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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영감님과 함께-170화 (181/195)

어느 날 갑자기, 영감님과 함께 170화

태화가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김현석에게 말했다.

“내가 오늘 이영진을 보면서 느낀 감정은 부러움도 질투도 아니야.”

“그럼 뭡니까?”

“넘어서야겠다고 생각했다.”

태화의 대답에 김현석과 이우섭, 그리고 한재영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태화도 이 세 사람의 표정을 보았다.

“너희 세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어떤 생각인지 알겠어.”

“…….”

“황당하다는 의미겠지. 아니면 오늘 내가 왜 저러나 싶기도 할 거고.”

그때였다. 김현석이 고개를 흔들며 발언했다.

“아뇨.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뭐?”

“난 방금 형이 한 말이 헛된 꿈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왜 그런 생각을 하지?”

“형이 아니었다면 <내 복권 내놔!>는 이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겁니다. <내 복권 내놔!>는 형이 의지와 재능을 가지고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형은 능력을 증명한 거죠. 그것도 데뷔작을 장편으로 만들어서 말이죠. 이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김현석의 발언에 이우섭과 한재영은 아무런 토를 달지 않았다.

“전 형이 언젠가는 이영진 감독을 넘어설 것으로 생각해요. 이 말은 진심입니다.”

김현석의 말엔 한 치의 거짓도 없었다. 그리고 태화도 그걸 잘 알고 있었다.

“현석아. 고맙다. 그렇게 생각해 주어서.”

태화의 발언이 끝나자 이우섭 특유의 호쾌한 웃음이 이어졌다.

“현석이. 너 실수가 아니었구나. 그렇지?”

“네. 이런 말 하기 좀 뭐하지만…….”

“…….”

“태화 형이 이영진 감독에게 부럽다거나 질투를 느낀다고 대답했다면 전 아마도 실망했을 거예요.”

“뭐?”

“태화 형은 저한테 그런 존재입니다.”

김현석의 말에 태화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생각해 준다니 고맙다.”

태화는 이 순간 박도봉 감독에게 질문거리가 생겼다.

[영감님. 현석이 말입니다.]

[왜 그런가?]

[현석이가 나에게 저런 생각을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어찌 보면 김현석의 자네에 관한 생각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네.]

[당연하다고요?]

[그렇네. 사람의 인생에서 처음이라는 것은 참 중요하네. 김현석은 자네와 함께한 <내 복권 내놔!>가 영화인으로서 첫 번째 경험이네. 그런 김현석에게 자네가 보여주었던 능력은 대단했을 거네. 영화인으로서 경험이 많았던 사람들도 놀란 마당에 김현석은 더 많이 자네의 능력에 놀랐을 거네.]

[결국 그런 경험이 쌓여서 저런 생각을 갖게 되었다는 말이군요.]

[그렇네. 게다가 김현석 처지에선 이영진은 멀리 있는 존재이네. 하지만 자네는 다르네. 심적으로 자네에게 더 가까울 수밖에 없는 것일세.]

박도봉 감독의 분석은 나름대로 합리적이었고 태화도 이에 수긍할 수 있었다.

[영감님 분석이 맞습니다. 그럼 이제 궁금증도 풀렸으니 얘들하고 즐겁게 보내야겠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게.]

[네.]

태화가 한재영과 이우섭, 그리고 김현석을 보며 말했다.

“이제 좀 즐기자.”

태화의 말에 한재영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래. 나 솔직히 불만이었어.”

“불만?”

“그래. 너무 진지해서…….”

한재영의 농담에 사람들은 동시에 웃음이 터졌다.

“하하하!”

#.

부성 국제 영화제 개막식 삼 일 후.

오늘은 태화의 데뷔작 <내 복권 내놔!>가 부성 국제 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이는 날이다.

태화는 아침 일찍 눈이 절로 떠졌다. 태화는 상체를 세워 기지개를 켰다.

태화가 잠에서 깨자마자 박도봉 감독이 말을 걸어왔다.

[태화 군. 잠은 잘 잤는가?]

[네. 아주 꿀잠을 잤습니다.]

[그런 것 같더군. 자네가 푹 자는 모습을 보면서 어느 정도 안심이 되더군.]

[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혹시 제가 불면증이라도 걸린 줄 아셨습니까?]

