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영감님과 함께 175화
오상문이 최수빈에게 질문을 던졌다.
“정원석 님에게 했던 질문입니다. 이 작품의 캐스팅 제안에 응한 이유가 뭡니까?”
“가장 먼저 시나리오가 좋았습니다. 그리고 심수영이라는 캐릭터가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습니까?”
“심수영은 박성욱과 사귀는 사이죠. 하지만 그 마음이 한순간에 바뀌고 맙니다. 복권 때문에 배신을 한 것이죠. 그 행위로 심수영은 분명 나쁜 여자지만 그렇게 행동을 한 상황은 이해가 갔습니다. 심수영도 밑바닥 인생을 살고 있었으니까요.”
“캐릭터의 진폭이 심하다는 말이군요.”
“네. 어떻게 보면 심수영의 모습은 투쟁하는 모습 같기도 했어요. 밑바닥에서 벗어나기 위한 투쟁 말이죠. 아마도 많은 여배우가 이 배역에 관심을 가졌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혹시 다른 이유가 있었나요? 정원석 배우님처럼 말이죠.”
최수빈은 잠시 뜸을 들인 후 대답했다.
“있었습니다.”
오상문은 뭔가 흥미로운 사연이 있을 거라는 걸 직관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이거 뭔가 이야깃거리가 있을 것 같은데요?”
오상문이 관객을 향해 발언했다.
“여러분도 궁금하죠?”
오상문의 물음에 객석에서 큰소리로 반응했다.
“네!. 궁금해요!”
오상문이 객석의 반응을 보고 나서 최수빈을 향해 말했다.
“관객분들 반응 보셨죠? 이제 최수빈 배우님은 말씀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최수빈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은데요…….”
태화는 자신이 의도한 대로 GV 행사가 흘러가고 있다고 판단했다.
[영감님. 흐름이 매끄럽네요. 솔직히 미리 맞춰본 것도 아닌데요.]
태화는 GV 행사를 앞두고 미리 말을 맞추거나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 이유는 간단했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진심으로 하자는 의도였다. 말을 맞추게 되면 그만큼 뭔가 인위적인 것이 첨가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네나 GV 때문에 나와 있는 사람들은 이런 무대가 처음인 사람들일세. 어설프게 무언가를 꾸미기보다는 차라리 투박하더라도 자연스럽게 가는 게 낫네. 그래서 나도 자네의 생각에 동의한 것이네. 솔직한 것만큼 강한 건 없거든.]
[그런 것 같습니다.]
태화와 최수빈은 짧은 시간 눈빛을 교환했다. 태화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태화가 최수빈에게 보낸 메시지였다.
-네가 말하고 싶은 대로 말해.
최수빈도 태화의 메시지를 알아챘다. 최수빈이 발언했다.
“원래 심수영의 역할은 제가 맡을 역할이 아니었습니다.”
최수빈의 발언에 오상문이 깜짝 놀랐다.
“그게 정말입니까?”
오상문의 놀란 감정은 꾸민 게 아닌 찐이었다. 사전에 어떠한 언질도 받은 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태화는 객석을 바라보았다. 객석의 반응도 오상문과 마찬가지였다.
오상문이 최수빈에게 물었다.
“그렇다는 건 최수빈 님이 오디션에서 탈락했다는 말입니까?”
최수빈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네. 그렇습니다.”
순간 객석 여기저기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이거 뭐지?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거야?
오상문이 태화를 보며 물었다.
“감독님.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죠?”
“아. 자세한 이야기는 최수빈 님에게 들으십시오. 제가 발언할 시간이 아닙니다.”
태화는 자신이 이야기할 수도 있었지만, 최수빈에게 그 공을 넘겼다.
최수빈이 다시 발언하기 시작했다.
“제가 오디션에서 탈락했던 건 사실입니다. 처음엔 제가 아닌 다른 분이 캐스팅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캐스팅되었던 분이 지금 이 자리에 계십니다.”
오상문이 최수빈에게 되물었다.
“정말입니까?”
“네.”
