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영감님과 함께 157화
태화의 질문은 어쩌면 당연했다. 태화는 부성 국제 영화제 진출이라는 기쁜 소식을 전하러 왔을 뿐이다. 하지만 상황은 묘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이채연의 질문을 받은 오창민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태화 군. 내가 볼 때 밴드 엔은 이 정도 논쟁으로 어떻게 될 밴드는 아닐세. 그런데 자네는 좋지 않은가?]
[뭐가 말입니까?]
[자네에 관해서 사람들이 논쟁을 해준다는 거 말일세.]
[그게 무슨 말입니까?]
[태화 군. 자네의 존재감이 밴드 엔에 꽤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네.]
[존재감이라.]
[그렇네. 존재감이 없다면 자네에 관한 논쟁이 있을 필요가 없겠지.]
[하지만 이게 꼭 좋은 건지.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현시점에서 자네에게 나쁜 건 아니네.]
[나쁘지 않다고요? 이유가 뭡니까?]
[지금껏 자네를 인정하거나 논쟁했던 대상은 영화 스태프 아니면 연기자였네.]
[그렇죠.]
[하지만 밴드 엔은 순수한 영화 스태프가 아니네. 즉 자네 존재감의 영역이 확대가 된 거라고 볼 수 있네.]
태화는 방금 박도봉 감독이 발언한 것 가운데 영역의 확대라는 단어가 뇌에 꽂혔다. 그건 마치 본능과도 같았다.
[영역의 확대요?]
[그렇네. 자네가 앞으로 성장할수록 이런 현상이 계속 일어나게 될 걸세. 존재감이라는 건 다른 말로 한다면 영향력이기도 하네. 그래서 자네에게 나쁜 것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네.]
태화는 박도봉 감독의 말을 이해했다.
‘박도봉 감독님 말이 맞아. 내가 좀 더 위로 올라갈수록 나에 관한 논쟁이 점점 많아질 것이다. 밴드 엔의 멤버들이 나에 관해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들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태화는 다시 밴드 엔 멤버들의 대화를 지켜보았다.
이채연의 질문을 받았던 오창민이 입을 열었다.
“감독님.”
“네. 오창민 님.”
“채연이의 말이 맞아요.”
“네? 그럼 다른 이유가 있다는 말인가요?”
“네. 감독님은 솔직함만 있는 게 아니에요. 감독님은……. 묘한 매력이 있어요.”
“매력이요?”
오창민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뭐랄까. 감독님은 뭔가 더 해주고 싶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어요.”
“혹시 동정심입니까? 초저예산으로 영화를 만들어서 그런 겁니까?”
태화의 물음에 오창민이 고개를 저었다.
“감독님은 기본적으로 동정심이 잘 안 갑니다.”
“왜 그렇죠?”
“감독님의 외모 때문입니다. 솔직히 감독님의 외모를 보고 동정심을 갖는다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럼. 뭡니까?”
오창민이 잠시 생각한 후 태화의 질문에 대답했다.
“저도 어느 순간 감독님과 함께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도대체 왜 내가 감독님과 함께하고 있을까…….”
“…….”
“감독님은 함께 뭔가를 하고 싶게 만드는 힘이 있어요. 그건 감독님의 솔직함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네?”
태화는 오창민의 대답에 놀란 듯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난 내가 그 정도의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내가 이런 걸 느낀 건 감독님의 생각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태화는 오창민의 발언이 끝나자 밴드 엔의 다른 멤버들에게 물었다.
“다른 분들도 오창민 님과 같은 생각입니까?”
태화의 질문에 채성관이 대답했다.
“솔직히 난 창민이의 말처럼 디테일한 건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창민이가 그런 거라면 그런 거겠죠.”
채성관은 오창민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내는 사람이다. 채성관에 이어 김우진이 발언했다.
“감독님은 확실히 사람을 잡아당기는 매력이 있는 사람인 건 분명해요. 처음에 우리한테 접촉해 왔을 때 거부감보다는 호기심이 들었으니까요.”
이어서 이채연이 발언했다.
“사람 보는 눈이 비슷비슷하다더니……. 나도 창민 오빠하고 생각이 비슷해요.”
