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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영감님과 함께-141화 (139/195)

어느 날 갑자기, 영감님과 함께 141화

자기가 낸 소리에 스스로 머쓱해하던 교육생은 갓 스무 살을 넘긴 여대생이다. 이 여대생은 영화 관련 학부에 진학한 상태가 아니다. 그녀는 영화에 관심이 많았지만, 부모님 때문에 영화 관련 학부가 아닌 학부로 진학했다. 하지만 영화에 관한 그녀의 열정은 그녀를 독립영화재단으로 오게 했다.

태화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저기 목소리 크신 분은 매우 궁금하셨던 모양입니다.”

태화의 발언에 시사회장은 순간 웃음이 빵 터지고 말았다.

“그럼. 저분이 궁금해하시는 부분을 말하겠습니다. 이 소극장은 독립영화재단 소유입니다. 그래서 이곳 석무열 이사장님하고 딜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태화가 딜이라고 발언하자 객석에서 ‘오오.’ 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오오’라고 소리를 낸 사람들은 스태프들이 아니라 교육생들이었다. <내 복권 내놔!>에 참여했던 스태프들은 태화와 한재영 외엔 석무열에 관해서 잘 모른다.

어쨌든 교육생들의 의아한 반응은 어쩌면 당연했다. 교육생들이 보기에 석무열은 한마디로 고지식한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태화와 딜을 했다고 하자 교육생들은 의외일 수밖에 없었다.

-석무열 이사장님이 딜을?

-이거 현실이냐?

태화는 다소 어수선해진 분위기를 다시 다잡았다.

“자. 여기 주목해 주십시오.”

태화가 발언하자 시사회장의 분위기도 잡혀갔다.

“이사장님이 이곳의 교육생도 기술 시사에 참여하게 해달라고 하시더군요. 그게 이 소극장을 기술 시사회로 쓸 수 있는 조건이었고요.”

“…….”

“저도 처음엔 망설였습니다. 괜히 시사회 분위기만 산만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습니다. 석무열 이사장님이 제안하실 때까지 이 소극장을 직접 본 건 아니었거든요.”

“…….”

“그런데 이 소극장을 직접 보고 나서 석무열 이사장님 제안을 받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태화는 다음 발언을 하기 전 피식 웃었다.

“이번 장사는 괜찮게 했구나.”

태화의 농담에 시사회장은 순식간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사람들의 웃음이 터진 사이 태화의 스마트폰으로 메시지가 도착했다.

-영사실입니다. 상영 준비됐습니다.

태화는 메시지를 확인하고 나서 객석을 향해 말했다.

“상영 준비가 끝났다는군요. 이제 <내 복권 내놔!> 기술 시사를 시작하겠습니다.”

태화가 말을 마치자 소극장의 조명이 꺼졌다. 그런 후 영사실에서 쏜 영상이 스크린 위에 비쳤다.

태화는 주요 스태프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그 자리에는 촬영을 맡은 이한철, 개퍼 팀장 임무를 수행한 정민석 그리고 프로듀서인 한재영 등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태화가 앉을 자리는 이한철과 한재영 사이에 비워둔 자리다. 이 자리는 스태프들이 감독인 태화를 위해서 만든 자리다. 소극장 전체 객석에서 영화를 보는 데 제일 좋은 자리가 바로 태화가 앉은 자리다.

태화는 자리에 앉아 스크린을 조용히 응시했다.

[태화 군. 기분이 어떤가?]

[묘합니다. 제가 연출한 작품을 이렇게 스크린에서 보게 되다니요.]

[아마도 그럴 걸세. 감독은 지금처럼 스크린에 자기가 연출한 작품이 상영될 때, 희열을 느끼게 되네.]

[비록 기술 시사지만 감개무량합니다.]

[하지만 이건 시작일 뿐이네. 반드시 다음 단계로 나가야 하네.]

[알고 있습니다. 당연히 극장 개봉으로 가야죠.]

#.

독립영화재단 소극장에서 진행된 기술 시사는 진지하게 진행됐다. 이는 <내 복권 내놔!>가 예상했던 것보다 결과물이 괜찮았기 때문이었다. 태화는 작품이 상영되는 동안 이러한 분위기를 느낄 수가 있었다.

