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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영감님과 함께-112화 (110/195)

어느 날 갑자기, 영감님과 함께 112화

태화는 촬영 현장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자 스태프들과 연기자인 정원석과 최수빈을 한곳에 불러 모았다.

“오늘 다들 수고 많았습니다. 오늘은 계획했던 대로 촬영은 더 없습니다. 대신 저번 촬영을 하고 나서 하지 못했던 걸 하려고 합니다.”

소품팀장 전윤석이 태화에게 말했다.

“감독님. 혹시 그거 회식입니까?”

원래 계획은 저번에 있었던 옥탑 촬영을 마치고 회식을 하려고 했었다. 첫 촬영을 마치고 영화에 참여하는 사람들끼리 결속을 다지기 위한 계획이었다. 하지만 선혜영이 불의에 사고를 당하면서 그 계획은 취소되었다.

“네. 맞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회식이라는 게 좀 웃기지만 오늘이 아니면 당분간 하기가 쉽지 않을 거 같아서요.”

“메뉴는 뭡니까?”

“이른 아침이라 메뉴가 좀 한정적입니다. 감자탕입니다. 요 근처에 24시간으로 잘하는 집이 있거든요.”

“뭐. 메뉴가 중요합니까? 한다는 게 중요한 거지.”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오늘 부족한 메뉴는 크랭크 업 때 제대로 하겠습니다. 그럼 이동하시죠.”

태화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스태프와 연기자는 이동하기 위해서 각자 차량에 올라탔다. 마치 그 속도가 좀 과장해서 빛의 속도 같았다.

태화는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른 새벽에 나오면서 제대로 식사하고 나온 사람이 없어서 다들 배가 고팠기 때문이었다. 태화에게 이우섭과 김현석이 다가왔다.

“우섭이하고 현석이. 둘 다 고생 많았다.”

이우섭이 먼저 태화의 말에 대꾸했다.

“오늘 촬영이 잘 끝나서 정말 다행입니다. 아까 취객이 난입했을 땐 아찔했었습니다.”

“…….”

“또 저번처럼 촬영 망치나 싶었어요.”

이우섭에 이어 김현석이 말했다.

“저도 그랬어요. 정말 아깐 눈앞이 캄캄하더라고요. 근데 역시 형은 대처를 잘하더라고요. 저라면 어쩔 줄 몰랐을 텐데요.”

태화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뭐, 닥치니까 하게 되더라고. 정말 이번엔 망치면 안 되니까.”

“그러니까요. 그나저나 재영이 형은 어떻게 됐을까요?”

“걱정하지 마. 재영이 녀석 잘 해결하고 있을 거야.”

“그렇겠죠?”

“그래. 그러니까 우리도 감자탕집으로 이동하자.”

“네. 형.”

#.

감자탕집 사장 유문숙은 50대 중반의 여성으로 이른 아침부터 단체 손님이 몰려들자 함박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감자탕집은 테이블 좌석 없이 온돌방 구조로 되어 있는데 태화를 비롯한 스태프와 연기자가 식당으로 들어가자 삽시간에 감자탕집은 꽉 찼다.

태화를 비롯한 한재영과 이우섭은 그리고 김현석은 가끔 옥탑방 근처 식당에서 식사하곤 했는데 그중 한 곳이 이 감자탕집이었다. 맛도 괜찮고 가격도 합리적이어서 점찍어 둔 식당이었다.

사람들은 몇 개의 자리에 나누어 앉았다. 태화가 자리를 잡은 자리엔 남녀 주연인 정원석과 최수빈, 그리고 촬영감독 이한철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한재영이 난입했던 취객을 해결하고 어느새 자리를 잡고 앉았다. 박주성도 다른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은 상태다.

이한철이 한재영에 물었다.

“그런데 취객이 순하게 한 피디님 따라가던데요. 도대체 뭐라고 한 겁니까?”

“그냥 내가 술 한잔 사겠다고 했더니 그냥 따라오던데요.”

“정말요?”

“네. 정말입니다.”

“그래서 진짜로 술 사주고 온 겁니까?”

“솔직히 처음엔 그렇게 하려고 했는데 취객 그분 상태가 안 되겠더라고요.”

“그래서 어떻게 했는데요?”

