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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영감님과 함께-177화 (188/195)

어느 날 갑자기, 영감님과 함께 177화

객석에서 터져 나온 연호와 박수 소리에 오상문은 깜짝 놀랐다.

‘신인 감독이 관객들에게 이런 환영을 받는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어쨌든 감독이 스타성을 갖추어야 가능한 일이다. 이런 감독은 손에 꼽을 정도다. 어쩌면 새로운 스타 감독이 탄생할지도 모르겠군.’

한편 태화는 관객들의 반응을 보고서 묘한 생각이 들었다.

[영감님. 묘하군요.]

[관객들의 반응 때문인가?]

[네. 이렇게까지 열광적인 반응이 나올 거로는 생각하지 못했으니까요.]

[그건 나도 마찬가지일세. 어느 정도 반응이 있을 거로 생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네. 하지만 지금 이 뜨거운 반응도 얼마든지 차갑게 식어버릴 수 있다는 걸 자네는 명심해야 하네.]

[알고 있습니다. 제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 태도가 변하겠죠.]

[그렇네. 그렇더라도 지금, 이 순간은 즐기게나.]

[네. 영감님.]

태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관객이 보내주는 환호와 박수를 받았다. 태화는 이 순간 너무나 황홀했다.

자신을 인정해 주는 사람이 이렇게 많다는 게 태화에겐 감격스러운 일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태화는 마냥 이 순간을 즐길 수는 없었다.

태화는 객석이 차분해지자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관객 여러분들이 보내주시는 환호와 박수 정말 고맙습니다. 저도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태화의 발언에 GV 행사장이 다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오상문도 태화가 이런 발언을 할 줄은 몰랐다. 그래서인지 오상문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감독님. 선물이요?”

“네. 좋은 선물이 될 거 같습니다. 제가 준비한 선물을 바로 음악 선물입니다.”

“음악 선물이요?”

“네.”

태화가 말을 마치자 극장의 조명이 일제히 꺼졌다. 그리고 얼마 후 어둠 속에서 반주가 흘렀다. 그 반주는 펑크 록 분위기의 반주였다. 그리고 강렬한 보컬이 어둠을 깨고 튀어나왔다.

부숴! 부숴! 다 부숴 버려!

날 가두고 있는 편견을 부숴 버려!

노래가 흐르고 조명이 다시 켜졌다. 그러자 4인조 밴드 엔의 모습이 드러났다.

결국 태화는 밴드 엔과의 약속을 지켰다. 태화는 부성 국제 영화제 사무국을 설득했고 결국 밴드 엔이 GV 행사장에서 공연을 할 수 있도록 허락을 얻어 냈다.

태화가 부성 국제 영화제 사무국을 설득할 명분은 충분했다. 보통 영화 음악엔 여러 뮤지션의 음악이 사용된다. 그래서 이들을 모아서 공연한다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내 복권 내놔!>는 밴드 엔만 영화 음악에 참여했다. 밴드 엔만 공연하겠다고 결정하면 공연을 하는 건 어렵지 않다.

태화는 부성 국제 영화제 사무국과 협상을 벌일 때 이미 밴드 엔의 허락을 받고 온 상태였다.

#.

태화는 부성 국제 영화제가 개막 한 달 전에 밴드 엔의 공연을 위해서 부성 국제 영화제 사무국 기획팀장인 안주원과 접촉했다. 이 자리엔 태화와 안주원 외에 두 사람이 추가로 더 모였다. 바로 밴드 엔의 리더인 오창민과 부성 국제 영화제 이벤트 담당자 노성준이다.

네 사람은 부성 시내에 있는 커피숍에서 미팅을 가졌다.

태화와 안주원은 각자 데려온 사람을 소개했다. 먼저 태화가 오창민을 소개했다.

“이분은 밴드 엔의 리더이자 보컬을 맡고 있는 오창민 님입니다.”

태화의 소개에 이어 오창민의 인사가 이어졌다.

“반갑습니다. 오창민입니다.”

이번에는 안주원이 노성준을 소개했다.

