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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영감님과 함께-184화 (195/195)

어느 날 갑자기, 영감님과 함께 184화

부성 국제 영화제는 사진작가에게 많은 페이를 지급해 주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매년 공모를 내면 꽤 많은 사진작가가 공모에 응모한다.

그 이유는 신진 사진작가들에게 부성 국제 영화제는 나름대로 인맥을 넓힐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용철은 한번 보면 쉽게 잊힐 외모가 아니었다. 이런 이유는 바로 삭발 때문이었다.

삭발 때문인지 이용철은 첫인상부터 남다른 포스가 느껴졌다.

하정연이 태화에게 이용철을 소개했다.

“감독님. 오늘 사진 촬영을 해주실 이용철 사진작가님입니다.”

태화가 이용철을 보며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서태화입니다.”

이용철이 태화에게 인사를 받고 나서 발언했다.

“와우. 이거 감독님이 아니라 배우님 같은데.”

“과찬이십니다.”

이용철이 하정연을 보며 발언했다.

“팀장님. 이분 감독님 맞아요?”

하정연이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맞아요. 전에 연기 지망생이었다고 하더군요.”

이용철이 태화를 보며 발언했다.

“정말이에요?”

“맞습니다.”

“그런데 왜?”

태화는 건조하게 대답했다.

“뭐. 저하고 연기는 잘 안 맞더라고요.”

“아. 그러셨구나. 그런데 감독님 대답도 되게 쿨하게 하시네.”

“아. 그랬나요?”

“네. 대답에 군더더기가 없어요. 핑계 같은 것도 없고.”

이용철이 갑자기 활짝 웃으며 하정연에게 말했다.

“하정연 팀장님. 감독님 촬영 콘셉트. 잡힌 것 같습니다.”

“뭐로 잡으셨나요? 이 작가님?”

“쿨함으로 가죠. 그냥 감독님은 쿨함 자체네요.”

이용철의 말에 하정연은 맞장구를 쳤다.

“난 이 작가님의 말에 동의해요. 감독님은 어때요?”

“쿨함이라는 게 좋긴 한데…. 근데 제가 그 콘셉트를 소화할 수 있을까요?”

태화의 발언에 이용철이 발언했다.

“감독님 그건 걱정하지 말아요.”

“네?”

“감독님은 그냥 카메라만 갖다 대도 쿨함이 막 쏟아질 거 같으니까요.”

이용철은 기습적으로 태화에게 카메라를 갖다 대었다. 그리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찰칵.

태화는 아무런 포즈도 취하지 못하고 카메라에 찍혔다. 하지만 결과물은 꽤 괜찮았다.

사진을 확인한 이용철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와우!”

하정연이 이용철의 감탄사를 듣고서 궁금한 듯 물었다.

“이 작가님. 결과물이 좋아요?”

이용철이 대답 없이 엄지를 치켜세웠다. 하정연은 이용철의 성향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이용철은 촬영장 분위기를 위해 사진 모델이 된 사람을 칭찬한다. 어떻게 보면 영혼 없는 칭찬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용철은 웬만해선 엄지까지 치켜세우지는 않는다.

하정연은 재빨리 이용철에게 다가가 태화의 사진을 확인했다. 하정연은 사진을 확인하고는 깜짝 놀랐다.

“음. 좋은데요?”

“그렇죠. 팀장님.”

하정연이 태화를 불렀다.

“감독님. 사진 좀 보세요.”

태화는 사진을 보기 위해서 이용철과 하정연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태화는 이용철의 노트북 화면을 보았다. 노트북 화면에는 태화의 사진이 떠 있었다.

태화는 자신이 찍힌 사진을 보며 살짝 놀랐다. 사진의 프레임 속에 잡힌 태화 자기의 모습이 꽤 근사하게 나왔기 때문이었다.

이용철은 사진을 기습적으로 찍는 바람에 구도를 제대로 잡지 못한 채 카메라의 셔터를 눌렀다. 그래서 사진 구도가 약간 사선으로 잡혔다. 태화의 시선도 사선 방향이 되었다.

이러한 시선 처리 때문에 사진 속 태화는 세상을 다소 삐딱하게 보는 느낌을 주었다. 이 결과 태화가 반항기 가득한 인물로 보이게 만들었다.