이채연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물론 난 감독님의 외모에 많은 관심이 갔던 것도 사실이지만요.”
밴드 엔의 발언이 끝나고 함지훈이 손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감독님. 나도 한마디 해도 될까요?”
“네. 대표님.”
“저도 큰 틀에서는 창민의 의견과 같아요.”
“그렇습니까?”
“네. 감독님이 매력이 없었다면 아마도 전…….”
“네?”
“감독님을 가게에서 내쫓았을 겁니다. 무슨 미친놈이 여기 와서 지랄하냐고 말하면서 말이죠.”
태화가 함지훈의 말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거 아찔한 순간이었군요. 자칫했으면 가게에서 내쫓길 뻔했군요.”
“하지만 감독님은 내쫓기지도 않았고 지금 우리와 함께하고 있죠.”
태화는 순간 가슴속에서 벅찬 무언가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영감님. 이 느낌은 뭔가요? 가슴이 벅차오르는 거 같습니다.]
[그건 당연한 걸세. 사람은 누구나 타인에게 인정받기를 갈구하니 말일세.]
[그런 거 같습니다. 하지만 전에 <내 복권 내놔!>를 찍으면서 느꼈던 것과는 좀 다릅니다.]
[자네가 <내 복권 내놔!>를 찍으면서 느꼈던 건 성취감 같은 것이라고 보면 되네.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뤄냈을 때 사람이 느끼는 그 쾌감 말일세. 하지만 이번 건 그것과는 결이 달라. 자네는 순수하게 사람들에게 자네의 매력으로 인정을 받은 거네. 이건 감독에게 매우 중요한 자질이네.]
[감독의 자질이요?]
[내가 전에 매력적인 감독이 되어야 한다고 한 적이 있었네. 기억나는가?]
[네. 그때가 수빈이를 주문진에서 만났던 날이었죠.]
[그렇네. 기억하는구먼. 자네는 이번에 작품을 하면서 아주 절실히 느꼈을 거네. 감독이 영화를 만들려면 자신에게 사람들이 와야 한다는 걸. 안 그런가?]
[네. 아주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작품에 참여해 준 모든 사람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렇네. <내 복권 내놔!>에 참여한 사람들이 뭘 보고 참여했을 것 같은가?]
[그거야. 시나리오 아닙니까?]
[내가 보기엔 그건 절반의 이유일세. 나머지 절반은 당연히 자네지. 사람들은 자네의 매력에 이끌려서 <내 복권 내놔!>에 참여하게 된 것이네. 밴드 엔도 마찬가지고.]
[영감님 말씀이 어떤 의미인지 알겠습니다.]
[하지만 거만해져서는 안 되네. 자네가 그런 태도를 보이는 순간 사람들은 자네에게서 등을 돌리게 될 걸세.]
[제가 거만해질 만한 거라도 있습니까?]
[됐네. 그런 태도라면 되네.]
태화는 자신을 쳐다보는 밴드 엔을 바라보았다. 밴드 엔의 멤버들의 눈빛은 태화에게 호의적이었다.
[태화 군. 저 눈빛이 돌변하는 것도 순식간이네.]
[알고 있습니다. 모든 건 제가 하기 나름이겠지요.]
[그렇네.]
태화가 밴드 엔의 멤버들을 향해 말했다.
“아직 결정된 건 없지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래서 제가 여러분께 약속했던 부분 꼭 지켜내겠습니다.”
#.
태화는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태화는 이런 와중에도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있었다. 바로 남주 역할을 맡았던 정원석이다.
태화는 원래 이우섭과 김현석을 만나고 정원석을 만나려고 했었다. 하지만 정원석과 스케줄이 맞지 않아서 밴드 엔을 먼저 만났다.
태화는 정원석을 만나기 위해서 약속 장소인 카페로 들어섰다. 태화가 카페로 들어서자 정원석이 손을 들어 태화를 맞이했다.
“감독님! 여기요.”
“아. 정원석 님.”
태화는 정원석이 앉아 있는 자리로 이동해 앉았다.
“정원석 님. 잘 지내셨어요?”
