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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영감님과 함께-154화 (176/195)

어느 날 갑자기, 영감님과 함께 154화

태화는 전화기에서 축하드린다는 말이 끝나자마자 상대방에게 말했다.

“저기 잠깐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네?

“아주 잠깐이면 됩니다. 전화 끊으시면 안 됩니다.”

태화가 이런 말을 한 건 주체할 수 없는 기쁨 때문이었다. 태화는 말을 하고 나서 그 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태화가 펄쩍 뛰는 행동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한 번, 두 번, 세 번. 태화는 바로 그 자리에서 세 번 펄쩍 뛰었다.

태화는 그런 후 소리쳤다.

“아자! 아자! 아자!”

태화는 소리를 치고 나서 다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아. 네. 다 끝나셨어요?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기뻐서 그만…….”

태화가 말하는 사이 전화기 너머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기뻐서 그러신 건데……. 이해합니다.

“이해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감독님.

“네.”

-감독님 이메일 주소 확인 좀 하겠습니다.

태화는 사무국 직원에게 메일 주소를 확인시켜 주었다.

-감독님. 방금 확인한 이메일 주소로 사무국에서 필요한 사항 정리해서 보내드릴 겁니다. 읽어 보시고 그 절차에 따라 준비해 주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감독님께서 한 가지 주의해 주셔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네.”

-저희가 영화제 본선에 오른 작품은 일정 기간이 될 때까지 비공개가 원칙입니다. 감독님께서도 이 점 유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유념하겠습니다.”

-그럼. 이메일로 구체적인 내용 보내드리겠습니다. 혹시라도 의문 사항이 있으면 사무국으로 연락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다시 한번 축하드리겠습니다.

“네. 고맙습니다.”

-그럼. 이만 전화 끊겠습니다.

“네.”

태화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두 팔을 번쩍 들었다.

“하하하!”

태화는 웃음이 그칠 줄을 몰랐다. 태화로선 당연했다.

부성 국제 영화제 본선 경쟁 부분 진출.

이건 태화가 영화감독을 하기로 인생의 진로를 바꾸기로 한 후, 아니, 인생에서 처음으로 맛보는 쾌거였다.

태화가 얼마나 좋아했는지 한강 변을 거닐던 한 노신사가 태화에게 말을 걸었다.

“이보게 젊은이.”

“네. 어르신.”

“무슨 좋은 일이 있나 보구먼. 아주 동네가 떠나갈 정도야.”

“하하. 어르신. 그랬습니까? 죄송합니다.”

“허허. 아닐세. 나도 젊은 사람이 이렇게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보기가 좋구먼.”

“고맙습니다. 어르신.”

“그런데 어디 고시라도 붙은 건가?”

“뭐. 고시에 붙은 건 아니지만……. 그보다 더 좋은 일입니다.”

“그런가?”

“네. 어르신.”

“어쨌든 나도 축하하네.”

“고맙습니다. 어르신.”

노신사는 태화에게 축하의 말을 건네고 자신이 본래 가려고 했던 길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태화는 노신사를 잠깐 바라보다 시선을 한강으로 돌렸다. 때마침 한강은 태양 빛을 받아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영감님 말이 맞았네요.]

[내가 그러지 않았는가? 자네하고 <내 복권 내놔!>는 부성 국제 영화제에 진출할 거라고 했잖은가?]

[정말 사람의 표정으로 상황을 예측할 수도 있는 거군요.]

[사실 내가 표정만으로 이런 결과를 예측한 건 아니네. 당시 여러 상황과 면접관의 표정을 보니 이런 결과가 예상됐을 뿐이네.]

[어쨌든 다시 전진할 수 있게 되었네요.]

[그렇네. 이제 다음 단계를 위한 발판이 마련이 된 것이네.]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뭐가 말인가?]

[사람들한테 할 말이 생겼잖아요. 그동안 저를 믿어주었던 많은 사람한테 조금은 보답한 느낌입니다.]

[그렇네. 감독이 혼자 잘나서 어떤 결과가 나오는 게 아니니까.]