이용철이 태화를 보며 말했다.

“감독님. 아주 사진을 잘 받으시네요.”

“그렇네요. 저도 이렇게 제가 사진을 잘 받을 줄은 몰랐는데요?”

태화의 이 발언은 그냥 한 말이 아니었다.

[영감님. 제가 연기를 지망하던 시절에 프로필 사진을 꽤 많이 찍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나온 사진이 오늘처럼 느낌 있게 나온 적은 없었어요.]

[아마도 그건 자네의 삶과 관련이 있어서 그런 것이네.]

[삶과 관련이 있다고요?]

[그렇네. 삶이 만족스러우면 그만큼 인상이 좋아지네. 반대로 삶이 불만족스러우면 그게 인상에 남게 되네. 왠지 얼굴에 불만이 있거나 어색한 표정이 나오게 마련이지. 특히 웃는 표정은 매우 어색하지.]

[생각해 보면 그랬던 것 같군요. 프로필 사진을 찍고 나서 항상 만족스럽지 않았으니까요. 그때는 이유를 몰랐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영감님 말이 맞는 거 같습니다. 삶이 즐겁지 않은데 억지로 웃으려니 결과가 좋을 수가 없죠.]

[그런 말이 있지. 잘나가는 배우는 어떤 각도에서 프레임을 잡아도 각이 나온다. 그만큼 자신감이 인상 자체에 스며들게 되네. 자네는 현재 배우는 아니지만 한 명의 인간으로서 자신감이 충만한 상태네. 그 자신감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결과가 바로 저 사진일세.]

[음. 그렇군요. 하지만 너무 외모가 강조되는 건 아닐까요?]

[너무 걱정하지 말게. 현재 자네에게 결코 손해는 아닐세.]

[그렇네. 대중들에게 일단 알려져야 하는 자네에겐 나쁜 일이 아니야. 능력도 있고 외모도 매력적이라는 이미지를 얻게 되네.]

이용철이 태화를 향해 말했다.

“전 이 사진이 좋아요. 아무런 준비 없이 찍어서 나온 결과물이거든요.”

“그만큼 자연스럽게 나온 것이겠죠. 작가님. 저도 이 사진이 좋네요.”

태화에 이어서 하정연이 발언했다.

“이 사진은 대표 이미지로 쓰면 좋을 것 같네요. 반항적인 이미지가 있어서 좋네요.”

이용철이 하정연의 발언에 맞장구를 쳤다.

“그렇죠. 창작자는 반항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게 좋죠. 게다가 젊음과 반항은 한 묶음이잖아요. 감독님은 어떠세요?”

“좋네요.”

이후 태화는 사진 촬영에 들어갔다. 하지만 처음에 찍었던 사진보다 느낌이 좋은 사진을 찍지는 못했다.

#.

태화가 하정연과 인터뷰했던 내용은 바로 다음 날 홈페이지에 게재되었다.

-올 부성 국제 영화제에서 주목해야 할 신인 감독 서태화!

-초저예산으로 만든 장편 데뷔작!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다!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신인 감독 서태화. 부성 국제 영화제를 정조준하다.

기사가 홈페이지에 게재되고 나서 태화가 길을 걸어가면 알아보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생겨났다.

“저기 서태화 감독님이시죠?”

태화는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을 향해 밝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네. 안녕하세요. 근데 저인 줄 어떻게 아셨어요?”

“기사가 났던데요? 그리고 사진도 멋있게 나오셨고요?”

태화는 자신을 알아보는 관객이 한편으론 고마웠고 다른 한편으론 신기하기도 했다. 자신을 알아봐 주는 걸 넘어서 환영해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태화는 <내 복권 내놔!> 두 번째 상영에 맞춰 다시 극장을 찾았다. 오늘은 상영 후 GV 행사일정이 없다. 태화가 극장을 찾아온 건 관객들에게 깜짝 인사를 하기 위해서였다.

이는 태화가 부성 국제 영화제 이벤트 담당 노성준에게 제안한 사항이었다. 태화가 이런 제안을 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영화제에서 자신과 작품에 관해서 관심을 가져주는 관객들에게 한 번이라도 더 직접 인사하는 게 도리였다.

