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영감님과 함께 158화
태화는 선혜영의 발언에 살짝 미소가 지어졌다. 하지만 태화의 속 마음은 표정과는 달랐다.
[태화 군. 말은 저렇게 하지만 그만큼 두 사람은 힘들었을 걸세.]
[네. 아마도 그랬을 겁니다. 제가 생각했던 거 이상으로 힘들었겠죠. 그 힘들었던 시간을 극복한 저 두 사람이 대단해 보입니다.]
[아마도 두 사람의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거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태화가 정원석과 선혜영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두 분은 힘든 시간을 현명하게 보내셨네요. 특히 선혜영 님은 너무나 힘들었을 텐데요.”
“어느 순간 힘들게만 있으면 안 될 거 같더라고요. 내가 계속 힘든 모습을 하면 오빠 연기하는 데 좋을 거 같지 않겠다고 생각했어요.”
“솔직히 촬영이 재개되었을 때 저도 걱정을 많이 했었습니다. 하지만 정원석 님은 잘해주었습니다.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배경엔 선혜영 님이 있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태화의 말에 선혜영이 말없이 미소를 지었다.
“선혜영 님. 이번 부성 국제 영화제 때 참석해 주십시오.”
태화의 제안에 선혜영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요?”
“선혜영 님도 GV 행사 때 참석해 주셨으면 합니다. 선혜영 님이 GV 행사에 참석해 주시면…. 특별한 행사가 될 거 같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럴 자격이 되나요?”
“자격은 충분히 됩니다. 실제 지금 영화 최종본에 선혜영 님의 이름이 엔딩 크레딧에 올라가 있습니다.”
“어떻게 올라가 있습니까?”
“그 내용은 솔직히 비밀입니다. 영화제 사무국과 비밀 엄수 조항이 있어서 많은 이야기는 해드릴 수 없습니다.”
태화의 말에 선혜영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궁금해서라도 가야겠네요. 그런데 그분하고 이야기는 된 겁니까?”
“누구요?”
“제 역할을 이어받은 연기자분이요. 최수빈 님이라고 했던가요?”
“아. 그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태화의 대답에 선혜영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감독님. 걱정 안 해도 된다고요?”
“네.”
태화가 대답을 마치자마자 자신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발신자가 누구인지 확인한 태화가 피식 웃으며 전화를 받았다.
“어. 그래. 지금 들어와도 돼.”
태화가 전화를 끊고 나서 카페로 한 사람이 들어왔다. 그 사람을 보자 태화를 뺀 정원석과 선혜영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
정원석과 선혜영은 매우 놀랄만했다. 카페로 들어온 사람이 바로 최수빈이었기 때문이었다. 정원석과 두 사람이 동시에 한마디 내뱉었다.
“아니. 저 사람은…….”
태화가 방금 통화한 사람은 바로 최수빈이었다. 최수빈은 태화와 정원석, 그리고 선혜영이 있는 자리로 걸어갔다. 최수빈이 도착하자 태화와 정원석 그리고 선혜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어서 태화가 최수빈을 향해 발언했다.
“인사드려요.”
“알겠어요.”
태화와 최수빈은 둘 사이에 존댓말을 썼다. 최수빈이 정원석과 선혜영을 향해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정원석 님은 잘 지내셨나요?”
정원석이 최수빈에게 인사를 건넸다.
“네. 수빈 님도 잘 지냈죠?”
“네. 잘 지냈습니다.”
최수빈은 시선을 선혜영에게 이동했다.
“그때 오디션장에서 보고 두 번째네요.”
“아. 그렇네요.”
“선혜영 님. 정말 뵙고 싶었습니다.”
“저도 최수빈 님을 뵙고 싶었습니다.”
선혜영은 궁금한 표정으로 태화를 쳐다보았다. 선혜영은 직접 말하지는 않았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태화에게 묻고 있었다. 태화도 선혜영의 이런 속내를 알고 있었다.
“선혜영 님 그리고 정원석 님. 자리에 앉으시죠. 최수빈 님도 자리에 앉으시고요.”
태화의 말이 끝나자 정원석과 선혜영 그리고 최수빈이 자리에 앉았다. 마지막으로 태화가 자리에 앉으며 발언했다.
