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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영감님과 함께-169화 (180/195)

어느 날 갑자기, 영감님과 함께 169화

태화는 소정훈에게 바로 직구를 날렸다.

“기자님. 제 물음을 회피하는 겁니까?”

태화의 직구성 질문에 소정훈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이거 감독님이 기자 같군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군요.”

소정훈이 잠시 태화를 보더니 순간 정색했다. 태화는 소정훈의 표정을 보고서 그가 뭔가 결심했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감독님. 거래 한번 할까요?”

“거래요?”

“내가 감독님의 질문에 대답하면 감독님도 내가 한 질문에 대답하기로 하죠.”

태화는 조금도 망설임이 없이 대답했다.

“그렇게 하시죠.”

태화의 대답에 소정훈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너무 망설임이 없어서 제가 더 당황스럽군요.”

“네?”

“보통 이럴 때는 고민하는 게 맞잖아요. 저하고 감독님이 전부터 알아 오던 사이도 아니고요.”

“기자님은 저하고 관점이 조금 다르군요. 저는 서로에게 질문하고 답하면서 서로를 알아갈 기회라고 생각하는데요?”

“…….”

“그래서 망설임 없이 대답했습니다.”

소정훈은 태화의 대답이 참 당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태화에 관해서 궁금해졌다.

한편 박도봉 감독은 태화와 소정훈의 대화를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박도봉 감독은 태화처럼 소정훈이 만만치 않은 사람임을 알아봤다.

‘젊은 기자치곤 꽤 내공이 있어 보인단 말이지. 하지만 태화 군도 만만치는 않을 것이다.’

박도봉 감독은 이 시점에서 태화에게 어떠한 조언도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저 지켜만 보자. 그리고 그 결과를 가지고 이야기하자.’

* * *

소정훈이 태화를 보며 말했다.

“그럼, 감독님의 물음에 대한 답을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전 반골 기질이 있습니다.”

“반골 기질이요?”

“네. 전 이상하게 이영진 감독을 보면 묘한 생각이 들더라고요.”

“묘한 생각이요? 혹시 꼬꾸라지기라도 바라는 겁니까?”

태화의 질문은 꽤 공격적이었다. 질문을 받는 처지에선 다소 불편할 수도 있는 표현이었다. 하지만 소정훈의 얼굴엔 불편한 기색이 없었다.

“내가 그러길 바란다고 그렇게 되는 건 아니죠. 안 그래요?”

“기자님. 좀 의외군요.”

“뭐가 말입니까?”

“전 기자님이 다소 불편해할 줄 알았거든요. 표현이 적절하지 않은 부분이 있었으니까요.”

“전혀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아.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이번엔 제 차례군요.”

“네. 질문하시죠.”

소정훈이 살짝 정색했다. 소정훈의 인상은 본래 진지했다. 여기에 정색한 표정이 더해지니 꽤 무게감이 느껴지는 인상으로 변했다.

“이건 순전히 제 느낌인데…….”

“…….”

“감독님도 저하고 비슷한 기질을 가지고 있는 것 같더군요. 아닙니까?”

태화는 소정훈이 꽤 날카로운 안목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화는 여기서 바로 답변하기보다는 다른 걸 택했다.

“하하하.”

태화가 큰소리로 웃었다. 그러자 소정훈이 피식 웃으며 발언했다.

“감독님의 그 웃음, 긍정의 의미로 받아들여도 되는 겁니까?”

“기자님. 성격이 급하시군요.”

“그럼 아니라는 겁니까?”

태화의 발언에 소정훈은 속으로 살짝 당황했다. 하지만 소정훈은 여전히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럼 뭡니까? 감독님은 내 질문에 대답한 게 아닙니다.”

“대답하죠. 전 기자님과 같은 반골이 아닙니다.”

소정훈은 태화의 대답에 당황한 기색이 표정에 드러났다.

“네?”

“저는 넘어서고 싶을 뿐입니다.”

“넘어선다? 이영진을 넘어선다, 그런 의미입니까?”

“네. 그런 점에서 기자님이 저를 반골로 판단한 건 어느 정도 맞는 부분이 있습니다. 넘어서기 위해서는 때로는 그 대상의 반대편에 서야 하니까요.”

