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영감님과 함께 181화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파악한 이우섭과 김현석도 재빨리 자기의 스마트폰으로 부성 국제 영화제 공식 계정에 접속했다. 먼저 접속한 이우섭이 소리쳤다.
“와! 재영이 형 말처럼 이거 장난 아닌데요?”
이우섭에 이어 김현석도 소리쳤다.
“정말이네요. 반응이 정말 폭발적이에요.”
뒤늦게 반응한 이한철과 정민석도 부성 국제 영화제 공식 계정에 접속하고 나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한철도 흥분했는지 소리치듯 말했다.
“뭐야! 이 반응은…….”
-이번 영화제 최고의 화제작은 단연 <내 복권 내놔!>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예산으로 이렇게 퀄리티 높은 작품을 만들 수 있다니……. 감독은 천재임이 분명하다!
-어제 GV 역대급! 이런 GV 앞으로도 보기 힘들 듯…….
-어제 GV 행사가 갑자기 콘서트장으로 변했다. 마법 같은 일이 벌어졌다!
-<내 복권 내놔!> 감독 정말 잘생겼다.
태화는 한재영의 스마트폰으로 현 상황을 확인할 수 있었다. 부성 국제 영화제 공식 계정을 <내 복권 내놔!>가 압도적으로 점유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태화가 오창민에게 말했다.
“방금 확인했어요. 반응이 뜨겁네요.”
-그렇죠?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오창민의 목소리는 들떠 있었다. 태화는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창민은 성격으로 보자면 다소 시크한 면이 있었다. 쉽게 흥분하거나 들뜨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런 오창민이 지금 들떠 있었다. 그만큼 현 상황은 오창민의 인생에서 일어난 커다란 사건임이 분명했다.
그때였다. 상황을 지켜보던 박도봉 감독이 태화에게 말을 걸었다.
[태화 군. 일단 화제성에 성공한 듯하구먼.]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여기서 멈춰서는 안 되네. 이걸 발판으로 더 크게 치고 나가야 하네.]
[저도 영감님 생각과 같습니다. 하지만 어떤 방법이 있죠?]
[단순히 영화로만 해선 안 되네.]
[그 말의 의미는 밴드 엔과 뭔가를 해보란 말이군요.]
[그렇네. 어차피 밴드 엔은 버스킹을 할 예정이지 않은가?]
[그렇죠. 아……. 영감님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말이 버스킹이지 야외 GV가 될 수도 있겠군요.]
[그렇네.]
[하지만 배우진은 이미 부성시를 떠났는데요?]
[태화 군. 현재는 자네만으로 충분하네.]
[저만으로 충분하다구요?]
[그렇네. 어제 GV 행사에서 자네도 느꼈겠지만, 현재 감독인 자네의 인기는 배우진을 훨씬 능가했었네. 냉정한 말이지만 굳이 배우진이 필요하지 않네.]
[음. 그렇군요.]
[태화 군. 어쨌든 기회일세. 이건 영화제 측도 아니고 대중이 자네에게 기회를 만들어준 것이네. 이 기회를 잘 살려야 하네.]
[알겠습니다.]
태화와 박도봉 감독이 대화를 끝내는 시점. 전화기 너머에서 오창민의 목소리가 들렸다.
-감독님.
“아. 네. 오창민 님.”
-아. 저는 한동안 말이 없으셔서 무슨 일이 있나 했습니다.
“하하. 이거 죄송합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반응이라 잠시 머리가 멍해졌습니다.”
-지금은 괜찮아졌습니까?
“네. 기왕 이렇게 된 거 한번 가 봅시다.”
태화의 발언에 오창민의 웃음소리가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왔다.
-하하하. 감독님도 저하고 같은 생각이시군요.
“당연한 거 아닙니까? 오늘 버스킹 할 때 사람이 얼마나 모이는지 한번 보기로 하죠.”
-역시 감독님에게 연락하기를 잘한 것 같습니다. 저하고 생각이 정확히 일치하는군요.
“기회가 왔을 때 잡아야죠. 오늘 버스킹 예정지가 어디죠?”
-부성포 해변입니다.
“좋습니다. 그곳으로 사람들을 한번 모아보기로 하죠.”