“정원석 님과 선혜영 님은 여러모로 궁금한 점이 많을 겁니다.”
태화의 말에 선혜영이 정원석을 향해 물었다.
“오빠도 모르는 일이야?”
선혜영이 이런 질문을 한 건 자신을 뺀 사람들이 자기를 놀라게 해주기 위해서 그런 거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선혜영의 질문에 정원석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나는 정말 모르는 일이야.”
정원석이 선혜영에게 대답하고 나서 태화에게 물었다.
“감독님. 어떻게 된 겁니까?”
태화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이제부터 답할 테니 너무 서두르지 마십시오.”
태화의 말에 나머지 세 명은 태화에게 집중했다.
“오늘 정원석 님과 선혜영 님 만나기를 결정하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혜영이 태화에게 질문했다.
“혹시 방금 저에게 제안했던 것 때문인가요?”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 제안이 민감한 문제이기도 하고요.”
“아무래도 그렇겠죠.”
선혜영은 태화의 발언을 이해했다. 선혜영은 이미 <내 복권 내놔!>의 주연 배우가 아니다. 그런데 부성 국제 영화제 GV 행사에 참석하자고 제안한 건 태화의 결단이었다.
태화가 발언을 이어갔다.
“하지만 제 독단으로 결정할 수는 없는 사안이었습니다. <내 복권 내놔!>의 여주는 최수빈 님이니까요. 전 최수빈 님에게 내 생각을 말했고 최수빈 님은 내 생각을 받아주었습니다.”
태화의 말이 끝나자 최수빈이 발언했다.
“처음에 감독님의 생각을 들었을 때 조금 섭섭하기도 했어요. 내가 이 작품의 여주인데 왜 이런 제안을……. 부성 국제 영화제 본선에 진출했다는 소식을 듣는 자리에서 들어야 하나.”
실제로 최수빈은 태화의 제안을 듣고서 많이 섭섭해했다. 어쨌든 최수빈은 <내 복권 내놔!> 의 여주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한 상황이었다.
#.
이틀 전.
태화는 최수빈을 만나기 위해 약속 장소로 이동하고 있었다. 태화가 최수빈과 만나기로 한 장소는 최수빈이 자취하는 원룸에서 그리 멀지 않은 작은 카페다.
약속 장소엔 최수빈이 태화보다 먼저 와 있었다. 태화가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서자 최수빈이 태화를 반겼다.
“서태화! 여기야.”
카페가 그리 크지 않아서인지 최수빈이 그리 큰 목소리로 태화를 부르지 않았지만 카페 안의 사람들은 태화의 이름을 다 들을 수 있었다.
태화는 카운터로 가 자신이 마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했다. 그런 후 태화는 최수빈이 있는 자리로 걸어갔다. 태화가 자리에 앉으며 최수빈에게 인사를 건넸다.
“잘 지냈냐?”
“나야. 뭐. 그냥 지냈지. 근데 너 뭐야?”
“뭐가?”
“너. 후반 작업 들어가고 나서 아무 연락도 없었잖아.”
“후반 작업이라는 게 뻔하잖아. 어차피 연기자가 할 일이 없는데 뭐.”
“그래서 작품은 잘 나왔어?”
태화는 후반작업을 진행하면서 몇 명의 스태프를 제외하곤 작업 진행 상황을 말하지 않았다.
“일단 카페에 왔는데 커피라도 한 모금 마시고 말하자.”
태화의 말에 최수빈은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러시든가.”
최수빈은 말을 하고 나서 테이블에 있는 제본된 책을 보았다. 제본된 책의 두께는 그렇게 두껍지 않았다. 태화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봤다.
“수빈이 너. 시나리오 보냐?”
“응.”
“오디션 준비하는 거야?”
“그건 아니고 새로 작품 들어가는 게 있다고 해서. 일단 읽어보고 판단하려고.”
연기자들도 나름 온라인 커뮤니티가 있어서 서로 정보 공유를 하곤 한다. 최수빈도 거기서 정보를 얻은 경우다.
