화가 되게 마음에 들었나 봐요?”

“왜? 그렇게 보이니?”

신아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네. 할아버지.”

신아진도 태화가 연출한 <내 복권 내놔!>를 보려고 했었다. 하지만 우한수가 신아진에게 먼저 제안할 줄은 몰랐다.

“난 할아버지가 여기 부성시까지 직접 오면서까지 태화가 연출한 작품을 볼 거로 생각하지 못했어요. 근데 할아버지.”

“왜 그러냐?”

“태화가 할아버지한테 여기에 같이 오자고 제안 안 했어요?”

“서 감독이 당연히 제안했지.”

“그런데요?”

“내가 거절했다.”

“왜요?”

“나보다 여기에 게스트 자격으로 오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겠다 싶어서였다. 나야 굳이 게스트로 참석하지 않아도 네가 있으니까. 이렇게 손녀하고 데이트하는 것도 나름대로 즐겁거든.”

“할아버지도 참….”

신아진이 살짝 궁금한 표정으로 우한수에게 물었다.

“근데 할아버지는 태화의 어디가 그렇게 좋은 거예요?”

“뭐라?”

“뭐. 그냥 딱 봐도 알겠던데요? 태화한테 호감을 느끼고 있는 거요.”

“껄껄걸. 내가 그랬나?”

“네. 할아버지.”

신아진은 신호 때문에 차를 잠시 멈춰 세웠다.

“할아버지답지 않게 좀 티가 난다고 해야 하나?”

신아진이 보기에 우한수가 태화에게 보이는 모습은 그동안 보기 힘들었던 모습이었다. 우한수는 남을 평가할 땐 항상 조심스러웠다. 그리고 상대에게 호감을 느끼더라도 우한수는 그걸 겉으로 티내지 않았다.

신아진의 발언에 우한수가 살짝 미소를 지었다. 지금 우한수가 지은 미소를 느낌이 묘한 미소였다.

미소지만 거기엔 뭔가 아련함이 묻어 있었다. 만약 신아진이 지금 우한수의 표정을 보았다면 이런 생각을 했을지도 몰랐다.

-할아버지의 저런 표정은 처음 봐.

그 정도로 현재 우한수가 지은 미소는 한번 보면 잊기 힘든 그런 미소였다. 우한수가 나직이 대답했다.

“전에 이 할애비와 아주 친했던 사람과 닮았어.”

“닮아요?”

“그래. 서 감독은 그 사람과 눈빛이 아주 닮았어.”

신아진이 살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눈빛이 닮았다고요?”

“그래.”

그사이 신호등의 색이 바뀌었다. 신아진이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고 액셀러레이터를 천천히 밟았다.

“할아버지 어떻게 닮았어요?”

“왜? 궁금하냐?”

“궁금해요.”

“그래. 그럼 이야기하마. 서 감독의 눈빛은 선해.”

“선하다?”

신아진은 며칠 전 휴게소에서 우연히 만났던 태화의 모습이 떠올랐다. 신아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건 인정. 근데 그게 다예요?”

“왜 그런 질문을 하니?”

“할아버지가 단지 눈빛이 선하다고 호감을 보이는 성격은 아니잖아요. 물론 아주 친했던 사람과 닮았다고 하지만…….”

“녀석. 잘 봤다.”

“잘 봐요?”

“그래. 서 감독도 그렇고 그 사람도 그렇고……. 아주 눈빛이 맑고 선했지. 하지만 그 맑고 선한 눈빛 속에 욕망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해요? 순수함과 욕망이 같이 존재한다는 게…….”

“그래. 그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 아마 그래서 이 할애비는 그 눈빛에 빠져들었는지도 모른다.”

“와아. 할아버지가 말한 그분 정말 보고 싶네요.”

“…….”

“할아버지. 나중에 기회가 되면 그분 만나게 해주세요.”

“그래. 그렇게 하자.”

우한수는 말을 하고 나서 잠시 두 눈을 감았다.

‘윤기야.’

우한수가 떠올린 인물은 허윤기다. 허윤기는 우한수와 학부 동기이자 친구다.

‘내 손녀가 윤기야, 널 보고 싶어 하는구나. 조만간 손녀랑 같이 가도록 하마.’

