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영감님과 함께 174화
오상문은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리허설이 어땠길래?
오상문이 이한철에게 되물었다.
“리허설이요?”
“네. 정확하게 말하면 전체 리허설입니다.”
“전체 리허설이요?”
“네. 감독님은 연기자들을 모아놓고 시나리오 순서대로 전체 리허설을 하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리허설을 바로 촬영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러니까 리허설 하는 장면을 바로 촬영했다는 말이군요. 그 방식은 원 씬 원 커트로 하는 걸로 하고요?”
이한철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나쁘지 않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커트를 나누는 방식으로 촬영했다면 전체 리허설도 하루 만에 끝나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원 씬 원 커트 방식으로 촬영을 했기 때문에 하루 만에 촬영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그 결과가 나쁘지 않았다는 말이군요. 감독님 애초의 생각대로 촬영된 걸 보면…….”
“그렇습니다. 무엇보다 커트를 나누지 않았지만, 화면이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연기자분들의 연기도 긴 호흡에 맞춰 잘해 주었고요. 결과가 나쁘지 않으니 계속 반대할 명분이 없었죠.”
오상문은 이한철의 대답을 아주 흥미롭게 들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태화의 역량에 속으로 놀라고 있었다.
‘젊은 감독이 저렇게 반대하는 스태프를 능숙하게 설득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정말 물건이 나오는 것인가?’
지금 오상문은 GV 행사를 진행하면서 점점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오상문은 <내 복권 내놔!> 작품 외에 다른 작품 GV 행사를 진행했었지만, 지금처럼 흥미를 느낄 수는 없었다.
오상문도 나름대로 영화계에서 어느 정도 경력이 있는 평론가이다. 다른 GV 행사는 어느 정도 오상문이 예상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있었다. 그런데 <내 복권 내놔!>는 그렇지 않았다.
일단 영화의 제작비부터가 말이 안 되었다. 이 작품은 퀄리티를 떠나서 이 정도의 예산으로 장편영화를 완성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완성도 또한 있었다.
스토리 라인도 흥미로웠고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도 꽤 세련되었다.
오상문의 시선은 다시 태화에게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오상문은 태화에게 다시 질문을 하지 않았다.
이건 이 시점에서 적절한 선택이었다. 아직 남녀 주연 배우와 대화를 시작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오상문의 시선이 정원석에게 향했다.
“자. 박성욱을 연기한 정원석 님.”
이한철이 마이크를 정원석에게 건넸다.
“네.”
“촬영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이었습니까?”
“제가 가장 힘들었던 건…….”
정원석은 말을 하다가 잠시 뜸을 들였다. 그래서 뭔가 중요한 말을 하는 듯한 분위기였고 그로 인해서 관객들은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촬영장의 분위기였습니다.”
오상문이 궁금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촬영장의 분위기요? 촬영장의 분위기가 어땠습니까?”
“음……. 촬영장을 가면 사람들이 제가 감독이고 감독님이 주연 배우라고 생각하더라고요. 그래서 너무 힘들었습니다.”
정원석의 발언에 관객들은 순간 빵하고 터졌다.
“하하하!”
태화도 정원석의 발언에 웃음이 터졌다.
[영감님. 다행입니다.]
[뭐가 말인가?]
[GV가 너무 진지한 방향으로만 나갔었거든요. 이 시점에서 좀 분위기를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나도 자네 생각에 동감이네. GV 행사는 무슨 학술적인 행사가 아니니 말일세. 시종일관 진지하게만 흘러간다면 자칫 관객들이 지루해할 수도 있네. 이곳에 있는 관객들이 영화에 관심이 많은 부류라고 해도 말일세. 어쨌든 정원석의 저 농담으로 인해서 분위기가 전환된 건 아주 좋은 현상일세.]
[그렇습니다. 그런데 정원석이라는 사람이 저렇게 재밌는 사람인 줄은 몰랐습니다. 항상 진지했던 모습만 봐왔는데요.]
