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영감님과 함께 182화
태화는 무대를 내려왔다. 그런 후 이한철과 정민석을 향해 발언했다.
“두 분. 준비됐죠?”
이한철은 다른 걸 떠나서 맏형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이 많이 모이지 않았다느니 하는 말을 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한철이 태화를 보며 대답했다.
“어쩌겠어. 일단 촬영해야지.”
“고마워요. 형.”
“고맙긴. 어차피 할 일인데.”
정민석은 태화와 이한철의 대화를 듣고서 한편으로 안심했다. 어떻게 보면 현재 상황은 안 좋은 분위기였다. 예상했던 것보다 사람들이 모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태화와 이한철은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차분하게 대화했다. 이런 모습을 본 정민석은 한편으로 안심이 될 수밖에 없었다. 정민석이 태화에게 대답했다.
“그래. 태화야. 맡겨줘.”
“두 분 보면 안심이 됩니다.”
태화는 이한철과 정민석에게서 몸을 돌려 다시 무대로 향하려는 순간이었다.
“저기….”
태화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태화의 시선에 젊은 여성 두 명이 보였다. 두 사람은 친구로 보였다.
태화를 불렀던 여성이 태화에게 말을 붙였다.
“혹시 서태화 감독님이세요?”
“네. 맞습니다.”
태화의 말에 여성 두 명이 활짝 웃으며 좋아했다.
“어머. 감독님. 저 팬이에요.”
“네? 팬이요?”
“어제 GV 너무 재밌었어요. 물론 영화도 재밌었고요.”
“아. 고맙습니다. 근데 여기엔 공연 보러 오신 건가요?”
“네. 부성 국제 영화제 공식 계정에 글이 올라와 있더라고요. 근데 생각보다 사람이 많이 모이지는 않았네요.”
“아. 그렇네요.”
그때였다. 태화의 귀에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뭐지?’
사람이 웅성거리는 그 소리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태화는 본능적으로 자기의 몸을 돌렸다. 그러자 사람들이 태화가 있는 무대 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감독님!”
“네. 오창민 님.”
“도대체 뭐죠? 사람들이 왜 이렇게….”
밴드 엔의 다른 멤버인 김우진과 채성관 그리고 이채연도 태화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태화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어쨌든 사람들이 저렇게 오는 게 좋은 일 아닙니까?”
태화는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어리둥절했다. 한재영이 태화에게 다가와 말했다.
“태화야. 이것 좀 봐봐.”
한재영이 태화에게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뭘?”
한재영이 내민 스마트폰 화면에는 ‘음식 문화 축제’라는 문구가 보였다. 보통 영화제가 열리는 기간에 여러 가지 부대 행사가 열린다. 영화제도 사람들이 한 번에 모이는 축제인 만큼 광고 효과도 상당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제 측에서도 각종 행사를 개최한다.
여러 가지 행사 중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 중 하나가 먹는 것과 관련된 행사다. 특히 이번 영화제에서는 요리쇼를 기획했는데 영화제 메인 거리에서 크게 요리쇼를 했다. 그리고 이 요리쇼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태화야. 사람들한테 물어봤더니 이곳에 사람들이 많이 있었나 봐.”
“하긴. 축제에 먹는 게 빠질 수는 없으니까.”
태화는 사람들이 모이지 않았던 이유를 알게 되자 심리적으로 다소 안심이 되었다.
태화가 오창민을 향해 말했다.
“바로 이거였습니다.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이 모이지 않았던 이유.”
오창민이 수긍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군요.”
“영화제에 수많은 행사가 열리는데 이건 미처 파악하지 못했던 겁니다.”
오창민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어쨌든 다행이군요.”
태화는 시간을 확인했다.
“시간 다 됐습니다. 공연 시작하죠.”
“그렇게 하죠.”
오창민은 공연 시작을 위해 마이크를 잡았다.
“밴드 엔입니다. 인디 밴드고요. 이번에 영화 <내 복권 내놔!> 영화 음악에 독점으로 참여한 밴드입니다.”
오창민의 멘트 중 ‘독점으로 참여’라는 말에 사람들은 일제히 웃음을 터트렸다.
