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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영감님과 함께-126화 (124/195)

어느 날 갑자기, 영감님과 함께 126화

골목길 촬영 당일.

촬영이 있는 골목길로 스태프와 연기자들이 속속들이 도착했다. 스태프들은 각자 자신이 타고 온 차량에서 내리면서 소형 발전기를 들고 내렸다. 그래서인지 소형 발전기의 숫자는 꽤 되었다.

태화는 이 모습을 보면서 흐뭇했다. 태화가 자신의 옆에 있는 한재영에게 말했다.

“재영아. 연락 제대로 돌린 모양이다?”

“뭐. 연락하긴 했는데 이렇게 협조적일 줄은 몰랐다.”

“이거 의외인데?”

“뭐가?”

“너무 겸손한 멘트라서.”

“뭐. 오늘 결과를 만들어낸 게 내 지분이 상당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런데?”

“가끔은 겸손함을 보이기도 해야지.”

“어쨌든 수고했다.”

태화와 한재영에게 정민석이 다가왔다.

“감독님.”

정민석은 태화에게 이름 대신 감독님이라는 호칭을 썼다. 지금은 촬영 현장이고 사적인 영역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네. 정 팀장님.”

태화는 정민석을 정 팀장으로 부르기로 호칭했다. 개퍼가 DP 시스템하에서 조명팀장이기 때문이다.

“이 정도 소형 발전기 숫자라면 충분히 조명을 치고도 남겠어요.”

“네. 하여튼 고생 많았어요. 조명 대여한 것도 그렇고요.”

“뭐. 당연히 내가 할 일인데요.”

정민석은 조명을 예상했던 것보다 싸게 대여를 해왔다. 그건 정민석이 그전에 알고 있었던 거래처에 사정했기 때문이었다.

거래처 담당자도 정민석을 좋게 보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오늘 영석이 말고 도와줄 사람을 더 데리고 왔는데 다행이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정민석은 구영석 외에도 두 명을 더 데리고 왔다. 만약 정민석이 구영석만 데리고 왔다면 조명 세팅 시간이 배로 더 걸릴 수도 있었다.

그때였다. 현장에 도착한 송윤주가 소형 발전기를 정민석에게 건넸다.

“정 팀장님. 이것 좀 받아요.”

“송 팀장님도 가져왔네. 난 촬영 감독님이 가져와서 안 가져올 줄 알았는데.”

“처음엔 나도 그러려고 했지.”

“그런데요?”

송윤주가 한재영을 살짝 흘겨보며 말했다.

“한 피디님이 어찌나 닦달하던지.”

“닦달?”

“뭐. 소형 발전기 안 가져오면 이번 촬영 큰일 난다고. 어찌나 떼를 쓰는지…….”

송윤주는 같은 말이라도 재밌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이 때문인지 태화와 정민석은 순간 웃음이 터졌다. 한재영이 송윤주의 말에 반론을 폈다.

“말은 똑바로 합시다. 떼를 쓴 게 아니라 객관적인 현실을 이야기한 겁니다. 저야 작품을 위해서……. 어쨌든 가져오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으이구. 말이라도 못 하면.”

#.

정민석은 자신이 데려온 팀원들과 함께 조명을 세팅해 나갔다. 조명은 순조롭게 세팅이 되어갔다.

정민석 태화에게 다가와 조명이 세팅이 완료되었음을 알렸다.

“감독님. 조명 준비됐습니다.”

“알겠습니다. 조명 한번 켜볼까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정민석이 자신의 팀원들에게 지시했다.

“조명 온!”

정민석의 지시에 이어 세팅된 조명이 켜졌다. 태화는 조명이 켜지고 나서 만족감에 미소가 절로 나왔다. 테스트 때보다 확실히 광량이 밝아진 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이한철이 측정기로 조명의 광량을 쟀다. 이한철의 얼굴에도 확실히 만족감이 드러났다.

“감독님. 저번보다 확실히 밝아졌어요. 이 정도면 촬영해도 큰 문제가 없을 것 같은데요?”

“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바로 촬영 들어가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이한철은 촬영 준비를 위해서 카메라를 세팅했다. 태화는 이우섭과 김현석을 불렀다.

“우섭아. 현석아.”

태화의 부름에 이우섭과 김현석이 태화에게 다가왔다.

“두 사람은 이제 촬영 시작하는 걸 스태프하고 연기자들한테 알려. 골목길이니까 너무 시끄럽게 소리 지르지 말고.”

