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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영감님과 함께-146화 (144/195)

어느 날 갑자기, 영감님과 함께 146화

함지훈은 바에 찾아온 손님을 응대하기 하기 위해서 잠시 자리를 떴다. 함지훈이 자리를 떠난 후 태화는 자신이 주문한 하이너켄을 마셨다.

태화는 지금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박도봉 감독은 그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태화 군. 불안해하지 말게.]

[솔직히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마음대로 잘되지 않네요.]

[자네의 심정. 충분히 이해하네. 극장 개봉이라는 밥이 거의 다 되어가는데 자칫하면 재가 뿌려질 수도 있으니 말일세. 게다가 음악은 선택의 폭이 좁지.]

[그렇습니다. 다른 스태프는 대안이 가능한데 음악은 현재로선 대안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이럴수록 마음을 다잡아야 하네.]

[알고 있습니다. 함지훈이 만약 저의 제안을 받아만 준다면 그에게 무릎이라도 꿇고 싶은 심정입니다.]

[자네의 심정 잘 알고 있네. 하지만 자네는 무릎까지 꿇을 필요는 없네. 왜 그런 줄 아는가?]

[그건 아마도 협상의 여지가 있기 때문이겠죠.]

[허허허.]

[왜 웃으십니까?]

[아직 자네의 멘탈이 멀쩡한 거 같아서 나온 웃음이네. 완전히 멘탈이 나간 정도는 아니구먼.]

[좀 불안감을 느끼지만, 아직 멘탈이 나갈 정도는 아닙니다.]

[좋군. 그렇다면 다시 대화를 이어 나가 보세. 함지훈은 명확하게 자네의 제안을 거절하겠다고 말하지 않았네. 밴드 엔의 멤버들 의견을 물어보겠다고 했을 뿐이네.]

[그랬죠. 하지만 밴드 엠의 멤버들 의견을 거절의 핑계로 쓸 수도 있잖아요.]

[태화 군. 여기서 한 가지 명심해야 할 사안이 있네.]

[명심해야 할 사안이요?]

[그렇네. 그건 함지훈의 성격일세.]

[함지훈의 성격이요?]

[내가 볼 때 함지훈은 신중한 성격의 사람일세.]

[신중한 성격이요?]

[태화 군. 신중한 성격의 사람은 당장 결정해야 하는 사안에 관해서도 즉흥적으로 대답하지 않네. 자신이 결정하는 데 좀 더 시간을 가지길 원하네.]

[그건 이해가 갑니다. 신중한 성격이라면 다른 사람의 의견도 일단 들어보겠죠.]

[바로 그걸세. 특히 함지훈과 밴드 엔의 리더 오창민은 친한 선후배 관계일세. 함지훈 홀로 독단적으로 판단할 수는 없네.]

[그렇겠군요. 그럼 이제부터가 중요하겠군요.]

[그렇네. 이제부터 자넨 함지훈이나 오창민이 관심을 가질 만한 사안을 던져주어야 하네.]

태화는 잠시 말이 없었다. 뭔가 머릿속에서 떠오른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영감님. 어쩌면 부성 국제 영화제에 작품을 출품하는 게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게 무슨 소린가?]

[영화제는 축제 아닙니까? 축제엔 당연히 사람이 모일 거고요. 밴드 엔을 섭외하는 데 있어서 이점이 될 것 같기도 합니다. 물론 출품이 되어야 하는 일이겠지만.]

[하지만 그 가능성이 중요하네. 어차피 자네나 밴드 엔이나 현재보다는 가능성이 중요한 사람들이니까.]

[그렇죠.]

#.

함지훈은 손님을 응대하고 나서 다시 태화가 앉아 있는 자리로 돌아왔다. 그러자 태화가 함지훈에게 말했다.

“대표님. 아직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할 이야기요?”

“네. 대표님.”

“아까도 말했듯이 당장 여기서 뭐라고 결정을 내리기는 어렵습니다.”

“저는 대표님의 처지를 이해합니다.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은 대표님이나 밴드 엔이 결론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내용입니다.”

함지훈은 태화의 발언에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이거 기대되는군요.”

“그럼. 제 생각을 말하겠습니다. 우선, 제가 앞으로 말하게 될 내용의 전제가 있습니다.”

“전제요?”

“네. 저와 밴드 엔의 현재 포지션이 비슷하다는 겁니다.”

“포지션이 비슷하다고요? 어떤 포지션이 비슷하다는 거죠?”