오창민은 무대 근처로 모인 사람들을 보았다. 얼핏 보아도 수백 명은 족히 되어 보였다. 버스킹에서 이 정도의 관객이라면 대박이었다.
오창민은 시선을 돌려 밴드 멤버를 바라보았다. 다들 얼굴이 흥분감에 들떠 있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자신들이 수많은 관객 앞에서 공연하기 때문이었다.
“그럼. 밴드 엔의 공연 시작하겠습니다!”
태화는 밴드 엔의 공연을 위해 무대에서 내려왔다.
[영감님. 오창민의 텐션이 올라오는군요.]
[아마도 그럴걸세. 공연을 보러온 사람들이 꽤 많은 걸 봤으니 말일세.]
[그러게, 말입니다.]
#.
다음 날.
어제 태화와 밴드 엔이 했던 합동으로 공연했던 버스킹은 사람들 사이에서 조금씩 화제가 되어가고 있었다. 이러한 화제성은 부성 국제 영화제 사무국도 느끼고 있었다.
부성 국제 영화제 사무국엔 여러 파트가 있었고 그중 홍보팀도 있다. 부성 국제 영화제는 영화제 기간 각종 화제가 되는 사건 등을 취재해서 홈페이지에 게재한다. 바로 이 홍보팀에 태화가 잡히기 시작했다.
홍보팀은 SNS에서 핫한 이슈를 찾아내기 위해서 모니터링 작업을 하는데 SNS상에서 태화와 <내 복권 내놔!>를 언급하는 횟수가 급격히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러한 상황이 일시적일 수도 있었다. 왜냐하면 아직 태화는 검증이 되지 않은 신인 감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홍보팀장 하정연은 현 상황을 주목했다.
‘서태화 감독이라….’
하정연은 처음부터 태화가 이번 영화제에서 뭔 일을 낼 것 같은 예감을 했었다. 그건 태화가 가지고 있는 요소 때문이었다.
저예산으로 완성도 있는 작품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에다가 외모가 꽤 매력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저예산으로 영화를 제작했다는 건 열악한 환경에서 작품을 만들었다는 의미다. 그리고 그 작품으로 부성 국제 영화제 경쟁 부분에 출품이 됐다는 건 열악한 환경을 극복했다는 것이기도 하다.
대중들의 관점에서 태화는 그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실제 태화는 부성 국제 영화제에서 핫한 인물이 되어가고 있었다.
실제 까봐야 안다는 말이 있다. 어떻게 보면 태화는 이 말을 실천하고 있었다.
영화제 경쟁 부분에 출품한 작품 중 가장 열악한 환경에서 작품이 제작했지만, 이에 비해 선전하고 있는 작품이 바로 <내 복권 내놔!>였고 그 중심에 감독인 태화가 있었다.
태화는 오전에 부성 영화제 사무국 홍보팀으로부터 연락받았다.
-안녕하세요. 서태화 감독님이시죠?
“네. 그렇습니다만. 누구시죠?”
-네. 전 부성 국제 영화제 사무국 홍보팀장 하정연입니다.
“아. 네. 그런데 홍보팀장님께서 제게 무슨 일로 연락하셨는지요?”
-다름이 아니라 시간이 되시면 인터뷰를 하실 수 있나 해서요.
“인터뷰요?”
-네. 오후에 하려고 하는데 가능하실까요?
태화로서는 이 인터뷰를 거절한 이유가 없었다.
“가능합니다. 어디로 가야 합니까?”
-좋습니다. 저희 사무국 아시죠?
“네. 알고 있습니다.”
-사무국 근처로 오셔서 연락 주세요.
“네. 그렇게 하도록 하죠.”
태화가 전화를 끊자 박도봉 감독이 말을 걸어왔다.
[확실히 자네의 주가가 올라가는 모양이구먼.]
[그러게요. 인터뷰 요청이라니요.]
[자네의 요 며칠 행보가 부성 국제 영화제 사무국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네. 이런 원인이 뭔지 아나?]