-알겠습니다.
태화는 오창민과 통화를 끝냈다. 그런 후 태화가 한재영에게 말했다.
“재영아. 부성 국제 영화제 공식 계정에 답글로 부성포 해변에서 버스킹 하는 공지 올리자.”
한재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부성포 해변이라…. 부성포 해변은 부성시에서 가장 유명한 해변이야. 경치가 좋은 데다가 주변에 맛집이 있어서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아오는 곳이기도 해. 이곳에서 버스킹을 한다면 나쁘지 않아. 게다가 요즘 영화제 기간이라 부성시엔 영화팬들이 많이 찾아온 상황이니까…….”
“영화 팬들도 부성포 해변이라면 아마도 오겠지. 안 그래?”
“아마도 그렇겠지. 오케이. 좋아. 한번 해보자.”
한재영은 태화에게 대꾸하고 나서 재빨리 행동에 들어갔다.
-오늘 오후 4시. 부성포 해변에서 <내 복권 내놔!> 영화 음악에 참여한 밴드 엔의 버스킹이 있습니다. 참고로 <내 복권 내놔!>의 서태화 감독도 함께할 계획입니다.
#.
부성포 해변 근처 주차장. 태화와 일행들은 자신들이 타고 온 차량에서 내렸다.
이곳으로 이동할 땐 두 대의 차량으로 이동했다. 한 대는 한재영의 차량으로 태화와 한재영 이우섭과 김현석이 탑승했었다. 다른 한 대는 이한철의 차량으로 이한철과 정민석이 탑승했었다.
태화를 포함한 여섯 명은 부성포 해변으로 향했다. 한재영이 태화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과연 사람들이 많이 왔을까?”
“넌 몇 명이나 모여야 많이 왔다고 생각하냐?”
“글쎄?”
태화는 이우섭과 김현석에게 물었다.
“우섭이하고 현석이는 몇 명이 모여야 많이 왔다고 생각하냐?”
태화의 질문에 이우섭이 대답했다.
“저도 잘은 모르겠어요. 한 천 명 이상은 와야 하는 거 아닙니까?”
이번에는 태화가 김현석에게 물었다.
“현석이는?”
“저도 우섭이 형과 비슷해요. 형은 어떻게 생각해요?”
“내가 볼 땐 몇백 명이 모여도 많이 모인 거다.”
“정말요?”
“그래. 서울 중심가에서 하는 버스킹도 몇백 명이 모이면 많이 모이는 거야. 대성공이라고 할 수 있지.”
“그렇군요.”
태화의 말처럼 뮤직션이 버스킹을 하게 되면 보통 수십 명 정도가 공연을 관람하게 된다. 여기에 공연하는 뮤지션이 특별한 무언가가 있으면 몇백 명 정도가 버스킹을 관람하게 된다. 태화는 밴드 엔을 섭외하면서 버스킹 하는 모습도 목격했었고 그 때문에 이런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한철이 태화에게 말을 걸었다.
“태화. 너 나름대로 현실 감각이 있다.”
“네?”
“보통 이런 분위기에선 구름같이 몰리는 사람들을 상상하게 되지. 하지만 실제로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거든. 태화 네가 말한 몇백 명의 숫자는 아주 현실적이야.”
“현실적으로 접근해야죠.”
태화 일행은 부성포 해변에 도착하자 약속된 장소로 이동했다. 부성포 해변은 익히 알려진 관광지여서 그런지 꽤 정비가 잘된 상태였다. 음식점과 카페가 깔끔하게 들어서 있었고 기타 편의 시설도 잘 마련이 되어 있었다. 특히 부성포 해변엔 야외무대가 마련되어 있었는데 바로 그 야외무대에서 밴드 엔의 버스킹이 이루어진다.
야외무대 위치는 나름 괜찮았다. 사람들이 잘 볼 수 있는 곳에 있기 때문이었다.
태화 일행은 밴드 엔의 공연이 있을 무대에 도착했다. 밴드 엔의 멤버들은 이미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무대 근처에는 이미 사람들이 수십 명의 사람이 모여 있었다. 이 모습을 본 이우섭과 김현석은 다소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김현석이 먼저 발언했다.