태화의 제안에 노성준은 반겼다.

“감독님. 아주 좋은 제안입니다. 관객분들은 감독님이 깜짝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큰 선물이 될 겁니다.”

“그렇게 생각해 주니 고맙습니다.”

영화는 거의 막바지로 향하고 있었다. 태화는 미리 준비된 대기실에서 영화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영화 상영이 끝나고 객석에선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태화는 박수 소리가 잦아들기를 기다렸다가 마이크를 들고서 스크린 앞으로 나갔다.

“지금 나가려고 하시는 분들은 잠시만 기다려 주시기를 바랍니다.”

태화의 발언에 사람들은 잠시 멈칫했다. 앞자리에 앉았던 관객은 벌써 태화를 알아보고 소리를 질렀다.

“어. 서태화 감독이다! 서태화 감독이야!”

관객의 외침에 사람들은 극장을 나가려다 다시 발걸음을 돌렸다.

“오늘 이렇게 예고도 없이 불쑥 찾아온 건 관객 여러분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기 위해섭니다.”

“…….”

“요즘 하루하루 행복한 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게 모두 관객 여러분께서 제가 연출한 <내 복권 내놔!>를 재밌게 보아주셔서입니다.”

태화는 말을 마치고 나서 허리 숙여 관객을 향해 인사했다. 태화의 모습에 관객들은 박수를 보냈다.

태화가 박수 소리가 잦아들자 다시 발언했다.

“그럼. 다들 행복한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

태화가 발언을 마치자 사람들이 우르르 태화를 향해 몰려들었다. 사람들은 태화에게 사인을 받거나 사진을 찍기 위해서였다.

꽤 많은 사람이 태화에게 몰려들었지만, 태화는 싫어하는 내색 하나 비치지 않았다. 태화에겐 이 순간이 귀찮은 게 아니라 행복한 순간이기 때문이었다.

#.

한편 극장 뒤편에선 태화와 관객의 모습을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바로 석무열이었다.

석무열은 <내 복권 내놔!>를 감상하면서 시종일관 놀랐다. 꽤 잘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입소문이 돌았지만, 이 정도일 거로 생각하지 못했었다.

‘그 정도의 예산으로 이 정도의 퀄리티라니….’

석무열의 입가에 슬쩍 미소가 지어졌다.

‘서태화. 예측이 불가한 녀석이야.’

석무열은 태화를 처음 만났던 장례식장에서부터 심사위원으로 태화를 면접장에서 만났던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그땐 정말 이런 결과를 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는데. 서태화. 물건이 될 녀석인가?’

석무열은 피식 웃으며 슬쩍 자리에서 일어섰다. 석무열이 이 자리에 온 건 순전히 개인적인 관심사 때문이었다.

석무열은 태화가 앞으로 어떻게 일을 풀어나갈지 궁금해하고 있었다. 어쨌든 영화가 완성했다면 그다음 행보를 해야 한다.

그다음 행보는 바로 극장 개봉이다. 아무리 좋은 작품이라도 극장 개봉이 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일반적인 배급사로선 저예산 영화. 게다가 완전히 신인인 감독의 작품을 배급해 줄 리가 없다. 서태화. 그런 상황에서 부성 국제 영화제에 작품을 출품한 건 나름대로 훌륭한 판단이다. 어쨌든 영화제에 출품돼서 성과를 낸다면 그 성과를 바탕으로 극장 개봉으로 갈 수도 있으니까.’

석무열은 부성 국제 영화제가 개막되고 나서 꾸준히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러다 요즘 태화가 부성 국제 영화제에서 점점 뜨거워지는 인물로 주목받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실제 이곳에 와보니 서태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관객들에게 더 주목받고 있군.’

석무열은 극장을 나오기 위해서 출입문으로 향했다. 그때였다.

석무열은 자기도 모르게 왠지 익숙한 기분을 느꼈다.

‘음. 이 느낌은….’

석무열은 익숙한 느낌이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그곳에 이영진이 있었다.

순간 이영진과 석무열의 눈빛이 마주쳤다. 두 사람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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