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영감님과 함께 163화
휴게소 카페 자리는 여유가 있었다. 카페 전체 테이블의 절반 정도는 비어 있는 상태였다.
카페 창가 쪽에 여성 두 명이 앉아 있었다.
두 명의 여성은 패션 스타일이 확실히 달랐다. 한 명의 여성은 심플한 정장 스타일에 단발이었지만 다른 여성은 범상치 않았다. 그녀의 패션 감각은 아주 독특했다.
그녀는 노란색 셔츠를 입었고 바지는 연한 블루의 데님을 입었는데 쉽지 않은 색의 조합임에도 그녀에겐 이 색 조합이 꽤 잘 어울렸다. 그리고 그녀의 패션 감각의 정점은 선글라스였다. 그녀가 낀 선글라스는 옅은 오렌지색이었는데 그녀의 까무잡잡한 피부톤과 어울렸다.
그녀는 짙고 풍성한 흑발을 가지고 있었고 머리를 뒤로 묶었다. 풍성한 머리칼은 그녀의 예쁜 두상을 더 돋보이게 했다.
심플한 정장 스타일의 여성이 건너편에 앉아 있는 여성에게 발언했다.
“저기 신 팀장님.”
“네. 민경희 씨.”
“팀장님은 그동안 칸이나 기타 국제 영화제 필름 마켓에 참가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부성 국제 영화제는 처음이시죠?”
질문하는 민경희의 표정엔 호기심과 부러움이 가득 차 있었다. 질문을 받은 신 팀장이 살짝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렇네요. 그래서 그런지 좀 기대가 되는데요?”
“올해는 좀 기대해도 될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올해는 영화제 30주년이기도 하니까요.”
“네. 그것도 그것이지만…….”
민경희가 뜸을 들이자 건너편에 앉아 있던 신 팀장이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
“왜요? 뭐가 또 있어요?”
민경희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이번에 본선에 오른 작품들이 괜찮다는 이야기가 있어서요.”
“작품들이 괜찮다?”
“네.”
“작품들이 괜찮다는 건 어디서 들었어요? 민경희 씨. 어디 빨대라도 꽂았어요?”
민경희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사무국에 지인이 있어서 잠깐 물어봤는데 그렇게 대답하더라고요.”
“그래요?”
“네. 팀장님. 올해 본선에 오른 작품들은 기대할 만하다고요.”
“음. 민경희 씨가 그렇게까지 이야기한다면 한번 기대해도 좋겠군요.”
민경희는 신 팀장의 발언을 듣고 얼굴에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말 뿐이기는 해도 신 팀장이 자신의 발언을 믿는다고 했기 때문이다.
민경희는 대답하고 나서 시간을 확인했다.
“신 팀장님. 출발할 시간입니다.”
“그래요? 그럼 출발하죠.”
신 팀장과 민경희 두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
태화 일행이 서로 지프 차량을 보며 대화를 하는 사이, 신 팀장이 샛노란 지프 차량으로 다가왔다.
태화 일행은 그녀의 남다른 패션 감각에 눈길일 갈 수밖에 없었다. 특히 지프 차량의 색과 맞춘 노란색 셔츠가 눈에 띄었다.
그녀는 태화 일행을 지나 샛노란 지프 차량으로 다가갔다. 이 모습을 본 태화가 한마디 툭 던지듯 말했다.
“지프가 남자만의 로망은 아닌 것 같다.”
태화의 발언을 들은 한재영이 대꾸했다.
“태화야. 너도 그 생각했냐? 나도 그랬는데…….”
“하하. 뭔가 통하는 게 있었네.”
샛노란 지프 차량에 올라타려던 신 팀장은 잠시 멈췄다. 그녀의 귀에 익숙한 이름이 들렸기 때문이다.
‘태화……?’
신 팀장은 잠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태화 일행이 보였다.
태화와 일행은 현재 휴게소 카페로 가기 위해서 몸을 돌린 상태였다. 신 팀장이 태화의 이름을 불렀다.
“서태화!”
태화는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태화는 고개를 돌리고 나서 살짝 놀랐다. 자기의 이름을 부른 사람이 다름 아닌 신 팀장이었기 때문이었다.
