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영감님과 함께 148화
오창민은 자신의 마음이 급격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오창민이 태화에게 물었다.
“감독님.”
“네. 오창민 님.”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드는군요.”
“어떤 생각이요?”
“정말 감독님은 말도 안 되는 일을 하고 있구나.”
태화는 오창민이 이런 발언을 왜 하는지 대충 감이 왔다. 하지만 태화는 오창민이 왜 이런 생각을 하는지 직접 오창민의 입을 통해서 돋고 싶었다.
태화가 짐짓 모른 척 오창민에게 되물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요?”
“네. 말도 안 되는 제작비로 장편영화를 만들고 우리 밴드의 음악을 쓰려고 하고 있죠. 제대로 돈을 지급하지도 않고 말입니다.”
“제가 좀 뻔뻔하게 보였겠군요.”
“그런 생각을 했던 게 사실이었습니다. 오늘 <내 복권 내놔!> 작품을 보기 전까지는요.”
“…….”
“감독님의 데뷔작을 보고 나서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어떤 생각이요?”
“감독님이랑 같이 일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요.”
오창민이 발언하는 동안 밴드 엔의 나머지 멤버는 아무런 발언도 하지 않았다. 이건 오창민의 생각에 암묵적으로 동의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하지만 감독님.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이요?”
“네. 지훈이 형한테 영화 GV 행사에서 밴드의 공연을 기획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네. 부성 국제 영화제에 진출하게 되면 그렇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자신 있습니까?”
“그 행사 열리게 할 수 있냐고요?”
“그 행사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뭐. 특이하잖아요. GV에서 밴드 공연한 예도 없고요. 밴드의 홍보용으로 제격일 것 같아서 그럽니다.”
“전 최선을 다해서 그 행사를 만들어 볼 생각입니다. GV 행사는 영화의 주요 인사들과 관객들 간의 소통의 이벤트입니다.”
“…….”
“밴드 엔도 <내 복권 내놔!>의 주요 인사들입니다. GV에 참여할 자격은 충분합니다. 대신…….”
태화는 다음 말을 하기 전 잠시 뜸을 들였다. 그러자 지금까지 오창민이 궁금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대신 뭐죠?”
“음향적인 부분은 어느 정도 포기해야 합니다.”
“뭐. 그 정도는 어느 정도 예상했던 부분입니다. 중요한 건 GV 행사에서 밴드의 공연이 열릴 수 있는지입니다.”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하지만 전 이 가능성의 영역을 당위의 영역으로 만들어 보겠습니다.”
오창민은 태화의 발언들 듣고 나서 멤버들에게 발언했다.
“너희들 생각은 어때?”
오창민의 물음에 김우진이 먼저 대답했다.
“일단 GV 행사에서 우리 밴드가 공연할 수만 있다면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물론 좋은 음향 환경에서 공연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건 우리 욕심인 거 같고.”
김우진의 발언 다음에 채성관이 대답했다.
“내 생각도 우진이하고 같아. 일단 공연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채성관에 이어 마지막으로 이채연이 발언했다.
“나도 앞서 말한 두 사람의 의견과 같아. 일단 공연하는 게 중요하지. 뭐.”
이채연은 발언하고 나서 태화에게 시선을 돌렸다.
“잘생긴 감독 오빠. 자신 있죠?”
“믿어주시죠.”
이채연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럼. 믿어야죠.”
이채연의 모습을 본 채성관이 어이가 없다는 듯 발언했다.
“이채연. 그게 다냐?”
“뭐가?”
“믿어주시죠. 라고 말하면 믿는 거냐고?”
“그건 아니지.”
채성관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뭐?”
“잘생긴 사람이 믿어주시죠. 그래야 믿지.”
이채연의 발언에 오창민과 김우진 그리고 채성관은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태화도 밴드 엔의 모습에 자연스럽게 웃음이 나왔다.
오창민이 밴드 엔 멤버들의 의견을 다 들은 후 함지훈에게 물었다.
“지훈이 형. 의견은 어때요?”
함지훈이 오창민의 물음에 대답했다.