“방법이 있나요? 파출소에 신고했어요.”

이한철은 한재영의 적절한 대처에 고개를 끄덕였다.

“일 처리 똘똘하게 했네요.”

“근데 파출소에 신고하라는 건 감독님 생각이에요.”

“네?”

“감독님이 저한테 문자를 보냈어요. 상황이 애매하면 파출소에 신고하라고요. 저도 문자 받고 옳다구나 했죠. 괜히 그분 술 사주다 혹시 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

태화는 촬영이 끝나고 감자탕집으로 이동할 때 한재영에게 문자를 보냈었다. 태화가 문자 메시지를 보낸 건 혹시라도 발생할 수 있는 불미스러운 문제를 차단하기 위해서였다. 태화의 이런 행동에는 박도봉 감독의 조언이 한몫했다.

박도봉 감독은 수많은 작품을 제작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중 촬영 도중 취객이 난입하는 것도 그가 겪어본 수많은 일 중 하나였다.

순간 사람들의 시선이 태화에게 쏠렸다. 그러자 태화가 웃으며 말했다.

“하하. 전 별로 한 일이 없어요. 한 피디님하고 주성 씨가 고생했죠.”

태화는 모든 공을 한재영과 박주성에게 돌렸다.

사람들이 자리 잡은 자리에 비교적 빠르게 음식들이 세팅되었다. 한재영이 며칠 전 예약을 해놔서 유문숙이 미리 준비해 놓았기 때문이다.

음식 세팅이 완료되자 태화는 회식을 진행했다. 태화가 자리에서 일어나 발언했다.

“오늘 이른 새벽부터 나와서 촬영 준비하느라 고생하셨습니다. 특히 오늘은 짧은 시간에 촬영을 마쳐야만 하는 조건이 있었습니다. 중간에 위기가 있었지만, 오늘 촬영은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

“이제 시작에 불과하지만 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들과 함께라면 앞으로 남은 촬영도 잘 헤쳐 나갈 수 있다는 걸.”

태화는 테이블에 놓인 소주잔을 들었다. 그러자 스태프들도 각자 자기 앞에 놓인 소주잔을 들었다. 태화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전 여러분과 이렇게 작업을 같이하는 게 좋습니다. 우리 다 함께 끝까지 가 봅시다!”

태화는 말을 마치고 나서 자기의 손에 들린 소주잔을 깨끗하게 비웠다. 그러자 스태프들이 손뼉을 치며 환호했다.

리더는 때로는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선동해야 할 때가 있다. 그래야 사기가 진작되기 때문이다. 감독도 마찬가지다.

감독은 영화에 참여하는 모든 스태프와 연기자들의 사기를 올려야 한다. 그래야 작품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집중력을 잃지 않고 끝까지 영화 제작에 참여할 수 있다. 하지만 단순히 말만 번지르르하게 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따르지 않는다. 그에 맞는 능력도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태화는 오늘 영화에 참여하는 스태프와 연기자에게 그 능력을 보여주었다. 태화는 위기 상황이 닥쳤을 때 침착하게 대응했고 그 결과도 좋았다.

#.

우여곡절 끝에 첫 촬영이 끝나고 이후 촬영부터는 점점 촬영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그건 태화가 현장에서 보여주는 리더십이 스태프와 연기자들에 신뢰를 심어주었기 때문이다.

태화는 스태프와 연기자들이 자신을 신뢰하고 있다는 걸 몸소 느낄 수 있었다. 리더와 구성원의 관계는 간단하다. 리더가 자기의 능력을 제대로 보여주면 구성원들은 그 리더를 따라갈 수밖에 없다.

연기자들은 태화가 기대한 것 이상을 보여주었고 스태프들도 현장에서 스마트하게 움직였다. 더구나 촬영하다 보면 현장 인력이 부족할 때가 있다. 이럴 때 현장 스태프들은 자기가 데리고 있거나 알고 있는 스태프를 데려왔다. 그리고 그들의 조건은 단 하나였다.

-엔딩 크레딧에 제 이름만 올려주세요.

태화는 이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기에 이들의 요구를 수용했다.

“컷! 오케이!”

태화의 외침을 들은 박도봉 감독이 태화에게 말했다.

