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어느 날 갑자기, 영감님과 함께-115화 (113/195)

어느 날 갑자기, 영감님과 함께 115화

태화 일행과 조승미는 카페에서 잠시 대화를 나눴다. 발언은 주로 조승미가 했다.

이것저것 궁금한 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과 실제는 여러모로 다르기 때문이다.

조승미가 특히 놀랐던 건 영화의 제작비였다. 이천만 원 남짓한 제작비에 초저예산으로 장편영화를 찍는다는 게 너무 신기했다.

“그 돈으로 어떻게 장편을 찍어요?”

“승미 씨는 로버트 로드리게스 감독의 <엘 마리아치> 영화 알아요?”

“강의 시간에 교수님이 <엘 마리아치> 영화를 언급하셨어요. 초저예산 영화로는 전설적인 작품이라고……. 그런데 자신 있으세요?”

“뭐. 극장 개봉까지는 가야겠죠.”

“자신이 있다는 말이네요.”

조승미의 이 질문은 어쩌면 필요 없는 질문일 수도 있었다. 조승미의 본래 목적은 실제 촬영 현장을 경험해 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궁금했다.

이렇게 초저예산으로 영화를 만들면서 저렇게 자신감을 갖는 이유가.

“어떻게 그렇게 자신하시죠?”

“글쎄요. 자신감이라기보다는 당위성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당위성이요?”

“네. 나를 비롯한 현재 우리 영화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그동안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해왔어요. 그 결과 여기까지 왔고요.”

조승미는 태화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돈이 많이 들어가는 예술 장르다. 부족한 예산으로 영화를 찍는다는 거 자체가 어려움이라는 걸 조승미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내가 그 사람들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우리 영화가 극장에 개봉하는 겁니다.”

“…….”

“극장에 개봉하지 못한 영화는 아무 의미가 없잖아요. 극장에 개봉도 못 하는 영화에 참여했다면 그건 헛수고를 한 거밖에 안 되거든요. 그래서 내가 당위성이라고 말한 겁니다. 극장 개봉은 그 사람들에게 우리 영화에 참여한 것에 대한 보상이니까.”

조승미는 태화의 말에 신뢰감을 느꼈다. 이러한 신뢰감의 바탕에는 태화의 진정성이 있었다.

보통 영화를 하는 사람들은 허세가 좀 있게 마련이다. 조승미의 학부에도 선배와 동기들이 있지만, 허세가 작렬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하지만 태화의 말엔 이런 허세가 없었다.

‘만약 감독님이 진정성이 없었다면 이 작품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겠지. 스태프들도 진즉에 다 떠났을 거고.’

조승미는 자신도 모르게 태화에게 말했다.

“근데 이 작품 개봉될 거 같은데요?”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군요.”

“아니. 그냥 예의상 한 말이 아니에요.”

“네?”

“제 별명이 작두예요. 작두. 감이 좋다고 해서. 그러니까 이 영화 꼭 극장에 개봉될 거예요.”

조승미는 말을 하고 나서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히히.”

조승미가 웃자 태화와 나머지 일행도 순간 웃음이 빵 터졌다.

“하하하.”

#.

태화 일행과 조승미는 전윤석을 만나기 위해 동화은행 서구지점으로 향했다. 전윤석은 태화 일행보다도 먼저 은행에 도착했다. 그는 은행 내부에 들어가기에 앞서 외부에서 은행을 관찰하고 있었다.

태화가 먼저 전윤석을 발견하고 인사를 건넸다.

“전윤석 팀장님!”

태화의 부름에 전윤석이 고개를 돌렸다. 전윤석은 태화를 보자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감독님. 이거 여기서 보니 또 새롭네요.”

“저도 그렇습니다.”

전윤석은 태화와 인사를 하고 나서 한재영, 이우섭, 김현석과 차례로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전윤석의 시선이 조승미에게 멈췄다.

“누구신지?”

“조승미라고 합니다. 이번 촬영 때 스태프로 참여하게 됐습니다.”

전윤석은 조승미가 난데없이 등장한 인물이지만 그렇게 당황하지 않았다. 태화가 미리 문자 메시지로 조승미의 존재를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전윤석 팀장님. 오늘 새로운 인물과 동행할 것 같습니다. 당황하실까 미리 알려드립니다.