“제가 그동안 GV 행사 진행을 여러 번 해봤지만, 오늘처럼 흥미진진한 때도 없었던 거 같습니다.”
“…….”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여자 주연 배우가 바뀌고, 또 처음에 심수영 역에 캐스팅 된 분은 영화제로 찾아오고…….”
일반적인 사회자라면 이 정도 발언하고 나서 나와야 할 사람을 거론한다. 하지만 오상문은 여기서 한 템포 뜸을 들이듯 관객을 향해 물었다.
“여러분도 궁금하시죠?”
오상문의 물음에 객석은 큰소리로 화답했다.
“네! 궁금해요!”
오상문의 이런 진행 방식은 관객의 참여를 유도하고 감정의 증폭을 키우는 결과를 낳고 있었다. 태화로서는 오상문의 이런 진행 방식이 나쁘지 않았다.
[영감님. 사회자의 진행 방식이 아주 마음에 듭니다.]
[나도 자네와 생각이 같네. 보통 GV 행사는 질문하고 답변하는 아주 단순한 방식이네. 어찌 보면 세미나 같은 분위기이기도 하지.]
[하지만 오상문은 관객의 반응을 유도하는 방식입니다. 관객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끌어낸다고 할 수 있죠.]
[그렇네.]
[이게 바로 제가 원했던 방식입니다. 평범한 GV가 아니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수 있는 방식 말입니다.]
[현재의 흐름의 바탕이 뭔지 아는가?]
[바탕이요?]
[그렇네. 뻔한 GV가 아니라 뭔가 다른 GV를 만들어낸 그 힘 말일세.]
[글쎄요. 그냥 모든 것이 맞아떨어진 거 아닙니까?]
[그렇지 않네.]
[그렇지 않다고요?]
[그렇네. 이 모든 것의 바탕에 자네의 리더십이 있었네.]
[네?]
[왜? 부끄러운가? 하지만 사실일세. 현재의 이 좋은 흐름은 자네의 선택으로 만들어진 것이네.]
[저의 선택이요?]
[그렇네. 자네는 사전에 어느 정도 조율된 질문을 만들 수 있었음에도 하지 않았네. 조율된 질문은 GV 행사를 실수 없이 진행할 수 있게 하지. 즉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네. 하지만 자네는 그 안전장치 만드는 걸 선택하지 않았네.]
[전 저와 함께 <내 복권 내놔!>를 만들어낸 사람들을 믿었으니까요.]
[자네의 그 믿음이 현재의 결과를 만들어낸 것일세. 선혜영이 이 자리에 오게 한 것도 바로 자네의 믿음일세. 겉으로 보기엔 모든 여건이 잘 맞아떨어져서 그런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네. 그냥 우연히 성공하는 경우는 없네. 결국 자네의 선택이 이런 결과를 만들어낸 것일세.]
#.
오상문이 최수빈을 향해 물었다.
“지금 이곳에 오신 그분. 최수빈 배우님 이전에 심수영 역에 캐스팅되었던 그분의 성함이 어떻게 됩니까?”
최수빈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그분의 성함은 선혜영 님입니다.”
최수빈은 정확하게 선혜영의 이름을 말했다. 오상문이 최수빈의 말을 받았다.
“자, 그럼 선혜영 님을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오상문의 말이 떨어지자 선혜영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선혜영이 자리에서 일어서자 모든 사람의 시선이 일제히 선혜영 한 사람에게 향했다.
선혜영은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무대로 내려갔다.
[영감님. 선혜영도 천생 배우인 것 같습니다.]
[자네도 그렇게 느꼈는가?]
[영감님도 그렇게 느꼈습니까?]
[그렇네. 선혜영은 사람들의 시선을 부담스러워하기보다는 오히려 즐기고 있네.]
[하긴 그러니까 부성 국제 영화제에 참석한 것이겠죠. 관객들에게 자신을 알리기 위해서요.]
[그렇네.]
[어떻게 보면 선혜영은 전에 자신이 했던 말을 증명하고 있는 거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선혜영이 했던 말? 자기가 욕심이 많다고 했던 말 말인가?]
[영감님. 기억하고 있었네요.]