[원인이요? 그건 기회를 살렸기 때문 아닙니까? 관객들이 만들어 준 기회를 어쨌든 살린 거니까요.]
[자네의 말이 어느 정도는 맞네.]
[어느 정도가 맞는다는 말은 영감님이 원하는 대답이 아니군요.]
[그렇네.]
[그럼. 영감님이 생각하는 원인은 뭡니까?]
[결국 이야기네.]
[이야기요?]
[그렇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이야기에 관심이 많네. 특히 재미있는 이야기엔 열광적으로 반응하네.]
[영감님 말은 사람들이 이야기에 반응했다는 의미군요.]
[그렇네. <네 복권 내놔!>의 내적 이야기와 작품의 외적 이야기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것이네.]
[영감님 말은 내적 이야기나 외적 이야기 어느 하나만으론 이 정도의 반응을 끌어내기가 힘들었단 의미로 들리는군요.]
[그렇네. 자네의 말대로 내적 외적 어느 한 가지 이야기만으로 이런 반응이 나오기 어렵네. 관객은 영화라는 허구적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면서도 동시에 현실적 이야기에도 관심을 두네. 다큐멘터리라는 장르가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지. 자네가 가지고 있는 현실적 이야기가 어찌 보면 인간승리 측면이 있지 않은가?]
[네. <내 복권 내놔!>를 만드는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죠.]
[그렇네. 바로 그 순탄하지만은 않았던 그 이야기가 관객들의 마음을 흔든 것일세.]
#.
부성 국제 영화제 사무국은 건물 한 층만 쓰는 게 아니었다. 워낙 하는 업무가 방대하다 보니 총 3개의 층을 쓰고 있었다. 그중 한 층이 홍보팀이 쓰는 사무실이다.
태화는 홍보팀 여직원의 안내를 받아 홍보팀 내부로 들어갔다. 홍보팀 직원은 태화를 하정연의 자리로 안내했다.
홍보팀 직원이 하정연 팀장 사무실 방을 노크했다.
“네. 문 열려있습니다.”
홍보팀 직원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팀장님. 서태화 감독님 오셨습니다.”
“아. 어서 들어오시라고 해요.”
“네.”
홍보팀 여직원이 하정연의 사무실을 나왔다.
“감독님. 팀장님이 들어오셔도 좋다고 하시네요.”
“알겠습니다. 안내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태화의 말에 홍보팀 여직원이 수줍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에요. 제가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태화는 인사를 마치고 하정연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태화가 하정연의 사무실로 들어가자 하정연이 웃으며 태화를 반겼다.
“안녕하세요. 감독님.”
“안녕하세요. 팀장님.”
하정연의 사무실 배치는 깔끔했다. 본인의 명패가 있는 책상이 하나 있었고 그 앞에 또 소파가 양쪽에 있다. 이 소파 사이에는 테이블이 있어서 간단하게 차를 마시거나 회의를 할 수 있다.
“감독님. 소파에 앉으시죠.”
“네. 고맙습니다.”
태화가 사무실 문 기준으로 왼쪽에 앉았고 하정연이 그 반대편에 앉았다. 하정연이 태화를 바라보며 말했다.
“실제로 보니 외모가 더 매력적이시군요.”
태화가 멋쩍은 듯 손으로 머리를 쓸어 넘기며 대꾸했다.
“과찬이십니다.”
“감독님. 이력을 봤어요. 정말 놀랍더군요.”
“이전에 작품 경험이 없어서 그런 건가요?”
하정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보통 단편영화에서라도 주목받았던 감독이 나중에 두각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거든요.”
하정연의 말처럼 영화라는 분야도 어느 정도 단계를 밟기 마련이다. 하지만 태화는 이런 단계를 뛰어넘었다고 할 수 있었다.
“정말. 이 작품이 처음입니까? 혹시….”
태화는 하정연이 이런 질문을 왜 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찌 보면 떠보기이지만 다른 한편으론 정말 믿기지 않기 때문이었다.
태화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혹시 제가 단편 작품을 만들었는데 기재하지 않았다고 묻는 겁니까?”
하정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그럴 수도 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