소정훈은 태화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리고 묘한 생각이 들었다.

‘처음엔 그냥 잘생긴 감독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나름대로 야망을 품고 있는 감독이었다는 건가?’

소정훈이 태화를 보며 말했다.

“감독님은 꽤 흥미로운 사람이군요.”

태화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건 기자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태화가 소정훈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기자님이 계셔서 좋았습니다. 의외의 즐거움이 있었거든요.”

소정훈이 태화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그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감독님처럼 패기가 넘치는 분은 참 오랜만인 거 같습니다.”

* * *

태화는 소정훈과 헤어지고 나서 한재영이 기다리고 있는 주차장으로 향했다. 그사이 박도봉 감독이 태화에게 말을 걸었다.

[소정훈 기자 말일세.]

[네. 영감님.]

[아주 재밌는 기자더군.]

[그렇습니다. 평범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태화 군. 이제 시작일세.]

[뭐가 말입니까?]

[자네가 세상으로 나온 순간 예견된 일이네.]

[예견된 일이요?]

[그렇네. 앞으로 자네는 사람들과 교류할 기회가 점점 많아질걸세. 부성 국제 영화제가 자네에게 그런 기회를 만들어줄걸세.]

[혹시 그래서 아까 가만히 계셨던 겁니까?]

[그렇네. 소정훈 기자는 자네가 세상으로 나온 뒤 만난 사람일세. 그런 기회는 온전히 자네에게 맡기는 게 낫다고 판단했네.]

[그래서 만족하셨습니까?]

[만족이라는 대답보다는 자네가 얻을 수 있는 건 얻었다고 할 수 있네.]

[얻을 수 있는 걸 얻었다?]

[그렇네. 사람의 성향이라는 건 죽어도 바뀌기가 어렵네. 그런 의미에서 소정훈의 존재는 장차 자네에게 도움이 될 가능성이 크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소정훈 기자와 대화를 나누면서 느낌이 왔거든요.]

[느낌?]

[네. 이영진에 관해서 품은 감정이 단순히 반골 때문은 아닌 거 같았습니다.]

[단순히 반골 때문은 아니다?]

[네. 뭔가 사연이 있는 듯했습니다.]

[음. 그랬는가?]

[혹시 영감님, 기억나는 일 없습니까?]

[특별히 기억나는 건 없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차차 알게 될걸세. 자네가 굳이 서두르지 않아도 말일세.]

[네. 저도 그렇게 될 거로 생각합니다.]

태화가 박도봉 감독과 대화를 나누는 사이 태화는 주차장에 도착했다. 주차장 입구에는 한재영이 서 있었다. 한재영이 태화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태화는 한재영을 보자 절로 미소가 나왔다. 친한 친구란 이런 것이다.

그냥 얼굴만 봐도 그냥 마음이 편해지는 존재다.

“재영아, 미안하다. 이야기가 좀 길어졌지?”

“아니. 그렇지도 않아.”

한재영이 태화에게 자기의 스마트폰을 보여주었다. 한재영의 스마트폰 화면엔 사진이 떠 있었다. 사진을 본 태화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거. 우섭이가 보내준 거야?”

한재영은 이우섭이 보내준 사진 몇 장을 태화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응. 녀석들 재밌어 보이지?”

“그렇네. 재밌어 보인다.”

이우섭이 보낸 것은 해변과 자신과 김현석의 모습을 찍은 사진들이었다. 그 사진 속에서 이우섭과 김현석은 꽤 재밌게 보내고 있었다.

태화는 그 사진을 보자 갑자기 해변에 가고 싶은 욕구가 확 올라왔다.

“재영아. 못 참겠다. 우리도 빨리 저기 가자.”

“오케이. 그러자고. 솔직히 오늘 다른 일정도 없잖아.”

“그러니까.”

한재영은 재빨리 택시를 불렀다. 택시는 대략 5분 정도 후에 태화와 한재영이 있는 곳으로 도착했다.

* * *

태호와 한재영은 택시를 타고 이우섭과 김현석이 있는 해변으로 이동했다. 이우섭과 김현석은 시민의 전당에서 그리 멀지 않은 해변에 있었다.