태화가 신 팀장을 향해 말했다.
“혹시 절 부른 겁니까?”
“이름이 서태화가 맞아요?”
“네. 그렇습니다만……. 그런데 누구신지?”
태화의 질문에 신 팀장은 대답은 하지 않은 채 태화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 상황에서 놀란 건 태화뿐만이 아니었다. 한재영과 이우섭 그리고 김현석은 현재 벌어진 상황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놀란 건 조금 전까지 샛노란 지프를 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 차 주인이 신 팀장임을 보고 나서 놀랐었다. 게다가 그 샛노란 지프의 차주가 태화에게 아는 척을 하고 있었다.
태화가 신 팀장을 향해 다시 물었다.
“혹시 절 아세요?”
태화에게 질문을 받은 신 팀장이 태화에게 다가왔다. 그때였다.
민경희가 멀리서 신 팀장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신 팀장님! 잠깐만요. 신아진 팀장님!”
민경희가 뒤늦게 신아진을 따라온 건 갑자기 생긴 장 트러블 때문이었다. 민경희는 신아진과 동시에 일어났지만, 카페에선 같이 나오지는 못한 상황이었다.
“신 팀장님.”
“네.”
민경희가 손가락으로 화장실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잠깐 볼일 좀 보고 가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민경희 표정엔 잠시 민망함이 스쳤다.
“죄송할 게 있나요. 생리 현상인데. 알겠어요. 잘 해결하고 나오세요.”
“고맙습니다. 팀장님.”
민경희는 신아진에게 고맙다는 말을 건네고 나서 재빨리 화장실로 들어갔다.
민경희는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나서 뒤늦게 뛰어나와 신아진을 부른 상황이었다. 태화는 신아진 이라는 이름을 듣자 깜짝 놀랐다.
“당신이 혹시 신아진입니까? 성원초등학교 졸업한 그 신아진……?”
태화의 질문을 받은 신아진은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벗었다. 신아진이 선글라스를 벗자 태화는 신아진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태화는 신아진의 얼굴을 보자 과거 어렸을 때 봤던 신아진의 얼굴이 바로 떠올랐다. 신아진의 어렸을 때 얼굴은 예쁘장하면서도 똑똑한 느낌을 주는 인상이었다. 이런 인상은 성인이 된 얼굴에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 뭔가 영특한 느낌을 주는 인상이었다.
신아진이 살짝 미소를 지으며 태화에게 말했다.
“근데 중요한 거 빼 먹지 않았어?”
“중요한 거?”
태화의 질문에 신아진이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성원초등학교 전교 학생회장 신아진.”
태화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하하. 어렸을 때 얼굴이 남아 있네.”
태화의 말을 들은 신아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건. 서태화. 너도 마찬가지야. 쉽게 잊힐 얼굴은 아니지.”
태화가 신아진에게 다가와 손을 건넸다.
“정말 여기서 만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네.”
신아진은 태화가 내민 손을 잡았다.
“그러게. 여기서 만날 줄은 몰랐네. 어디 가는 길이야? 여행?”
태화는 굳이 자신이 부성 국제 영화제에 참석하기 위해서 간다는 걸 말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렇지. 뭐. 그런데 넌? 너도 여행?”
태화는 문득 신아진에게 일행이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아니다. 여행이 아니라 출장이겠구나.”
신아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출장 맞아.”
태화와 신아진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민경희가 신아진에게 다가왔다. 민경희가 신아진을 향해 말했다.
“팀장님. 저 그렇게 안 늦었죠?”
“네. 많이 안 늦었어요. 일은 잘 보고 오셨어요?”
“아. 네. 근데 팀장님 지금 출발하셔야 해요. 안 그럼. 미팅 시간에 늦어요.”
태화는 민경희가 신아진에게 재촉하자 내심 반가웠다.
“그래. 아진아. 가 봐. 바쁠 텐데.”
“어. 그래.”
신아진은 태화에게 대답한 후 민경희에게 말했다.
“민경희 씨. 그럼. 출발하죠.”
“네. 팀장님.”
민경희는 차에 올라타기 전 잠시 태화를 바라보다가 차에 올라탔다. 차에 올라탄 신아진이 지프 차량에 시동을 걸자 묵직한 엔진소리가 들렸다.
