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영감님과 함께 164화
신아진은 영화 제목을 듣자마자 피식 웃으며 발언했다.
“<내 복권 내놔!>라니. 참 작품 타이틀이 직설적이에요. 그죠?”
“그렇습니다. 팀장님. 그리고 그 지인의 정보가 정확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정보의 정확성이요?”
“네. <내 복권 내놔!> 감독이 잘생겼다고 했거든요. 그런데 실제 보니 그 정보가 맞았네요.”
민경희의 발언에 신아진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민경희는 본인의 발언에 신아진이 웃음으로 반응할 줄 알았다. 하지만 신아진의 반응은 민경희가 예상했던 것과 달랐다. 그러자 민경희는 살짝 민망해졌다.
사람은 민망한 상황이 발생하면 각기 다르게 반응한다. 대부분 사람은 민망함에 말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민경희는 이런 상황에서 더 말을 하는 편이었다.
민경희가 잠시 숨을 고른 후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팀장님.”
“왜요?”
“서태화 감독. 초등학교 시절에도 잘생겼었나요?”
신아진은 민경희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지금 모습에 어릴 적 모습이 많이 남아 있더군요.”
“그럼. 그때도 잘생겼었다는 말이네요.”
“그렇죠. 근데 경희 씨. 관심이 많나 봐요? 특히 외모에?”
“뭐. 그건 개인적인 관심일 뿐입니다.”
“개인적인 관심일 뿐이라면 개인적이지 않은 이유는 뭐죠?”
“팀장님. <내 복권 내놔!> 그 작품. 제작비가 얼마인지 아세요?”
“얼마나 들었는데요?”
“이천만 원 조금 넘게 들었답니다.”
민경희의 대답에 신아진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정말이요?”
“네.”
신아진은 놀라는 상황이었지만 운전은 안정적으로 하고 있었다.
“그거 과장 아니죠?”
“네.”
“부성 국제 영화제 본선에 오를 정도면 결과물도 괜찮게 나왔다는 의미인데.”
“그래서 부성 국제 영화제 사무국에서도 한동안 화제가 됐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팀장님.”
“왜요?”
“서태화 감독. 초등학교 때 어땠나요?”
“그건 왜 묻죠?”
“재능 있는 사람들 보면 어릴 때부터 뭔가 남다른 게 있잖아요. 서태화 감독도 혹시 그랬는지 해서요.”
“음…….”
민경희의 질문은 난데없는 셩격이 아니었다. 실제로 젊은 나이에 뭔가를 성취한 사람은 어릴 적부터 남다른 면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신아진은 잠시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하지만 신아진이 기억하는 태화의 모습은 감독으로서 떡잎부터 남다른 면모는 없었다.
“내 기억에는 서태화 감독. 특별했던 건 없었던 거 같아요.”
“아. 그런가요?”
“네.”
“팀장님. 그러면 더 놀라운 거 아닌가요?”
“네? 더 놀랍다고요?”
“네. 서태화 감독은 어릴 때는 영화감독으로서 남다른 면이 없었다는 거잖아요. 그런데 어느 순간 자기의 자질을 발견하고 성과를 낸 거잖아요.”
“듣고 보니 그렇기는 하네요. 그런데 민경희 씨.”
“네. 팀장님.”
“<내 복권 내놔!> 재미는 있답니까?”
“그 지인은 재미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그래서 이번에 <내 복권 내놔!> 꼭 보려고요.”
민경희는 말을 마치고 나서 스마트폰을 꺼내 신아진에게 예매권을 보여주었다.
“전 이미 예매도 해놨거든요.”
#.
태화 일행은 부성 국제 영화제 개막식이 열리는 시민의 전당에 도착했다. 차에서는 태화와 함께 한재영이 내렸다. 태화와 한재영 두 사람이 내린 이유는 개막식 참석 자격 때문이다. 개막식과 폐막식은 작품에서 메인 스태프가 참석하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좀 더 많은 사람에게 참석자를 오픈해야 한다는 내부 검토가 있었지만, 현행대로 유지하는 게 낫다는 의견이 좀 더 힘을 얻었다. 오픈해야 하는 대상과 범위에 관해서 의견이 제대로 모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태화가 운전석 창문을 손을 두드렸다. 그러자 이우섭이 창문을 내렸다.