[누구나 어느 순간에 재밌을 수 있네. 정원석은 오늘 제때 터진 것이네.]
[그러니까요.]
#.
정원석의 재치로 GV 현장은 화기애애해졌다. 오상문의 질문이 이어졌다.
“정원석 님이 이 작품의 캐스팅 제의에 응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무엇보다 시나리오 때문입니다. 시나리오가 좋았고 박성욱이라는 캐릭터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입니다.”
“박성욱이라는 캐릭터 때문이라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습니까?”
“작품에서 진폭이 크게 움직이는 게 좋았습니다.”
“진폭이요?”
“네. 정말 몇 시간 만에 인생의 절정에서 나락으로 떨어지잖아요. 연기자로서 매력을 느꼈습니다.”
“이해합니다. 아무래도 배우들은 진폭이 큰 캐릭터에 매력을 느끼죠.”
캐릭터의 진폭이 크다는 건 그만큼 변화무쌍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러한 캐릭터에 배우들이 매력을 느끼는 건 당연하다. 배우로서 보여줄 수 있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정원석이 마이크를 잡고 발언했다.
“그리고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습니다.”
오상문은 노련하게 진행하고 있었다. 오상문은 정원석의 말을 듣자마자 정말 궁금한 말투로 물었다.
“그게 뭡니까?”
오상문의 말투는 관객이 GV 행사에 집중하도록 하는 효과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태화는 오상문의 진행에 속으로 만족하고 있었다.
[영감님. 오상문 씨의 진행이 참 노련하군요.]
[나도 그렇게 느꼈네. 지금까지 쓸데없는 구석이 없었네. 자신을 돋보이려고 오버할 수도 있는데 말일세.]
[그러게, 말입니다.]
오상문의 노련한 진행의 결과 관객들은 정원석의 대답에 집중했다.
“바로 감독님입니다.”
“감독님이요?”
“네. 감독님은 제 연극 공연장에 직접 찾아왔습니다. 저에게 캐스팅 제의를 하기 위해서요.”
정원석은 발언하고 나서 태화를 슬쩍 바라보았다. 태화는 정원석이 왜 자신과 눈을 마주쳤는지 알아챘다. 그리고 태화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상문의 질문이 이어졌다.
“감독님이 뭐라고 하던가요?”
“네. 감독님은 자신과 저의 인연에 관해서 말했습니다.”
“인연이요?”
“네. 저는 신창우 감독님의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좋은 세상>에서 단역을 맡았었습니다.”
“그 배역이 뭐였습니까?”
“검문하던 경찰 역이었습니다. 그런데 감독님은 제가 그 배역을 따내기 전에 오디션을 봤다고 하더군요.”
오상문이 살짝 놀란 듯 되물었다.
“그게 정말입니까?”
“네.”
오상문이 태화를 향해 말했다.
“감독님. 설명이 좀 필요할 거 같은데요?”
태화는 정원석에게 마이크를 건네받으려고 했지만 그렇게 할 필요가 없었다. 진행 요원이 여분의 마이크를 태화에게 건넸기 때문이었다.
태화는 진행 요원에게서 마이크를 건네받고 나서 발언하기 시작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제가 오디션에서 떨어진 거죠.”
“너무 결론만 말한 거 아닙니까? 더 많은 이야기가 있을 것 같은데요?”
오상문은 말을 마치고 나서 객석을 향해 말했다.
“여러분도 궁금하시죠?”
오상문의 물음에 관객들이 큰소리로 대답했다.
“네!”
“궁금해요!”
그리고 관객 중 몇 명은 태화의 이름을 연호하기 시작했다.
“서태화! 서태화!”
#.
객석의 반응에 태화를 비롯한 사람들은 조금 놀랐다. 벌써 객석에서 저런 연호가 나온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태화 군. 객석의 저 반응. 자네에게 나쁠 건 없네.]
[네?]
[감독으로서 대중적인 인기를 갖는 게 자네의 미래에 나쁠 게 없다는 의미일세.]