잠시 후 우한수는 잠시 감았던 눈을 다시 떴다. 그러자 시야에 부성역의 모습이 들어왔다.

“아진아. 다 왔구나.”

“네. 할아버지.”

“할애비는 알아서 갈 테니까 아진이 너도 네 일 봐라. 알겠니?”

“할아버지가 그런 말을 할 줄 알았어요. 안 그래도 그럴 참이고요.”

“그래. 할애비 태우고 오느라 고생했다. 일 보거라.”

우한수는 말을 마치고 나서 신아진의 차에서 내렸다. 신아진은 아쉬웠는지 보조석 창문을 내렸다. 그리고 활짝 웃으며 우한수에게 손을 흔들었다.

“할아버지. 조심해서 가요.”

“그래. 알았다.”

우한수가 역사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계단을 오를 무렵 신아진의 스마트폰으로 연락이 왔다. 신아진에게 전화를 건 인물은 민경희다.

“여보세요.”

-팀장님. 방금 서태화 감독하고 미팅 끝냈습니다.

“그래요. 이야기는 잘 끝냈나요?”

-네. 저희 쪽에 전달할 메시지는 다 전달했습니다.

“수고했어요.”

-그런데 팀장님. 볼일은 다 보셨어요?

“네. 일은 잘 마무리됐습니다. 이따가 사무실에서 보도록 하죠.”

-네. 팀장님.

신아진은 민경희와 통화를 끝내고 다시 차량을 운전하기 시작했다.

#.

태화는 며칠 만에 스태프를 불러 모았다. 한재영과 이우섭 김우섭 그리고 이한철과 정민석이다. 태화는 스태프들에게 남은 영화제 기간 비교적 자유롭게 지내도록 했다. 스태프들에게 부성 국제 영화제에 그것도 게스트로 참여할 기회가 인생에서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태화와 스태프는 태화의 방에 모여있는 상태다.

“다들 그동안 고생이 많았어요. 특히 한철이 형하고 민석이 형은 정말 고생이 많았어요.”

정민석이 미소를 지으며 태화에게 대꾸했다.

“고생은 무슨……. 솔직히 요즘 너무 재밌다. 내가 밴드하고 같이 작업할 거라고는 생각 못 했었는데…. 실제로 작업해 보니 너무 재밌다.”

이한철은 정민석의 발언을 듣고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도 민석이 생각과 비슷하다. 나도 밴드하고 작업을 해보긴 처음이니까.”

“형. 근데 어려운 점 없어요?”

“그렇게 어려운 점은 없었어. 오창민이 밴드 멤버들을 잘 다독이면서 가더라고.”

“저도 형이 보내 준 영상 봤는데 재밌더라고요.”

“태화야. 요즘 심경이 어때?”

“심경이요?”

“그래. 이제 영화제도 막바지잖아. 너 요즘 가슴이 막 떨리고 하겠다?”

“네? 그게 무슨…….”

이한철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요즘 너 분위기 핫하잖아.”

“결과야 두고 봐야죠.”

“기대는 하고 있었구먼.”

이한철의 말에 사람들은 순간 빵 터졌다. 사람들의 웃음이 잦아들자 한재영이 발언했다.

“뭐야?”

“뭐가?”

“태화. 너 단지 수고했다고 이렇게 모이라고 하는 성격은 아니잖아.”

태화는 순간 역시 한재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재영은 가끔 태화의 속내를 제대로 보곤 했다.

“너, 뭔가 있는 거지?”

“그래. 있다.”

태화의 발언에 순간 사람들은 태화에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오늘 여러분들을 부른 건 다들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아서입니다.”

태화는 말을 마치고 나서 민경희에게서 받은 명함을 테이블에 내놓았다.

한재영이 명함을 본 후 발언했다.

“드림 팩토리라.”

“오늘 그쪽 직원하고 미팅하고 왔어.”

“드림 팩토리. 이름을 들어는 본 것 같아.”

태화가 한재영에게 물었다.

“어떤 곳이지?”

“내가 알기론 이곳은 그렇게 규모가 있는 곳은 아니야. 하지만 실리는 많이 챙긴 곳으로 알고 있어.”

“실리를 챙겼다?”