이우섭 옆자리엔 김현석이 자리하고 있었다. 휴게소에서 이우섭이 운전할 때 자리 배치를 바꿨다. 그전에 태화와 한재영이 앞자리였다면 이우섭이 운전할 때 이우섭과 김현석이 앞자리에 태화와 한재영이 뒷자리로 이동했다.
“현석이 데리고 어디 좀 다녀와.”
“네. 형. 현석이랑 저기 해변이나 가려고요.”
“그래. 잘 생각했다. 그리고 미안하다.”
태화의 발언에 이우섭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이. 형. 무슨 말이에요. 형 잘못도 아니고 그냥 영화제에서 정한 규칙이 그런 건데요.”
“그래. 그렇게 이해해 줘서 고맙다.”
태화는 김현석에게 말을 걸었다.
“현석아. 재밌게 보내라.”
“네. 형. 솔직히 저 부성시에 오면 바닷가에 가보고 싶었어요. 오늘이 바로 그날이네요.”
“그래. 알았다.”
태화가 차에서 물러나자 이우섭이 차를 출발시켰다. 태화는 멀어져가는 차를 보며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저 두 사람도 참석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게. 그런데 어쩌겠냐? 그게 진입 장벽인걸.”
“진입 장벽이라…….”
그때였다. 박도봉 감독이 태화에게 말을 걸어왔다.
[어느 분야건 진입 장벽은 존재하네. 그리고 진입 장벽은 두 개의 효과를 내네.]
[두 가지 효과요?]
[그렇네. 일단 이 진입 장벽 밖에 있는 사람들의 처지에서 생각해 보게나. 이 진입 장벽 밖에 있는 사람들은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네.]
[자신은 끼지 못하니까요.]
[자네 생각이 맞네. 이제는 그 반대를 생각해 보게나.]
[장벽 안에 있는 사람들 말인가요?]
[그렇네. 그 사람들은 어떨 거 같나?]
[그 장벽에 안에 있는 사람은 이런 생각을 하겠죠. 나는 이곳에 낄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맞네. 사람은 내가 이곳에 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면 그 이전 생각은 안 하게 되네. 그리고 사람들은 안정감과 동질감을 느끼게 되네.]
[안정감과 동질감이요?]
[그렇네. 현재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확인하게 되는 것이네. 자신이 장벽 밖이 아닌 안에 있는 걸 확인하는 것이고 그 결과 안정감을 느끼는 것이지. 동질감이야 굳이 설명하지 않더라도 알 것이니 굳이 설명하지 않겠네.]
[네. 영감님.]
[어쨌든 자네는 입봉작으로 단번에 진입 장벽을 넘어서는 성과를 이룬 걸세.]
태화는 박도봉 감독의 말을 듣고서 비로써 자기의 내면을 볼 수 있었다. 태화는 이우섭과 김현석을 보내면서 이중적인 감정을 느꼈었다.
태화는 한편으론 이우섭과 김현석이 함께 하지 못하는 사실에 대해서 서운한 감정이 느꼈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자신이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다는 사실에 대해 안도감과 만족감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특히 태화가 느끼는 만족감은 상당했다. 태화 자신이 지금껏 살아오면서 이룬 최고의 성과였기 때문이었다.
“재영아. 진입 장벽이라는 네 말이 맞는 거 같다.”
한재영이 살짝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발언했다.
“응? 그게 무슨…….”
“솔직히 나 속으로 안도했다. 우섭이하고 현석이 보내고 나서……. 내가 여기에 남아 있다는 사실에…….”
태화의 발언에 한재영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너무 솔직한 거 아니냐?”
“내가 너한테 솔직하지. 그럼 누구한테 솔직하겠냐?”
“네가 그렇게 말해서 하는 말인데……. 솔직히 나도 너하고 크게 다르지 않아.”
“뭐?”
“나도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우섭이하고 현석이에게는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는 거 아닌가? 라고.”
태화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이런 생각이 장벽을 더 공고히 하는 재료가 되는 것이겠지.’
