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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영감님과 함께-128화 (126/195)

어느 날 갑자기, 영감님과 함께 128화

태화가 바로 촬영에 들어갈 수 있었던 건 리허설 전에 정원석과 최수빈의 몸엔 이미 특수 분장이 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태화가 이렇게 한 건 정원석과 최수빈에게 실제 촬영 환경과 가까운 경험을 만들어주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처음 기대완 달리 촬영은 계속 NG가 났다. 정원석과 최수빈은 조금씩 지쳐갔다.

태화가 정원석과 최수빈에게 다가갔다. 태화는 빈손으로 두 사람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두 사람이 마실 생수를 들고서 다가갔다. 태화가 정원석과 최수빈에게 각각 생수를 건넸다.

“두 사람 힘들죠?”

정원석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감독님. 화 안 내십니까?”

“제가 화를 왜 냅니까?”

“그거야. 당연히 NG가 많이 났으니까요.”

“애초에 이 장면은 NG가 많이 날 걸로 예상했던 장면입니다. 전 오히려 이다음 촬영에 기대감이 큽니다.”

“기대감이 크다고요?”

“횟수가 진행될 때마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어요. 방금 촬영도 아주 좋았었고요.”

태화의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처음보다는 두 번째가 두 번째보다는 세 번째가 횟수를 거듭하면서 처절함이 잘 구현되고 있었다.

“제가 걱정하는 건 두 사람의 체력입니다. 정원석 님. 체력은 어때요?”

정원석이 생수를 한 모금 마시고 나서 대답했다.

“네. 저는 괜찮습니다.”

태화는 정원석의 대답을 듣고 나서 시선을 최수빈에게 돌리며 물었다.

“최수빈 님은요?”

최수빈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저도 괜찮아요.”

태화는 정원석과 최수빈의 대답을 듣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바로 촬영 시작해도 될까요?”

정원석과 최수빈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태화는 여기서 시간을 끌지 않고 바로 촬영에 들어갔다.

“액션!”

태화의 외침과 함께 다시 촬영이 시작되었다.

촬영 시작과 함께 정원석이 최수빈을 끌고서 철거 예정지의 빈집 마당으로 들어왔다. 정원석과 최수빈이 들어간 빈집은 구옥으로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이다.

최수빈은 정원석에게 끌려가지 않기 위해서 필사적인 연기를 펼쳤다. 최수빈은 몸부림을 치면서 의도적으로 무언가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정원석은 최수빈이 자신에게 벗어나려고 필사적으로 몸부림을 치자 최수빈의 뺨을 때리는 연기를 펼쳤다.

뺨을 때릴 때 정원석과 최수빈의 합은 꽤 잘 맞았다. 여기에 이한철이 카메라 각도를 적절하게 잡았다. 그래서 태화는 방금 두 배우가 펼친 장면이 연기인 줄 알면서도 실제인 듯 착각할 정도였다.

정원석과 최수빈은 뺨을 때리는 장면을 시작으로 텐션을 올리기 시작했다. 정원석이 분노에 찬 표정으로 최수빈에게 대사를 쳤다.

-야.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정원석의 대사에 최수빈이 비웃으며 대사를 쳤다.

-뭐가? 그거 가진 놈이 임자 아냐?

정원석은 최수빈이 대사를 치자 얼굴에 분노가 어른거렸다.

-뭐가 어쩌고 어째?

정원석은 최수빈의 머리채를 잡으며 대사를 쳤다.

-그걸 지금 말이라고!

머리채가 잡힌 최수빈은 악을 쓰듯 대사를 쳤다.

-어차피 오빠도 그거 주운 거 아냐?

정원석은 최수빈의 대사를 듣고서 다시 최수빈의 뺨을 때리는 연기를 펼쳤다.

-이게 어디서 악을 써! 악을! 다 필요 없고. 내 복권 내놔! 이년아!

정원석은 감정이 격해지면서 시나리오에 없는 대사를 쳤다. 바로 끝에 있는 ‘이년아!’라는 대사다. 하지만 최수빈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동안 정원석과 연기하면서 정원석의 성향을 알고 있었다. 정원석은 텐션이 올라가면 자신도 모르게 애드립을 치는 성향이 있었다.

최수빈은 당황하지 않고 더욱 악을 쓰며 말했다.

-이 새끼야! 없어! X발!

태화는 최수빈의 대사를 듣고서 입가에 살짝 미소를 지었다. 최수빈도 원래 시나리오대로 대사를 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본래 최수빈이 쳐야 할 대사는 ‘없어! 없다고!’이다.