“부성 국제 영화제에서 각종 이벤트를 담당하고 있는 노성준 님입니다.”

노성준이 태화와 오창민을 향해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노성준입니다.”

오창민과 노성준의 소개가 끝나고 본격적인 미팅이 시작됐다.

태화가 안주원을 향해 말했다.

“어떻게 들으셨습니까? 안주원 팀장님.”

태화는 미리 오창민의 협조를 얻어 밴드 엔의 노래를 안주원과 노성준에게 전해준 상태였다. 안주원이 살짝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좋더군요. 노래도 독특하고요. 노성준 씨는 어떻게 들었죠?”

“저도 괜찮게 들었습니다. 음악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안주원과 노성준의 대답에 태화와 오창민은 미소를 지었다.

노성준이 발언했다.

“<내 복권 내놔!> 영화 음악은 여러 가지로 장점이 있습니다.”

태화가 노성준의 말을 받았다.

“장점이요?”

“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심플함입니다.”

“심플함이라…….”

“네. 보통 영화 음악은 여러 뮤지션의 음악을 쓰게 됩니다. 그래서 이런 공연을 한다는 게 쉽지가 않습니다.”

“아무래도 섭외부터 쉽지 않을 테니까요.”

“네. 하지만 <내 복권 내놔!>는 밴드 엔만 참여했습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나온 결과였습니다. 저한테 저작권을 해결할 방법이 없었으니까요.”

노성준이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결과 섭외하기 수월해졌죠.”

지금까지 듣기만 하던 오창민이 노성준에게 말했다.

“그래서 가능성은 있는 겁니까? 밴드 엔이 GV 행사에서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겁니까?”

노성준은 꽤 신중한 타입이었다. 그래서인지 그의 대답은 조심스러웠다.

“일단 시도는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저기…….”

오창민은 뭔가 더 말하려고 했다. 왜냐하면 오창민이 보기에 노성준의 태도가 애매모호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태화는 순간 오창민이 말하게 내버려 두면 안 된다고 판단했다. 태화가 오창민보다 빨리 발언했다.

“네. 노성준 님. 좋은 결과 있기를 기대하겠습니다.”

“네. 감독님.”

안주원 팀장과 노성준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태화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태화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오창민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태화가 안주원과 노성준을 향해 말했다.

“두 분. 벌써 가십니까?”

안주원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네. 감독님. 저희가 영화제 준비로 좀 바빠서요. 벌써 호출이네요.”

“요즘 정말 바쁘시죠?”

“네. 하루가 부족하다는 말을 요즘 실감합니다.”

안주원에 이어 노성준이 태화에게 인사를 건넸다.

“오늘 감독님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저도 반가웠습니다. 노성준 님.”

오창민은 태화가 안주원과 노성준에게 인사말을 건넬 때 아무 말 없이 두 사람에게 고개만 숙여 인사했다. 안주원과 노성준은 인사를 하고 바로 카페를 빠져나갔다.

안주원과 노성준이 빠져나가자 태화와 오창민은 자리에 털썩 앉았다. 태화가 자리에 앉자마자 오창민에게 말했다.

“아까는 좀 미안하게 됐어요.”

오창민은 맹한 성격이 아니었다. 오창민은 태화가 말한 바를 정확하게 알아들었다.

“제가 말하려고 했던 거 막은 거요?”

“네. 하지만 이해해줘요. 상황이 상황인지라….”

태화의 발언에 오창민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해하고 뭐가 있나요? 감독님도 저를 생각해서 그런 건데요?”

“그렇게 이해해 준다면 다행입니다.”

“솔직히 감독님이 저를 제지했을 땐 서운한 감정도 있었습니다. 감독님이 너무 저자세인 것 같기도 하고….”

“제 모습에 자존심이 상했겠군요.”

“네. 그랬어요.”

테화는 오창민에게 속으로 은근히 고마움을 느꼈다.

[영감님. 어떻게 보면 오창민이 저에게 이런 감정을 가질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단지 비즈니스 관점에서 본다면 말입니다.]