“네. 감독님. 전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요즘 공연 준비하면서 보내고 있습니다.”
“바쁘시죠?”
태화의 질문에 정원석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네. 하지만 저보다 감독님이 더 바쁘실 거 같은데요?”
“아. 요즘 그렇긴 합니다. 그래도 정원석 님은 직접 만나야죠.”
“감독님. 부성 국제 영화제 진출. 축하드립니다.”
정원석이 태화에게 손을 내밀었다. 태화는 정원석이 내민 손을 맞잡았다.
“고맙습니다. 정원석 님이 없었다면 이런 결과는 나오지 않았을 겁니다.”
태화의 말에 정원석이 환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아닙니다. 감독님이 고생 많이 하셨지요. 감독님이 고생한 것에 비하면 전 아무것도 아닙니다.”
태화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정원석 님이 제 캐스팅 제안에 응하지 않으셨다면 애초에 이런 결과도 없었습니다. 시작하지도 못하는데 이런 결과가 나올 리가 없죠.”
태화와 정원석은 서로를 깊이 신뢰하고 있었다. 이러한 신뢰 관계는 단순히 감독과 연기자 사이를 뛰어넘는 것이었다.
감독과 연기자의 관계는 특별하다. 이 관계가 특별할 수밖에 없는 건 감독은 배우를 통해서 자기의 생각을 펼쳐내기 때문이다. 그중 주인공은 감독의 주된 생각을 표현해 내는 존재이다. 그래서 감독과 연기자는 신뢰가 중요하다.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고 더 나은 방법을 모색하는 관계가 바로 감독과 연기자의 관계이다.
태화와 정원석은 이러한 감독과 연기자의 관계를 넘어 인간적인 유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정원석 님. 선혜영 님은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그렇지 않아도 혜영이가 감독님을 만나고 싶어 했어요.”
“아. 그런가요? 저도 선혜영 님을 뵙고 싶군요.”
태화에게 있어 선혜영은 아픈 손가락이었고 지금도 그랬다. 만약 그때 사고가 없었다면 선혜영도 자신이 여주로서 출연했던 작품이 부성 국제 영화제 진출이라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을 것이다.
“감독님.”
“네. 정원석 님.”
“잠깐만 뒤를 돌아봐 주시겠습니까?”
“네?”
태화는 짧게 말하고 나서 정원석의 말대로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태화의 눈에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아. 이게 누굽니까? 선혜영 님 아니세요?”
태화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선혜영이 태화를 보며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네. 감독님. 잘 지내셨어요?”
“네. 저야. 잘 지내고 있습니다.”
“감독님. 축하드려요.”
“아. 고맙습니다. 그런데 몸은 좀 어떠세요?”
“많이 좋아졌어요.”
실제 선혜영은 목발을 짚거나 하지 않은 상태였다. 선혜영이 걸어와 정원석 옆에 섰다.
선혜영은 걸으면서 살짝 절뚝거렸다. 하지만 그 정도가 그리 심하진 않았다.
태화가 선혜영을 보며 물었다.
“지금 이렇게 걸어도 괜찮은 겁니까?”
“네. 며칠 전부터 이렇게 걷기 시작했어요.”
선혜영의 옆에 있던 정원석이 발언했다.
“의사 선생님도 이 정도면 빠르게 회복하는 거라고 하더군요. 아직 나이가 젊어서 그렇다고 하네요.”
“정말 잘됐습니다. 근데 그래도 자리에 앉아서 이야기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태화의 말에 선혜영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 그렇네요.”
선혜영은 대답을 하고 나서 정원석의 옆자리에 앉았다. 정원석과 선혜영. 두 사람의 표정은 밝았다.
“두 분의 밝은 모습을 보니 저까지 기분이 좋아지네요.”
태화의 말에 정원석이 대꾸했다.
“저번에 사고 이후 혜영이하고 대화를 나눌 시간이 많았어요. 그래서 서로에 대한 마음도 더 알 수 있었고요.”
정원석에 이어 선혜영이 발언했다.
“오빠 말대로 내가 작품에 중도하차 했지만, 우리 둘 사이는 돈독해진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