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영감님과 함께 13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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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화가 채영준을 향해 말했다.
“현재 혼자 사무실을 운영하세요?”
채영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사무실을 연 지 얼마 안 됐거든요. 사무실 열고 처음 맡은 일이 바로 이 작품입니다.”
“아. 그렇군요.”
“감독님하고 피디님 커피 한잔하시겠어요?”
채영준의 말이 끝나자 한재영이 나섰다.
“제가 나가서 커피 사오겠습니다.”
“아닙니다. 굳이 돈 쓸 필요 없습니다. 제가 입이 그렇게 고급은 아니거든요. 두 분 괜찮으시다면 믹스 커피 어떠신지요?”
태화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네. 전 좋습니다. 재영이 넌 어때?”
“나도 좋아. 채영준 님 저도 좋습니다.”
태화와 한재영이 긍정적으로 대답하자 채영준이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느 정도 입맛이 맞아서 다행이네요.”
채영준은 책상 한쪽에 놓여 있는 믹스 커피 박스에서 커피 3봉지를 꺼냈다. 그러고 나서 종이컵을 3개 꺼냈다.
한재영이 채영준에게 다가갔다.
“종이컵하고 커피 믹스 저한테 주세요.”
“아. 네.”
채영준은 종이컵과 커피 믹스 두 개를 한재영에게 건넸다.
한재영은 자기가 채영준에게 받은 종이컵과 커피 믹스 각각 한 개를 태화에게 건넸다.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각자 컵에 커피 믹스를 타 먹는 거로 흘러갔다.
사무실 한쪽 마련되어 있는 싱크대엔 냉온 정수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세 사람은 각자의 컵에 커피 믹스를 넣고 입맛에 맞게 커피를 탔다. 세 사람은 각자의 종이컵을 들고서 다시 소파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태화와 한재영은 소파에 앉았고 채영준은 바퀴 달린 의자를 끌고 와 태화와 한재영 앞에 앉았다.
채영준은 자리 앉자마자 태화에게 말을 건넸다.
“감독님. 작품 아주 재밌게 잘 봤습니다.”
“그렇게 봐주시니 고맙습니다.”
“방금. 제가 한 말 그냥 예의상 한 말이 아닙니다.”
태화는 채영준의 표정을 살폈다. 채영준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처음에 한철이 형 제안을 받고서 망설였습니다.”
“당연히 그럴 겁니다. 감독인 저도 첫 작품인 데다가 제작비도 초라하기 짝이 없으니까요.”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한철이 형이 선택한 작품이라서 수락했습니다. 한철이 형이 최소한 허튼 선택을 강요할 사람은 아니니까요. 그래서 감독님 작품을 봤는데 예상외로 좋더군요.”
“능력 있는 사람들이 함께했으니까요.”
“맞습니다. 그래서 더욱 궁금해지더군요. 과연 이 작품을 만든 감독은 어떤 사람일까?”
“…….”
“아무리 좋은 스태프들이 참여한다고 해도 그걸 하나로 묶어내는 건 감독이니까요.”
채영준은 말을 마치고 나서 태화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의 눈빛은 꽤 강렬했다.
[영감님. 채영준은 유민화와는 다른 유형이군요.]
[나도 자네의 생각과 같네. 유민화는 주로 대화를 통해서 상대를 알아가는 유형인데 채영준은 대화보다는 눈빛으로 상대를 가늠하는군.]
[결국 이것도 간 보기군요.]
[그렇다고 할 수 있네. 사람마다 간 보는 방식이 다를 뿐일세. 하지만 이걸 나쁘다고 할 수는 없네.]
[알고 있어요. 채영준과 전 오늘 처음 만난 거니까요. 과연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겠죠.]
태화가 채영준을 향해 말했다.
“작품을 재밌게 보셨다고 했는데 어떤 점이 좋았었나요?”
“이 작품을 다 본 건 아니지만 일관성이 있더군요.”
“커트를 나누지 않은 걸 말하는 겁니까?”
채영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맞습니다. 감독님. 하지만 이러한 결정을 하는 게 쉽지만은 않았겠죠.”