-누구인데요?

-은행 지점장 따님입니다. 전공은 영화과이고요.

-혹시 이번 촬영에서 스태프로 참여합니까?

-네. 그렇게 될 거 같습니다.

-알겠어요.

전윤석은 얼굴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

“아. 그렇군요. 반가워요.”

“네. 반갑습니다.”

전윤석은 이미 태화에게 들어서 정보를 알고 있지만, 짐짓 모른 척 말했다.

“혹시 학생?”

“네. 영화과 재학 중입니다.”

“서 감독님 많이 도와줘요.”

“알겠습니다.”

전윤석은 스태프들과 인사를 나눈 후 태화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태화가 전윤석에게 물었다.

“팀장님. 혼자 오셨습니까?”

“아뇨. 형준이하고 같이 왔어요.”

마침 전윤석의 조수 이형준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동안 이형준은 태화가 있는 곳의 반대편에 있었다.

이형준에게 <내 복권 내놔!>는 특별했다. 이 작품이 이형준 자신이 메인 포지션으로 참여하는 첫 작품이기 때문이다. 전윤석이 있긴 하지만 실제 실무는 이형준이 거의 담당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형준은 최수빈이 캐스팅되고 영화 촬영이 재개된다고 했을 때 누구보다 기뻐했었다.

이형준이 태화에게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아. 형준 씨도 함께 오셨네요. 잘 지내셨죠?”

“네. 잘 지냈습니다. 어쨌든 여기까지 왔네요. 하하.”

전윤석이 이형준에게 물었다.

“살펴보니 어때?”

“일단 저번에 왔을 때하고 비교했을 때 크게 변한 게 없어요.”

전윤석과 이형준의 대화를 듣던 태화가 발언했다.

“다행이군요. 많이 작업할 필요가 없어서.”

“네. 그래도 작업은 좀 해야 할 거 같아요.”

“어떤 부분이죠?”

“우선 건물 외관은 어떻게 손을 댈 수 없지만 작은 부분은 작업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은행 포스터 같은 걸 출입문에 붙이려고요.”

“아주 좋은 생각이군요. 주인공인 박성욱과 심수영이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니까요.”

“네.”

“혹시 은행 내부도 보고 오셨나요?”

“네.”

“그럼 같이 들어가시죠.”

“그렇게 하시죠. 감독님.”

#.

태화 일행과 미술 소품팀은 은행 내부로 들어왔다.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오자 은행 청원 경찰이 잠시 앞을 막았다.

“저기 무슨 일이시죠?”

태화가 청원 경찰을 보며 말했다.

“혹시 저 기억 안 나세요?”

청원 경찰이 태화의 얼굴을 자세히 보았다. 잠시 후 청원 경찰이 기억이 난 듯 말했다.

“아. 전에 오셨던 그 영화감독님 맞으시죠?”

“기억하고 계시네요.”

“그럼요. 여기 영화감독님이 오신 것도 특이했고, 게다가 인물이 훤해서 인상이 강하게 남았었습니다. 그런데 촬영은 오늘이 아닌 거로 아는데 무슨 일로?”

은행에서 곧 영화 촬영이 있을 거란 건 청원 경찰에게도 이미 통보가 간 상황이었다.

“촬영 준비 때문에 왔습니다.”

“아. 촬영 준비요.”

태화가 청원 경찰과 대화를 나누는 사이 은행 직원 한 명이 재빨리 다가왔다. 은행 직원은 태화를 보며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어머. 안녕하세요. 감독님.”

“안녕하세요. 김 대리님.”

태화가 김 대리라고 인사한 사람의 이름은 김연수다. 촬영 관련해서 지점장인 조성찬에게 지시받은 인물이다.

김연수는 조승미에게도 인사를 건넸다.

“어머. 승미 씨도 왔네.”

김연수가 조승미의 얼굴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김연수는 조성찬에게 조승미가 온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당황할 법도 하지만 김연수는 얼굴에 당황한 기색을 보이지 않고 능숙하게 행동했다.

“안녕하세요.”

“승미 씨 혹시?”

“네. 저도 이번 촬영에 스태프로 참여해요.”

“아. 그렇구나.”

김연수는 태화와 같이 온 스태프들과 간단하게 인사를 했다. 그런 후 태화에게 물었다.