태화가 언뜻 보기에 최수빈은 꽤 열심히 시나리오를 보는 듯했다. 시나리오엔 볼펜으로 밑줄을 친 부분이 꽤 보였고 그 옆에는 짧지만 직접 손으로 쓴 글씨가 적혀 있었다.
몇 분 후 태화가 주문했던 아메리카노가 나왔다. 태화가 아메리카노를 받아 들고 본래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태화가 자리에 앉자 최수빈이 태화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러자 태화가 최수빈을 향해 말했다.
“뭘 그렇게 빤히 쳐다보냐?”
“태화. 너 뭔가 있는 거지?”
“뭐가?”
“그냥 만나자고 한 건 아닐 거고……. 말해봐.”
태화가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시고 나서 발언했다.
“그럼. 뭐부터 말할까?”
“뭐부터?”
“할 이야기가 좀 많거든.”
최수빈이 살짝 궁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할 이야기가 많아?”
태화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응.”
최수빈은 더는 대본에 시선을 주지 않았다. 그런 후 태화를 바라보았다.
태화와 최수빈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그 시간이 절대적인 시간으로 몇 초밖에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두 사람이 느끼는 체감 시간은 이보다 몇 배였다.
태화와 최수빈은 <내 복권 내놔!>작품을 하면서 전보다 친해졌다. 하지만 둘 사이엔 아직도 긴장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뭐라도 작은 꼬투리가 생기면 바로 서로에게 달려들 수 있는 그런 긴장감이 태화와 최수빈 사이에는 아직 존재하고 있었다.
최수빈이 태화를 보며 말했다.
“그럼 말해봐. 할 얘기가 많다며?”
“그래. 그렇게 하지 뭐.”
태화는 말을 하기 전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먼저 후반 과정에 관한 이야기야.”
“그래. 잘 나왔어?”
태화는 최수빈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응. 잘 나왔어.”
태화에 대답에 최수빈이 재차 확인했다.
“정말이야?”
“정말이야. 그냥 너 좋은 소리 들으라고 하는 말이 아니야.”
최수빈은 순간 태화의 발언에 힘이 실리고 있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거 그냥 큰소리치는 건 아니야. 정말 뭐가 있는 거야?’
최수빈은 태화가 이렇게까지 말하니 궁금증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단지 잘 나왔다는 말뿐인 거로는 부족해. 그에 합당한 성과가 있어야지.”
“…….”
“그냥 네 주관적인 만족일 수도 있는 거잖아.”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
“뭐?”
“합당한 성과가 있으니까.”
태화의 말이 끝나자마자 최수빈이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정말이야? 합당한 성과가 나온 거야?”
“그래.”
“혹시 극장 개봉이라도 잡은 거야?”
최수빈의 질문에 태화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건 아니야.”
“뭐? 서태화. 너 지금 장난하는 거야?”
최수빈의 반응에 태화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수빈아. 아직 내 말 안 끝났어.”
“뭐? 그걸 지금 말이라고…….”
최수빈은 태화에게 기만을 당한 느낌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최수빈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려고 했다.
“수빈아. 너 지금 여기서 나가면 나중에 감당 안 된다.”
“뭐? 너 정말 뻔뻔하구나. 내가 뭐 때문에 감당이 안 되는데?”
“뻘쭘해서.”
“뭐?”
“극장 개봉은 아직 결정된 건 없어. 그런데 그것만큼 성과는 있었어.”
“성과? 무슨 성과?”
“부성 국제 영화제.”
“부성 국제 영화제. 그게 뭐? 어쨌다고?”
“<내 복권 내놔!> 부성 국제 영화제 본선에 진출했다.”
“뭐?”
태화가 <내 복권 내놔!>가 부성 국제 영화제 본선에 진출했다는 발언을 듣고 최수빈은 잠시 주춤했다.
“부성 국제 영화제 본선 진출?”
“그래. 일단 기존의 배급사를 통한 극장 개봉은 쉽지 않은 상황에서 돌파구를 찾은 게 바로 부성 국제 영화제였어.”
“정, 정말이야?”
“그래. 부성 국제 영화제 관련해서 사무국과 이미 계약서에 사인까지 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