최수빈은 언젠가부터 정원석이 애드립을 치면 최수빈도 거기에 맞받아치듯 애드립을 쳤다.

이게 나쁘게 작용하면 신경전으로 번질 수도 있는데 정원석과 최수빈은 신경전보다는 서로의 텐션을 올리는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했다.

어쨌든 태화는 여기서 컷을 외치지 않았다. 정원석과 최수빈의 대사는 처절함이라는 이 장면의 콘셉트와 어느 정도 맞았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정원석과 최수빈의 연기가 이어졌다. 정원석이 눈을 부라리며 대사를 쳤다.

-이게 미쳤나? 너 말할 때까지 나한테 맞는다.

하지만 최수빈은 더 악을 쓰며 대사를 쳤다.

-나한테 없다고! 잃어버렸다고!

-뭐! 잃어버려?

정원석은 어이가 없다는 듯 웃더니 최수빈을 밀쳤다. 그러자 최수빈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쓰러졌다. 정원석은 최수빈의 몸에 올라타 손으로 최수빈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빨리 말해! 내 복권 어딨는지 말하라고! 이 쌍년아!

최수빈은 목이 졸리는 연기를 펼친 후 손으로 정원석의 손을 쳤다.

-말……. 할……. 게

정원석이 최수빈의 귀에 대고 대사를 쳤다.

-뭐라고? 안 들려.

-말한다……. 고

-그래. 어딨어? 내 복권.

-바닥에 있어.

-뭐?

-여기 끌려 들어올 때 내가 바닥에 떨어뜨렸어.

-이런 X팔.

정원석은 자리에서 일어나 복권을 찾기 시작했다. 정원석은 스마트폰의 플래시를 켠 채 복권을 찾았다. 이한철은 복권을 찾는 정원석에게 카메라를 갖다 댔다. 정원석은 반쯤 미친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이 장면은 괴기스럽기까지 했다.

정원석은 이내 바닥에 떨어진 복권을 찾았다. 정원석은 자신이 찾은 복권을 손에 쥐었다.

-드디어 찾았다. 내 일등 복권! 지긋지긋한 내 인생을 바꿔줄…….

정원석은 대사를 다 치지 못했다. 최수빈이 바닥에 떨어져 있던 돌로 정원석의 머리를 내려쳤기 때문이다.

물론 최수빈이 정원석을 친 돌은 진짜 돌이 아니다. 정원석은 머리에 돌을 맞고 쓰러졌다. 그때 최수빈이 다가와 정원석이 손에 쥐고 있던 복권을 빼앗았다.

-웃기지 마! 이 복권은 내 것이야.

최수빈이 복권을 챙겨 빈집을 나가려는 순간 최수빈의 입에서 단말마가 흘러나왔다.

-헉!

이한철은 카메라를 살짝 뒤로 뺐다. 그러자 최수빈의 옆구리를 정원석이 칼로 찌른 모습이 보였다. 여기서 태화가 강진호에게 말했던 해답이 있었다.

태화는 칼로 직접 찌르는 장면을 담지 않을 계획이었다. 칼로 찌르는 순간은 화면이 아니라 오디오로 표현할 생각이었다. 태화가 이런 계획을 제시한 건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하나는 일반적으로 관객은 칼로 신체를 찌르는 잔인한 장면을 선호하지 않는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때로는 오디오가 더 관객에게 임팩트 있게 전달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몸이 칼에 찔릴 때 적당한 효과음을 넣으면 영상으로 보여주는 것보다 때로는 더 효과적으로 그 순간을 표현할 수 있다. 물론 태화의 이런 판단엔 박도봉 감독의 조언이 있었다.

태화에게 박도봉 감독의 조언은 적절했다. 커트를 나누지 않은 촬영에서 특수 분장을 한 위치로 정확하게 칼을 찌르는 게 쉬운 일은 아닌 데다 그걸 영상으로 담는 건 더 어렵다.

화면에는 칼에 찔리는 연기자의 얼굴만 나오는 상태에서 칼로 찌르는 배우가 정확하게 위치를 찾아서 칼을 찌르면 더욱 수월하게 촬영을 진행할 수 있다.

정원석은 최수빈을 칼로 찌르고 나서 다시 복권을 자기의 손에 넣으며 웃었다.

-크크크. 하하하!

하지만 정원석의 웃음도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이번에는 최수빈이 자기 옆구리에 꽂혀 있던 칼을 뽑아 정원석의 옆구리에 찔렀기 때문이다.