“감독님. 혹시 필요한 게 있으신가요?”

“오늘은 내부를 한번 둘러보려고요.”

“그거면 되는 건가요?”

“일단은요. 차후 진행은 나중에 따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세요. 필요한 게 있으시면 말씀해 주시고요.”

“네. 신경 써주셔서 고맙습니다.”

김연수는 태화와 대화를 마치고 바로 자신의 자리도 돌아갔다.

[김연수. 저 사람은 분위기 파악을 아주 잘하는 편이구먼.]

[그런가요?]

[가끔 촬영 협조를 받는 곳의 직원이 스태프를 따라다니며 불편함을 주는 경우가 있네. 그런데 김연수는 그런 것 없이 바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지 않는가.]

[영감님 말이 맞아요. 저번에 왔을 때도 깔끔하게 자기가 할 일만 하고 가더라고요.]

[그러기 쉽지 않지. 사람은 기본적으로 호기심 때문에라도 따라붙는 경우가 많은데 말일세.]

[아니면 나중에 책을 잡히지 않기 위해서 그렇게 하기도 하죠.]

[그렇네.]

김연수가 돌아가고 태화와 스태프는 은행 내부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

촬영 당일 오전.

태화와 한재영 이우섭과 김현석은 서울역 광장에 모였다. 태화 일행 앞으로 미니버스 한 대가 서 있었다. 오늘 촬영에 참여할 연기자들을 픽업하기 위해서다.

남녀 주연 배우인 정원석과 최수빈은 지금까지 해왔던 방식으로 이동할 예정이다. 정원석은 자차로 최수빈은 송윤주와 함께 촬영장으로 간다.

오늘 미니버스로 이동할 연기자들은 단역배우들이다. 단역배우들이 약속 장소로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연기자들이 다 모이자 한재영이 태화에게 다가와 말했다.

“나 먼저 이동할게.”

태화는 한재영의 얼굴을 보며 짠한 감정이 올라왔다. 한재영의 얼굴은 피로함에 피부가 푸석해졌고 볼살도 더 빠진 듯했다. 하지만 한재영의 눈빛만큼은 살아 있었다.

태화는 한재영에게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재영은 태화의 표정을 보며 알아챌 수 있었다. 자신을 걱정하고 있다는 걸.

“내 걱정하지 말고 네 걱정이나 해라.”

“뭐?”

“너도 얼굴이 말이 아니야.”

한재영 말처럼 태화도 얼굴이 피곤함에 절어 있었다. 하지만 눈빛만큼은 밝게 빛나고 있었다. 한재영은 태화의 눈빛에서 집념을 읽었다. 그리고 그 집념의 크기는 자신이 따라갈 수 없다는 것도…….

태화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런가?”

“그래. 인마.”

“어쨌든 조심해서 운전해라.”

“알았어.”

한재영은 자차를 타고 대전으로 따로 먼저 이동한다. 일찍 가서 준비할 게 있기 때문이다. 차량 주차 문제부터 시작해서 제작부로서 준비해야 할 사안이 꽤 있다. 한재영이 이우섭과 김현석을 보며 말했다.

“두 사람 수고해.”

“…….”

“이제 고지가 보인다. 조금만 더 고생하자.”

이우섭이 한재영에게 인사를 건넸다.

“재영이 형. 운전 조심하세요.”

“걱정하지 마.”

뒤이어 김현석이 한재영에게 인사를 건넸다.

“이따가 은행에서 봬요.”

“그래.”

한재영은 이우섭, 김현석과 인사를 한 후 자차로 이동했다. 태화는 한재영이 떠나고 나서 이우섭에게 물었다.

“우섭아. 다 온 거야?”

“네. 출연자들 다 모였습니다.”

“출발하자.”

“네.”

이우섭이 출연자들을 향해 외쳤다.

“자. 그럼 지금부터 버스에 탑승하시겠습니다.”

이우섭의 지시에 따라 연기자들이 하나둘씩 미니버스에 탑승했다. 이우섭은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미니버스에 오르는 연기자를 체크했다.

이우섭은 이상이 없자 큰소리로 외쳤다.

“오케이!”

이우섭은 마지막으로 미니버스에 탑승했다. 이우섭이 차에 오르자 운전기사가 미니버스를 출발시켰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