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영감님과 함께 183화
태화가 하정연과 만나고 몇 분 후 태화를 안내했던 직원이 마실 차를 가지고 사무실로 들어왔다. 직원은 태화와 하정연 앞에 차를 놔두고 나갔다. 하정연이 태화를 향해 말했다.
“허브차입니다.”
“네. 향기가 좋네요.”
하정연이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나서 발언했다.
“그럼. 인터뷰는 이곳에서 진행하겠습니다. 괜찮겠죠?”
“벌써 인터뷰는 시작된 거 아닙니까? 그렇게 하시죠. 이곳 분위기가 편하고 좋네요.”
“그렇게 생각해 주니 고맙네요.”
하정연은 말을 마치고 나서 녹음기를 테이블 위에 놓았다.
“이미 녹음하고 있었습니다.”
“네. 괜찮습니다.”
“감독님. 너무 기분 나빠하지 마세요. 나름대로 검증의 과정이니까요.”
하정연은 인터뷰할 때 나름대로 하는 방식이 있었다. 그건 첫 인터뷰이에게 질문을 다소 공격적으로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걸 녹음한다.
하정연은 그러면서 상대의 반응을 본다. 어떤 사람은 하정연의 이런 행동에 무례하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하지만 하정연은 이 방식을 버리지 않았다.
하정연이 처음에 공격적으로 질문하면 인터뷰이의 반응이 나오게 마련이다. 하정연은 인터뷰이의 반응을 보면서 인터뷰를 진행한다.
“전 기분 나쁘지 않습니다.”
“기분이 나쁘지 않다고 하니 다행이군요.”
“네. 팀장님은 그만큼 제가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거니까요.”
하정연은 태화의 모습을 듣고서 살짝 놀랐다. 태화 같은 신인 감독이 방금처럼 대꾸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럴 때 입으로는 괜찮다고 하지만 대부분 표정이 굳어지거나 아니면 어색하게 변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태화는 표정 하나 바뀌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여유가 있었다.
‘뭐지. 역시 물건이라는 건가?’
하정연은 수년간 홍보팀에서 일하면서 터득한 사실이 있었다. 그건 주목을 받는 사람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는 점이었다.
그건 사람들은 평범한 사람에게 주목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평범하다는 건 흔하다는 것이고 희소하지 않기 때문이다. 태화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이전에 어떠한 작품도 만들지 않았습니다. 저에겐 <내 복권 내놔!>가 제 인생에서 처음으로 제가 연출한 작품입니다.”
“알겠어요. 그럼. 영화감독이 되기 전에 연기에 도전했었죠?”
“네. 저는 영화감독이 되기로 하기 전 연기를 하려고 했었습니다. 하지만 오디션만 보면 탈락했었죠.”
“그 이유가 뭔지 물어봐도 될까요?”
“그 이유는 아주 명확합니다.”
“명확하다?”
“네. 제가 연기를 못했으니까요.”
하정연은 태화의 이 직설적인 대답에 다시 놀라고 있었다.
‘이런 태도를 보이는 경우는 크게 보면 두 가지다. 하나는 정말 자기 자신에 관해서 자신감이 있을 때이고 다른 하나는 소위 말하는 허세다. 서태화 감독은 내가 볼 때 허세는 아니다. 그렇다면 결론은 자신감이다. 자신감이 있기에 거리낌 없이 대답하는 거야.’
하정연은 점점 태화에 관해서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정말 명확하군요. 그럼. 왜 영화감독이 되려고 한 겁니까? 배우의 길과 영화감독의 길은 좀 다르잖아요.”
하정연이 지금까지 태화에게 한 질문은 태화가 예상했던 질문에 있던 내용이었다.
“오기 같은 것이었습니다.”
“오기요?”
“네. 저를 계속해서 오디션에 탈락시켰던 감독의 존재가 눈에 들어오더군요.”
“미워하다가 관심을 두게 된 경우인가요?”
태화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팀장님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전 오디션 탈락할 때마다 남 탓을 했었습니다. 그중에 감독은 항상 일 순위였죠.”
“어쨌든 감독이 최종 결정권자니까요.”