[음. 영감님의 말 이해가 됩니다.]
[그런가?]
[네. 만약 이번 부성 국제 영화제에서 성과가 나서 <내 복권 내놔!>가 개봉이 된다고 하더라도……. 결국 마케팅의 중심은 감독인 제가 될 수밖에 없잖아요.]
[그렇네. 태화 군. 자넨 상황을 제대로 보고 있네. <내 복권 내놔!>는 솔직히 스타 연기자가 출연하지 않은 작품이네. 이런 상황에서 마케팅의 중심은 감독인 자네가 될 수밖에 없네. 초저예산으로 부성 국제 영화제에서 성과를 낸 작품을 만들어낸 인물로 말일세.]
[이런 상황에서 제가 대중적 인기를 갖게 된다면 나쁜 게 아니죠.]
[그렇네. 자네는 대중적인 인기를 갖게 될 잠재력을 가지고 있네. 자네의 매력이 바로 그것이네.]
박도봉 감독이 본 태화의 매력은 단순히 외모뿐만이 아니었다. 태화는 사람을 자석처럼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다.
태화의 이러한 힘이 없었다면 <내 복권 내놔!>라는 작품은 애초에 완성되기 힘든 작품이었다. 마이크를 잡은 태화가 발언했다.
“답변이 조금 길 수도 있습니다. 괜찮겠습니까?”
태화는 관객을 향해 물음을 던졌다. 그러자 객석에서 반응이 나왔다.
“괜찮아요!”
“듣고 싶어요!”
태화는 객석의 반응을 보고서 활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말하겠습니다.”
여기서 한재영이 언급될 수밖에 없었다. 태화는 발언하기 전 한재영에게 다가가 귀속말로 말했다.
“재영이. 널 언급할 수도 있어. 괜찮아?”
태화의 물음에 한재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괜찮아. 사실대로 말하는 게 맞지 않겠어?”
“그래. 고맙다.”
태화는 한재영에게 양해를 구하고 나서 차분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태화는 우선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좋은 세상>의 오디션을 보게 된 경위부터 설명했고 그동안 실패했던 오디션 경험에 관해서도 말했다. 그리고 정원석이라는 배우를 작품을 통해서 알게 된 경위도 설명했다.
“그러니까 정원석 님이 맡았던 그 배역이……. 제가 마지막으로 봤던 오디션으로 따내려고 했던 배역이었습니다.”
오상문이 흥미로운 표정으로 태화에게 말했다.
“아. 그런 인연이 있었군요.”
“네. 저는 그 인연을 강조하면서 정원석 님에게 캐스팅을 제안했습니다.”
“결국 통했군요.”
“네. 어찌 보면 말도 안 되는 논리였는데 정원석 님이 받아준 거죠.”
태화의 발언에 이어 정원석이 말했다.
“감독님에게 그 말을 듣고서 밤에 잠이 잘 오지 않았습니다.”
진행자 오상문이 정원석에게 물었다.
“잠을 설쳤다고요?”
“네. 미안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그게 감독님의 계획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으셨나요? 괜히 미안한 마음 들게 하는…….”
“그런 생각이 들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나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습니다.”
“나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고요?”
“네. 나쁘다기보다는 절실함 같은 게 느껴졌어요.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절 캐스팅을 하려고 한 감독님의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지금 생각해 보면 감독님의 캐스팅 제안을 받아들인 건 잘했던 결정 같습니다.”
“그건 맞는 것 같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걸 보면 말이죠.”
“네.”
오상문이 계속해서 진행해 나갔다.
“네. 여기서 영화의 또 다른 축인 이분에 관해서 알아봐야죠.”
오상문의 시선이 최수빈에게 향했다.
“작품에서 여주인 심수영 역할을 맡은 최수빈 배우님입니다.”
정원석이 자신이 들고 있던 마이크를 최수빈에게 넘겨주었다. 최수빈이 마이크를 넘겨받고 관객을 향해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내 복권 내놔!>에서 심수영 역할을 맡았던 최수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