“솔직히 난 너희들보다 서 감독님과 이번에 함께 하는걸 적극적으로 생각했던 사람이야. 당연히 나는 찬성이지.”
오창민은 함지훈의 발언을 듣고 나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로써 의견은 정리가 된 거군요. 감독님.”
“네. 오창민 님.”
“앞으로 우리와 함께하시죠.”
“제가 아주 기다리던 말이군요.”
태화는 오창민에게 손을 내밀었다. 오창민은 망설임 없이 태화가 내민 손을 잡았다.
태화는 오창민과 악수를 끝마치고 나서 다른 멤버들과도 악수했다. 오창민은 태화와 밴드 엔의 악수가 끝나자 태화에게 물었다.
“그런데 감독님.”
“네.”
“작업은 언제부터 하죠?”
“아. 좋은 질문입니다.”
태화는 오창민의 이 질문이 고마웠다.
“내일부터 당장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내일부터요?”
“네. 부성 국제 영화제 사무국에 작품을 출품해야 해서요. 시간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
태화는 밴드 엔과 협상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나서 바로 한재영의 옥탑으로 향했다. 오늘 옥탑에는 한재영뿐 아니라 이우섭과 김현석도 함께 모이는 날이다.
이우섭과 김현석은 태화가 불렀다. 태화가 오늘 이우섭과 김현석을 부른 이유는 정보를 공유해 주기 위해서였다. 이건 오늘 밴드 엔의 영입 결과와는 상관없었다.
태화는 오늘 결과가 어떻게 나오는 솔직하게 이우섭과 김현석에게 정보을 공유해 줄 계획이었다. 태화는 이렇게 하는 게 이우섭과 김현석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
이우섭과 김현석이 누구던가?
작품 제작 초창기부터 참여해서 가장 오랫동안 <내 복권 내놔!>를 위해서 일해온 스태프다. 태화에게 이 두 명은 다른 스태프와 분명 다를 수밖에 없었다.
영화 현장에선 이우섭과 김현석 같은 스태프를 내 새끼 같은 스태프라고 말한다. 태화에게 이우섭과 김현석은 내 새끼 같은 스태프다.
태화가 옥탑에 도착하자 한재영과 이우섭, 그리고 김현석이 태화를 반겼다. 이우섭이 가장 먼저 태화에게 인사를 건넸다.
“태화 형. 반가워요.”
“그래. 우섭아. 반갑다. 잘 지냈지?”
“저야. 잘 지냈죠. 하지만 한동안 연락이 없어서 걱정되더라고요.”
“일이 잘 진행이 안 되는 거 같아서?”
“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지만……. 너무 소식이 없어서요. 그래서 보자는 연락이 와서 반가웠습니다.”
이우섭에 이어 김현석이 태화에게 인사를 건넸다.
“형. 반가워요.”
“그래. 현석아. 너도 잘 지냈지?”
“네. 저도 우섭이 형하고 비슷한 심경이었어요. 왜 이렇게 연락이 안 올까? 혹시 잘 안되고 있는 걸까?”
태화는 순간 미안함을 느꼈다.
“내가 두 사람에게 너무 소홀했구나.”
태화의 말에 이우섭과 김현석이 동시에 손사래를 쳤다. 태화는 이우섭과 김현석의 모습을 보며 코끝이 잠시 뭉클해졌다.
[영감님. 우섭이와 현석이는 이런 상황에서도 작품 걱정을 하고 있었네요.]
[그렇네. 자네가 <내 복권 내놔!> 작품에서 얻은 성과라면 저 두 사람도 당연히 포함될 걸세.]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 두 사람이 여기까지 오는 데 큰 힘이 되어준 건 분명한 사실이니까요.]
[그렇네.]
태화가 이우섭과 김현석을 향해 말했다.
“두 사람. 그만 자리에 앉아. 오늘 할 얘기가 많다.”
한재영이 태화를 보며 말했다.
“할 말이 많은 거 보면 좋은 소식을 기대해도 되는 건가?”