관객은 작품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면 자신도 모르게 딴짓하게 된다. 그래서 작품이 상영되는 동안 여기저기서 휴대폰 화면 불빛이 켜졌다 꺼지면 그 작품은 재미가 없다는 의미다. 관객들이 휴대폰 화면을 확인하는 건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서고 관객이 자꾸 시간을 확인한다는 건 그만큼 작품이 지루하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 현장에서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작품이 상영되는 동안 휴대폰 화면 불빛이 적을수록 그 작품은 재미가 있다.

어쨌든 <내 복권 내놔!>는 작품이 상영되는 동안 사람들이 휴대폰 화면을 확인하는 일이 별로 없었다. 태화로선 이런 반응에 고무될 수밖에 없었다.

[영감님. 사람들이 지루해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네. 그 사실만으로도 일단 절반은 성공했다고 할 수 있네.]

박도봉 감독은 태화에게 절반의 성공이라고 말했다. 태화도 박도봉 감독이 이런 발언을 한 이유를 알고 있었다. 앞으로 극장 개봉을 위해선 넘어야 할 산이 많기 때문이었다.

어느새 <내 복권 내놔!>는 결말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작품 속 두 주인공인 박성욱과 심수영이 마지막 비극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마침내 박성욱과 심수영이 서로의 몸에 칼을 꽂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모든 이야기가 종결될 즈음……. 우한수가 연기했던 노숙자가 박성욱과 심수영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을 땐 객석에선 탄성이 흘러나왔다.

태화는 객석에서 이런 반응이 나올 걸로 어느 정도 예상했었다. 하지만 현재 객석에서 보인 반응의 강도는 태화가 생각했던 것보다 강했다. 어쨌든 이런 반응이 나왔다는 건 태화 자신이 의도했던 대로 작품의 흐름이 이어졌다는 의미였다.

노숙자가 복권을 챙겨가는 걸 마지막으로 <내 복권 내놔!> 기술 시사를 위한 상영은 끝이 났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갔다.

엔딩 크레딧이 끝나고 소극장에 다시 조명이 들어왔다. 그리고 객석에선 일제히 박수와 함성이 터져 나왔다.

이번에 박수와 함성은 독립영화재단 교육생 측이 아닌 실제 스태프들 사이에서 더 크게 났다. 그도 그럴 것이 직접 작품에 참여한 스태프들도 어느 정도 완성된 작품을 보는 건 오늘이 처음이었고 그들의 소감은 대체로 호의적이었다.

-이거. 생각보다 잘 나왔는데?

태화는 사람들의 함성을 뒤로 하고 다시 앞으로 나가 마이크를 잡았다. 그리고 객석을 향해 정중하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영화 <내 복권 내놔!>를 연출한 서태화입니다.”

태화가 인사를 하자 객석에선 서태화를 연호했다. 태화는 자신을 연호해 준 사람들이 고마웠다. 태화는 그 고마움에 다시 한번 객석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태화는 처음 환호받을 때는 그냥 좋았다. 하지만 지금 태화는 속에서 뜨거운 게 올라왔다.

자기에게 지금 환호를 보내고 있는 저 사람들이 누구던가?

정말 열악한 환경에서도 태화를 믿고 여기까지 온 사람들이었다. 태화는 이 순간 이를 악물었다. 터질 것 같은 눈물을 참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태화의 의지와는 다르게 태화의 눈에서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참아보려고 했는데…….”

“…….”

“정말……. 여기까지 와준. 여러분. 고맙습니다.”

태화가 말을 마치자마자 객석에선 또다시 박수와 함성이 터졌다. 이번엔 객석에서 ‘울지 마’를 연호했다.

이 순간 태화는 마치 우는 아이 같았다. 어른이 우는 아이한테 울지 말라고 말해도 아이는 그 소리에 더 울고 만다. 울고 있는 태화에게 송윤주가 다가갔다.

송윤주가 티슈를 꺼내 태화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고마워요. 누나.”

“그래. 괜찮냐?”

태화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네. 괜찮아요.”