태화와 한재영이 택시에서 내렸다. 하늘은 해가 아닌 달이 떴지만 해변의 분위기는 여전했다.

많은 사람이 저녁 시간임에도 해변에 모여 있었다.

태화와 한재영이 백사장으로 들어가는 순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태화 형! 재영이 형!”

태화와 한재영은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두 사람의 시야에 김현석의 모습이 들어왔다.

태화와 한재영이 김현석에게 다가갔다. 김현석의 얼굴엔 살짝 붉은 기가 감돌았다. 태화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현석이 너 한잔했구나.”

김현석이 멋쩍었는지 손으로 자기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대답했다.

“네. 기분이 좋아서 우섭이 형하고 한잔했습니다. 그런데 많이 빨개요?”

“많이 빨갛다기보다는 술 마셨다는 표시는 되는 거 같다.”

“하하. 그런가요? 저기 우섭이 형 있는 데로 가요. 우섭이 형, 지금 자리 지키고 있거든요.”

“어디 명당 자리라도 잡아놨나 보네?”

“네. 나름대로 괜찮더라고요. 조용하고.”

“그래? 이거 기대되는데?”

김현석이 앞장서고 태화와 한재영이 그 뒤를 따라갔다. 이우섭이 자리를 잡은 곳은 해변 중심 쪽보다는 끝쪽이었다.

이우섭은 해변에 돗자리를 깔아 놓은 채 있었다. 이우섭이 태화 일행을 보자 손을 흔들며 뛰어왔다.

“태화 형! 재영이 형!”

이우섭은 태화와 한재영을 보자 활짝 웃었다.

“태화 형, 저 방금 기사 봤어요.”

“기사?”

“네. 이영진 감독이 부성 국제 영화제 심사위원장이라면서요?”

“그건 어떻게 알았어?”

“방금 기사 검색했는데 속보로 뜨더라고요. 그래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렇지. 놀랄 만하지.”

태화의 발언이 끝나자 한재영이 말했다.

“정말 나도 두 눈으로 보고 나서도 현실인지 믿어지지 않더라고.”

“아. 부럽네요. 이영진 감독을 실제로 보다니.”

“우섭아. 그렇게 부러워할 건 없다.”

“네?”

“실제 보긴 봤어도 그렇게 가까운 곳에서 본 건 아니었거든. 그냥 멀리서 본 정도였지.”

하지만 이우섭은 아직도 궁금증이 가시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도 뭔가 있지 않아요?”

“뭐가?”

“뭐. 그런 거 있잖아요. 아우라가 막 나오고 그런 거…….”

“뭐. 솔직히 그런 게 있는 거 같긴 하더라. 사람한테서 무슨 광채 같은 게 나오는 거 같기도 하고.”

한재영은 자신이 느낀 대로 그대로 말하고 있었다. 태화는 한재영의 발언에 다소 씁쓸했다. 하지만 태화는 내색하지 않았다.

“나도 재영이 느낀 걸 느꼈어.”

이우섭이 살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형도요?”

“그래. 확실히 이영진은 이영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그때였다. 김현석이 살짝 취한 듯 말했다.

“태화 형, 무슨 질투 같은 거 안 느꼈어요?”

“질투?”

이우섭이 순간 김현석의 입을 막으려고 했다. 김현석이 방금 한 발언은 자칫 태화에게 실례가 되는 말일 수 있었다. 김현석이 부럽지 않았냐고 물어보았다면 이우섭이 나서지 않았을 것이다. 부러움과 질투는 그 어감이 다르다.

“야. 현석아. 너 무슨 말을…….”

그러자 태화가 이우섭을 말렸다.

“우섭아. 괜찮아. 현석이는 지금 자신이 느끼는 대로 말하는 거니까.”

“알겠어요, 형.”

태화의 말에 이우섭은 한발 물러났다. 그러자 김현석의 말이 이어졌다.

“네. 저 같으면 질투 같은 거 느꼈을 거예요.”

태화가 김현석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현석이 네 말에도 일리는 있어. 사람들이 성공한 사람한테 갖는 감정은 이중적이니까.”

태화의 말처럼 사람들은 성공한 사람에 관해서 이중적인 감정을 갖는다. 그중 하나가 부러움이고 또 다른 하나가 바로 질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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