[당연히 기억할 수밖에 없네. 겉보기와 달랐던 그녀의 발언이 꽤 인상적이었으니까.]
태화는 선혜영이 무대로 내려오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선혜영이 무대로 내려오는 동안 객석에선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았다.
암묵적 침묵. 그냥 고요했다.
너무나 고요해서 선혜영의 발걸음 소리가 크게 들릴 정도였다. 그만큼 객석에 있는 관객들도 GV 행사에 집중하고 있었다.
선혜영이 무대로 내려오자 최수빈이 자리에서 일어나 마이크를 선혜영에게 건넸다. 오상문이 선혜영을 보며 발언했다.
“선혜영 님. 만나서 반갑습니다.”
선혜영이 살짝 미소를 지으며 오상문에게 말했다.
“네. 저도 반갑습니다.”
선혜영은 오상문에게 인사를 건네고나서 객석을 향해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선혜영입니다.”
선혜영이 관객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객석에서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진행 요원이 선혜영이 앉을 의자를 가져왔다. 한재영이 진행 요원에게 다가가 말했다.
“저기 정원석 님과 최수빈 님 사이에 의자를 놔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진행 요원이 정원석과 최수빈 사이에 의자를 배치했다. 잠시 후 인사를 마친 선혜영이 새로 배치한 자리에 가서 앉았다.
오상문이 태화를 보며 물었다.
“감독님. 어떻게 된 일입니까?”
오상문의 질문에 태화가 대답했다.
“우선 엔딩 크레딧 이야기부터 하겠습니다. 엔디 크레딧 마지막 부분에 특별히 고마운 분이라는 자막과 함께 선혜영 님의 이름이 있습니다.”
“아. 그렇군요. 이름이 기억이 나지 않지만, 특별히 고마운 분이라는 자막은 기억에 있습니다. 저는 뭔가 영화 제작에 도움을 주신 분으로 생각했었는데요.”
오상문이 피식 웃으며 발언했다.
“<내 복권 내놔!>는 엔딩 크레딧도 반전이 있었군요.”
오상무의 발언에 태화가 활짝 웃으며 발언했다.
“반전을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하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의도하지 않은 반전. 그게 진짜 묘미이기도 하죠.”
오상문은 태화와 대화를 마치고 나서 선혜영에게 시선을 돌렸다.
“지금 매우 궁금합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
오상문은 선혜영에게 바로 질문해 들어갔다. 보통 이런 때는 이야기의 빌드업을 쌓는 것이 보통이다.
이 말은 선혜영이 어떤 사람인지부터 시작해서 이야기를 쌓아간다는 의미다. 하지만 오상문은 이런 과정을 생략하고 과감하게 선혜영에게 질문해 들어갔다. 선혜영은 대답하기 전 태화를 잠시 쳐다보았다. 태화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태화는 GV 행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확실하게 말을 해두었다.
“여러분은 GV에서 제 눈치를 볼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솔직하게 발언하세요.”
선혜영이 방금 태화와 눈이 마주친 행동은 태화에게 확인받는 행동이었다. 당신이 했던 발언대로 난 할 것이다.
선혜영은 태화와 눈빛을 교환한 후 오상문의 질문에 대답했다.
“처음 심수영 역에 캐스팅되었던 선혜영입니다.”
오상문이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기에 심수영 역 선혜영 배우님에서 최수빈 배우님으로 바뀐 겁니까?”
“사고가 있었습니다.”
“사고요?”
“네. 촬영 도중 사고였습니다.”
선혜영은 촬영 중에 일어났던 사고에 관해서 설명했다. 특히 선혜영이 계단을 내려오다 다치는 장면을 말할 땐 객석에선 안타까운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어머. 어떡해…….”
“얼마나 아팠을까?”
특히 선혜영은 이 사건이 일어난 게 촬영 첫날 즉 크랭크 인 하는 날 있었다고 제일 나중에 밝혔다. 선혜영이 이렇게 순서를 바꿔서 한 발언은 관객들에게 큰 임팩트를 주었다.
“와, 하필이면 크랭크 인 날. 그런 사고가 일어나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