“생각보다 너무 적은 거 아닌가요?”
“기다려 봐. 아직 공연하려면 시간이 있으니까.”
태화가 잠시 멈춰 일행들을 향해 말했다.
“다들 표정 관리 잘합시다.”
태화는 일행의 표정을 보았다. 태화가 보기에 일행 중 두 사람의 표정이 특히 좋지 않았다. 바로 이우섭과 김현석이다. 이 두 사람의 표정이 좋지 않은 건 자기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사람들이 모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태화는 어쨌든 이 두 사람에게 주의하라고 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특히 우섭이하고 현석이는 주의해.”
태화의 말에 이우섭과 김현석이 동시에 대답했다.
“네. 태화 형.”
태화는 이우섭과 김현석의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럴 땐 뭔가 다른 조치가 필요하다.
“당장 표정 관리하기 힘들면 어디 가서 바람이라도 쐬고 와.”
태화의 말에 이우섭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뇨. 그럴 필요 없습니다. 그렇지, 현석아?”
“네.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습니다.”
태화는 이우섭과 김현석에게 주의시킨 후 이한철과 정민석에게 시선을 돌렸다.
“한철이 형. 그리고 민석이 형. 오늘 촬영 잘 부탁드릴게요.”
이한철이 태화에게 대꾸했다.
“그래. 걱정하지 마라.”
이한철에 이어 정민석이 태화에게 말했다.
“태화야. 촬영은 걱정하지 마라. 나도 한철이 형 도와서 촬영이 잘 진행되게 할 테니까.”
정민석이 촬영에 합류하게 된 건 무엇보다 이한철의 제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건 정민석은 조명이 전공이지만 촬영도 어느 정도 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걸 이한철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민석은 이한철과 평소 철학이 비슷했다. 그 철학은 바로 카메라와 조명은 배타적이 아니라 서로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비슷한 생각을 가졌기에 이한철과 정민석은 훌륭하게 <내 복권 내놔!> 촬영을 끝마칠 수 있었다.
태화는 이한철과 정민석. 두 사람이 든든했다.
“두 분. 저는 믿습니다.”
#.
태화는 밴드 엔이 공연 준비를 하고 있는 무대로 이동했다. 태화가 활짝 웃으며 밴드 엔 멤버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십니까?”
태화가 인사를 건네자 밴드 엔 멤버들도 태화에게 인사했다. 멤버들은 태화를 보며 활짝 웃었다.
[아무래도 밴드 엔도 자네처럼 주의를 준 거 같구먼.]
[표정 관리 말인가요?]
[역시 자네는 눈치가 빨라. 그렇네.]
밴드 엔의 리더 오창민이 태화에게 다가왔다.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이 많았습니다.”
“고생은요. 공연 준비는 잘 되어 갑니까?”
“네. 준비는 다 되었습니다. 그런데 감독님?”
“네?”
“오늘 어떻게 될 것 같아요?”
“사람들이 많이 모일 거냐고 묻는 겁니까?”
오창민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글쎄요. 저도 잘은 모르겠습니다. 중요한 건 이곳에 모인 사람들한테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겁니다. 어쨌든 이곳에 오신 분들은 애써 찾아와 준 거니까요.”
태화의 대답에 오창민이 피식 웃으며 발언했다.
“역시 감독님은 제 생각하고 같네요.”
“그랬습니까?”
“네. 처음엔 저도 들뜨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 지나니까 현실 인식이 되더라고요.”
“…….”
“과연 몇 명이나 올까? 이 물음에 대한 저의 대답은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태화는 오창민의 발언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오창민은 어떤 면에서 태화와 비슷한 점이 많았다. 이러한 이유는 두 사람 모두 리더의 위치에 있기 때문이었다.
리더의 덕목 중 하나가 바로 현실 인식이다. 리더가 쓸데없이 뽕이 많이 들어가 있으면 그 조직은 금방 망한다. 하지만 리더가 냉철하게 현실을 인식하고 있다면 그 조직은 오랫동안 유지된다.
밴드 엔이 몇 년 동안 하나의 팀으로 유지될 수 있었던 배경엔 바로 오창민의 이러한 리더십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