“그래도 다행이다.”

“뭐가요?”

“작품이 잘 나왔어. 솔직히 한철 오빠하고 좀 고민했었거든.”

“무슨 고민이요?”

“사람들 반응이 안 좋으면 나하고 한철 오빠 둘이라도 어떻게 분위기 좀 만들어 보자고.”

“방금 한 말. 정말이에요?”

“그럼. 시사회 썰렁하게 만들 순 없잖아. 그런데 오늘 반응을 보니 그럴 필요 없을 것 같다.”

태화는 송윤주의 말이 고마웠다. 만약의 경우 태화를 위해서 총대를 멘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태화는 송윤주에게 말없이 가볍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송윤주는 태화의 미소를 보자 다소 안심이 되었다.

“이제 좀 괜찮아졌나 보네.”

“네. 정말 고마워요.”

송윤주는 태화가 어느 정도 진정되자 다시 객석으로 돌아와 앉았다. 태화가 다시 발언하기 시작했다.

“제가 잠깐 울컥했습니다. 그동안 고생을 좀 했거든요.”

태화의 발언에 객석에선 웃음이 터졌다. 태화도 웃음소리를 듣자 자기의 기분도 업 되는 걸 느꼈다.

“그럼. 이제부터 스태프들은 자기의 의견을 말해주십시오. 그리고 교육생 여러분들도 의견이 있으면 말씀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

기술 시사회장은 분위기가 달아오르고 있었다. 스태프들은 자신들이 맡았던 분야에 관해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피력했고 태화도 스태프들의 의견을 묵살하지 않았다. 태화는 오늘 기술 시사회에서 나온 의견들에 관해서는 전부 기록하라고 이우섭과 김현석에게 지시했다. 이우섭과 김현석은 태화의 지시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었다.

시사회는 꽤 알차게 진행됐고 성공적으로 끝마쳤다. 며칠 후 태화와 한재영 그리고 이우섭과 김현석은 한재영의 옥탑에 모였다.

이 네 사람이 옥탑에 모인 건 시사회에서 나온 여러 의견을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시사회에서 나온 의견은 크게 보면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었다.

대부분 의견은 약간만 수정하거나 하면 되는 사안으로 크게 문제가 없었다. 가장 크게 문제가 된 사안은 바로 음악이었다.

태화가 기술 시사회에서 상영한 영화엔 음악이 들어가지 않은 상태였다. 태화가 음악을 영화에 넣지 않았던 건 음악은 저작권 등이 얽혀 있어서 쉽게 접근할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한재영이 태화를 향해 말했다.

“나도 음악은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너도 알겠지만, 음악은 좀 복잡하잖아.”

“알아.”

태화와 한재영의 대화를 듣던 이우섭이 태화에게 물었다.

“태화 형. 아직 끝난 게 아니네요.”

“뭐가?”

“거의 끝난 줄 알았는데 새로운 난관이네요.”

“난관이기는 하지만 어떻게든 극복해야지.”

“무슨 방법이 있는 거예요?”

“나라고 딱히 무슨 방법이 있는 건 아냐.”

태화의 대답에 이우섭이 다소 실망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어떡하죠?”

“그냥 정면 돌파해야지.”

“정면 돌파요?”

한재영도 태화가 정면 돌파한다는 말에 궁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정면 돌파라. 너 무슨 방법이 있는 거지. 그렇지?”

“방법 없어.”

“뭐? 야. 넌 무슨 대답을 그렇게 자신 있게 말해. 딱히 방법도 없으면서…….”

“그렇다고 처질 수는 없는 거 아니냐? 긍정적으로 생각해야지. 안 그래?”

한재영은 태화의 말에 어이가 없었다.

“너, 정말 방법이 없는 거 맞니?”

“맞아.”

“근데. 너 너무 태평스러워.”

“솔직히 <내 복권 내놔!> 처음 시작할 때도 답은 안 보였어.”

“뭐?”

“그런데 어느새 작품을 만들어 왔잖아.”

“그러니까 네 말은 맨땅에 헤딩하겠다?”

태화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할 수 있는 게 그것뿐이라면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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