“알겠습니다.”

태화의 지시를 받은 이우섭과 김현석은 촬영 현장을 돌아다니며 스태프와 연기자들에게 촬영 시작을 알렸다. 촬영 현장은 일사불란하게 돌아갔다.

이우섭과 김현석이 촬영 시작을 알리기 무섭게 스태프와 연기자들은 바로 촬영에 들어갈 수 있게 준비했다.

태화는 이번 골목길 촬영에서 조명 외에 신경 쓴 부분은 바로 골목길에 있는 집들이다. 이는 박도봉 감독의 조언이기도 했다.

[태화 군. 로케이션할 때 주의할 사안이 있네.]

[주의할 사안이요?]

[그렇네. 특히 이번에 촬영하게 될 골목길은 더 주의해야 하네. 촬영 때문에 주민들이 불편할 수 있네.]

[아. 제가 그걸 놓치고 있었네요.]

[로케이션 촬영할 땐 무엇보다 그 지역 주민들하고 문제가 발생하지 않아야 하네. 그래야 촬영도 안정적으로 진행될 수 있네.]

[알겠습니다.]

태화는 연출 제작 스태프와 함께 촬영이 진행되는 골목길 근처에 있는 가정집에 직접 방문해서 사전에 양해를 구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촬영 도중 갑자기 주민들의 컴플레인이 들어올 수 있고 심각한 경우 촬영을 접어야 할 수도 있다.

태화는 촬영이 준비되자 바로 촬영 시작을 알렸다. 태화는 촬영 시작을 자기가 손에 들고 있는 무전기를 통해서 알렸다. 저녁 시간에 가능한 큰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서다. 물론 배우들이 연기를 하면서 내리는 소리는 어쩔 수 없지만, 태화는 주민들의 불편을 최소화하는 데 주력했다.

태화가 무전기에 대고 말했다.

“지금부터 촬영을 시작하겠습니다. 올 스탠바이.”

“레디.”

이어서 박지형과 이한철이 자동 반사적으로 구호를 외쳤고 김현석이 촬영 순서를 외치고 슬레이트를 쳤다.

“스피드”

“롤”

“씬 90에 일에 하나.”

“딱!”

“액션!”

#.

<내 복권 내놔!> 첫 촬영은 태화에게 있어선 마치 재앙 같았었다. 하지만 이후 새로운 여주로 최수빈이 캐스팅되고 촬영이 진행되면서 태화는 그 재앙 같은 위기에서 벗어났다.

태화가 이번 골목길 촬영을 앞두고 염려했던 건 혹시 모를 사고였다. 만약에 이번에 사고가 난다면 앞으로 촬영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 되기 때문이다.

오늘 촬영은 여주 심수영이 자기의 친구에게 도움을 청하러 왔다가 박성욱에게 발각된다. 심수영은 박성욱에게 잡힐 위기에 처하지만 마침 골목길을 지나가는 사람에 의해서 심수영은 박성욱에게서 간신히 도망치는 장면이다.

태화는 방금 촬영이 끝난 촬영본을 모니터링하고 있었다. 태화는 촬영본을 모니터링 후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오!”

태화는 오케이를 외치려다 말을 끊었다. 기분이 너무 좋은 나머지 ‘오’를 너무 크게 말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이한철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오. 뭡니까?”

태화는 자신도 웃겼는지 절로 웃음이 나왔다.

“다시 하겠습니다.”

태화는 이번에 성량을 조절해서 말했다.

“오케이!”

태화는 ‘오케이’를 외치고 나서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태화의 모습을 본 이한철이 얼굴에 미소를 띤 채 다가왔다.

“촬영 잘 끝났는데 웬 한숨입니까?”

“그래서 한숨을 쉰 겁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첫 촬영이 중요하잖아요. 오늘 야간 첫 촬영인데 잘 끝나서 한숨을 쉰 겁니다. 첫날처럼 사고 나면 안 되잖아요.”

“하긴. 그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면 안 되죠.”

“네.”

한재영이 태화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감독님. 철수할까요?”

“네. 철수하죠. 최대한 조용히 철수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스태프들한테 그렇게 알리겠습니다.”

한재영은 스태프들에게 무전기로 철수 지시를 내렸다. 스태프들은 최대한 조용히 철수하기 시작했다.

