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어느 날 갑자기, 영감님과 함께-173화 (184/195)

어느 날 갑자기, 영감님과 함께 173화

오상문은 영화 관련 프로그램에 자주 얼굴을 내비쳐서 대중적인 인지도가 있는 영화 평론가이다. 오상문이 객석을 향해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오늘 <내 복권 내놔!> GV 행사를 진행할 영화 평론가 오상문입니다.”

오상문의 자기소개가 끝나자 객석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태화는 GV 행사에 참여할 인원과 함께 오상문이 있는 스크린 앞으로 이동했다. 오상문이 다시 발언했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GV 행사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여기 스크린 앞에 나오신 분들 먼저 소개하겠습니다.”

오상문이 잠시 뜸을 들인 후 발언했다.

“정말 재수 좋은 놈인 줄 알았는데 결국 비참한 결말을 맞이하는 인물……. 박성욱을 연기한 남주! 정원석 님을 소개합니다!”

오상문의 소개와 함께 객석에선 함성과 함께 박수가 터져 나왔다. 객석에서 터져 나온 함성과 박수는 태화 일행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컸다. 객석에서 환호성이 터지는 사이 진행요원이 마이크를 정원석에게 건넸다.

정원석이 활짝 웃으며 관객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사회자님이 소개한 대로 정말 재수 좋은 놈인 줄 알았다가 비참한 결말을 맞이한 박성욱을 연기한 정원석입니다.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 관객분들의 함성과 박수 소리가 커서 너무 좋았습니다.”

정원석에 이어 이번에는 여주인 최수빈 순서다. 오상문의 소개 발언이 이어졌다.

“돈 때문에 남주인 박성욱을 배신한 심수영 역할을 맡은 최수빈 님을 소개합니다!”

정원석은 오상문이 최수빈을 소개하는 사이 자신이 들고 마이크를 최수빈에게 넘겼다. 최수빈은 오상문의 소개받은 후 관객을 향해 허리 숙여 인사했다.

“욕심이 많은 여자. 최수빈입니다.”

최수빈의 자기소개가 끝나자 객석에서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남녀 주연 배우 소개에 이어 촬영감독 이한철과 프로듀서를 맡았던 한재영의 소개가 이어졌다. 이한철과 한재영은 튀는 소개보다는 비교적 평이하게 소개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연출을 맡았던 태화의 차례가 이어졌다.

오상문이 태화를 소개하기 위해서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와우!”

오상문은 감탄사를 내뱉고 나서 다시 멘트를 이어갔다.

“관객 여러분. 제가 감탄사를 왜 내뱉었는지 아시겠죠?”

오상문의 발언에 앞자리에 앉아있던 여성 관객들의 호응이 이어졌다.

“알아요!”

오상문의 다시 발언했다.

“전 처음에 이분이 감독이 아니라 배우인 줄 알았습니다. 작품 <내 복권 내놔!>의 연출을 맡았던 서태화 감독입니다!”

태화가 소개되자 객석에선 뜨거운 호응이 쏟아졌다. 그것은 커다란 함성과 박수 소리였고 그 소리의 크기는 앞서 소개했던 그 누구보다 컸다. 심지어 남녀 주연 배우들보다 컸다.

[태화 군. 정말 객석의 반응이 대단하구먼.]

[전에 배우 지망생일 때 관객들에게 이런 호응을 받고 싶었는데……. 감독이 돼서 이루게 되는군요.]

한재영이 태화에게 자기가 들고 있던 마이크를 건네며 말했다.

“태화야. 오늘 인기 폭발이야.”

태화는 한재영의 발언에 대답 대신 살짝 미소를 지었다. 태화는 마이크를 한재영에게서 건네받은 후 객석을 향해 허리 숙여 정중히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내 복권 내놔!> 연출을 맡았던 서태화입니다.”

태화의 소개가 끝나자 객석에선 또 한 번 환호가 터져 나왔다. 감독이 이렇게 관객들에게 환호받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객석에서 환호가 잦아들 무렵 사회를 맡은 오상문이 태화를 보며 말했다.