“그래. 소위 말하는 블록버스터보다는 틈새시장을 노린 작품들이 많았어. 나름대로 짭짭하게 재미를 본 것도 사실이고. 그런 회사가 너와 접촉했다는 건….”

이한철이 한재영의 말을 받았다.

“나쁘지 않지. 아닌가?”

한재영이 이한철을 보며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당연히 나쁘지 않죠. 어떻게 보면 지금 우리한테 필요한 곳이기도 해요. <내 복권 내놔!>도 많은 제작비가 들어간 작품이 아니잖아요.”

이한철은 한재영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재영이 말이 난 맞다고 본다. 처음부터 너무 규모가 큰 회사를 상대하기 보다는 이런 회사가 나을지도 모르지.”

이한철의 발언은 나름대로 일리가 있었다. 메이저 회사로선 태화는 이제 갓 데뷔한 감독일 뿐이다. 만약 계약을 진행한다고 해도 비대칭적일 수밖에 없다.

태화가 이한철의 발언에 이어서 발언했다.

“한철이 형. 그리고 재영이. 두 사람의 말에 일리가 있어요. 하지만 드림 팩토리라는 곳이 그리 만만한 곳은 아니더군요.”

한재영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마도 뭔가 조건을 걸었겠지. 안 그래?”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내가 드림 팩토리라면 최소한의 조건을 걸었을 거야.”

이한철이 한재영의 말을 듣고 발언했다.

“조건이라. 그건 아마도 성과겠지.”

이한철의 발언이 끝나자 태화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맞아. 형. 그렇게 조건을 걸어왔어요.”

“태화야. 여기서 이런 말 하는 게 어떨지 모르겠지만……. 일단 나쁜 건 아니라고 본다.”

“나쁜 건 아니다?”

“그래. 지금에야 말하지만 난 솔직히 올림픽 정신으로 이곳에 왔어.”

“올림픽 정신이요? 혹시 참가하는 데 의의가 있다. 그런 의미인가요?”

이한철이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 부성 영화제 본선 무대에 오른 것만으로도 대단한 거니까. 하지만 이곳에 있으면서 조금씩 느끼게 되었다.”

“…….”

“어쩌면 무슨 일이 벌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 그 생각이 조금씩 커졌다.”

이한철의 말이 끝나자 한동안 발언이 없었던 정민석이 발언했다.

“나도 한철이 형하고 생각이 같아. 그 성과라는 거 나지 않을까? 지금까지 태화 네가 보여주었던 모습을 비추어 본다면 이번 영화제에서도 분명히 성과가 날 거야. 그리고 태화야.”

“네. 형.”

“고맙다.”

“뭐가 말인가요?”

“오늘 이렇게 말해준 거 말이야.”

“그야. 당연한 거 아닙니까?”

태화의 말에 이한철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태화야. 네 생각처럼 당연한 건 아니야.”

“네?”

“지금처럼 아주 중요한 정보를 스태프들과 공유하는 감독이나 제작자들은 많지 않아. 왜 그런지 알아?”

“그건 정보가 바로 힘이 될 테니까요.”

“바로 그거야. 위치가 올라갈수록 그에 따라 중요한 정보를 획득할 기회도 많아지지.”

“여기 모인 사람들 모두 <내 복권 내놔!>가 세상에 나오는 데 큰 역할을 했던 사람들입니다. 결과야 어찌 나오든 알려주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쨌든 나는 태화 너의 진정성에 대해서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진정성이요?”

“그래. 특히 오늘 네가 말한 정보는 아주 중요하지. 너만이 알고 있었던 정보이기에 더 그랬던 정보고. 이런 정보를 공유해 준다는 것 자체가 여기 있는 사람들을 신뢰한다는 의미겠지.”

이한철의 말에 태화가 밝게 웃으며 말했다.

“여기 있는 사람들. 다시 안 볼 사람들이 아니잖아요.”

“그렇긴 하지.”

태화는 이곳에 모인 사람들의 표정을 한 명씩 천천히 살폈다. 이들의 표정엔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다. 그것은 태화를 바라보는 시선의 성격이었다. 이들은 단순히 태화를 바라보는 게 아니었다. 그 시선엔 태화를 향한 신뢰가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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