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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영감님과 함께-155화 (150/195)

어느 날 갑자기, 영감님과 함께 155화

태화가 궁금한 표정으로 안주원을 보며 물었다.

“그럴 필요가 없다고요?”

“네. 저희에게 인적 사항을 알려주셔야 하는 이유는 바로 아이디 카드 발급을 위해서입니다.”

“아이디 카드 발급이요?”

“네. 감독님. 부성 국제 영화제는 단순히 영화 상영만 하지 않고 여러 가지 행사를 같이합니다.”

일반적으로 영화제에선 수많은 영화를 상영하는 게 다가 아니다. 대표적인 영화제 행사가 세미나다. 부성 영화제는 국제 영화제의 성격을 가지고 있고 이 때문에 영화의 흐름에 관한 세미나를 지속적으로 해왔다.

이런 세미나 행사 외에도 영화제에서는 게스트를 위한 여러 가지 행사를 기획하고 주최한다.

“그 영화제 행사에 스태프들이나 연기자들이 참석합니까?”

“네. 감독님. 그때 아이디 카드가 있으면 신분을 확인하기 쉬우니까요.”

“그런데 스태프 전부는 아니죠?”

“감독님. 눈치가 빠르시네요. 저희도 모든 스태프와 연기자를 모시고 싶지만 인원에 제한이 있습니다. 감독님 포함해서 최대 10명까지입니다.”

“알겠습니다.”

태화와 한재영, 그리고 이우섭과 김현석 네 사람에 정원석과 최수빈 남녀 주연까지 포함하면 6명이다. 추가로 네 명 정도 스태프를 데려올 수 있다는 말이다.

“안주원 팀장님. 한 가지 물어볼 사안이 있습니다.”

“네. 말씀하세요.”

“GV 행사는 어떻게 진행하게 되는 겁니까?”

“GV 행사요? 감독님이 GV 행사를 몰라서 그런 건 아닌 것 같고…….”

안주원도 업계에서 몇 년 생활하면서 생긴 촉이라는 게 있다.

“감독님. 말씀해 보세요.”

태화가 안주원의 물음에 대답했다.

“저는 GV 행사를 조금 이색적으로 하려고요.”

“이색적이라……. 제가 감이 오지 않아서 그러는데 조금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영화 <내 복권 내놔!>는 아시다시피 초저예산 영화입니다. 그래서 영화 음악을 쓸 때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태화의 발언에 안주원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저작권 때문에 그랬겠지요.”

“그래서 제가 생각한 방법이 뮤지션을 직접 섭외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뮤지션이 음원을 소유하고 있다면 저작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니까요.”

안주원은 태화가 꽤 영리하게 작품을 제작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감독님은 대단하시군요. 보통 <내 복권 내놔!>처럼 초저예산으로 영화를 만든다면 음악을 아예 배제하고 제작하는 경우도 있거든요.”

실제 안주원의 말처럼 음악을 배제하고 현장음 중심으로 제작되는 영화가 있긴 하다. 하지만 그런 영화는 기획 단계에서부터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영화 전체에 음악을 배제하는 건 사실감을 높이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방법은 관객들에게 익숙지 않은 방식이다.

“저도 그걸 생각 안 해본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음악이 없는 영화는 심심하겠더라고요.”

“당연히 그렇죠. 감독님. 계속 말씀하시죠.”

“네. 안 팀장님. 어쨌든 저는 <내 복권 내놔!>에 참여할 뮤지션을 찾아다녔고 섭외에 성공했습니다. 그 뮤지션이 바로 밴드 엔입니다.”

“밴드 엔이요?”

안주원은 잠시 자기의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는 데이터에서 밴드 엔에 관해서 찾아보았다. 하지만 안주원은 고개를 저었다.

“익숙한 밴드는 아니군요.”

“네. 인디밴드입니다.”

“아. 그렇군요. 감독님. 혹시 인디밴드를 섭외한 건 기획된 겁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섭외하기 전에 우선순위를 정했습니다. 가장 먼저 따진 건 <내 복권 내놔!>의 작품 분위기와 맞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다음으로 따진 건 바로 현실 가능성이었습니다.”