“오늘 객석에 감독님 지인들이 많이 오셨나 봐요?”

태화는 오상문의 발언을 농담으로 유쾌하게 받아쳤다.

“티가 많이 났네요.”

태화의 발언에 객석은 순간 빵 터졌다. GV 행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미리 마련된 자리로 가서 앉았다.

사람들이 자리에 앉자 오상문이 발언했다.

“그럼. 지금부터 <내 복권 내놔!> GV 행사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오상문의 발언에 이어 객석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초반에 GV는 영화 자체에 관한 이야기가 기본이 되었다.

질문의 유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었다. 하나는 스토리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영화의 기술적 부분에 관한 것이었다. 부성 국제 영화제 측에선 태화에게 오상문과 사전에 질문에 관한 걸 조율할 수 있도록 했지만 태화와 오상문, 두 사람은 이 제의를 거절했다. 두 사람 모두 이 제안을 거절한 건 GV 행사가 자연스럽게 진행되는 걸 원했기 때문이었다.

짜인 각본보다 현장성을 중요하게 생각한 결과였다. 오상문이 태화를 향해 질문했다.

“영화의 스토리가 꽤 흥미로웠습니다. 감독님 이 작품의 스토리는 어떻게 구상하게 되었나요?”

태화가 대답하기 위해 마이크를 잡았다.

“저는 운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운명이요?”

“네. 아마 창작하시는 분들은 잘 아실 겁니다. 창작에는 그만큼의 고통이 따르잖아요.”

“그렇죠.”

“스토리를 구상하는데 한동안 진도를 나가지 못했습니다. 그 때문에 많이 초조하기도 했고요.”

“그런 상황에서 운명이 찾아왔군요.”

“네. 아주 우연히 눈에 들어오더군요.”

오상문이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

“뭐가 눈에 들어왔습니까?”

태화는 대답을 해나가면서, 오상문과 의외로 합이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화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오상문과 말을 주고받는데, 편안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오상문은 방송 경력이 있어서 그런지 말하는 억양이나 태도 등에 큰 무리가 없었다.

태화가 오상문의 질문에 대답했다.

“누군가가 찢어버린 복권이 보이더군요.”

태화의 대답에 오상문이 살짝 놀란 듯한 반응을 보였다.

“아. 그래요?”

“네. 누군가가 찢어버린 그 복권이 다른 사람한테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을 겁니다. 하지만 저에겐 남다르게 다가왔습니다. 저에게 이 작품의 스토리를 쓸 수 있도록 영감을 주었으니까요.”

“영감이요? 어떤 영감을 주었습니까?”

“길에서 주운 복권이 일등으로 당첨된다면 과연 그게 행운일까?”

“감독님은 그걸 행운이 아닌 비극으로 본 것이군요.”

“비극으로 봤다기보다는 단순하게 흘러가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단순하게 흘러가지 않는다?”

“네. 행운을 잡았으니까. 그래서 미래는 희망만이 가득할 것 같지만, 현실이 마냥 그렇게 흘러가지 않잖아요.”

태화의 대답을 들은 오상문은 순간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그래서일까?

오상문이 태화를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서태화 감독은 아직 서른이 되지 않은 나이다. 그런데도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은 노련한 감독 못지않다.’

오상문이 태화에게 질문했다.

“감독님. 이번 작품이 첫 작품으로 알고 있습니다. 정말 그 이전에 단편도 만들어보지 않은 게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태화에 대답에 객석은 순간 술렁거렸다. 객석 여기저기서 ‘정말이야?’라는 말들이 터져 나왔다.

잠시 후 오상문의 질문이 이어졌다.

“감독님은 여러 번 놀라게 하는군요.”

태화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랬습니까?”

“네. 제가 알기로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예산으로 작품을 완성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것도 사실이죠?”

“네. 그렇습니다.”

“적은 예산에 첫 번째 작품인데 부성 국제 영화제 경쟁 부분 진출입니다. 이러한 결과를 낸 원동력은 무엇입니까?”