“아직 가능성의 껍데기를 깨고 나오지 못했다는 점이 비슷합니다.”

“가능성의 껍데기를 깨지 못했다라……. 어느 정도 이해되는 말이군요.”

“역시 대표님이라 그런가요?”

“그게 무슨 말이죠?”

“보통은 제가 이런 말을 했다면 화를 낼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대표님은 제가 한 말을 어느 정도 수긍했습니다.”

태화는 함지훈이 화를 내는 반응을 보이더라도 어느 정도 감내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함지훈은 화를 내지 않았다.

“인정하기 싫어도 현실은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니까요. 아직 밴드 엔은 대중적인 인지도가 약합니다.”

“대표님. 그래서 밴드 엔이 제 영화에 참여해야 합니다.”

“영화를 통해서 밴드 엔의 인지도를 올린다. 뭐. 그런 생각인 겁니까?”

“…….”

“만약 그게 다라면 감독님의 제안은 실망스러운 제안일 수밖에 없습니다. 너무 막연하니까요.”

분명 함지훈의 발언은 합리적이었다. 태화도 함지훈의 발언에 기분이 나쁘거나 그러지 않았다.

“제 제안은 대표님이 생각했던 방향과 조금 다릅니다.”

“방향이 다르다고요?”

“네. 영화제는 한마디로 축제입니다. 부성 국제 영화제는 30년의 긴 역사를 가진 영화제이기도 합니다. 국내외 영화 팬들이 일거에 모이는 영화제이기도 합니다.”

“그렇긴 하죠. 하지만 거기서 뭘 할 수가 있는 거죠?”

“만약 제 작품이 부성 국제 영화제에 출품이 된다면 밴드 엔의 공연을 기획해 볼까 합니다.”

“공연 기획이요?”

함지훈은 태화의 계획이 나쁘지 않다고 판단했다.

“감독님의 생각이 나쁘지 않다는 걸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게 가능할까요? 공연이라는 게 생각한다고 다 되는 건 아닙니다.”

“물론 정식 공연의 형식이라면 어렵겠죠. 하지만 밴드 엔의 장점은 바로 게릴라성 공연 아닙니까?”

“게릴라성 공연이요?”

“네. 아마도 영화제 기간에 출품한 작품을 대상으로 여러 가지 행사가 기획되어 있을 겁니다.”

“…….”

“저는 일단 GV 때 밴드 엔의 공연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함지훈이 생각하기에 GV 때 밴드 엔이 간단하게 공연한다는 계획은 분명 나쁘지 않았다.

“감독님의 계획이 나쁜 것 같지는 않군요.”

“그럴 겁니다. GV 때 공연하지는 않으니까요.”

“근데 가능하겠습니까? 그간 영화제 GV 행사에서 밴드가 공연한 건 거의 없었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하지만 안 될 것도 없죠.”

“…….”

“앞서 말해듯이 영화제는 축제입니다. 축제에 음악이 빠질 수는 없죠.”

함지훈은 태화의 생각이 현실을 무시한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였다.

‘어떻게든 밴드 엔이 부성 국제 영화제를 통해서 대중들의 입에 오르내릴 수만 있다면……. 나쁠 게 없다.’

하지만 함지훈은 자신이 태화에게 말했던 것처럼 홀로 결정할 수는 없었다.

“감독님.”

“네. 말씀하세요.”

“일단 제게 연락처를 좀 알려주십시오.”

태화는 함지훈의 발언을 듣고서 안도의 한숨을 돌렸다. 함지훈은 최소한 태화의 제안을 거부할 생각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연락처는 이따 따로 알려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감독님.”

태화는 자신이 주문한 하이너켄을 마저 마셨다.

[영감님. 같은 맥주지만 앞서 마셨던 맥주 맛과 지금 마시는 맥주 맛은 분명 다르군요.]

[허허. 당연히 그럴 걸세. 같은 술이라도 사람의 기분에 따라 그 맛이 달라질 수밖에 없지. 기분이 좋으면 술이 달고 기분이 나쁘면 술은 쓰지.]

[그렇습니다.]

#.

며칠 후 태화는 함지훈에게서 연락을 받았다. 함지훈은 태화에게 밴드 엔의 멤버들과 만나자고 제안했다.

태화로서는 함지훈의 제안을 거부할 필요가 없었다. 태화는 다시 템플 바로 향했다.

태화가 템플 바에 도착한 시간은 아직 장사를 시작하기 전이었다.