[그게 아니라. 보통은 큰일을 앞두면 잠을 설치게 마련이지 않은가? 그런데 자네는 아주 잠을 잘 자더군. 그래서 안심했네.]

[쫄보는 아니라서 그런 겁니까?]

[허허허. 그렇네. 솔직히 이런 분위기에서 숙면을 취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지.]

[어쩌겠습니까? 그냥 잠이 오는걸.]

태화는 이불을 박차고 침대를 벗어났다. 그때였다.

똑. 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태화가 문 앞으로 다가가며 말했다.

“누구세요?”

“형. 저 현석입니다.”

“어, 그래.”

태화는 자신이 쓰는 방문을 열었다. 부성 영화제 측에서는 게스트로 참여한 스태프와 연기자들에게 숙소를 제공해 주었다. 태화가 쓰는 방도 영화제 측에서 제공해 준 방이었다.

숙소는 영화제가 벌어지는 거리에서 비교적 가까운 곳에 있는 호텔이다. 소위 말하는 5성급 호텔은 아니지만, 시설이 나름 깔끔했다.

“현석이. 일찍 일어났구나.”

“이거 잠이 잘 안 와서요.”

“그럼. 잠을 설친 거야?”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태화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현석이 네가 잠을 설쳐서 내가 잠을 잘 잔 모양이다.”

“네?”

“내가 간밤에 아주 꿀잠을 잤거든.”

“하하.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다행?”

“네. 형이 잠을 잘 자야 하는 거잖아요. 저야 뭐 조금 피곤해도 상관없어요.”

“녀석….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네. 지금 식당에 있어요.”

태화와 한재영, 그리고 이우섭과 김현석. 이 선발대를 뺀 나머지 인원들은 어제저녁에 이곳에 도착했다.

배우는 남녀 주연 배우인 정원석과 최수빈 그리고 특별 게스트로 선혜영이 참여했고 스태프로는 이한철과 정민석 그리고 송윤주가 참여했다.

정원석과 선혜영이 한 팀, 그리고 이한철과 송윤주 그리고 최수빈과 정민석이 또 다른 한 팀으로 어제저녁에 부성에 도착한 상황이다.

부성 국제 영화제는 게스트들에게 숙소를 제공하는 것 외에 간단한 아침을 제공한다. 아침 메뉴는 시리얼이나 빵 등이다.

“알았어. 너도 식당에 가서 아침 먹어.”

“네. 형도 빨리 오세요.”

“알았어.”

태화는 현석이를 보내고 문을 닫았다. 그리고 태화는 창가로 이동했다.

이른 아침부터 영화제가 열리는 거리로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확실히 다른 해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이번 부성 국제 영화제는 관객 동원 면에서 성공적이네.]

[네. 이영진이 심사위원장으로 참여했는데 저 정도는 돼야죠. 안 그렇습니까?]

[그렇네. 이영진만 한 광고 모델은 없으니까.]

이영진이 부성 국제 영화제 심사위원장으로 영화제로 참여한다는 소식은 각종 매스컴에 대대적으로 실렸다.

단순히 영화나 연예 부분의 뉴스가 아니라 일반 사회 부분에서도 이영진의 부성 국제 영화제 심사위원장 소식을 대서특필했다.

언론의 대대적인 보도는 대중들의 관심을 일시에 부성 국제 영화제로 이끄는 데 성공했고 그 결과 부성 국제 영화제는 역대 최고의 흥행실적을 올리고 있었다.

[어쨌든 이영진은 자신의 존재감을 대중들에게 확실히 각인시켰습니다. 그런데 영감님.]

[왜 그런가?]

[영감님은 초조하지 않으세요?]

[초조?]

[네. 이영진이 너무 멀리 있어 보이잖아요.]

[내가 초조할 게 뭐가 있겠나? 자네가 있는데. 자네는 금방 이영진을 따라잡게 될 걸세.]

[저도 그랬으면 좋겠군요.]

[그러기 위해서 자네는 오늘 잘 보내야 하네.]

[알고 있습니다. 오늘 <내 복권 내놔!>가 첫선을 보이는 날이잖아요.]

[너무 걱정하지 말게나. 좋은 결과가 있을 테니.]

[영감님 말을 들으니 힘이 납니다.]