“현실 가능성은 감독님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있는 걸 의미한 것이겠죠?”

“그렇습니다. 어쨌든 전 밴드 엔에게 제안했고 밴드 엔은 저의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태화의 발언에 안주원은 순간 감탄했다.

“감독님. 참 대단하시군요.”

“대단한 거까지 있나요?”

“아닙니다. 뭔가 상황이 발생하고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은 늘 발생합니다. 특히 감독님이 대단한 건 열악한 환경에서 그걸 해냈다는 겁니다.”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습니다. 안 팀장님.”

“네. 감독님.”

“저는 밴드 엔을 섭외하면서 한 가지 약속을 했습니다.”

“약속이요?”

“네. GV 행사할 때 밴드 엔이 공연을 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요.”

“음. 그런 일이 있었군요.”

안주원의 반응은 태화가 예상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영감님. 제가 예상했던 것과는 다른 반응인데요.]

[그렇네. 자네는 밴드 엔의 공연에 관한 걸 말하면 바로 부정적인 반응이 나올 거로 예상했었지.]

[그런데 그런 반응이 아니잖아요. 그렇다는 건 영감님이 사무국에 오기 전 했던 예상이 어느 정도 맞다는 말인가요?]

[아직 섣부르게 판단해선 안 되네.]

박도봉 감독은 태화가 밴드 엔 공연에 관해서 사무국에 제안하더라도 부정적인 반응이 나올 거로 예상하지 않았다.

이러한 판단의 근거엔 올해로 부성 국제 영화제가 30주년이 맞이하기 때문이었다.

[영감님. 그 30주년이라는 것 때문입니까?]

[아마도 그럴 걸세. 30주년이라는 건 꽤 긴 세월이네. 단일한 영화제가 30년을 맞이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네. 그런 만큼 영화제 측에서도 이에 맞게 행사를 기획할 거란 건 어느 정도 예상이 되는 일이었네. 하지만 나도 크게 보면 그렇다는 거고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네.]

[결국 일단 부딪혀 보는 거군요.]

[그렇네. 언제나처럼….]

#.

태화가 말 없이 안주원의 표정을 살폈다. 그러자 박도봉 감독이 태화에게 장난스럽게 말을 걸어왔다.

[자네 뭔가? 지금 안주원의 표정을 살피는 건가?]

[네. 영감님. 지난번에 한 번 겪어보니 나름대로 근거가 있는 거 같더라고요.]

안주원이 잠시 생각하고 있었다. 태화는 안주원의 표정에서 부정적인 느낌을 받지 못했다. 안주원이 입을 뗐다.

“지금 당장 제가 뭐라고 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아. 네.”

“제가 행사를 기획하는 담당이 아닙니다. 그래서 지금 뭐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해합니다. 혹시 담당하시는 분에게 연락을 취할 수는 없을까요?”

“지금 당장은 어렵습니다. 현재는 출품작들 정리하느라 정신이 없거든요.”

“아. 그렇군요.”

태화는 안주원의 말을 신뢰했다.

[영감님. 안주원 팀장이 그냥 예의상 한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나도 그렇게 느꼈네. 자네가 이 회의실로 오는 동안 부성 국제 영화제 사무국의 사무실은 꽤 분주하게 움직였기 때문이네.]

[그러니까요.]

안주원이 태화에게 말했다.

“일단은 담당 부서에 감독님의 말을 전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럼. 제가 오늘 더 할 일이 있나요?”

“아니요. 오늘 할 일은 다 하셨습니다.”

“알겠습니다.”

태화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안 팀장님. 오늘 고생하셨습니다.”

“고생은요. 고생은 감독님이 하셨지요. 서울에서 이곳까지 내려오느라…….”

태화는 안주원에게 손을 내밀었다.

“저는 고생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네?”

“부성 국제 영화제 본선에 오른 것만으로도 저한테는 영광입니다.”

태화의 말에 안주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부성 국제 영화제는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곳입니다.”