태화는 템플 바에 도착하자마자 함지훈에게 연락했다. 템플 바는 아직 영업하지 않은 시간대라 출입문이 잠겨 있었다.

함지훈은 태화의 연락을 받자마자 바로 템플 바의 출입문을 열었다. 태화가 함지훈을 보자 먼저 인사를 건넸다.

“대표님. 잘 지내셨습니까?”

“네. 감독님. 들어오시죠.”

“네. 고맙습니다.”

태화가 문을 열고 템플 바 내부로 들어오자 밴드 엔 멤버들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밴드 엔의 멤버들은 한눈에 태화를 알아보았다.

밴드 엔 멤버들이 태화를 알아보자 놀란 건 함지훈이었다. 함지훈이 멤버들을 향해 물었다.

“너희들. 어떻게 감독님을 알아?”

함지훈의 질문에 베이스를 맡고 있던 김우진이 대답했다.

“저분. 우리 버스킹 공연할 때 몇 번 왔었어요. 외모가 튀어서 기억하고 있는 거고요.”

김우진의 말에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건 키보드를 맡은 이채연이었다.

“우진 오빠는 잘생겼다는 말을 튄다고 그러니?”

“아니. 그게 그거 아냐?”

“어떻게 그게 그거야? 튀는 건 튀는 거고 잘생긴 건 잘생긴 거지.”

이채연이 태화에게 다가와 말했다.

“어머. 잘생긴 오빠. 오빠가 감독이었어요?”

태화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내가 감독입니다.”

“근데 앞으로 감독 하지 말고 우리 밴드 멤버 하는 거 어때요?”

“네?”

“내가 그래도 이 밴드. 매니저 역할도 하거든요.”

“근데 내가 들어가도 돼요? 밴드 엔은 4인조 밴드잖아요. 내가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할 일이 없을 거 같은데요?”

태화의 대답에 이채연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정말 들어올 생각 있나 보네. 생각이 있으며 말해요.”

“…….”

“자리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어요. 솔직히 감독님 정도면 만들어도 될 거 같은데요? 나름대로 팬도 좀 모을 수 있을 거 같고.”

“…….”

“근데. 노래 좀 해요?”

“글쎄요. 아주 잘하는 거 같지는 않은데요?”

“뭐 괜찮아요.”

“네?”

“요즘 개성시대라. 노래 좀 딸려도 다른 게 뛰어나면 되죠. 감독님은 뭐 외모가 나름 좋으니까.”

이채연이 고개를 돌려 함지훈에게 물었다.

“안 그래요?”

“채연이는 감독님께 장난 그만해.”

함지훈의 말투는 순간 싸늘하게 바뀌었다. 그러자 이채연은 입술을 삐죽거렸다.

이채연이 자신이 원래 앉았던 자리로 돌아가자 리더 오창민이 태화에게 말했다.

“감독님. 반갑습니다.”

“네. 저도 반갑습니다.”

“채연이가 실언한 건 제가 대신 사과하겠습니다. 얘가 잘생긴 남자를 보면 사족을 못 쓰는 성격이라.”

오창민의 말에 밴드 엔의 다른 멤버 김우진과 드럼을 맡은 채성관이 피식하고 웃었다. 이채연은 김우진과 채성관이 웃는 모습을 보자 순간 발끈했다.

“두 사람은 뭐가 재밌다고 그렇게 웃지?”

이채연의 물음에 채성관이 대답했다.

“창민이가 너무 맞는 말을 해서 그렇지 뭐.”

오창민과 김우진, 그리고 채성관은 동갑이고 이채연은 이 세 사람보다 한 살이 어리다. 이채연은 세 사람에게 오빠라고 부르지만 때로는 아예 호칭을 생략하고 이름만 부르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이채연이 버릇이 없다고 할 수도 있지만 오창민을 포함한 세 사람은 이채연의 이런 언어습관을 크게 나무라지 않았다.

이러한 바탕엔 멤버들이 언어습관을 나무란다고 이채연이 그걸 바꿀 성격이 아닌 데다가 이채연의 이런 모습이 밉게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태화가 오창민을 향해 말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솔직히 조금 놀랐습니다.”

오창민이 의외라는 표정을 지으며 태화에게 물었다.

“놀라요?”

“네. 제가 밴드 멤버 영입 제안을 받은 거 아닙니까?”

태화의 발언에 이채연이 발언했다.

“그럼. 정말 들어올 생각 있어요?”

이채연은 질문을 하고 나서 태화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태화의 대답이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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