태화와 한재영은 리허설 참여를 위해 시민의 전당 입구로 이동했다. 시민의 전당 입구엔 보안 요원들과 진행 요원들이 사람들의 신분을 확인했다. 태화와 한재영도 예외가 아니었다.
태화와 한재영이 입구에 도착하자 보안 요원과 진행 요원이 다가왔다.
진행 요원이 태화와 한재영에게 말했다.
“두 분. 잠시 신분증을 보여주십시오.”
태화와 한재영이 신분증을 건네자 진행 요원이 다른 요구가 이어졌다.
“신분을 밝혀주십시오.”
태화가 먼저 대답했다.
“저는 <내 복권 내놔!> 연출을 맡은 서태화 감독입니다.”
진행 요원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태블릿을 조작했다. 태블릿엔 오늘 개막식과 개막식 리허설에 참석하는 인원들의 정보가 담겨 있었다. 진행 요원이 태블릿을 통해 태화의 신분을 확인했다.
“서태화 감독님. 신분 확인됐습니다. 다른 분은 어떻게 되십니까?”
이번엔 한재영이 대답했다.
“<내 복권 내놔!> 프로듀서를 맡은 한재영입니다.”
진행요원은 태화 때와 마찬가지로 태블릿으로 한재영의 신분을 확인했다.
“네. 한재영 피디님. 신분 확인됐습니다.”
진행 요원이 태화와 한재영을 향해 말했다.
“두 분. 협조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안으로 들어가셔도 됩니다.”
태화가 진행 요원과 보안 요원을 향해서 발언했다.
“수고하셨습니다.”
#.
태화와 한재영은 리허설이 열리는 곳으로 입장했다. 시민의 전당 홀은 참석자들로 조금씩 자리를 채워가고 있었다. 무대는 이미 개막식을 열어도 괜찮은 정도로 이미 세팅이 끝난 상태였다.
태화가 홀로 들어가자 리허설을 진행하는 요원이 태화와 한재영의 자리를 안내했다.
“감독님하고 피디님 좌석 번호입니다. 이 좌석으로 가시면 두 분 이름이 붙어 있을 겁니다.”
태화가 진행요원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고맙습니다. 수고하십쇼.”
태화와 한재영은 안내받은 자리로 이동했다. 태화와 한재영은 자리에 앉은 채 주변 상황을 보았다.
개막식이 열리는 곳의 좌석은 조금씩 채워져 현재 절반을 살짝 넘긴 상태였다.
“태화야. 아직 좌석이 많이 찬 것 같지는 않은데?”
“아직 시간이 좀 있으니까.”
태화는 시민의 전당 홀 내부를 잠시 훑어보았다.
“근데. 이곳 시설이 괜찮은 거 같은데?”
“여기가 클래식 공연을 주로 하던 곳으로 알고 있어. 작년인가? 이곳도 리모델링해서 시설도 보수했고. 부성시에서는 공연장으론 시설이 좋은 편이야.”
“클래식을 주로 공연하던 곳에서 영화제 개막식이라……. 뭔가 의미가 있어 보이는데?”
“의미?”
“그래. 부성 국제 영화제도 올해로 30주년이야. 꽤 오랫동안 유지해 온 국제 영화제야. 바로 역사와 전통이 있다는 말이기도 해.”
“그걸 클래식 공연장에서 개최하면서 그 이미지를 강화한다. 뭐. 그런 의미인가?”
태화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응. 난 그런 생각이 드는데?”
그때였다. 태화에게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이거 감독님 제법 날카로우신데요?”
순간 태화와 한재영은 깜짝 놀랐다. 태화는 자신에게 말을 걸어온 사람을 보자 활짝 웃으며 발언했다.
“안주원 팀장님. 여긴 어쩐 일이세요?”
“저야. 뭐 개막식 리허설이 잘 진행되나 확인하러 왔죠. 여기 와보니 감독님이 눈에 띄어서요.”
“아. 그러셨군요.”
“그런데 감독님 옆에 계신 분은 누구시죠?”
태화가 한재영을 안주원에게 소개했다.
“<내 복권 내놔!> 프로듀서. 한재영입니다.”
한재영은 태화가 자기를 소개하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한재영은 안주원에게 인사를 건넸다.
“한재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