정원석의 웃음이 순간 단말마로 바뀌었다.

-헉!

이한철은 여기서 카메라를 뒤로 뺐다. 이번에는 정원석의 옆구리에 칼이 꽂혀 있었고 최수빈의 옆구리엔 피가 흘렀다. 최수빈이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대사를 쳤다.

-개새끼. 샘……. 통……. 이다.

최수빈은 바닥에 쓰러졌고 정원석도 이내 바닥에 쓰러졌다. 카메라는 바닥에 쓰러진 정원석을 잡았다. 정원석은 죽기 전 숨을 헐떡이고 있다.

잠시 후 빈집의 방문이 열리면서 한 노인이 밖으로 나왔다. 이한철은 사전 계획에 따라 카메라로 노인을 잡았다. 그 노인은 바로 노숙자로 변한 우한수다.

우한수가 방문을 나와 상황을 살피더니 정원석이 쥐고 있던 복권을 집어 들었다.

-그러니까 이게 일등 복권이라 이 말이지.

우한수는 복권을 손에 쥔 채 빈집 대문 문을 열고 나갔다.

태화는 모니터를 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컷!”

태화는 바로 촬영본 확인 작업에 들어갔다. 촬영본을 거의 다 볼 무렵 태화는 자신도 모르게 오른손을 번쩍 들었다.

“오케이!”

태화가 오케이를 외치자 촬영장은 바로 환호성이 터졌고 스태프들은 서로 얼싸안고 좋아했다. 태화는 바로 최선의 연기를 보여준 정원석과 최수빈에게 다가갔다.

“두 사람 고생 많았습니다.”

정원석이 여전히 바닥에 쓰러진 채 대답했다.

“감독님. 지금 일어날 기운도 없습니다.”

태화는 손수 정원석을 일으켜 세웠다.

“정원석 님. 오늘 정말 대단했습니다.”

“그냥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습니다.”

태화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나중에 보세요. 그러면 알게 될 겁니다.”

“꼭 그래야겠는데요?”

정원석은 말을 마치고 나서 태화를 껴안았다.

“감독님. 고마워요.”

“네?”

“절 캐스팅해 줘서요.”

“하하. 무슨 말씀을. 고마운 건 오히려 저인데요?”

“아닙니다. 항상 생각해 왔어요.”

“뭘 말입니까?”

“내가 만약 영화에서 주연을 맡게 된다면 나를 태워 버릴 수 있는 작품이었으면 좋겠다고요.”

태화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많이 태우셨습니까?”

“네. 아주 많이요.”

“하지만 아직 한 장면 남았습니다. 조금은 남겨두셔야 합니다.”

“그야. 당연하죠.”

태화는 몸을 돌려 최수빈에게 향했다. 최수빈도 바닥에 앉은 채였다.

“오늘 수고했다. 최수빈.”

“근데. 나는 안 일으켜주나?”

“당연히 그래야지.”

태화가 손을 뻗어 최수빈을 일으켜 세웠다.

“너. 오늘 되게 매력 있더라.”

“뭐. 매력?”

“그래. 너의 오늘 연기. 처절하고 또 처절했다.”

최수빈은 자신도 모르게 태화를 껴안았다. 태화는 순간 당황했다.

“왜? 정원석 님이 하는 건 괜찮고 나는 안 괜찮냐?”

“뭐. 그건 아닌데.”

“고마워.”

“뭐가?”

“날 캐스팅해 줘서.”

“뭐야. 정원석 님하고 너하고 짠 거야? 왜 이래?”

“뭐. 짠 건 아니고. 항상 생각해 왔거든.”

“너도냐?”

최수빈은 태화를 껴안았던 팔을 풀었다. 그리고 최수빈은 태화의 팔을 살짝 꼬집었다.

“야. 최수빈. 아파.”

“그게 뭐가 아프냐? 그렇게 세게 안 꼬집었거든?”

“넌 네 손이 얼마나 매운지 모르지?”

“너 자꾸 그러면 더 세게 꼬집는다?”

“아니. 그건 사양한다. 그래서 뭘 생각했었는데?”

“주연하면 어떤 느낌일까? 이런 생각.”

“그래서 지금 어떤 느낌인데?”

“힘들지만 좋았어. 그래서 다들 주연하려고 하는구나.”

태화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럴 거 그때는 왜 그렇게 비싸게 굴었는지.”

“야. 그거야……. 너하고 나 사이가 좀 불편하기도 했고.”

“어쨌든 나도 고맙다.”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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