[네. 영감님. 저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태화의 머릿속엔 수많은 스태프와 연기자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모두가 오늘의 결과를 만든 사람들이었다. 특히 위기 때마다 도움을 주었던 사람들도 있었지만 지금 태화에겐 그런 건 무의미했다.

태화는 자신이 타고 온 자전거에 올라탔다.

[영감님. 한번 달려야죠.]

[그렇게 하게. 지금 가슴 속에서 폭발하는 감정을 주체하기 힘들 테니까.]

[네. 영감님 말처럼 전 지금 주체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태화는 힘차게 자전거의 페달을 밟았다. 페달을 돌리는 태화의 발놀림은 태화가 집을 나설 때와 확실히 달랐다.

태화의 힘찬 페달질에 자전거는 앞으로 쭉쭉 전진해 나갔다.

#.

며칠 후.

태화는 부성 국제 영화제 사무국으로 향했다. 태화가 이번에 부성 국제 영화제 사무국을 방문하는 이유는 계약서 작성 때문이다.

태화는 이번에도 혼자 부성 국제 영화제 사무국을 찾아왔다. 태화는 이번에 한재영과 함께 부성 국제 영화제 사무국을 방문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오늘은 그 시기가 맞지 않았다.

“태화야. 나 그날은 안 될 거 같은데…….”

“왜? 무슨 일 있어?”

“그날 어머니 생신이라. 야. 근데 참 타이밍 한번 묘하긴 하다.”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가족들하고 좋은 시간 보내.”

“알았어. 그런데 우섭이나 현석이 데려가는 건 어때? 아직 두 사람한테는 이야기 안 했지?”

“응. 아직 말하지 않았어.”

태화는 한재영의 말에 잠시 이우섭과 김현석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두 사람은 분명 크게 기뻐하며 좋아할 게 뻔했다. 하지만 태화는 이우섭과 김현석에게 부성 국제 영화제 관련한 일은 아직 알리지 않기로 판단했다.

“두 사람한테는 나중에 알려주려고.”

“계약서 쓰고 나서?”

“응. 혹시 모르는 거잖아.”

한재영은 태화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태화 녀석. 여기까지 힘들게 온 만큼 좀 더 신중하게 행동하겠다는 의미겠지.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계약서를 쓰면서 막판에 틀어질 수도 있으니까. 어쨌든 일이 확실하게 마무리될 때까지 나도 입을 조심해야겠는걸…….’

태화가 부성 국제 영화제 사무국에 도착하자 사무국 관계자가 입구에서 태화를 반겼다.

“안녕하세요. 부성 국제 영화제 사무국 기획팀장 안주원입니다.”

“안녕하세요. 서태화입니다.”

안주원은 전반적으로 깔끔한 스타일을 하고 있었다. 짧게 자른 머리와 2:8 가르마의 헤어스타일. 안주원은 몸에 맞는 슈트를 입고 있었는데 핏이 제법 살아 있었다.

안주원이 이렇게 깔끔한 스타일링을 하는 건 직책상 상대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기 때문이다. 옷차림도 전략이라는 말이 있다. 상대에게 깔끔한 첫인상을 주는 건 많은 사람을 상대하는 일을 하는 사람에겐 기본 중의 기본이다.

“감독님. 잠깐 저를 따라와 주시겠습니까?”

“아. 네.”

부성 국제 영화제 사무국은 사무실은 규모가 꽤 큰 편이었다. 안주원이 태화를 안내했다.

태화는 안주원의 안내에 따라 이동했다. 태화는 이동하면서 사무국의 분위기를 알 수 있었다.

사무국은 꽤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안주원은 태화를 사무실 한쪽에 있는 공간으로 안내했다. 안주원이 문을 열고 들어가자 기다란 테이블에 몇 개의 의자가 세팅된 모습이 보였다.

“평소에 회의실로 쓰는 공간인데 조용해서 이곳으로 안내했습니다.”

“네. 팀장님 말처럼 조용하네요.”

“아무래도 좀 조용해야 집중도 할 수 있으니까요. 계약서 검토하시려면 시끄러운 곳에서 하면 안 되잖아요.”

“그렇죠. 근데 요즘 많이 바쁜 모양입니다. 여기로 올 때 보니까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더라고요.”