“네. 처음 이 결정했을 때 반대가 많았습니다.”
“그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커트를 나누지 않고서 간다는 건 그만큼 위험부담이 생기는 것이니까요.”
“그렇습니다.”
채영준은 다음 말을 하기 전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감독님. 이 작품 좋은 결과가 나와야 합니다. 그래야 다음 작품도 맡을 수 있죠.”
채영준은 <내 복권 내놔!>를 작업하고 포트폴리오로 쓸 계획이었다. 그러려면 <내 복권 내놔!>가 일정한 성과를 내야 한다.
“그렇긴 하죠. 그런데 외국에서 공부했다고 들었습니다.”
“네. 영국에서 공부했습니다. 그런데 귀국하고 나서 자리를 잡기가 쉽지만은 않더군요.”
“그런가요?”
“네. 영화 쪽에 아는 인맥이 많지 않다 보니 쉽지 않더군요.”
영화계는 언뜻 보면 개방적일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일반 사람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폐쇄적이다.
영화계 인맥은 아는 사람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때는 유학파가 각광을 받던 시절이 있긴 했다. 하지만 유학파들이 큰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그 시절도 저물었다.
“어떻게 보면 감독님 작품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감독님도 이 작품이 첫 작품이고 저도 첫 작품이니…….”
태화는 채영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면에서 우린 서로 비슷한 처지군요.”
태화는 채영준과 자신을 우리라고 지칭했다. 태화의 말에 채영준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태화 군. 방금 자네가 선택한 단어 좋았네.]
[우리라는 단어 말입니까?]
[그렇네. 자네는 자신과 채영준을 각각 지칭할 수 있었지만, 굳이 우리라는 단어를 선택했네. 우리라는 말은 사람 사이에 연대감을 주는 단어일세. 그리고 채영준은 심리적으로 그걸 바라고 있네.]
[네. 제 말에 채영준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습니다. 제가 채영준이라도 똑같은 심정이었을 겁니다. 분명 외롭고 고독했을 겁니다.]
[음……. 그렇네. 유학을 떠날 때만 하더라도 미래의 청사진을 꿈꾸었겠지. 하지만 영화계 현실은 냉정하네. 자네의 실패에 관한 경험이 이럴 때 작동하게 되는구먼.]
[그렇군요.]
어느덧 시간이 흘러 커피 한 잔을 다 마셨다. 태화는 이제 주변 이야기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채영준 님. 혹시 지금까지 작업했던 내용 좀 볼 수 있을까요?”
채영준은 그제야 생각난 듯 발언했다.
“아. 그러셔야죠. 제가 깜빡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알겠습니다.”
채영준은 책상에 놓인 컴퓨터를 켰다. 그리고 자기가 작업해 놓은 파일을 찾았다.
“감독님. 일단 보시고 수정할 부분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작업은 두 가지로 작업했습니다. 둘 중 마음에 드시는 걸로 선택하시면 됩니다.”
태화는 채영준의 말에 감탄했다.
“작업을 두 개로 하셨다고요?”
“네. 플랜 B는 항상 마련이 되어야 하니까요.”
채영준은 작업해 놓은 타이틀 파일 중 하나를 마우스로 더블 클릭했다. 그러자 모니터에 채영준이 지금껏 작업해 놓은 파일이 재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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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영준이 먼저 클릭한 파일은 심수영이 박성욱이 잠든 사이 복권 번호를 확인하는 시점과 맞물려서 만들어졌다.
심수영이 바라본 복권의 이미지에서 로또 복권이라는 글씨가 사라지고 그 위에 영화 제목인 <내 복권 내놔!>가 새로 타이핑 치듯 써졌다. 그리고 그 글씨가 점점 커지면서 화면 밖으로 나가는 구성이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심수영이 몰래 옥탑방을 빠져나오는 장면과 맞물렸다.
심수영이 옥탑 계단을 내려가는 장면에서 손글씨로 쓰듯 <내 복권 내놔!>가 화면에 써졌다. 화면에 써지는 글씨는 한 글자씩 써지면서 그 색이 빨간색으로 채워지는 방식이었다.