[그렇네. 오창민이 자존심이 상할 정도의 감정을 느꼈다는 건 자네와 어느 정도 일체감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일세.]

[일체감이요?]

[그렇네. 그렇지 않고서는 자네의 모습에 자존심이 상할 필요가 없는 것이네.]

[그렇군요. 저에게 일체감을 느끼니까 제가 느낄 수 있는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것이죠.]

[어찌 됐건 자네로선 나쁠 게 없네.]

[그렇습니다.]

오창민이 태화를 향해 말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감독님의 행동이 맞았어요. 감독님은 어쨌거나 밴드 엔에게 기회를 만들어 주려고 했던 거잖아요. 제가 주제넘은 행동을 할 뻔했습니다.”

“어쨌든 잘 참았습니다.”

오창민이 멋쩍은 듯 웃으며 말했다.

“그러게요.”

오창민이 고집이 세고 자존심이 강한 성격이다. 어찌 보면 오창민은 전형적인 창작자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그런 오창민이 자신의 성질을 죽였다.

이 바탕엔 태화가 있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태화를 향한 오창민의 호감이었다.

오창민이 태화에게 느끼는 일체감이라는 것도 바로 이 호감 때문이었다.

#.

GV 행사에 참여하고 있었던 정원석과 선혜영 최수빈 그리고 한재영은 밴드 엔의 공연이 벌어지자 깜짝 놀랐다.

특히 최수빈은 태화를 한동안 멍하니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서태화. 정말 내가 예상했던 거 이상이다. 영화 음악에 참여했던 밴드의 공연을 GV에서 할 생각하다니….’

최수빈으로선 밴드 엔의 공연이 나쁠 게 없었다. <내 복권 내놔!>가 이슈의 중심에 서면 자연스럽게 여주를 맡은 자신에게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객석은 밴드 엔의 공연 때문에 들썩거렸다. 관객들은 이 순간 신이 날 수밖에 없었다.

GV 행사도 재미가 있었는데 밴드 엔의 공연까지 이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객석의 가장 뒤쪽엔 부성 국제 영화제 사무국 기획팀장 안주원과 이벤트 담당자 노성준이 서 있었다. 두 사람은 자신들이 설득해서 얻어 낸 결과를 지켜보고 있었다.

안주원이 노성준을 향해 물었다.

“성준 씨. 어때요?”

“좋군요. 무엇보다 관객들의 반응이 좋네요.”

“관객과 호흡하는 부성 국제 영화제의 콘셉트와 맞죠.”

“네. 팀장님. 관객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뿌듯합니다.”

“맞습니다. 이제 영화제는 영화인들만의 리그가 아니라 관객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그러한 영화제가 되어야 합니다. 올해 30주 년을 맞이하는 부성 국제 영화제가 당연히 그 선두에 서야 하는 것이고요.”

“네.”

한편 GV 행사에 참여했던 사람 중 이한철은 자신의 자리에 있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공연에 집중하느라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다만 태화만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한철은 태화의 부탁을 받고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그건 바로 밴드 엔의 공연 장면을 촬영하는 것이었다. 이건 태화가 밴드 엔과 했던 약속 때문이었다.

태화는 나중에 뮤직비디오를 제작해주기로 약속했었고 지금 그 약속을 실행하고 있었다.

태화는 밴드 엔의 여러 공연 장면을 영상 소스로 모아서 뮤직비디오를 제작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GV 행사에서의 공연은 독특한 장면이어서 꽤 흥미로운 영상 소스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GV 행사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이한철이 자신의 자리에 없는 걸 알게 된 건 밴드 엔의 <부숴 버려!> 노래가 끝난 뒤였다. 한재영이 가장 먼저 이한철이 자신의 자리에 없다는 걸 알아챘다.

한재영이 태화에게 다가가 물었다.

“태화야. 한철이 형. 안 보이는데?”

“걱정하지 마. 어디 간 거 아니니까.”

“뭐?”

태화가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한철이 형. 저기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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