하정연이 궁금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럼. 다음 순위는 누구입니까?”
“바로 접니다.”
하정연은 예상외의 대답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네? 자신이라고요?”
“어느 순간부터 자학하게 되더라고요.”
“자학이요?”
“네. 남 탓하는 것도 한계가 왔다고 할까요? 그냥 나 자신에게 모든 화살이 향하게 되더라고요.”
“결국 내 탓이다?”
“그렇죠. 그렇게 생각하니까 조금은 객관화가 되더라고요.”
“객관화란 자기 객관화를 말하는 것이겠죠?”
“그렇습니다. 그리고 나에겐 연기보다는 다른 게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감독의 길을 선택하게 된 것이란 말이군요.”
“그렇습니다.”
“재밌군요.”
“뭐가 말인가요?”
“감독님의 인생이 좀 극과 극으로 오간다고 할까요?”
“극과 극으로 오간다…….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군요. 어찌 보면 모 아니면 도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저도 아는 사람 중에 연기를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는 사람들을 봤어요. 그중에 아예 일반 회사를 들어간 사람들도 있고 감독님처럼 연출로 방향을 선회한 사람들도 있어요. 하지만 그 사람들은 감독님처럼 드라마틱한 성과를 내지는 못했어요.”
“잠시. 차 좀 마시겠습니다.”
“네?”
“팀장님 질문이 너무 쉴 새 없이 이어져서요.”
태화의 발언에 하정연이 피식 웃으며 발언했다.
“하하. 감독님 미안합니다. 나도 모르게 인터뷰에 집중하다 보니 그랬던 거 같습니다.”
하정연이 방금 한 발언은 거짓이 아니었다. 하정연이 그동안 인터뷰어로서 수많은 인터뷰이를 상대했었다. 태화는 신인 감독이지만 뭔가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다.
하정연이 이런 느낌이 들게 한 건 실로 오랜만이었다. 태화가 한 모금 마신 후 다시 대답했다.
“저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운이요? 저는 단순히 운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데요? 이렇게 저예산 아니 초저예산으로 장편을, 그것도 부성 국제 영화제 경쟁 부분에 올라올 정도면 단순히 운이라고 볼 수 없을 텐데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라……. 너무 겸손한 대답 아닌가요?”
“아뇨. 그렇지 않습니다. <내 복권 내놔!> 작품에 참여했던 스태프와 배우들. 너무나 능력 있고 좋은 분들입니다. 그분들과 함께할 수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저에겐 운이 좋았던 겁니다. 그분들이 함께하지 않았다면 지금과 같은 성과가 나올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감독의 능력이 없다면 아무리 좋은 스태프와 배우가 참여해도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습니다. 마치 프로 스포츠에서 아무리 좋은 선수들이 모여 있어도 그걸 하나도 묶어낼 감독이 없다면 우승을 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죠.”
하정연의 방금 발언은 태화를 칭찬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다.
[태화 군. 하정연 팀장이 자네 간을 보는구먼]
[저도 뭔가 께름칙했습니다. 하지만 하정연 팀장의 페이스에 말려들면 안 되겠죠.]
[그렇네. 이럴 때는 그냥 일관적인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 맞네.]
[네. 저도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태도가 저에게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테니까요.]
[그렇네. 하지만 인터뷰에 경험이 없거나 자기를 띄워주는 분위기에 순간적으로 취하게 되면 사람은 실수하게 마련이네.]
태화는 하정연의 간 보기에 넘어가지 않았다.
“팀장님의 말도 맞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번 작품에 함께 해준 스태프와 연기자들에게 공을 돌리고 싶습니다.”
하정연은 태화의 신인답지 않은 태도에 속으로 감탄했다. 보통 신인들은 자신들을 띄워주는 발언에 순간적으로 분위기가 흐트러지는 경우가 많다.
[역시 인터뷰 오기 전에 하정연 팀장에 관해서 알아보기를 잘한 것 같습니다.]
[그렇네.]