태화의 눈에 조명팀의 모습이 보였다. 태화는 조명팀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정민석이 태화를 보자 말없이 웃음으로 반겼다.

“정 팀장님. 오늘 촬영 성공입니다. 정 팀장님의 공이 큽니다.”

정민석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오늘 촬영은 실제 아이디어를 제공해준 감독님의 공이 더 크죠. 나야 그 아이디어에 따라서 조명을 세팅한 것뿐이고.”

“아닙니다. 같은 장비라도 세팅하는 사람에 따라서 그 결과가 달라지잖아요. 오늘 조명의 광량 그리고 색감도 아주 좋았습니다.”

태화는 말을 마치고 나자 정민석이 태화의 손을 잡았다. 정민석은 그런 후 태화에게 조용히 말했다.

“태화야. 고맙다.”

“뭐가 말입니까?”

“날 선택해 줘서.”

“뭘 새삼스럽게 그럽니까?”

“아니. 그렇지 않아.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것과 직접 경험하는 건 달라. 오늘 이렇게 내가 세팅한 조명 아래서 영화 촬영이 성공적으로 끝나니까 너무 좋다. 머릿속으로 생각한 것보다 더 짜릿했다.”

“민석이 형. 벌써 이러면 안 돼요.”

“그게 무슨 소리야?”

“앞으로 촬영이 더 남았는데 지금 멘트는 마치 촬영이 다 끝난 거 같잖아요.”

태화의 말에 정민석이 미소를 지었다.

“당연히 난 남은 촬영에서도 최선을 다할 거다. 하지만 지금 이 기분이 너무 좋은 건 어쩔 수 없다.”

태화는 정민석의 발언엔 한 치의 거짓도 없음을 느끼고 있었다. 순도 백 퍼센트의 진심이었다. 태화가 이런 판단을 하게 된 건 정민석의 천진난만한 표정이었다.

정민석은 천진난만한 표정을 지으며 거짓을 말할 사람이 아니라는 걸 태화는 잘 알고 있었다.

“형이 기분이 좋다면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데요?”

“태화. 너 듣던 대로 능구렁이가 다 됐구나.”

“네? 능구렁이요?”

“그래.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다 빼먹으려고 하는 거 보니.”

“어떻게 알았습니까? 전 작품을 위해서 최대한 빼먹을 작정입니다.”

태화의 말에 정민석은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정민석은 진심으로 태화가 잘되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 많이 빼먹어라.”

#.

항상 처음이 어렵다.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두렵기 때문이다. 첫 번째 골목길 야간 촬영이 성공적으로 끝나고 태화는 자신감을 가졌다. 그래서일까?

태화는 거침없이 외쳤다.

“오케이!”

“오케이!”

“오케이!”

감독인 태화가 자신감을 가지자 스태프와 연기자들도 자연스럽게 자신감을 가지게 됐다. 그 결과 남은 골목길 촬영하는 동안 현장의 분위기는 좋았다. 현장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일을 즐기는 분위기였다.

이제 남은 건 두 개의 씬이었다. 하나는 철거 예정지에서 촬영이었고 다른 하나는 영화 초반부의 박성욱의 방 장면이다.

남은 두 개의 씬 중 중요한 장면은 철거 예정지 촬영이다. 태화는 철거 예정지를 먼저 촬영할 계획이다. 박성욱의 방 장면을 가장 마지막에 넣은 이유는 선혜영의 첫날 사고로 촬영하지 못한 장면을 그날 촬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태화는 철거 예정지 촬영에 꽤 공을 들였다. 조명 세팅을 위해서 발전차를 불렀고 남녀 두 주인공 박성욱과 심수영의 피 튀기는 액션도 준비했다.

태화는 정원석과 최수빈의 액션 장면을 찍기 위해 준비를 해왔다. 액션 장면은 기본적으로 합이 맞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 태화는 두 배우에게 합을 맞추는 며칠 전부터 훈련을 시켜야 했다.

합을 맞추는 훈련은 몇 시간 만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태화는 액션의 합을 맞추어야 하는 두 배우를 위해 액션 팀 스태프인 강진호를 옥탑으로 불렀다. 강진호는 태화가 옥탑으로 와달라는 부탁에 흔쾌히 응했다.

태화도 이런 강진호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액션 팀장님. 이렇게 제 부탁에 흔쾌히 응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태화의 말에 강진호는 호쾌하게 웃었다.

“별말씀을요. 요즘 저 촬영이 없어서 한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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