한재영도 오늘 협상이 좋은 방향으로 결말이 났다는 걸 모르고 있었다. 태화가 아직 한재영에게도 그 결과를 통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재영이 알고 있는 사실은 태화가 오늘 밴드 엔과 협상을 위해서 만난다는 사실뿐이었다.
#.
잠시 후 평상에 태화를 비롯한 한재영과 이우섭, 그리고 김현석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태화가 운을 뗐다.
“우선 배급사를 알아보는 일은 힘들게 됐어.”
태화는 말을 마치고 나서 이우섭과 김현석의 표정을 살폈다. 두 사람의 표정은 의외로 담담했다. 태화가 두 사람에게 발언했다.
“두 사람 혹시 할 말 있어?”
태화의 물음에 이우섭이 대답했다.
“일단 어려울 거로 생각은 했지만, 현실이 되니까 좀 힘들긴 하네요.”
이우섭의 발언에 이어서 김현석이 말했다.
“저도 우섭이 형하고 의견이 같아요. 이게 현실인가 싶기도 하고요.”
김현석이 태화를 보며 말했다.
“근데. 형. 이게 다는 아니죠?”
김현석의 말에 태화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물론 그건 아니야.”
“휴우. 다행이다.”
“왜? 안 좋은 결과가 나올까 봐 그런 거야?”
“네. 이 작품의 결과를 기다리는 사람들 많잖아요. 그 사람들이 실망하는 모습을 생각하면…….”
“아마도 너무 싫겠지.”
“네.”
“어쨌든 배급사를 통해서 우리 영화를 개봉한다는 전략은 수정이 불가피해졌어.”
태화의 설명에 그동안 사정을 몰랐던 이우섭과 김현석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우섭이 태화에게 물었다.
“그럼.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건가요?”
태화는 시선을 한재영에게 보냈다. 태화의 시선을 받은 한재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태화는 이 부분에 관해서는 한재영이 설명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영화작업 진행과 관련한 일이기 때문이다. 한재영의 설명이 이어졌다.
“그래서 우리 영화의 전략은 영화제를 목표로 하는 거로 바뀌었어.”
“영화제요?”
“그래. 부성 국제 영화제. 그 영화제에 경쟁 부분에 우리 영화를 출품해 볼 생각이야.”
“부성 국제 영화제라…….”
이우섭도 부성 국제 영화제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지식이 있었다. 국내에서 개최하는 국제 영화제 중에서 역사도 깊고 대외적인 명성도 있는 영화제였다. 만약 부성 국제 영화제에 출품만 된다면 극장 개봉에 대한 기대를 걸어볼 수도 있었다.
“나쁜 생각은 아닌 것 같은데. 출품한다고 무조건 되는 건 아니잖아요.”
“그렇지. 우리가 작품을 제출하면 심사위원들이 심사하겠지.”
“게다가 경쟁 부분이면…….”
“일단 경쟁이 치열하겠지. 하지만 난 우리 영화의 약점을 최대한 보완해서 출품하면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어.”
한재영은 발언하고 나서 태화에게 시선을 보냈다. 이 부분은 한재영이 아닌 태화가 설명하는 게 낫기 때문이다.
“우리 영화의 최대 약점은 저작권 문제 때문에 음악이 없다는 거였어.”
태화의 발언에 이우섭과 김현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음악이 없으니 영화에서 중요한 재료가 빠진 듯한 느낌이었을 거야.”
김현석이 태화에게 질문했다.
“그럼. 그 음악 문제는 해결이 된 건가요?”
“사실 오늘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관계자들을 만나고 오는 길이야.”
“관계자들을 만나고 오는 길이라고요? 그럼. 오늘 저희를 보자고 한 건 그 결과를 모르는 상태에서 그런 건가요?”
태화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 어쨌든 우섭이하고 현석이. 두 사람한텐 결과와 상관없이 이야기를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어.”
“…….”
“두 사람은 우리 영화에서 가장 오랫동안 일해왔던 스태프고……. 누구보다 우리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니까. 좋은 결과든 나쁜 결과든 알아야 한다고 판단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