“네. 영화제가 얼마 안 남았으니까요.”

안주원은 서류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감독님. 여기 계약서입니다.”

“알겠습니다.”

안주원은 태화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감독님. 실제로 보니 외모가 출중하시네요.”

“고맙습니다.”

“감독님 보자마자 전 두 번 놀랐습니다.”

“네? 두 번이나요?”

“네. 하나는 감독님 외모가 출중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목소리를 듣고 상상했던 모습하고 달라서 놀랐습니다.”

안주원은 계약서 작성 때문에 태화에게 직접 연락했었다.

“어떤 점에서 놀랐습니까?”

“전 제법 남자다운 느낌의 외모를 상상했었거든요.”

태화는 간혹 안주원 같은 이야기를 듣곤 했다. 특히 얼굴을 직접 보는 것보다 전화 통화를 먼저하고 나서 대면했을 때 안주원 같은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그도 그럴 게 태화의 목소리 톤이 평균보다는 중저음대에 속했기 때문이다.

실제 이우섭과 김현석도 면접 때 태화를 처음 보고 나서 적잖이 놀랐었다. 이우섭과 김현석은 태화를 안주원처럼 상상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직접 감독님을 뵈니 꽃미남 스타일이시라서요.”

“저도 팀장님 오늘 처음 뵙고 놀랐습니다.”

“네?”

“안주원 팀장님은 제가 상상했던 모습보다 더 멋있는 거 같습니다.”

“하하. 그런가요? 그렇게 봐주시니 고맙습니다.”

태화의 발언은 마음에도 없는 말이 아니었다. 실제 안주원은 인상이 깔끔하고 좋았다.

안주원은 자신의 명함을 태화에게 건넸다. 태화가 명함을 받아 들며 말했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전 아직 명함이 없습니다.”

“아. 괜찮습니다. 너무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감독님 연락처하고 다 아는데요. 특히 감독님은 명함이 없더라도 얼굴이 명함입니다.”

“이해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

영화제에 작품을 출품하게 되면 영화제 기간에 극장에서 상영해야 한다. 이 때문에 저작권과 관련한 문제가 생기게 된다.

실제 영화제 작품이 출품되면 극장 수익 일부도 제작자에게 배분한다. 태화는 자신이 제작자를 겸했기 때문에 계약서엔 제작자로 서태화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태화는 계약서 조항을 차분하게 읽어 내려갔다.

[태화 군. 쓸데없는 꼼수는 없는 거 같구먼.]

[네. 영감님. 솔직히 부성 국제 영화제 정도면 이상한 꼼수를 쓰면 안 되겠죠.]

[그렇네. 만약 그렇게 했다간 그동안 쌓아온 부성 국제 영화제의 명성은 하루아침에 곤두박질칠 테니 말일세.]

[그렇습니다. 영감님.]

태화는 계약서에 별다른 문제가 없자 계약서에 자신의 이름을 적고 서명했다. 계약서는 2부를 작성해서 한 부는 부성 국제 영화제 사무국이 나머지 한 부는 태화가 갖게 된다.

태화가 계약서의 작성을 끝내자 안주원이 태화에게 손을 내밀었다.

“감독님. 부성 국제 영화제에 본선 경쟁 부분에 참여하게 된 걸 정식으로 축하드립니다.”

태화가 안주원이 내민 손을 맞잡으며 발언했다.

“저도 역사와 권위가 있는 부성 국제 영화제 본선 경쟁 작품에 선정되어서 영광입니다.”

안주원은 계약서 작성이 끝나자 태화에게 영화제 관련 안내 사항이 적혀 있는 유인물을 태화에게 전달했다.

“감독님. 제가 방금 드린 유인물 잠깐 봐주실까요?”

“네. 안 팀장님.”

“다른 부분은 읽어 보면 될 사항이고……. 중요한 부분만 알려드리겠습니다.”

“네.”

“영화<내 복권 내놔!>에 참여한 스태프 중 영화제에 참석할 스태프는 저희 쪽에 미리 인적 사항을 알려주셔야 합니다.”

“모든 스태프의 인적 사항을 알려주어야 합니까?”

“아닙니다.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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