안주원의 대답엔 부성 국제 영화제에 대한 자부심이 묻어 있었다. 태화도 안주원의 이런 인식이 당연하다고 판단했다.

부성 국제 영화제는 30년의 역사와 권위를 자랑하기 때문이다.

#.

다음 날.

카페 ‘민들레’에는 오랜만에 태화와 한재영 그리고 이우섭과 김현석이 모였다. 태화가 이들 세 명을 부른 이유는 부성 국제 영화제와 관련 계약서 작성이 마무리되었기 때문이다. 세 사람 중 한재영만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고 이우섭과 김현석은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

태화도 이우섭과 김현석한테는 오랜만에 커피나 마시자고 연락했을 뿐이다. 그래서 이우섭과 김현석은 현재 부성 국제 영화제와 관련해선 어느 정도까지 진행됐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 이우섭이 태화를 보며 말했다.

“이렇게 네 명이 모이는 것도 오랜만이네요.”

“그렇지. 좀 더 빨리 이런 자리를 마련했어야 했는데…….”

태화가 이우섭과 김현석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어쨌든 미안하다. 내가 신경을 더 썼어야 했어.”

태화의 이 발언은 그냥 상대의 귀를 즐겁게 해주려고 하는 소리가 아니었다. 태화에게 이우섭과 김현석은 다른 스태프와는 달랐다.

그건 두 사람이 태화가 첫 번째로 뽑은 스태프였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첫 번째라는 건 애틋할 수밖에 없다.

태화의 말에 이우섭이 대답했다.

“형. 그렇게 생각할 필요 없어요. 저는 형이 정말 좋거든요.”

이우섭이 말이 끝나자 김현석이 바로 발언했다.

“저도 우섭이 형 생각이랑 같아요. 태화 형은 뭔가 계속 시도를 했잖아요. 그래서 오늘과 같은 시간을 낼 수도 없었던 거고요.”

태화는 이우섭과 김현석의 말을 듣고 얼굴에 미소가 살짝 돌았다.

“두 사람 모두 고마워. 날 이렇게까지 믿어줘서.”

이우섭이 대꾸했다.

“그거야 당연한 거 아닙니까? 그동안 형이 보여주었던 모습을 보고도 형을 믿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거죠.”

누군가 방금 이우섭이 한 발언을 듣는다면 아부성 발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 카페 ‘민들레’에 모여 있는 한재영과 이우섭 김현석은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자신들이 직접 겪어보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흔히 이런 말을 한다.

-겪어보니 내가 생각했던 것과 매우 다르다.

이 말처럼 사람을 판단하는 데 있어서 직접 겪어보는 것만큼 확실하면서 강력한 건 없다. 태화는 커피를 몇 모금 마시고 나서 입을 뗐다.

“우섭이하고 현석이는 잘 들어.”

이우섭과 김현석이 대답했다.

“네.”

“부성 국제 영화제에 <내 복권 내놔!> 간다.”

태화의 말에 이우섭과 김현석은 깜짝 놀랐다. 이우섭이 여전히 놀란 눈을 한 채 태화에게 물었다.

“태화 형. 그 말은 <내 복권 내놔!>가 본선에 올랐다는 의미예요?”

태화는 이우섭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 우리 영화 <내 복권 내놔!> 부성 국제 영화제 본선에 진출했다.”

이우섭은 태화의 말을 믿을 수 없었는지 다시 한번 태화에게 물었다.

“태화 형. 정말이죠?”

태화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정말이다.”

이우섭은 태화의 대답을 듣자마자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이우섭이 자리에서 일어서는 모습은 마치 스프링이 튕기는 듯했다.

“아자! 나이스! 굿!”

이우섭은 세 마디를 외쳤고 태화는 웃음이 터졌다.

“아자! 나이스! 굿! 이라니?”

이우섭이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아. 그게 좋아서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터졌네요.”

“좋으면 뭐 어쩔 수 없는 거지. 나도 기쁜 소식을 전할 수 있게 돼서 너무 좋다. 아자! 나이스! 굿!”

태화가 이우섭이 했듯이 외치자 네 사람이 앉아 있던 테이블은 바로 웃음이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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