#.

태화는 간단하게 샤워하고 나서 아침 식사가 차려진 장소로 향했다. 아침 식사가 차려진 곳은 평소엔 연회장으로 쓰는 곳으로 공간이 꽤 넓었다. 태화가 안으로 들어가자 먼저 와 있던 사람들이 태화에게 인사를 건넸다.

태화의 시야에 가장 먼저 들어온 사람은 바로 정원석과 선혜영이었다. 태화가 정원석과 선혜영에게 다가갔다.

“두 분 밤새 잠은 잘 잤습니까?”

태화의 질문에 선혜영이 대답했다.

“감독님. 저하고 원석 오빠는 잠을 설쳤어요.”

“아니. 어쩌다가…….”

태화의 질문에 정원석이 대답했다.

“뭐. 인생 처음으로 주연한 작품이잖아요. 오늘 관객들한테 공개된다고 생각하니까 잠이 안 오더라고요.”

정원석의 대답을 듣고 나서 선혜영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감독님. 이럴 때 보면 정말 간이 너무 작은 것 같지 않나요?”

선혜영의 농담에 정원석이 발끈했다. 물론 정원석의 발끈은 진짜가 아니라 장난이다.

“뭐? 내가 간이 작다고?”

“그럼. 아니야?”

정원석과 선혜영은 투덕거렸지만, 태화의 눈에 그 모습이 너무 좋아 보였다.

[영감님. 저 두 사람 참 보기 좋군요.]

[애틋하지?]

[네. 그렇네요. 아픔을 이겨낸 아주 아름다운 커플입니다.]

[그렇네. 연인들이 아픔을 함께 극복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현실에선 그게 쉽지 않네.]

[그러니까요.]

태화는 정원석, 선혜영과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나서 다른 사람들에게 인사를 나눴다. 태화는 최수빈 보다 이한철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한철이 형. 잠은 잘 잤어요?”

“나야. 뭐. 잘 잘지.”

태화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거. 실망인데요?”

“실망?”

“네. 친한 후배가 연출한 영화가 오늘 개봉하는데 잠은 조금 설쳐도 되는 거 아닙니까?”

태화의 발언에 이한철의 웃음이 터졌다.

“하하하. 태화 네가 그런 말 할 처지는 아닌 것 같은데?”

“네?”

“윤주가 너 얼굴 보더니 그러더라. 너 잠 푹 잔 거 같다고.”

태화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이한철 옆에 앉은 송윤주에게로 향했다. 그러자 송윤주가 웃으며 말했다.

“뭐. 잠을 푹 잔 것처럼 보이니까……. 그렇다고 말한 거다. 난 사실을 말했을 뿐이야.”

“…….”

“그냥 잠도 잘 자서 아주 피부도 그냥 뽀송하네.”

태화가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는 사이 정민석이 접시에 음식을 담아왔다. 태화가 정민석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정민석이 활짝 웃으며 태화를 반겼다.

정민석은 두 팔로 태화를 꼭 껴안았다.

“태화. 너 진짜 대단한 녀석이었어.”

“어?”

정민석이 태화를 껴안았던 팔을 풀며 말했다.

“태화야. 나 다시 조명 일 하기로 했다.”

정민석의 말에 태화는 활짝 웃었다.

“형. 정말이야?”

정민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응. 이번에 <내 복권 내놔!>에 참여하면서 다시 한번 느꼈다. 내가 가야 할 길은 결국 이 길이라는 걸. 태화야 정말 고맙다.”

“내가 뭘 한 게 있다고……. 근데 몸은 다 회복된 거지?.”

태화의 물음에 정민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응. 이제 움직이는 데 큰 문제 없어.”

“형. 정말 잘됐다.”

“태화야.”

“응?”

“지금보다 시간이 좀 더 흘러서 삶을 다시 돌이켜볼 시점이 오면 난 그때를 잊지 못할 거야.”

“그때?”

“그래. 네가 노량진으로 나를 찾아왔던 그 날 말이야.”

“…….”

“네가 그날 나한테 손을 내밀어 주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는 거다.”

“그렇게 생각해 주어서 고마워. 하지만 그땐 무엇보다 형의 능력이 필요했기 때문이었어.”

“그래서 더 고마웠다.”

“더 고마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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