태화가 오상문의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 다시 마이크를 입으로 가져왔다.

“지금 여기 저와 함께 나와 계신 분들. 그리고 이 자리에는 없지만 작품 제작에 함께했던 분들. 다 이분들 때문에 이렇게 좋은 성과를 낸 것 같습니다.”

태화의 대답에 오상문이 피식 웃으며 발언했다.

“뻔한 답변이지만 정답이기도 하군요. 그렇죠. 영화란 게 사람들이 모여서 하는 작업이다 보니 사람이 가장 중요하죠.”

오상문은 발언하고 나서 관객을 향해 말했다.

“여러분 지루하지 않죠?”

오상문의 질문에 객석에서 큰소리로 대답이 나왔다.

“안 지루해요!”

“전 여러분이 그럴 줄 알았습니다. 여러분들은 영화에 관한 관심이 높으신 분들이니까요.”

오상문의 말처럼 영화제에 가서 직접 작품을 보는 관객이 일반적인 관객이 아니다. 이들은 영화에 관한 관심이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크다.

이것이 박도봉 감독이 태화에게 부성 국제 영화제에 <내 복권 내놔!>를 출품하도록 한 이유이기도 했다.

[영화제에 와서 영화를 볼 정도면 영화에 관한 관심이 남다르다는 말이기도 하네. 이들은 영화 분야에서 오피니언 리더가 되는 사람들이기도 하지.]

[그렇군요. 그들이 오피니언 리더가 돼서 <내 복권 내놔!>를 홍보해 줄 수도 있겠군요.]

[그렇네.]

오피니언 리더는 마케팅에서도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집단이다. 이들이 여론을 형성하고 주도하는 층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은 영화에 관한 관심이 남다른 만큼 심도 있는 질문도 비교적 잘 받아들이는 게 이들이다.

오상문은 이러한 관객의 성향을 알고 있었고 그에 따라 GV 행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럼, 조금만 더 제가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감독님.”

“네.”

“이 작품은 커트를 나누지 않고 원 씬 원 커트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보통 영화는 커트를 나누어서 찍는 게 일반적이죠. 그런데 감독님은 그런 일반적인 결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보기에 감독님이 이런 결정을 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제가 원 씬 원 커트 원칙을 세운 건 <내 복권 내놔!>를 풀어가는 방식에 있어서 가장 적합한 방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가장 적합한 방식이요?”

“네. 커트를 나눈다는 건 어쨌든 나눈다는 의미입니다. 그건 등장인물의 감정도 마찬가지고요. 저는 등장인물 특히 주인공의 감정이 나누어지는 걸 원치 않았습니다. 그냥 하나의 흐름으로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태호의 대답에 오상문이 고개를 끄덕였다.

“감독님의 의도는 잘 알겠습니다. 저도 감독님이 언급했던 부분이 좋았습니다. 그럼, 직접 촬영을 진행하신 촬영 감독님께 질문하겠습니다.”

태화는 자신이 들고 있던 마이크를 이한철에게 주었다. 오상문의 질문이 이어졌다.

“이한철 촬영 감독님.”

“네.”

“이한철 촬영 감독님은 서태화 감독님의 결정에 반대하지 않았습니까?”

“네. 저도 처음에는 반대했었습니다. 왜냐하면 일반적이지 않으니까요. 게다가 시나리오는 좋았지만, 서태화 감독님은 이번 작품이 첫 작품이었으니까요. 모험하기 보다든 안정적으로 가는 게 맞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오상문은 이한철이 대답하자마자 가볍게 웃으며 발언했다.

“그런데 결국 감독님의 고집을 꺾지 못한 거군요.”

“고집을 꺾지 못했기보다 감독님의 제안이 있었습니다.”

“감독님의 제안이요?”

오상문은 발언하고 나서 태화를 쳐다보았다. 오상문의 얼굴엔 궁금증이 가득했다.

“감독님의 제안이 무엇이었을지 궁금하군요.”

오상문의 질문에 이한철이 대답했다.

“감독님이 제안했던 건 리허설이었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