태화는 하정연과 인터뷰하기 전 영화잡지 ‘필름 포커스’ 기자 소정훈에게 연락을 취했다. 하정연에 관해서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태화는 소정훈의 연락처를 가지고 있었다. 저번 주차장에서 헤어질 때 태화는 혹시 몰라서 소정훈의 연락처를 받아놨었다.
소정훈은 하정연에 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기자님. 서태화입니다.”
-아. 네. 서태화 감독님. 무슨 일이시죠?
“제가 부성 국제 영화제 홍보팀으로부터 인터뷰 제의를 받았습니다.”
-혹시 인터뷰 제안을 한 사람이 하정연 팀장 아닙니까?
“네. 맞습니다. 어떻게 아시네요?”
-하정연 팀장. 결코 만만한 사람은 아닙니다.
“만만한 사람이 아니라고요?”
-네. 홍보팀장이지만 과거 영화잡지사에서 기자로 근무했던 사람입니다.
“기자 출신이요?
-네. 아마도 인터뷰가 평이하게 진행되지 않을 겁니다.
”평이하게 진행되지 않는다고요?
-네. 말랑말랑하게 진행되지 않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정보 주셔서 고맙습니다.”
-감독님. 축하드립니다.
“축하요?”
-네. 하정연 팀장이 움직였다는 건 감독님이 지금 영화제에서 꽤 주목받고 있다는 말입니다. 하정연 팀장이 가볍게 움직이는 사람은 아니거든요. 뭔가 확신이 섰을 때 움직이는 타입입니다.
“알겠습니다.”
태화가 하정연과 인터뷰를 하기 전 하정연에 관해서 소정훈에게 알아본 건 실제로 많은 도움이 되고 있었다. 상대를 어느 정도 알고 대처하는 것과 전혀 모른 상태에서 대처하는 건 큰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하정연은 태화의 노련한 인터뷰 태도에 속으로 감탄하고 있었다.
‘이렇게 젊은 감독이 이렇게 인터뷰를 능숙하게 해나가다니. 속에 능구렁이가 몇 마리는 들어가 있는 거 같잖아.’
어쨌든 태화는 하정연과의 인터뷰를 성공적으로 끌고 가고 있었다. 하정연이 피식 웃으며 발언했다.
“감독님. 인터뷰 잘하시네요.”
“제가 잘하는 건가요?”
“방금 발언. 뭐죠? 정말 모르는 건가요? 아니면 모르는 척하는 건가요?”
“알다시피 전 인터뷰 경험이 없습니다.”
태화의 발언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하정연 자신과 인터뷰하기 전 태화는 어디서도 인터뷰를 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정말 믿어지지 않는군요. 인터뷰가 처음인데 이렇게 능숙하게 한다는 게. 아. 그러고 보니.”
“네?”
“감독님은 <내 복권 내놔!>도 처음으로 만든 작품이잖아요. 이렇게 처음인데도 잘하는 거 보면…. 감독님은 천재인가요?”
하정연은 질문을 해놓고도 유치함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태화가 자신의 페이스에 도통 말려들지 않으니 나온 결과였다.
“아. 감독님. 미안해요. 마지막 질문은 그냥 취소할게요.”
“…….”
“감독님. 오늘 인터뷰는 이걸로 마치겠습니다. 그리고 돌아가시기 전에 잠깐 스튜디오에 들르시죠.”
“스튜디오요?”
“네. 인터뷰 문자만 나갈 수는 없잖아요. 사진이 필요해서요.”
“아. 알겠습니다.”
#.
태화는 하정연과 함께 스튜디오로 향했다. 스튜디오는 홍보팀이 있는 층이 아니라 다른 층에 있었다. 스튜디오는 규모가 그리 크지 않고 아담했다. 하정연이 태화를 향해 말했다.
“스튜디오가 좀 작죠?”
“전 괜찮습니다. 아담하고 좋은데요?”
“그렇게 생각하시다니 다행입니다.”
태화와 하정연이 대화하는 사이 사진을 찍어줄 사진작가가 스튜디오로 도착했다. 사진작가의 이름은 이용철.
부성 국제 영화제는 사진작가를 매년 계약직으로 고용한다. 이용철도 계약직으로 고용된 사진작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