[영감님. 다행이군요.]
[다행이라고?]
[네. 제가 아진이를 이렇게 만난 건 놀라운 일이지만 계속 대화하기엔 부담스러운 상황이었습니다.]
[얼마 만에 만난 건가?]
[초등학교 졸업 이후 처음입니다. 게다가 전 지금 혼자가 아니라 일행이 있는 상황입니다.]
[음. 그렇겠구먼. 자네가 일행을 두고 신아진과 길게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도 부담스러울 수 있었겠어.]
[그러니까요.]
[하지만 그냥 저렇게 보내는 거 아쉽지 않은가? 다시 못 볼 수도 있는데…….]
[어쩔 수 없잖아요.]
[음. 자네는 아쉽지 않은 모양이군.]
[너무 오랫동안 만난 적이 없었으니까요.]
[하긴. 시간이라는 녀석이 마법을 부리기도 하니까.]
[시간이 마법을 부린다. 참 시적인 표현이군요.]
[그랬는가?]
[네. 영감님. 아주 멋진 표현이었습니다.]
신아진은 차를 출발시키기 전 태화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태화도 신아진에게 손을 흔들었다. 태화는 신아진이 출발하는 모습을 바라본 후 몸을 돌렸다. 그러자 한재영과 이우섭 그리고 김현석이 궁금한 표정으로 태화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들 무슨 표정이야?”
포문을 제일 먼저 연 건 한재영이다.
“흠흠. 저 멋진 여성은 누구야?”
한재영의 질문에 태화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누구? 아진이?”
“아. 그분 성함이 아진 씨구나.”
“정확히 알려줄게. 신아진이야. 내 초등학교 동창이고.”
“초등학교 동창이라는 건 언뜻 들었어. 그런데 그게 다야?”
“뭐가?”
“뭐. 그런 거 있잖아. 초등학생 때라고 하지만 애정 사업은 했을 거 아냐?”
한재영의 질문에 이우섭과 김현석이 킥킥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태화가 이우섭과 김현석을 번갈아 보며 발언했다.
“너네 두 사람은 뭐가 좋다고 킥킥거리며 웃어?”
태화의 발언에 이우섭이 대꾸했다.
“형. 이야기해 줄 거죠?”
“뭘?”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이야기가 연애사잖아요.”
“기대하지 마. 아진이에 관해선 해줄 말이 없으니까.”
“네? 그게 무슨?”
“내가 한 말 그대로야. 아진이에 관해선 기억에 남는 게 별로 없거든.”
태화의 대답에 한재영을 비롯해 이우섭과 김현석의 얼굴에 실망하는 기색이 돌았다.
“다들 그런 표정 지어봐야 소용없어. 정말 할 말이 없으니까.”
#.
신아진과 민경희는 샛노란 지프를 타고 부성시로 이동 중이었다. 민경희가 궁금한 표정으로 신아진에게 질문했다.
“신 팀장님. 아까 그분 누구예요?”
“누굴 말하는 거죠?”
“그 휴게소에서 봤던 남자분이요.”
“아. 태화요?”
“그분 성함이…….”
“서태화예요.”
“아. 서태화 님.”
민경희는 태화의 이름을 부르다 뭔가 생각이 난듯했다.
신아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왜요? 이름 말고 더 궁금한 게 있어요?”
“아니. 그게 아니라.”
민경희는 자기의 가방에서 서류들을 꺼냈다. 그런 후 민경희는 자신이 가방에서 꺼낸 서류들을 훑어봤다.
신아진은 민경희의 행동에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민경희 씨. 무슨 일이죠?”
“그 서태화라는 분 있잖아요.”
“네.”
“올해 부성 국제 영화제 본선에 오른 작품 감독이네요.”
신아진은 민경희의 말에 살짝 놀란 듯 되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죠?”
“제가 부성 국제 영화제 사무국에 빨대가 있다고 그랬잖아요.”
“그랬었죠.”
“그때 그 지인이 한 작품을 저한테 이야기해 줬거든요. 그런데 그 작품의 제목이 인상적이어서 쉽게 기억이 됐어요.”
“그 작품 제목이 뭔데요?”
“<내 복권 내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