채영준이 작업한 타이틀에 대한 감상이 끝났다. 채영준이 태화를 보며 말했다.
“감독님. 어떤 게 나은가요?”
태화가 바로 채영준의 질문에 대답했다.
“첫 번째 타이틀은 아이디어가 좋았어요. 하지만 작품의 분위기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영화보다 좀 더 밝은 분위기의 영화에서 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두 번째 작업한 건 어떻습니까?”
“두 번째 작업한 건 영화의 느낌과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미 완성된 자막을 보여주는 방식이 아니라 글자 하나씩 써가는 느낌도 좋았고요.”
“그럼. 두 번째 작업한 게 마음에 드십니까?”
“네. 하지만 폰트가 좀 더 날카로운 맛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현재 폰트는 끝이 약간 뭉툭한 느낌이더군요.”
태화의 말에 채영준이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감독님도 저하고 비슷한 생각이군요.”
“그런가요?”
“네. 저도 폰트의 끝부분을 조금 더 날카롭게 하고 싶었었는데……. 감독님의 생각이 어떨지 몰라서 이렇게 처리했습니다.”
“그럼. 어느 정도 의견 일치를 본 셈이군요.”
“네. 감독님. 그런데 하나 물어볼 게 있습니다.”
“뭡니까?”
“근데 시사회 합니까?”
태화는 채영준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한재영을 보았다. 시사회 일정 등은 피디의 업무 중 하나다.
한재영이 태화 대신 대답했다.
“일단 작품이 어느 정도 완성되면 스태프들 모아서 조촐하게 기술 시사를 가질 예정입니다.”
“그런가요?”
“물론 극장에서 할 수는 없지만 그런 자리는 마련할 겁니다. 그래도 괜찮으시겠습니까?”
한재영의 질문에 채영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초대해 주시면 당연히 가야죠.”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분위기는 슬슬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고 있었다. 여기서 더 시간을 잡으면 민폐가 된다.
태화가 채영준을 향해 말했다.
“오늘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태화는 말을 마치고 나서 채영준에게 손을 내밀었다. 채영준이 태화가 내민 손을 잡았다.
“저도 유익했습니다. 오늘 감독님 만나서 즐거웠습니다.”
“저도 즐거웠습니다. 예상했던 것보다 결과물이 잘 나온 거 같아서 마음이 놓이는군요.”
“그렇게 봐주셨다니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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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화와 한재영은 채영준의 오피스텔을 나왔다. 태화가 한재영을 보며 말했다.
“그런데 정말 시사회 할 거냐?”
“해야지. 말해놨는데 안 할 수도 없잖아.”
“그런데 할 장소는 있고? 혹시 네 옥탑에서 하려고 하는 거냐?”
한재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응. 내 방에 프로젝터도 있고 스크린도 있어.”
“그렇긴 한데……. 문제는 소리 때문에 그런 거잖아. 어차피 야외에서 프로젝터로 보려면 저녁때 해야 하잖아. 거기 사시는 분들이 뭐라고 하지 않을까?”
“그래서 네가 좀 나서야 할 거야.”
“뭐? 내가 나서?”
“그래. 주인 할머니도 그렇고 거기 사시는 분들 너 좋아하잖아.”
태화도 기술 시사는 한 번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문제는 비용이었다.
스태프와 연기자들을 모아놓고 시사회를 하려면 어느 정도 공간이 필요하다.
한재영의 옥탑은 공간이 꽤 넓었다. 하지만 태화의 생각은 한재영과 달랐다.
“시사회는 하자. 그런데 옥탑에서 말고 다른 곳에서 하자.”
“왜?”
“아무래도 변수가 있잖아. 이웃한테 불편을 주는 것도 아닌 것 같고……. 그리고 무엇보다 시사회까지 초라하게 하고 싶지는 않아.”
한재영은 태화의 발언을 듣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 듣고 보니 옥탑에서 하는 게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그럼. 어떻게 할 거야? 그런데 다른 대안 있어?”
“일단 장소는 내가 알아볼게. 일단 후반 작업에 집중하자.”
“오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