[태화 군. 목소리에 아주 기합이 단단히 들어가 있구먼.]

[그거야 당연한 거 아닙니까? 스태프와 연기자들이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잘해주고 있어요. 그러니 감독인 저로서는 당연히 신이 날 수밖에요.]

[허허허. 자네 마음 이해하네. 나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자넨 차분함을 유지해야 하네. 리더는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사람이지만 그 분위기에 휩쓸려서는 안 되네.]

[알고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는 없잖아요.]

[그렇네. 이 분위기로 촬영 끝까지 가야 하네.]

[네. 그렇게 할 겁니다.]

태화의 의지대로 촬영장의 분위기는 흥이 넘쳤고 그에 따라 촬영도 척척 진행이 잘 되어갔다. 그리고 촬영도 어느새 중반을 넘어가고 있었다.

#.

태화와 한재영 그리고 이우섭과 김현석은 이른 아침 대전으로 향했다. 모레 있을 은행 장면을 촬영하기 전 준비를 하기 위해서다. 좌석 배치는 한재영이 운전을 하고 보조석엔 태화가 탑승했다. 이우섭과 김현석은 뒷좌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보통은 촬영 전날 헌팅한 장소로 가지만 이번에는 하루 서둘러 움직였다. 그건 지방에서 촬영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지방 촬영은 이동 거리에 따라서 준비할 시간을 하루나 이틀 정도 더 가져야 한다. 혹시라도 모를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서다.

연출 제작팀과 함께 미술 소품팀도 오늘 대전으로 오기로 했다. 미술 소품팀은 전에 한재영과 함께 동화 은행 서구지점에 온 적이 있었다. 그때 사전 답사를 했고 어느 정도 준비도 된 상태다. 하지만 세트 촬영이 아니라 헌팅한 장소이기에 변수가 생길 수 있다. 가령 그사이에 내부 구조가 바뀔 수도 있다. 그래서 촬영 직전까지 확인하고 또 확인해야 한다.

혹시라도 변화가 있다면 촬영 전날에 오면 준비할 시간이 너무 촉박하게 된다. 그래서 촬영 이틀 전인 오늘 확인차 미술 소품팀이 대전으로 오는 것이다. 미술 소품을 총괄하는 전윤석은 태화 일행보다는 늦게 은행으로 바로 올 예정이다.

뒷좌석에 타고 있던 이우섭이 태화에게 물었다.

“태화 형. 오늘 다시 서울로 올라가나요?”

“별다른 일이 없다면 아마 그렇게 될 거야. 서울에서도 준비할 게 있잖아.”

“그렇죠.”

지방으로 촬영 가게 되면 가장 큰 문제가 바로 사람들의 이동이다. 현장 스태프들이야 개별 차량으로 이동한다고 해도 단역 연기자들은 그렇게 하기 힘들다. 이럴 때 보통 버스를 대여해서 사람들을 이동시킨다.

태화도 연기자들 이동을 위해서 버스를 대여했다. 하지만 일반 버스를 대여할 필요는 없었다. 버스를 타고 이동할 연기자가 그렇게 많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태화는 미니버스를 대여한 상태다. 오늘 대전 일이 마무리되면 서울로 가서 미니버스 대여와 관련한 일을 마무리 지어야 한다.

태화는 11시 40분경 동화 은행 서구지점에 도착했다. 은행을 본 이우섭이 만족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태화 형. 말대로 은행 규모가 꽤 크네요.”

이우섭 옆에 앉아 있던 김현석이 이어서 발언했다.

“그러게요. 사진으로 볼 때보다 더 큰 거 같아요. 근데 태화 형 도와주셨다는 그분. 정말 능력자신 거 같아요.”

태화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능력이 있으신 분이지. 자수성가하신 분이니까.”

태화의 말처럼 이선영은 사업적 감각이 탁월했다. 그래서 단시간에 자기가 설립한 회사를 빠르게 성장시켰다.

태화는 자기의 스마트폰을 들었다. 그리고 이선영의 전화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태화가 처음 전화를 걸었을 땐 차분한 분위기였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태화는 처음 대전을 방문한 이후 몇 번 이선영과 통화를 했는데 이선영의 말투는 점점 편하게 변했다.

이선영이 이렇게 한 건 태화에게서 친근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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